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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성의 문제

음란할 자유는 존중할 가치가 없는가?

by 격암(강국진) 2020. 5. 26.

최근 프로야구 경기장에서 리얼돌 인형이 응원에 쓰이는 바람에 다시 리얼돌 이야기가 조금 나오고 있습니다.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리얼돌을 허용해야 하는가 마는가를 가지고 변호사들이 토론을 하게 만들고 거기에 여러가지 댓글도 달렸더군요. 혹시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말씀드리지만 리얼돌이란 인간형태를 가진 인형이며 섹스의 상대역할을 할 수 있어서 리얼돌체험방같은 것도 있다고 합니다. 일본에서 잘 만드는지 수입도 하는데 이것에 대해 여성들중에는 반대하는 사람도 있다고 하죠. 

 

리얼돌에 대한 논쟁이 중요해 지는 것은 리얼돌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나 대중이 개인의 자유에 대해 어디까지 간섭해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성소수자가 아니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원칙이 각종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원칙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기에 성소수자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게이 이야기에서도 게이를 옹호하면 너도 게이구나라고 반응하는 분들이 있듯이 포르노 영화나 리얼돌 같은 것에 대해서 옹호의견을 내면 그게 그렇게 하고 싶냐고 반응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은 것은 이런 태도가 옳지 않다는 겁니다. 사람은 모두 서로 다릅니다. 그리고 모두가 어떤 때는 사회적 소수자가 됩니다. 요즘 세상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수파를 이루는 사람들이 모든 사안에 대해 소수자에게 꼭 그게 필요하냐고 말하며 억압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사회는 결국 소수만 피해보고 사는 답답한 사회가 아니라 실은 누구도 편안히 살 수 없는 지옥같은 사회가 됩니다. 시대를 봉건사회보다 더 답답하게 만드는 겁니다. 중앙독재를 하던 봉건사회는 요즘처럼 다른 사람 감시하는 일이 가능하지 않아서 숨쉴 구멍이 있었습니다. 오늘날 같은 사회에서 왕이나 법이 모든 걸 결정하면 지옥도 그런 지옥이 없죠. 

 

우리는 우리에게 불편한 것을 어디까지 허용할 수 있을까요? 여기에는 논리적이고 절대적인 답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에게 허용되지 않는 선은 이런 겁니다. 세상에는 소아성애자도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소아의 모양을 본 뜬 리얼돌을 사고 파는 것도 상상가능합니다. 그런 상상은 저에게 매우 불편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것은 불법화했으면 좋겠습니다. 즉 사회적으로 허용하지 말았으면 하는 겁니다. 

 

그런데 아예 성인의 모습을 가진 리얼돌 조차 제작 수입 판매를 불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그정도가 아니라 인간의 모습을 본 뜬 성기구 자체가 불쾌하며 그런 걸 금지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실 미디어로 보면 사람이 들어가서 일하는 키스방같은 것보다 인형을 가져다 놓고 영업한다는 리얼돌 체험방에 반대가 더 크게 나오는 것같습니다. 이건 사람이 사람을 발로 차면 괜찮은데 사람처럼 생긴 인형을 발로 차면 인권유린이라는 말처럼 기묘하게 보입니다. 

 

형식적으로 말해서 저는 그런 분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선이 다른 것이죠. 저는 소아 모양의 리얼돌에 반대하지만 성인모양의 리얼돌에 반대하지 않을 뿐입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원래 이런 것은 불편하고 끔직한 것이다라는 말로 너무 쉽게 빠져들어서는 안됩니다. 똑같은 형식논리로 결과는 아주 다를 수 있으며 세상에는 아주 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뭔가를 허용하는 일이 정말 불편해도 그게 정말 큰 피해를 만들어 내는지 고민해 봐야 합니다. 자유는 소중한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인간은 음란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상상의 자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통상의 윤리범위를 훨씬 넘어도 말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이미 그런 논리를 근거로 퍼져있는 것이 아주 많습니다. 오락이나 영화에서 잔인한 장면은 얼마나 많습니까? 묘사하기도 불쾌할 정도의 잔인한 장면들이 영화며 드라마에 요즘은 아주 흔합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그걸 봐야 합니다. 세상에는 이런 문제때문에 오락을 많이 하면 폭력성이 증가한다는 주장을 하시며 오락을 억압하려고 하는 분들도 계시죠. 하지만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불쾌한 일이니 그걸 다 금지하자고 하면 세상이 어떻게 될까요? 영화나 오락의 폭력이 현실의 폭력을 증가시킨다는 주장은 확실한 겁니까? 그런게 지금보다 작았던 40년전에 세상은 비폭력적이고 아름다웠습니까?

 

불륜은 어떻습니까? 불륜을 묘사한 영화와 성행위를 찍은 포르노 중에 어느 것이 더 불쾌한 것인가도 개인의 취향 문제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대개의 요즘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극적 재미를 위해 불륜을 일방적으로 나쁜 것으로 그리지도 않습니다. 대개는 이런 저런 사연이 있어서 그런 것으로 묘사하죠. 그래야 이야기가 개연성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불륜드라마는 불륜옹호드라마처럼 보이기도 하는 일이 많은게 현실입니다. 주인공이 엄청난 수의 사람을 죽여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오락물로 소비되는 존 윅같은 영화처럼 말입니다. 

 

이런 말들이 불쾌한 것을 불쾌해 하지 말라거나 불쾌하다고 말하는 것을 멈추라는 말은 아닙니다. 리얼돌을 사거나 리얼돌체험방을 다니는 사람과는 되도록 말도 섞지 않겠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게 잘못된 태도라고 말하면 그건 역차별이겠죠. 다만 자기에게 불쾌한 것을 불법으로 만들고 남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겁니다. 

 

한국은 이제 자타가 공인하는 선진국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말해지는 서구와 일본과 비교할 때 한국은 다양성이 부족하면 부족했지 결코 방만한 사회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이 말이 우리나라가 서구나 일본과 같아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을 똑같이 만들려고 하는 힘이 한국에서는 지나치게 강하며 그때문에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이 더 현실에 가깝지. 한국이 너무 방만하여 정신적 파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같아보지는 않는다는 말입니다. 

 

문화적 다양성은 그 시대적 환경에 따라 바뀌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방만해져도 안되겠지만 반대로 지나치게 억압하면 그 억압이 사회 문제를 만듭니다. 그런게 어디있냐고 하겠지만 몇십년전만 해도 이 나라에서는 미니 스커트의 길이를 쟀습니다. 그런 나라에 패션과 영상산업이 발달할까요? 그 시대로 우리가 가서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하면 단속하는 사람이 여자가 짧은 치마 입어서 좋은게 뭐가 있냐고 말하지 않을까요? 그걸 꼭 그렇게 입고 싶냐고, 꼭 그렇게 다리를 보여주고 싶냐고 반문하지 않을까요?

 

문제는 돈뿐만이 아닙니다. 왜 한국 사람들이 명절마다 읽는 기사에서는 명절에 결혼이야기나 가사노동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스트레스 주지말라는 구절이 나올까요? 그만큼 한국은 사람은 이렇게 저렇게 살게 되어 있다는 선입견이 강해서 그게 여러 사람을 억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그렇게 큰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도 많은 한국인들은 다른 사람이 이러니 저러니 하는 말을 하고 싶어서 안달나 있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습니다. 남자가 이렇다, 여자가 이렇다, 성인은 이렇다 학생은 저렇다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런 걸 꼰대라고 보통 부르는 것같습니다. 그런데 꼰대가 많은 나라답게 자칭 진보주의자들도 꼰대가 많아 보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불편한 것을 불편하다고 말하는 것을 넘어서 모두 법으로 만들려고 합니다. 그러나 법은 아무리 자세히 만들어도 현실 그 자체를 판단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A를 처벌하겠다고 만든 법이 B를 처벌하는 일이 생깁니다. 사실 모든 인간들은 서로 다 다릅니다. 어떻게 법으로 똑같이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리얼돌 문제가 사소하다면 사소하지만 요즘은 워낙 집단주의나 법만능주의가 늘어나고 있는 것같습니다. 집단으로 몰려다니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사회적 판단으로 법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입니다. 좋은 세상은 규칙이나 법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수단일 뿐입니다. 좋은 세상은 언제나 좋은 사람들이 만드는 겁니다. 그걸 잊고 자꾸 문구에 빠질 수록 우리는 답답한 세상에 살게 될 겁니다. 주장하는 것은 자유지만 남들이 자기에게 동조해 주지 않는 것을 납득하는 것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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