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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과 박근혜를 사면하는 것이 관용인가?

by 격암(강국진) 2020. 5. 23.

최근 언론에 문희상, 주호영 등 몇몇 사람들이 연달아 이명박 박근혜를 사면하는 문제에 대해서 때이르게 발언한 일이 보도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런 말들은 이명박과 박근혜에게 독이 될 것이다. 이런 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명박과 박근혜를 절대 사면할 수 없는 이유들을 다시 되새기게 함으로써 모든 사면 논의를 더욱더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용서하고 사면하는 것이 관용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보편적으로 사실일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만약 누군가가 아직 사법적 처벌도 결정되지 않은 n번방 범인들에 대해 사면부터 주장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킬 것이다. 사법적 처벌이란 개인적 복수가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상식과 원칙을 세워서 미래의 범죄를 예방하는 일에 대한 것이다. 

 

세상에는 워낙 사람들이 많으니 n번방 사건도 사면하자고 주장을 하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언론은 그런 때이른 말들을 감히 기사화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면 그런 행동들은 n번방 범죄가 실은 별게 아니라는 인식을 판결이 내려지기도 전에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런 주장은 미래의 n번방 사건을 부추기게 된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봐서 설사 n번방 사건의 주모자들에게 안타까운 면이 있다고 해도 공평과 사회적 가치의 수호를 위해 처벌을 엄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면이 있는 것이다. 

 

이는 일제시대에 저질러 졌던 과거사에 대한 규명에도 적용되는 일이다. 일본 사람들을 포함한 어떤 사람들은 일제시대란 이미 오래전이고 따라서 몇 번 사과받았으면 이제 그냥 덮어둬도 되지 않냐고 한다. 그러나 역사를 기록하고 그에 대한 평가를 공식화하는 일은 과거에 있던 일에 대한 개인적 복수가 아니다. 일본인들의 과거사에 대한 인식이 그러할 때 그것이 현재와 미래에 영향을 크게 주기 때문에 바로 그 부분을 문제 삼는 것이다.

 

위안부문제도 그렇고 강제징용되었던 조선인노동자 문제도 그렇다. 다른 무엇보다 역사인식의 문제인 것이다. 예를 들어 식민지 근대화론을 보자. 그런 주장의 바탕에는 조선인들은 자력으로 발전할 수 없는 구제불능의 사람들이라는 평가가 깔려 있다. 그걸 전제로 했을 때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 일이나 조선에게 저질렀던 일들은 어쩔 수 없었던 비용 정도로 처리되는 면이 있다. 그러니 그걸 그대로 둔다는 것은 그 후예인 지금의 한국도 본래 구제불능의 인간들이었으며 일제 때문에 겨우 이만큼이나 발전해서 오히려 일본에게 은혜를 입은 것처럼 생각해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이런 인식들을 내버려 두는 것을 우리는 관용이라고 부를 수 없다. 이것은 다른 나라를 침공하는 것을 정당화해주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일본이 여전히 더 큰 나라라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안보적으로도 위험한 일이다. 마치 살인자에게 처벌은 안하고 변명을 해줘서 살인을 할 수도 있는 일로 만드는 것이다. 법치국가에서 사적인 복수를 금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렇다면 이명박 박근혜는 어떤가? 지금 우리는 개인적인 다툼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해서 사적인 복수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 원칙과 역사의 문제가 아닌가? 게다가 지금 우리의 입장은 어떤가. 세상은 이미 바뀌어 개혁세력이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데 아무 힘도 없는 이명박과 박근혜에 대해 관용을 베풀어도 되는 때인가? 보수세력이 베풀었던 관용을 본적이나 있는가? 개혁세력의 관용은 어떤 결과를 만들었는가?

 

요즘 한명숙재판에 대한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지금 그 한명숙의 재심은 시작도 되지 않았다. 증거라고는 검찰 강요에 의해 만들어진 그리고 뒤집어진 증언밖에 없는데 한 사람의 인생을 난도질해버린 판결이다. 전두환은 어떤가? 섣부른 사면을 받고 살아남아서 요즘 재판에 나오는 전두환은 내가 뭘 잘못했냐고 반문하고 있는 실정이다. 진작에 죽었어야 할 사람이 호화호식하면서 권력을 누리고 사는 것을, 나와서는 책까지 써서 광주 민주화 운동을 모욕하는 것을 우리는 지금 실제로 보고 있다. 삼성의 재산상속에 대한 재판은 어떤가? 우리나라가 지금 재벌들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라고 할 수 있는가? 언론을 보면 어떤가? 일본과의 문제가 터져 나오자 조중동은 이게 우리나라 신문인지 일본 신문인지가 혼동될 정도로 거의 매국적인 보도를 해대고 있다. 한국인이라서 부끄럽다는 기사가 나오고 걸핏하면 일본을 본받아야 하고 일본을 도와야 한다는 말만 나온다. 

 

그런데 지금이 관용을 생각해야 할 때일까? 우리나라가 개혁에 대세가 되어 있는가? 관용을 말하려면 역사 바로 세우기가 끝났어야 하고, 아무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아야 한다. 지금도 지난 총선이 국민의 뜻이 표출된 것이 아니라 조작선거였다고 주장하는 보수를 보면서도 거기에다 사면이 마치 관용인 듯이 말하는 사람들이 앞뒤가 맞는 것일까? 왠 여유인가? 같은 식이라면 그들은 아무런 반성도 없는 일본에도 한국이 먼저 관용을 베풀고 용서를 해줘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을까? 

 

관용은 좋은 것이다. 하지만 전제가 있다. 그것은 상식이 제자리를 잡는 것이다. 지금 이순간 상식적인 태도는 감히 이명박 박근혜의 사면을 입에도 올리지 못하는 것이다. 문희상은 높은 자리에 앉아서 좋은 대접받고 살만큼 살고 보니 마음이 아주 너그러워진 모양이다. 하지만 보통 국민들이 뒤를 돌아보면 참담하기 짝이 없다. 

 

5월 23일인 오늘은 노무현 서거 11주기다. 우리는 재판도 끝나지 않은 이명박 사면을 논해야 하는가? 각종 블랙리스트로 고생한 사람들은 이런 사면 논란에 뭘 느낄까? 그 당시에 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제대로 처벌받기나 하는가? 사법 농단을 일으킨 양승태는 제대로 처벌받았는가? 지금 이 순간에도 동양대 총장이 줬다는 표창장 하나에 대한 수사가 양승태나 삼성에 대한 수사보다 더 자세한 것 같다. 세월호 진상조사를 방해했던 사람들도 우리는 용서해야 하는가? 지만원 같은 사람들이 여전히 광주 폭도 간첩설을 외치는 시대가 우리가 관용을 말할 시대인가? 

 

이명박 박근혜 시절에 거리로 나가서 시민들이 촛불을 들 때 문희상 따위가 시대의 희망이었는가? 아니다. 그때는 심지어 문재인 조차 그저 참가자일 뿐이었다. 정치인들이 아무 희망도 주지 못했던 시절이 있었다. 박근혜 탄핵도 지금 와 돌아보면 국민들이 끈질기게 촛불시위를 하면서 요구했기에 일어난 일이지 정치권에서는 처음에는 회의적이었고 미적댔었다. 그러나 국민들이 끈질기게 박근혜 탄핵을 요구한 것이다. 

 

이명박 박근혜시대라는 어두운 시기에 국민들이 들고일어나 그야말로 멱살을 잡고 대한민국을 앞으로 전진시켰는데 이제 높은 자리에 앉아 퇴임하시면서 노무현 서거를 앞에 둔 마당에 이명박 박근혜 사면을 말하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우리는 과연 박근혜에 대한 관용을 말할 위치에 있는가? 왜 피해자들에 대한 진상규명은 한없이 느리고 범죄자들에 대한 사면요구는 이렇게 빠른가? 사면을 말하는 사람은 시대의 배신자들이 아닌가?

 

요즘 한국의 위상이 세계속에서 올라가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는 그저 공치사가 아니라 정말 깨어있는 시민들이 대한민국을 고생 고생하며 여기까지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정치인, 판사, 검사, 기자들도 모든 다른 시민들처럼 나름의 역할을 했겠지만 결코 그들이 주역은 아니다. 그런데 재판도 끝나지 않은 박근혜를 사면시키자는 말이 감히 벌써 나온다. 이게 상식인가? 감히 이런 말이 쉽게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야 말로 이명박 박근혜가 절대 사면받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한국이 중심을 제대로 잡고 서려면 아직 시간이 필요하다는 증거다. 그날까지 이명박 박근혜는 감옥에 있어야 한다. n번방 주모자들이 감옥에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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