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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무분류 임시

말의 경계와 남용

by 격암(강국진) 2019. 3. 13.

2019.3.13

가끔 내가 딸아이와 이야기하다가 오타쿠라는 말의 의미를 가지고 다툴 때가 있다. 딸 아이는 오타쿠를 매니아라는 말과 다르지 않게 쓰고 사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데 내가 일본 연구소에서 일본사람들에게 물어본 바에 따르면 그 말이 그렇게 건전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소위 히키코모리라고 불리는 대인기피증 환자의 이미지가 오타쿠에는 따라붙어 있어서 연구소에서는 누군가를 오타쿠라고 부르는 것은 상당히 실례되는 말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물론 누군가를 매니아라고 부르는 것은 그렇지 않았다.

 

사람들은 몰라서 혹은 자연스럽게 혹은 고의적으로 말의 경계를 허물고 확장시킨다. 이런 예는 찾아보면 많다. 서양에서 말하는 맨션이란 매너 하우스 (manor house) 즉 영주의 집으로 상당히 좋은 단독주택같은 것인데 누군가가 한국에서 4층정도하는 저층 집단주거에 맨션이니 빌라니 하는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맨션이나 빌라라고 하면 싸구려 이미지가 떠오르고 아파트에 사는 것보다 맨션에 사는 것을 더 가난한 집에 사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이런 말의 남용이 반대로 이뤄졌다. 아파트는 본래 그 말이 구획을 분리하여 지은 집단 주거라는 뜻이고 따라서 서양에서는 아파트는 서민용 싸구려 집의 이미지를 가진다. 그리고 일본에서도 아파트라고 하면 부실하게 지은 하층민의 집정도의 이미지를 가진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고급 집단 주거지에 이름을 붙이려고 할 때 일본의 누군가는 그것을 맨션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한국사람이 보면 고급 아파트 정도의 것을 맨션이라고 부른다. 일본에서 아파트에 산다고 하면 별로 좋은 집에 산다는 이미지를 주지 못한다. 맨션에 산다고 해야 한다.

 

말의 오남용이란 무지로 인한 것이기도 하지만 물론 의도가 있다. 싸구려 집을 고급 집같은 이미지로 만들기 위해 단어를 일부러 틀리게 쓰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그 단어의 본래 의미가 나중에는 변하게 되는 일이 일어난다. 따라서 말이 복잡하고 근거없이 쓰이는 곳은 사람들의 숨겨진 의도나 욕망이 있는 곳으로 봐야 할 것이다.

 

숨겨진 의도나 욕망이 있는 대표적 장소는 물론 성적인 욕망이 넘치는 곳들이다. 우리는 참 부단히도 말들을 만든다. 그러다가 그런 말의 오남용때문에 그 말의 효과가 사라지면 새로운 말을 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말을 학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30년전 쯤에는 디스코 텍이라는 곳이 있었다. 이 곳은 룸 싸롱이라고 부르는 곳과는 달랐는데 디스코 텍은 젊은 사람들이 춤추는 곳이라면 룸 싸롱은 접대부를 불러서 비싼 술을 마시는 곳이었고 대개의 경우 성적인 문란함이 전혀 다른 수준이었다. 그런데 사실 이런 곳들의 이름들 자체가 그곳이 어떤 곳인지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 룸 살롱의 룸이야 그렇다고 해도 살롱이란 유럽의 고급문화였다. 살롱의 마담은 접대부를 대주는 포주같은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공연을 펼치는 장소의 코디네이터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높은 문화적 소양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집회를 가지고 거기서 마담은 사회같은 역할을 하면서 사람들을 하나 하나 무대로 불러 올리는 그런 곳이었다고 나는 들었다.

 

30년전의 디스코 텍은 요즘의 클럽과는 전혀 달랐다. 이번에 버닝 썬 클럽사건이 벌어지고 기사가 나길래 읽어보면서 내가 한 생각은 이것이었다.

 

이곳이 디스코 텍같은 곳인가 아니면 룸 살롱같은 곳인가?

 

옳은 답은 둘다 아니다일 것이다. 제일 큰 차이는 역시 돈이다. 돈은 어떤 마약보다도 강하고 위험하다. 그래서 돈이 넘치면 술이나 실제 마약이 흘러 다니게 되기 쉽다. 강간이나 매춘 성추행같은 것도 흔해진다. 바로 그 돈을 위해서 기꺼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30년전의 디스코 텍도 당시의 어른들에게는 위험하고 탈선이 넘치는 곳으로 보였겠지만 사실 돈없는 청춘들이 가는 곳은 의도하지 않아도 건전해 진다. 비싼 옷을 입을 여유도 비싼 술을 마실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한국은 람보르기니니 포르쉐니 하는 슈퍼카가 쉽게 발견되는 요즘의 한국과는 정말 전혀 달랐다.

 

30년전에 돈이 있는 것은 접대비로 술을 먹는 성인들이었고 그 성인들이 노는 곳이 바로 룸살롱같은 곳이었다. 앞에서 말했듯이 더 많은 돈이 들어가는 곳은 더 성적으로 문란하다. 나는 요즘의 클럽에 가본 적은 없지만 그곳이 예전의 디스코 텍같은 곳보다 훨씬 더 위험한 곳이되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요즘의 한국인들은 전보다 돈이 많고 예전 이상으로 아니면 적어도 예전만큼이나 허세가 세기 때문이다.

 

한국인들도 놀라게 한 허세가 바로 버닝 선의 만수르세트다. 무려 1억이나 한다는 그 술세트를 시킨다는 것은 정말로 돈을 트럭으로 가져다 버리는 식의 행위다. 그정도 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클럽에서 돈을 실제로 뿌려대는 사람을 봤다는 이야기는 나도 몇번 들었다. 돈을 실제로 뿌리지 않는다고 해도 옷이며 술이며 자동차에 돈을 쓰는 사람들이 노는 곳은 자연히 성적으로 문란해 진다. 지금의 클럽이 예전의 디스코 텍과 달라진 근본적 이유가 그것이고 사람들이 종종 깨닫지 못하지만 접대부가 매춘도 하고 나체쇼도 하곤 한다던 룸 살롱과 비슷해진 이유가 그것이다.

 

나는 내가 오페라공연에 가는 줄 않았는데 알고 보니 그곳이 매춘업소라면 곤란할 것이다. 나는 내가 이발소에 가는 줄 알았는데 그곳이 운동하는 곳이었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몰라서 혹은 알면서도 말의 혼란을 조장하고 그것을 즐긴다. 마치 사람을 죽이는 것을 살인이라고 안 부르고 게임이라고 부르면 그것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처럼 행동한다.

 

조선시대에 사과였던 것이 지금도 사과라면 그 의미는 아주 분명하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자꾸 새로운 말을 만들어 내고, 있는 말의 의미를 흐리게 만들어서 그게 뭔지도 알지 못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말들은 유령과 같다. 실체가 있는 것같으면서도 없다.

 

때로 말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은 정신적 혁명을 위한 지적인 행위가 된다. 그래서 철학자들도 단어를 낯설게 쓰기도 한다. 혁명가도 정신적 해방을 위해서 말을 파괴할 필요가 있을 때가 있다. 이전부터 쓰이던 단어에 붙어 있는 선입견을 깨기 위해서다. 간호원이 옳은 호칭인가 간호사가 옳은 호칭인가가 중요한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세상에는 저열한 욕망때문에 말을 남용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런 경우에는 언론이나 지식인이 그런 말의 오남용을 억제하는 역할을 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한국에서 그런 활동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오히려 혼란을 더 키우는 데 일조하는 것같아 보이기도 한다. 신문 방송이 오히려 말의 남용을 조장한다. 그것은 한국이 정신적으로 중심이 없는 문화적 혼란이 존재하는 나라라는 뜻일 것이다. 지킬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말의 남용에 대한 억제도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은 씁쓸하고 화나는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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