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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무분류 임시

시대착오적 세계전쟁과 미중갈등

by 격암(강국진) 2020. 9. 10.

2020.9.10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지속되고 심화되고 있습니다. 하버드의 역사학자 그레이엄 엘리슨은 신흥 강국과 기성 강국간의 싸움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부르며 역사상 이런 갈등이 생겼을 때 대부분 무력전쟁이 났다고 지적했습니다. 투키디데스는 그리스 역사가로 고대 그리스에서 스파르타와 아테네의 전쟁이었던 펠로폰네소스전쟁이 이런 전쟁중 가장 오래된 것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최근의 예를 들자면 역시 세계 1차대전과 세계 2차 대전입니다. 이들은 떠오르는 독일이 영국프랑스와 전쟁을 일으키고 마찬가지로 확장하던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일으킨 사례입니다. 

 

하지만 당시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비슷하면서 또 굉장히 다릅니다. 무엇보다 지금은 핵무기때문에 전면 무력전쟁이라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인류멸망을 몇번이고 계속할만큼의 핵무기가 지구에는 쌓여 있으니까요. 게다가 핵무기가 아니더라도 무력전쟁은 이미 한참전부터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현대적 전쟁의 시작이라고 불리는 미국의 남북전쟁은 1861년에 있었던 것이며 내전인데도 백만명이나 사상자를 만들었습니다. 이때 미국 남부에 살던 18에서 40세 사이의 남성 30%가 사망했다고 합니다. 북부에서도 20에서 45세 사이의 남성 10%가 죽었습니다. 이렇게 희생자가 많은 이유는 기관총같은 무기가 발달하면서 전쟁의 양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총칼로 싸우는 전쟁은 그 이전에만 해도 그렇게까지 효율적이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훨씬 더 군인의 용감함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겠죠. 옛날 영화보면 왜 상대방이 총을 쏘는데 이쪽은 줄지어서 행진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습니까. 중세의 전쟁 영화보면 칼들고 양쪽편이 서로에게 달려들죠. 구식전쟁은 그랬습니다. 끔찍했지만 인간적인 끔찍함이었죠. 

 

그런데 기계가 발달한 시대의 끔찍함은 그정도가 아닙니다. 남북전쟁에서 사람이 많이 죽게 된 것은 총과 폭약이 더 효율적이 되었는데 전처럼 전면전을 했기 때문입니다. 기관총앞에서 행진하면 혼자서 천명이라도 죽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추세는 빠르게 진행됩니다. 그 결과 1914년에 시작된 1차 세계대전에서는 죽은 군인의 수가 9백만명이었습니다. 1939년에 시작된 2차 세계 대전의 사망자는 민간인을 포함하면 3천5백만에서 6천만명으로 추산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무서운 전쟁들도 이미 70년이 넘은 옛날 전쟁입니다. 그러니까 핵무기도 핵무기지만 재래식 무기로만 싸워도 세계대전때처럼 총력전으로 싸우면 지금 어떻게 되겠습니까? 지금은 드론이 날아가서 사람을 죽이는 시대이며 대륙간 탄도탄도 있는 시대인데요. 인구도 엄청 늘었기 때문에 전쟁으로 수도와 전기만 끊겨도 교통은 마비될테고 물자가 막힌 도시는 누가 가서 살인을 하지 않아도 금새 지옥이 될 겁니다. 이래서 지금은 전쟁다운 전쟁은 불가능합니다. 전쟁다운 전쟁이라면 양쪽 다 멸망이니까요. 미국이 아프칸이나 이라크같은 곳과 싸우는 걸 우리는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이런 건 학살이라고 불러야 옳을 겁니다. 미국 사람중에 아프칸이랑 전쟁하면 본토가 탈레반의 공격을 받게 된다고 믿은 사람은 없을테니까요.

 

예전과 지금은 전쟁의 목적도 다릅니다. 영국 프랑스가 독일과 싸운 이유는 증가하는 공장 생산품을 팔아먹을 식민지를 독차지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당시에는 그게 잘먹고 잘사는 길이었습니다. 부자이며 군사력강한 나라가 군대이끌고 가서 식민지 만들고 수탈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건 그래서 그 전쟁을 이긴 영국과 프랑스가 더 많은 식민지를 차지하게 되었는가 또 세계 패권국가가 되거나 세계 패권을 유지했는가 하는 겁니다. 

 

우리가 알듯이 전쟁후에는 미국이 초강대국이 되었습니다. 미국은 남북전쟁후에 서부개척이라면서 인디언들의 땅을 빼았고 아주 많은 이민자를 받아들였습니다. 남북전쟁으로 북쪽의 공업화세력이 나라를 주도하게 되었고 그 이후에는 그 넓은 땅에 이민자를 채우면서 산업성장을 계속한 것이죠. 석유자원도 풍부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은 독일이나 영국과 식민지를 두고 싸울 필요가 없었습니다. 아프리카 식민지는 다 독립했죠. 지금은 영국 프랑스 독일 모두 식민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이제는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지도 않습니다. A와 B가 싸웠는데 C가 이기는 상황. X를 위해 싸웠는데 X는 아무도 필요없게 된 상황. 이것이 제가 지난 세계전쟁이 시대착오적이었다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직업의 종말을 쓴 테일러 피어슨은 각 시대별로 가장 소중한 자원이 무엇이었나를 정리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표를 좋아해서 자주 언급하는데요. 그에 따르면 14세기에서 17세기에는 그게 토지였고 18세기에서 19세기에는 자본이었으며 20세기에는 지식이었고 21세기에는 창업가 정신이라고 합니다. 이 주장과 전쟁의 이유를 합쳐보면 이런 식이 됩니다. 토지가 중요했을 때는 토지를 두고 싸웠겠죠. 자본이 중요했을 때는 자본을 두고 싸웠을 겁니다. 그런데 이미 자본이 중요한 시대에 토지를 두고 싸우거나 이미 지식이 중요한 시대에 자본을 두고 싸우면 어떤 걸까요. 바로 시대착오적인 전쟁이 되는 겁니다. 

 

이 전쟁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해봅시다. 1, 2차 세계대전이전에는 자본만 있으면 돈을 더 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의 현실적 의미는 당시에는 부자나라가 식민지 수탈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는 말입니다. 자본에 기반하여 식민지 수탈하던 시대의 경제는 사실 요즘 우리가 생각하는 자연스런 시장경제가 아니죠. 그건 국가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상인들의 뒤를 봐주는 시대의 경제입니다. 즉 무력을 동원하는 자본이 빈민과 식민지를 착취하는 시대의 경제라는 것이죠. 착취당하는 빈민과 식민지는 무력에 눌려서 저항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식이 점점 중요해 지면서 즉 과학기술이 더 발달하면서 이런 구도가 깨어집니다. 이제 우리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시장경제의 시대에 점점 진입하게 됩니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무력이 중요하지만 이제는 군사력으로만 돈을 벌기가 어려워집니다. 사실 군사력은 비싼 것입니다. 그러니까 군사를 써서 돈을 벌자면 돈을 많이 벌어야 하는데 무력을 쓰면 시장경제가 망가집니다. 그러니까 군사력은 점점 수지가 덜맞는 존재가 된 겁니다. 군사력이 없어도 돈을 벌 수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일본이죠. 2차세계대전후 일본은 눈부시게 성장해서 1980년대만 해도 세계 1등국가가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일본은 군사력은 없었습니다. 지금의 중국도 무력으로 돈을 번게 아닙니다. 시장경제안에서 반칙을 해가며 성장한 것이죠. 이제는 미국이라고 해도 영국이 했던 것처럼 아편전쟁같은 것으로 돈을 벌 수는 없습니다. 

 

세계 1. 2차 전쟁은 필연적인 것일 수 있고 지금의 시장경제가 만들어진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현대의 눈으로 보면 시대착오적인 전쟁이었습니다. 세계는 무력전쟁에서 경제전쟁의 시대로 넘어가는데 무력을 들고 있던 사람들이 엄청난 피해를 만들어 낸 전쟁이었죠. 그들은 여전히 돈을 옛날 방식으로, 즉 무력으로 벌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유럽은 무의미하게 폐허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중심자리도 미국에게 넘겨주게 되었고 이제는 식민지를 가지려고 하는 나라도 없습니다. 

 

이 옛날 이야기를 한 이유는 물론 미중갈등이 어떤 것인가를 이야기하기 위한 것입니다. 테일러 피터슨의 표는 지식에서 끝이 아닙니다. 테일러 피터슨은 지식이 핵심이었던 시대는 20세기라고 말합니다. 21세기는 그와는 또 다르다고 말하죠. 그래서 어쩌면 미중은 다시 한번 시대착오적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일 수 있고 그 전쟁의 결과 모두가 망할 수도 있습니다. 저는 바로 이것때문에 이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우선 무력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지나치게 우리의 눈을 멀게하지 말아야 합니다. 위에서 말한 그레이엄 엘리슨은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말하면서 미중간의 무력전쟁이 일어나는 것에 조심하자고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오늘날에도 국방력은 중요합니다. 자기를 지킬 힘은 있어야 합니다. 중국과 한국이 전쟁하면 한국이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공멸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무력전쟁에 대한 걱정에서 멈춰서는 안됩니다. 군사력도 중요하다는 것을 전제하고 말하면 오늘날 군사력은 2차 3차적인 문제입니다. 북한의 군사도발에 대한 걱정때문에 한국의 진짜 힘은 군사력이 아니라 경제력에서 나온다는 걸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실 확률적으로 말하자면 무력전쟁이 일어나면 다 죽을테니 전면전은 거의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전쟁은 경제전쟁입니다. 총칼이 오고가지 않는다고 전쟁이 없고 평화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력전쟁에 너무 관심을 많이 둔 결과입니다. 지난번 일본의 한국무역보복을 왜란이라고 부른 사람들도 그렇게 과장을 한것은 아닙니다. 이미 미중간의 전쟁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이 중국기업 화웨이를 죽이는 것만봐도 이건 전면전입니다. 중국이 시장경제 질서 안에서 반칙을 하면서 미국을 따라잡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중국 틱톡을 가지고 문제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만 중국은 구글도 유튜브도 트위터도 다 안됩니다. 이미 한참 전부터 금지였습니다. 외국의 온라인 게임도 대놓고 베끼죠. 중국이 외국기업에게 하는 것처럼 외국기업이 중국에게 하려면 사실 아직도 멀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공평하게 하면 이건 전면전이 되는 것이죠. 이미 전면전입니다.

 

이건 진짜 살고 죽는 문제입니다. 경제전쟁도 무력전쟁만큼이나 피에 물든 것일 수 있습니다. 중국은 인류의 욕망이 키운 화근입니다. 메이드인차이나 물건의 달콤함때문에 중국이라는 나라 내부에서 일어나는 비보편적인 상황에 세계는 눈감아왔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그럭저럭 그래도 굴러가던 이유도, 지금 문제가 아주 커진 이유도 중국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세계가 중국의 성장을 더이상 용납하지 않으면 중국은 말도안되게 커진 욕망을 가지고 스스로를 잡아먹을 겁니다. 티벳, 홍콩, 대만, 위구르, 몽고등 이미 여러 곳에 대해 중국은 21세기 국가로서는 할 수 없는 짓들을 합니다. 팽창하기 위해 주변국과 영토전쟁, 역사전쟁을 벌입니다. 중국은 세계에 위협이 되는 암적인 존재입니다. 중국이 이대로 더 성장해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세계가 안정을 찾으려면 중국이 거지가 되어 힘이 없어지던가 아니면 민주화하고 개방이 되어야 합니다. 두가지 모두 다 지금 상태로서는 어마어마한 피의 댓가가 없으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먼저 우리는 경제전쟁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면 우리는 두번째 단계를 조심스레 확인해 봐야 합니다. 그것은 심지어 그 경제전쟁이라는 것도 이미 시대착오적인 것이 되었을 정도로 이미 미래가 우리 앞에 다가와 있지 않은가 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할 때 미중간의 경제전쟁은 마치 프랑스/영국이 독일과 식민지 쟁탈로 전쟁을 벌인 것이 시대착오적이듯 시대착오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테일러 피터슨의 표는 20세기가 지식의 시대였고 21세기는 창업가 정신의 시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뜻이 뭐가 되었든 20세기와 21세기는 또 다르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할 때 미중간의 경제전쟁은 이미 21세기가 왔는데 20세기의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1차 세계대전때의 유럽 국가들이 가졌던 선입견 즉 돈을 버는 방식은 본래 군사로 식민지를 차지하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틀린 생각이었듯 지금의 우리가 20세기적 사고방식으로 돈은 본래 이렇게 버는 것이다라는 생각이 이제는 틀린 것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테일러 피터슨은 21세기를 창업자정신의 시대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것을 문화의 시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이 뭐가 되건 이 시대에는 국가간의 경제전쟁이 점점 효율성이 떨어질 것입니다. 20세기 초의 무력전쟁이 경제적으로 효율이 떨어져갔듯이 말입니다. 

 

20세기는 보편의 시대였습니다. 즉 이상적으로 말해서 세계에는 단 하나의 자유시장이 있는 겁니다. 이 시장에 회사는 상품을 내놓습니다. 아마도 신지식 즉 신기술에 기반한 좋은 물건이겠죠. 그러면 소비자들이 그걸 선택해서 회사가 돈을 버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는 더 많은 기능을 가지고, 더 싸고, 더 큰 상품이 보편적 기준에 따라 좋은 물건으로 팔립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마치 사람이 사는 방식이란게 보편적으로 딱 하나 존재하는 것처럼 사고 합니다. 이 시대의 경제전쟁이란 이렇게 객관적으로 하나 존재하는 시장에서 경쟁자를 제압하고 시장을 독차지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게 돈버는 방법입니다. 

 

이런 그림은 앞으로는 차차 낡은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플랫폼 비지니스니 하는 말에 익숙합니다. 그리고 그 플랫폼의 구조가 좋은게 뭔가를 정의하는데 큰 영향을 주는 걸 압니다. 본래 어떤 상품의 가치는 내 필요에 의존합니다. 내가 BTS에 미쳐있으면 BTS 인형이 너무 가치있을 수 있지만 아니라면 그 인형의 가치는 크게 달라지죠. 내가 1988년을 재현한 테마파크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워크맨이나 마이마이같은 휴대용 테이프플레이어가 소중한 것이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스마트폰으로 음악을 듣지 그런 걸 쓰지 않을 겁니다. 

 

문화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방식은 여러 다른 부분들이 서로 서로에게 전일적인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삶의 방식이 중요해 지는 시대에는 어떤 물건의 보편적 가치란 약해 집니다. 우리는 그 물건이 놓여진 문맥을 봐야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21세기 사람들은 탈것을 너무 타서 팔다리가 가느다란 외계인처럼 될거라고 상상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근육질의 사람들이 오히려 부자입니다. 그들은 걸어다닐 필요가 없을 정도의 돈이 있지만 스스로 걷는 것을 택합니다. 기계가 싸지면 아무도 걷지 않을거라는 생각은 틀린 것이죠. 

 

문화는 삶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삶이란 한 사람만으로 지탱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은 타인의 삶이 있기에 유지될 수 있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는 문화적 동지가 필요합니다. 그런 동지가 얼마가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우리가 얼마나 만족하며 살 것인가에 큰 영향을 줍니다. 내가 카카오톡이 아무리 좋다고 한들 아무도 카톡을 쓰지 않으면 카톡의 가치가 뭐가 있겠습니까? 인터넷은 미국이 세계최초로 개발했는데 왜 한국인들은 인터넷 통신에 광분하고 컴퓨터를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았을까요. 

 

20세기적 사고방식은 이렇습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좋은 전기차를 만들면 미국에서 그 전기차가 가장 빨리 보편화되는 겁니다. 즉 지식과 기술이 세상을 바꾸는 거죠. 그런데 21세기는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소통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기술은 사방에 넘쳐납니다. 마치 농산물이 넘쳐나도 그걸 유통시키는 상인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농민이상으로 상인이 중요하듯이 지식이 넘쳐나도 그 지식을 삶의 한 방식으로 통합시킬 의지와 통찰력을 지닌 플랫폼, 공동체, 게임집단이 있어야 하는 겁니다. 미래로 가기위해서는 미래기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미래기술은 어떤 의미로 이미 사방에 넘쳐납니다. 부족한 것은 미래로 갈 용기와 의지가 있는 문화집단이고 플랫폼이고 공동체이며 게임참가자 집단입니다. 

 

여기에는 물론 창의력과 진취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문화적 매력이 필요합니다. 요즘 한류가 인기를 얻는 것이 한국에게 굉장히 긍정적인 것은 시대가 이래서 그렇습니다. 문화적 중심이 된다는 것은 바로 플랫폼을 우리가 설정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스탠다드가 된다는 뜻입니다. 카카오가 구글을 능가하는 미래가 온다면 그게 한국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한국의 OTT가 넷플릭스를 능가하는 때가 온다면 그게 한국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전세계 전기차 문화의 중심이 한국이 된다면 그게 한국에게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필라도 본래 외국브랜드였지만 한국이 사들여서 이제는 한국브랜드죠. 넷플릭스를 한국기업으로 만드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런 활동은 분명 경제전쟁의 영향을 받습니다. 다만 부정적인 영향만 받죠. 경제전쟁으로 문화적 성장을 죽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전쟁을 열심히 한다고 문화적 성장이 촉진되지는 않을 겁니다. 미중간의 경제전쟁의 승자가 누가 되건 상대를 죽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자기를 번성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대개 양쪽 모두에 피해를 남기기 쉽죠. 

 

미중갈등에 한국은 되도록 빠져들어서는 안됩니다. 하더라도 일찍할 필요는 없습니다. 미중갈등의 승자가 열매를 차지할거라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전면적 경제전쟁도 전면적 무력전쟁처럼 무의미한 폐허만 남길 겁니다. 우리가 한없이 더 필요한 것은 오직 문화의 힘입니다. 세계인이 한국 배달시스템을 쓰고, 한국 난방 시스템을 쓰고, 한국 통신망방식을 쓰며,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 노래를 들을 때 한국은 새로운 시대의 승자가 될 겁니다. 새 시대는 미사일의 시대도 아니고 대형공장의 시대도 아니며 문화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미중사이의 경제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그것이 진짜 전면전이 된다면 승자는 다시 또 다른 세력이 될 것입니다. 그 역사의 순간에 한국의 미래가 걸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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