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역사에 대한 생각

불쌍한 조선의 왕들

by 격암(강국진) 2019. 10. 22.

넷플릭스에 영화 사도가 있길래 이제야 보게 되었습니다만 저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실 좀 불편했습니다. 그 영화는 어떤 사실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내가 불편해 하는 조선에 대한 기본적 관점을 깔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바로 조선이 왕국 혹은 봉건국가라는 생각입니다. 





봉건국가는 기본적으로 왕이나 황제를 그 정점에 가집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권력구조가 정당화 될 수 있었을 까요? 현실적으로는 물론 왕이 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 정신적 사상적 정당화가 필요했는데요. 대표적인 것이 왕이란 신으로 부터 권력을 부여받은 신성한 사람이라는 생각입니다. 소위 왕권신수설인데 중국의 천자도 그 이름이 하늘의 자식이란 뜻의 천자지요. 다른 중요한 정당화는 사회계약설입니다. 홉스는 리바이어던에서 만인이 만인과 싸우는 상태는 결국 지옥이 될테니 사람들이 왕에게 주권을 양도하는 사회를 말합니다. 이게 바로 사회계약설이죠. 그런데 어느 경우에나 봉건국가라는 관점은 왕이 국가의 주권을 독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래서 왕이 모든 소유와 판결의 주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질서의 현실적 기반은 왕의 경제적 군사적 힘이었겠죠.   


문제는 이런 관점은 지극히 단순한 것이라는 겁니다. 중국의 옛날 국가나 유럽의 국가들에게는 이 그림이 맞았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일본의 막부시대에는 천황이 있어도 쇼군이 권력을 가졌습니다. 이건 벌써 좀 이상하죠. 천황은 권력이 없으니까 천황이 있다고 해서 봉건국가라는 말이 조금 어색합니다. 심지어 메이지 유신이후 일본의 권력을 모두 천황이 차지한 이후의 역사에서도 과연 이것이 통상의 봉건국가인지가 의심스럽습니다. 왜냐면 메이지 천황이 정복전쟁을 해서 천하를 정복하고 쇼군을 물러나게 만든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백성들에게만 상징적으로 군림하는 존재였을 뿐 사실 천황은 꼭두각시같아 보입니다. 


조선에 오면 우리가 왕국에 대해서 가지는 생각은 더구나 극적으로 틀리게 됩니다. 조선은 유학자들이 이성계가문과 합쳐져서 만든 국가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의 기본적 설계가 바로 권력 분립이었습니다. 즉 왕이 왕답지 못한 나라였던 겁니다. 적어도 우리가 통상 왕처럼 산다고 할 때의 그런 왕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조정에는 왕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직책들이 잔뜩 있는데다가 왕은 온갖 제약과 의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사관의 존재였죠. 신하들은 비밀회동을 아무리 해도 좋지만 왕족은 사관이 줄줄이 쫒아다니면서 행적을 기록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힘으로 군림하는게 아니라는 유교의 가르침을 조선 시대 내내 무슨 종교의 가르침인 것처럼 반복했습니다. 


조선의 왕은 일본 막부시대의 천황처럼 무의미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의 왕이나 중국의 천황처럼 군림하는 왕은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사실 후자들은 정복자들이었죠. 중국의 나라들은 수명이 짧고 각 나라는 결국 정복전쟁으로 세워졌습니다. 정복자가 황제를 하고 몇 세대 지나면 다른 사람이 황제가문을 세우는 겁니다. 유럽의 기사나 왕은 전투가 주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의 궁궐이 일본의 성들이나 유럽의 성과는 다른 겁니다. 조선의 귀족이나 왕은 정복전쟁을 하는게 자기들의 주임무가 아니었으니까요. 


그런데 현대적인 눈으로 보면 권력분립을 이룩한 조선이 훨씬 더 민주적이고 지성적인 사회입니다. 예를 들어 앞에서 언급했던 영정조 시대를 보면 국사 시간에는 이때가 조선 후기의 부흥시대로 나옵니다. 그런데 그 부흥시대가 바로 왕과 사대부들이 이리 저리 갈라져서 싸우고 서로를 견제했던 때였습니다. 독재를 막아야 모두에게 좋은 나라가 된다는 것은 권력분립의 정신을 가진 현대 공화국의 기본원리입니다. 조선은 그걸 실천했던 나라였습니다. 


사도를 언뜻 보면 사실 조선에 대해서 씁슬한 생각이 많이 들기 쉽습니다. 조선의 왕이나 세자라는 것이 유약하여 신하들에게 잘 휩쓸리고 성질도 괴팍하여 미친 짓도 많이 한다는 식의 생각이 드니까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조선의 왕이야말로 극한 직업이었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본래 권한과 의무는 균형을 잡아야 좋지만 최악은 권한은 없는데 의무는 많은 겁니다. 진정한 독재군주는 토론이 필요없으니 왕노릇하기 좋겠죠. 세상의 모든 걸 나혼자 가지고 있는데 말입니다. 일은 신하에게 미루고 잘되면 내 공이요 못되면 신하탓으로 했을 겁니다. 이게 중국의 황제고 유럽의 왕입니다. 사실 오늘날의 독재자들도 이러지 않습니까? 반대로 막부시대의 일본 천황은 권한도 없지만 애초에 의무도 없으니 욕먹을 일도 없습니다. 뭔가를 결정할 권한도 없는데 왜 공격하겠습니까?


그런데 조선의 왕은 힘은 다 빼놓고 공식적으로는 결정은 왕이 하는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일본의 막부제처럼 지방자치도 아니었습니다. 조선의 모든 관리는 기본적으로 왕이 다 임명하고 시키는데로 하는 거니까요. 그러니 그 책임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조선의 왕은 사실 조선의 귀족들의 희생양이 되기 딱 좋았습니다. 자기들이 부패로 호화호식은 다 해먹고 백성들이 괴로워 하면 이건 모두 왕이 부덕한 탓이라고 하면서 왕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겁니다. 


그러니까 다른 나라의 역사는 몰라도 조선의 역사를 말하면서 신하와 왕간의 혹은 신하와 신하간의 권력 싸움을 빼놓고 당시를 보면 말이 안되는 겁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줄리엣빼고 이야기를 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역사를 보면 왕이 괜히 미친 놈이 되고 포악하여 사람들을 마구 죽이며 유약해서 나라를 흔들리게 하는 이상한 사람이 됩니다. 아무도 그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데 혼자서 허공에 욕하고 주먹질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미친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게 바로 조선을 보는 세상의 가장 흔한 관점입니다. 우리는 자연스레 조선을 그냥 다른 왕국 그러니까 유럽의 왕국이나 중국의 황제국과 비슷하게 이해하고는 조선을 비하합니다. 왕들이 왜 그모양이었냐고만 말합니다. 신하들은 왜 서로들 싸우냐고 합니다. 그건 오늘날의 파업이나 민주화를 위한 데모를 사람들이 성격이 폭력적이라서 저런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독재해서 거리를 싹 치워놓고 우리는 참 평화로워하고 말하는 식입니다. 


조선의 왕들만큼 괴롭게 살았던 사람도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옛날에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왕의 일상을 한번 연예인보고 따라하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그 연예인이 참 괴로워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조선왕의 하루 일과는 대충 이렇다고 합니다. 


새벽 5시 : 기상 및 윗어른에게 문안인사. 죽으로 요기. 

오전 7시 : 아침 공부 조강. 

오전 9시 : 아침식사후 바로 오전업무 시작.

정오 : 점심식사 후 점심공부 주강. 그리고 바로 오후 업무 시작.

오후 3시 : 야간 당직자 확인 및 야간 암호 정하기.

오후 5시 : 저녁 식사 및 저녁 공부 석강. 

오후 7시 : 침수 전 문안인사. 

이후 밤시간에는 글을 짓고, 독서를 하고, 백성들이 보낸 상소문을 또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왕이니 지켜야 할 예절이 많았겠죠. 요즘 야근하는 셀러리맨들보다 더 번거러운 삶을 살아야 해서 시간은 더 빠듯하고 할 일은 많았을 겁니다. 정조의 글을 보면 백성들에게 내릴 글을 짓느라 몇일씩 밤을 새워야 해서 괴롭다는 말이 나옵니다. 조선은 이렇게 유지되는 나라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정이 명절이나 고위관료가 사망하는 하는 때에만 빼고 주말도 없이 계속되었다는 겁니다. 대통령처럼 5년정도 하는게 아니라 몇십년간 말입니다. 걸핏하면 신하들에게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왕자리에서 쫒겨나고 모욕도 당하던 조선의 왕들은 이렇게 바쁘게 살았습니다. 그러고도 일년내내 모두가 왕을 주목하며 이러니 저러니 하면서 행실을 문제삼았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후손들에게 욕까지 먹는 것은 적어도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떤 의미로 조선의 문제라면 문제는 과연 5백년전에 그들이 꿈꾸는 사상으로 굴러가는 나라가 한계가 없었겠는가 하는 점일 겁니다. 즉 조선을 꿈꿨던 유학자들의 생각이 옳았냐는 것이죠. 현대와는 달리 통신도 느리고 백성의 다수는 문맹입니다. 그런 나라에서 유학의 가르침을 퍼뜨리는 것으로 나라가 잘 굴러갈 수 있었을까요? 사상의 통제력만으로 발생하는 사회적 구심력이 부족해서 조선의 발전이 제약당하지는 않을까요? 


오늘날에도 교과서와 현실은 다릅니다. 당대에 왕이 왕답고 신하가 신하다워야 한다고 가르친다고 귀족들이며 왕족들이 완벽하게 살 수 있었을까요? 인간적 욕망들이 들끓는 세상은 경전에 나오는 말과는 달랐을 겁니다. 그것때문에 세종대왕의 아버지인 태종은 독재적으로 신하들의 힘을 뺍니다. 피도 많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나자 문화적인 세종이 등장해도 태평성대가 이어졌겠죠. 그런데 어느 유교경전에 세상 살이의 이런 원칙이 있습니까? 그들은 마키아 벨리의 군주론같은 걸 읽었어야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왕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 것을 막는다는 생각은 장점이 많지만 한가지 큰 문제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조선밖에 없으면 왕과 권문세족의 균형이 좋기만 할 수도 있겠지만 애초에 나라밖에서는 정복전쟁이 벌어지던 시대에 국가의 힘을 분산시켜만 놓으면 외적이 쳐들어 올 때 갑자기 뭉쳐질 리가 없지요.


심지어 오늘날의 민주국가에서도 군대는 민주적이지 않으며 주먹은 가깝고 법은 멀다고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몇백년전에 왕의 힘을 계속 빼면서 나라를 덕과 사상으로 다스리겠다는 것은 너무 비현실적이 아니었을까요? 


물론 정답은 예나 지금이나 없을지 모릅니다. 지금의 한국도 어떻게 보면 엉망입니다. 게다가 다른 현대국가들도 다 엉망입니다. 그러니 타임머쉰을 타고 가서 조선을 맘대로 지배할 수 있다고 한들 그 시대에 진정한 정답을 주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래도 문제고 저래도 문제죠. 


하지만 조선을 왕의 나라로만 이해하고 조선을 보면 조선은 이해하기 어려워서 우리의 선조들이 다 미친 사람, 싸우기 좋아하는 사람, 무능력자, 뭐 이런 식으로만 보이기 쉬울 겁니다. 이건 옳지 않습니다. 현대의 한국인들은 유럽의 왕이나 고대 그리스의 황제를 조선 시대의 선조들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개 세종대왕의 글에서 교훈을 배우지는 않지만 플라톤이나 시이저의 글에서는 그런 걸 배웁니다. 슬픈 일이죠. 기독교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을 안믿었던 세종대왕이나 이순신은 지옥간다라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말의 의미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 쉬운 것이 바로 뭐든지 외국인들의 눈으로 자기를 보는 한국의 현실입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