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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환상서사와 우리의 정체성

by 격암(강국진) 2019. 6. 15.

2019.6.15

일본의 유명 만화에 베르세르크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굉장히 카리스마에 넘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지요. 이 만화의 애니 버전을 어쩌다 보게 되었는데 그걸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일본인들은 유럽의 영웅들 이야기를 이렇게 좋아할까?"

 

사실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설인 테츠카 오사무의 우주소년 아톰도 그렇고 이가라시 유미코의 들장미 소녀 캔디도 그러하며 미야자키 하야오의 캐릭터들도 그러합니다만 일본의 애니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대개 유럽 백인에 가깝습니다. 물론 일본은 사무라이나 닌자 이야기를 세상에 퍼뜨리기는 했습니다만 엉뚱하게도 일본은 아시아의 일부가 아니라 유럽의 일부라는 허황된 주장을 하기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한국이 남 이야기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국에도 중국에서 기원한 무협이라는 장르가 있고 서양이 기원인 판타지 장르도 있습니다. 판타지의 경우 실제로 지명이 정확히 유럽이 아닌 경우라도 그들의 이름이며 문화를 보면 중세 유럽을 배경으로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물론 무협이건 판타지건 한국 사람이 쓴 이야기를 지금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우혁의 퇴마록이나 주호민의 신과 함께 같은 작품들이 한국형 판타지를 뿌리 내리려고 하는 것같지만 아직 그다지 성공하지는 못한 것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태왕사신기같은 드라마가 실패한 이유도 이런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것이 제일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우리를 일부로 하는 판타지 서사를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전설의 고향같은 프로그램이 인기가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민담류의 이야기는 오히려 그때가 더 인기가 좋았던 것같습니다. 

 

영웅의 국적이라는 것은 일종의 자신감 또는 오만감의 표출입니다. 자신감과 오만함은 보기에 따라 같은 것이니까요. 예전에 인디펜던스데이라는 미국 영화가 있었습니다. 그걸 보면 미국이 외계인과 싸우는 대표일 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은 직접 전투기를 조종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자연히 온 세계가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지요. 

 

얼마전에는 중국에서 유랑지구라는 영화가 크게 히트쳤는데 이 영화가 중국중심으로 지구를 구하는 이야기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제게는 이것이 CG의 완성도를 떠나 지구를 대표하는 슈퍼파워로써 중국인들이 자신감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느껴졌습니다. 실제로 평균 소득은 어떨지 몰라도 경제규모로 보면 중국은 이미 확실한 G2니까요. 아마 아무리 CG가 좋아도 중국이 아니라 필리핀같은 나라가 지구를 구한다고 하면 필리핀에서도 히트를 치기가 어렵지 않을까 합니다. 결국 판타지의 세계도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으면 설득력이 없으니까요. 

 

과학은 객관성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과학과 사실은 우리가 누구인지 즉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데 있어서 제한적인 역할밖에는 하지 못합니다. 공동체를 묘사하는 정신은 어디까지나 지역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과 허구가 섞여있고 해석의 여지가 남아 있는 상징을 포함하는 환상서사입니다. 환상서사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지는 의미를 확장하고 유지하는 작업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한반도에는 강력한 토지신인 구미호가 있다고 믿는다고  해 봅시다. 한반도의 역사안에 구미호를 끼워넣어서 그것을 통해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왔다고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그 환상서사 안에서 우리는 어느 새 구미호의 자식으로 통합됩니다. 우리는 이같은 환상서사를 무의미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 환상서사를 구미호가 한반도의 자연을 상징하고 있는 이야기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이건 둘 다 옳습니다. 우리가 그렇다고 믿으면 그런 것이죠. 오히려 허황된 이야기라며 과학만 남기고 모든 것을 없애면 우리는 정체성 위기를 겪게 됩니다. 

 

영웅문을 쓴 김용의 환상서사는 초인적 무술이라는 매개를 역사에다 버무린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구미호 환상서사처럼 중국을 하나의 실체로 엮어 냅니다. 은근슬쩍 중국은 또렷한 존재감을 가지게 됩니다. 반지의 제왕을 쓴 톨킨의 환상서사는 유럽의 다양한 민족들을 하나의 판타지 세계속의 구성원으로 엮어냅니다. 한국의 영험한 동물로 호랑이를 꼽는 것도 비슷한 효과가 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어떤 프로 팀을  지지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엘지 팬이라고 하는 것도 환상서사입니다. 이 모두가 과학은 아니지만 우리가 그것을 사랑하고 믿을 때 마치 어떤 연예인의 팬으로서 동지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처럼 우리를 하나로 묶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감각을 강화하고 유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이는 삶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일입니다. 

 

한국인들은 정체성 위기를 겪고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고 이는 한국의 환상서사가 약하고 시대에 뒤져 있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의미를 찾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처럼 보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어떻게 봐야 할지, 이 세계안에서 우리의 존재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나 영화속의 영웅들에게 한국인이란 국적을 주는 것이 힘겹습니다. 

 

그런 환상서사의 허약함 속에서 한국인을 가장 강력하게 지배하는 것이 바로 가문이라는 환상서사입니다. 전세계에 족보책 써가며 수십대 위의 조상까지 따지는 민족은 제가 알기로 한국사람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자기 가문에 대해, 그 피의 연결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합니다. 나는 김유신의 후손, 나는 이순신의 후손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심지어 그걸 환상서사가 아니라고까지 생각합니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는 그건 거의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면 성씨는 부계에 따라 전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아버지의 피뿐만 아니라 나와 다른 성씨를 가진 어머니의 피도 절반을 받았죠. 그리고 나의 아버지와 나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식으로 5대만 올라가도 내 안에 섞여 있는 피는 몇십가문이나 됩니다. 그러니 이 땅에서 수백년 수천년을 살아온 우리들이 서로의 피를 따지는게 무슨 의미가 있어서 나는 왕건의 자손이고 너는 박혁거세의 자손이라고 하겠습니까. 피가 다르다는 것은 환상입니다. 가문의 피라는 개념은 환상입니다. 

 

한국인은 매우 종교적입니다. 절도 많지만 도시에는 공동묘지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십자가가 많고 세계의 최대 대형교회중 절반은 한국에 있다고 하더군요. 한국인이 잃어버린 유대 민족중의 하나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들도 다 우리의 환상서사가 부실한 것이 이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정체성이 부실하니 정신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이 자기가 누구인지, 자신의 삶의 의미가 뭔지를 모르겠다는 허무를 참지 못하고 부실하거나 시대에 뒤진 환상서사를 함부로 믿는 것입니다. 그 결과 스스로를 제약하고 고립시키고 맙니다. 현실과 양립이 안되니까요. 사상적으로 맹목적이 되는 것이나 돈밖에 모르는 추한 인간이 되는 것도 결국 내적인 빈약함이 주요 원인이라고 할 것입니다. 한가지 이야기에서 밖에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요즘 BTS의 세계적 흥행이 한국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습니다. 삼성이 소니를 이겼을 때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었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해도 BTS의 성공은 많은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고 있지요. 한국인 가수들을 보려고 유럽인이며 미국인들이 모여드는 모습에 한국인들은 물론 일본인들이나 중국인들도 어느 정도 자극을 받는 것같습니다. 한국은 어느새 BTS가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를 하나 더 가지게 되었고 한국인들은 BTS와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하나 더 가지게 되었습니다. 10여년전에 제가 일본에 갔을 때 한국사람들이 배용준과 같은 나라 사람으로 지칭되었듯이 말입니다.  

 

지금도 그렇게 되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이야기 문화가 더 풍성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얼마전에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 도깨비는 전세계적인 인기가 있었지요. 그런 것들이 다 우리의 환상서사의 일부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거장이 나타나서 그 모든 것을 통합하는 거대한 세계관을 만들면 그것이 우리를 하나로 느끼게 하는 환상서사가 될 것입니다. 저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정체성의 혼돈으로 세상이 흔들리는 것이 우리를 모두 매우 피곤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이 과학이라는 객관적 지식과 시선을 무시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객관적 지식을 뼈대와 토대로 튼튼히 가졌으면서도 그걸 넘어서 풍요로운 이야기와 관점을 가지는 사람, 그런 사회, 우리는 그런 문화적 풍요로움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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