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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성의 문제

너무나 남성적인 페미니즘

by 격암(강국진) 2020. 9. 27.

요즘은 여성이 남성을 이기는 시대다. 그러나 이 말은 반드시 성별이 여성인 사람이 성별이 남성인 사람을 이긴다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소유적이고 제국적인 문화, 남성문화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어떤 문화가 퇴조하고 상대적으로 소통과 감수성을 강조하는 문화 즉 여성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문화가 힘을 얻는다는 의미에서 그런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남성이니 여성이니 하는 이름을 붙이는 이유는 아무래도 남성이 사회를 주도했던 과거에 여성의 문화는 비주류였으며 그런 사회에서 적응하고 살아온 여성들의 문화속에는 우리가 지금 여성적인 문화가 이기는 시대라고 말할 때 보이는 특성이 더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실제로도 요즘은 성별이 여성인 사람들이 경쟁력을 더 가지는 경우도 많이 있다. 

 

하지만 여성이 남성을 이기는 시대라는 말의 핵심은 엄밀히 말해 사고방식과 문화이지 생물학적 성별이 아니다. 이걸 착각하면 모처럼 많은 여성들에게 좋은 시대가 오는데 그걸 뒤집어서 시간을 거꾸로 돌리고 사회적인 퇴보를 만들어 내는 것을 여성운동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현실에는 생물학적으로만 여성일 뿐 남성적 문화에 가장 많이 중독된 여성들이 사람들에게 너희들도 나처럼 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다. 

 

 

여성이 남성을 이기는 시대란 반드시 슈퍼맨의 성별이 여자로 바뀌거나 성별이 여성인 대통령이 나오는 시대가 아니다. 실제로 대통령이 된 여성인 박근혜는 문화적 의미에서 어떤 남자보다도 남성적인데 이는 그녀가 감수성이 부족하고 대화에 약할 뿐만 아니라 군사문화의 수호자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대표해 온 보수 정치권이나 박사모는 그야말로 골수 남성문화라고 부를 수 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사실 박근혜의 통치는 대다수의 여성들에게는 비극이다. 물고기와 육지동물이 경쟁을 한다면 물에서 하는게 물고기에게 유리하다. 성별로야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이 모두 남성이지만 그들의 문화는 오히려 여성적이다. 반대로 박근혜는 성별은 여자지만 시대를 뒤로 되돌리는 남성적인 사람이다. 그러니 박근혜 통치가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비극인 것이다. 제국주의를 남성적이라고 할 때 제국을 이끄는 사람이 여왕이라고 해서 그 제국이 여성적이 되는게 아니다. 

 

박근혜같은 금수저들뿐만 아니라 다수의 자칭 여성 페미니스트도 남성적이다. 그들은 남녀평등을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

 

만약 두 사람의 성별이 남자와 여자로 다르다는 것만을 제외하고 모든 다른 조건이 같을 때 두 사람은 같은 대접을 받아야 한다.

 

나는 이걸 소박한 페미니즘이라고 부르겠다. 소박한 페미니즘은 똑같은 사람인데 왜 차별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소박한 페미니즘이 말하는 원칙은 기억할 가치가 있고 많은 경우에 관철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소박한 페미니즘은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의 핵심에서 벗어나서 지엽적인 질문에 매달린다. 소박한 페미니즘은 시대에 뒤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던져야 할 핵심적인 질문은 다양성의 질문이다. 즉 서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소박한 페미니즘의 질문과 다양성의 질문이 반드시 서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두가지 질문은 그 방향이 상당히 다르다. 첫째로 다양성의 질문은 우리가 서로 다르며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반면에 소박한 페미니즘은 세상에는 인간만 있다거나 남자와 여자가 있다는 식의 똑같음을 강조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다양성의 질문은 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를 질문한다. 반면에 소박한 페미니즘은 남녀간의 억압구조를 기정사실화한 다음에 어떻게 여성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가에 집중한다. 

 

소박한 페미니즘은 사람들간의 차이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남자는 모두 그저 남자가 되고 여자는 모두 그저 여자가 된다.  소박한 페미니즘은 기억해야할 원칙이지만 오히려 남녀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그것은 낡은 이데올로기이며 이 세상이나 우리 주변의 사람들을 그저 몇개의 관념들로 인식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하는 퇴행적 믿음이고 우리가 사는 이 복잡한 세상에서는 비현실적이다. 성별빼고 나머지는 다 똑같다고? 그런 말이 현실적일까? 소박한 페미니즘이 던지는 질문을 뒤집어보자. 그것은 성별 이외에 어떤 차이가 있으면 차별이 있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도 된다. 그런데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측면이 있다. 그러니까 남녀차별을 하고 싶은 사람이 어떤 핑게를 찾아서 단순히 성별의 차이가 아닌 다른 차이가 있으며 그 차이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일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분명한 남녀차별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을 여러가지 차이에 기반한 필터를 설치해서 별다른 어려움없이 만들 수 있다. 

 

모든 것은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다. 우리는 모두 같다라는 논리를 너무 강조하면 오히려 우리가 서로 다른 어떤 면들이 지나치게 강조된다. 같으니까라고 자꾸 강조하면 다르지 않냐고 반박당한다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누구도 서로 같지 않다는 다양성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경우는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같지만 모든 사람은 모든 사람과 다르다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기 때문에 어떤 차이나 다름의 중요성을 오히려 사소하게 만든다. 남자와 여자는 같지 않다. 이렇게 말하면 소박한 페미니즘의 신봉자는 발끈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남자와 남자도 같지 않고 여자와 여자도 같지 않다. 이런 것이다. 

 

소박한 페미니즘은 남성적이며 제국주의적이다. 결국은 남성진영이 여성진영을 억압해 왔으니 여성이 모여서 내 몫을 찾겠다. 그걸 넘어 남성진영을 반대로 억압해 보겠다는 식이 된다. 남자는 하는데 여자는 왜 못하냐는 식의 말이 자주 튀어나온다. 독립이니 해방이니 하는 구호가 튀어 나온다. 남자 영웅이 총칼들고 전쟁에서 이겨서 영웅이 되는걸 보고 여자도 총칼들고 전쟁영웅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슈퍼맨을 캡틴 마블로 대체하는 것이 소박한 페미니즘이고 여성이 남성이 되겠다는게 소박한 페미니즘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다가는 모처럼 여성들에게 온 기회를 걷어차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말하는 남성적 문화, 여성적 문화는 문화나 철학이지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남자들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나는 이미 민주정권의 지도자였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의 문화를 여성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남자들이 여성적 리더쉽에 달통하고 나면 여성들은 기회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도 가장 남성적인 여자를 여자의 지도자요 대변자로 삼아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하는 자칭 페미니스트들이 있다. 그들은 투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나의 가정을 세계라고 보았을 때 남성적인 영웅의 대표는 아빠다. 무뚝뚝하지만 외적인 위협으로부터 가정을 보호하고 집안에 힘을 통한 질서를 가져오는 그런 영웅이다. 그리고 이 영웅은 물론 미국의 마블코믹스 영화에 나오는 전통적 영웅상이 보여주는 영웅이기도 하다. 그런데 우리 시대가 요구하고 있는 것은 여성적인 영웅이고 이 영웅의 대표는 바로 엄마다. 그녀는 세심하게 사람들을 살피고 소통하며 힘이 아니라 생활속의 작은 영향력들로 즉 문화로 일을 만들어 간다. 애초에 조선시대부터 전사의 문화가 아니라 여성적 문화를 가졌던 한국은 엄마를 영웅시하는 메세지를 문화물안에 가지고 있을 때가 많다. 엄마의 위대함, 여성적 문화의 위대함을 우리는 안다. 고생하는 엄마가 나오는 드라마는 언제나 한국인을 울린다. 

 

그런데 남성적 페미니즘, 소박한 페미니즘에 물든 사람들은 엄마를 부정한다. 나는 그런 엄마가 되지 않을 것이며, 위대한 엄마의 이미지는 여성억압을 위해서 남자가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오류이며 때로 파렴치한 것이기도 하다. 부페식 페미니즘이라고 조롱당하기도 하는 그런 태도는 남성적 영웅의 특권과 영광을 꿈꾸면서 남성이 지는 책임은 지지 않으려고 하고 그렇다고 여성이기도 거부해서 결국 이기주의를 다른 무슨 주의라고 가장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가부장적인 아빠를 부정하고 비판하는 일은 쉬운 일이다. 희생적인 엄마를 안타까워하는 일도 좋은 일이다. 하지만 정작 그 아빠와 엄마에 기생하면서 아빠도 엄마도 되지 못하고 모두 바보라고만 하는 것은 그저 이기적인 것 뿐이다. 누가 더 그런가는 별도로 물론 아빠되기도 엄마되기도 쉽지 않다. 

 

영웅으로서의 엄마를 부정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은 지금이야 말로 그런 리더쉽이 가치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성 스스로가 성별만 여자일 뿐 여성의 문화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을 리더로 만들고 페미니즘의 지도자로 만들어서 여자에게 도움이 될까?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남자와 싸워 이기는 여성 지도자가 아니다. 아빠에게 한재산 유산으로 받아 떵떵거리거나 권력과 부를 가진 남자하고 결혼해서 그런 배경을 믿고 큰소리치는 여자도 아니다. 남자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여성 지도자다. 엄마다. 

 

다시 말하지만 이 남성적이라던가 여성적이라는 것은 문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걸 배우고 있다. 일반 가정의 요리사는 종종 여성이지만 유명 세프는 남자가 더 많듯이 이 여성적 문화를 남자들이 또다시 먼저 달통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여성을 위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많은 자칭 페미니스트가 하고 있는 일이 딱 이거다. 여성혐오를 하지 말라고 외치는 극단 페미니즘사이트의 행태는 남자들도 싫어하는 극우 사이트 일베와 종종 다르지 않다. 그들은 남자가 되고 싶어하는 페미니스트들이다. 룸싸롱에 가는 남자가 부러워서 우리도 호스트바에 갈 권리가 있다고 외치는 것이 여성해방의 핵심이 아니다.  프리섹스 시대가 여성이 해방되는 시대가 아니다. 욕망의 자유로운 추구가 여성해방이 아니다. 그건 전사의 문화, 약탈의 문화고 이 글에서 말하는 과거의 남자의 문화다. 이런 시대에 역행하는 태도는 모두를 위해서도 그리고 특히 여성을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다 힘을 추구한다는 남성들이 섬세함까지 갖추게 된다면 진정한 여성영웅은 언제 등장할 수 있겠는가. 나는 남자지만 사랑할 수 있고 존경할 수 있는 여성지도자의 등장을 몹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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