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는 대가족 제도에서 가장 연장자인 남성이 가족을 이끌고 대표하는 관습을 말한다. 이제는 가부장적이다라는 말이 쓸데없는 권위를 부리려고 한다는 말의 대표가 될 정도로 가부장제는 시대에 뒤진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 가부장제의 흔적속에서 고통받는 것은 결코 여성뿐만이 아니다. 가부장제가 낡은 것이 된 시대에 남자도 이때문에 크게 고통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남자는 대표이고 책임지는 사람이 되라고 교육받았다. 그러니까 남자와 여자 한쌍이 있으면 나서서 일을 처리하고 책임지는 사람은 남자가 되어야 할 때가 있다는 선입견이 있달까. 이러한 선입견이나 관습으로 인해 여성들이 기분이 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제는 거의 그런 것이 사라졌기는 하지만 여전히 남자가 대표 여자는 보조라는 식의 관습은 많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여전히 회사 CEO 중에서 여성의 비율은 남자보다 훨씬 작다. 제사때 남자만 절하는 집이 상당 수다. 남자는 바깥 사람이고 여자는 안 사람이라는 말로 부부를 칭한다. 무엇보다 호칭이 뭐가 되던 고졸 여성과 결혼할 대졸 남성보다는 고졸 남자와 결혼할 대졸 여성이 작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라고 느껴진다. 즉 경우에 따라 다르고 정도의 차는 다르지만 결혼을 할 때쯤에는 남성은 자신이 보호할 수 있는 여성을 찾는 반면 여성은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남자를 찾는 관행은 여전히 어느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발적으로 내가 일할 테니 전업주부로 가사를 돌보라고 남자에게 말하는 여성을 나는 평생 본 적이 없다.
당연히 가부장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남자는 여성들에게 극도로 비판받는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한가지를 기억해야 한다. 그것은 작은 집단에서는 그걸 가장이라고 부르던 리더라고 부르던 그냥 책임자라고 부르던 어떤 리더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 교육을 받은 나머지 그것이 작은 집단에서는 지극히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종종 잊는다. 그래서 국가와 가족이나 국가와 작은 회사같이 서로 집단의 크기가 다른 걸 생각하면서 모두 민주주의가 옳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모두가 평등한 집단이란 비현실적이다.
국가에서는 선거라던가 언론이라던가 사법부나 3권분립같은 제도가 가능하다. 하지만 작은 집단에서는 그런 민주주의 절차는 대개 매우 비효율적이며 현실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큰 집단에서는 인간 평등의 개념으로 일을 처리할 수 있지만 작은 수의 사람이 존재하는 작은 집단에서는 사람들의 특성이 보다 분명히 들어난다. 그러니까 예를 들어 3살짜리 아이와 컴맹인 남성 그리고 요리라고는 해본 적이 없는 여성으로 이뤄진 작은 가족에서 모든 일을 다수결로 처리한다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때로 3살짜리 아이의 의견도 중요하겠지만 어른과 아이를 평등하게 다루는 것은 아이에게 지나친 의무를 지우는 일이 되거나 아이에게 어른이 휘둘리는 일이 되고 컴퓨터 일을 할 때는 여성이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요리를 할 때는 남성의 지휘를 받는 것이 옳다. 민주적으로 다수결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바보짓이다.
여전히 존재하는 남성에 대한 가부장적인 전통의 영향 그리고 어느 가족이나 집단이나 책임자가 필요하다는 현실이 합쳐지면 피해보는 것은 언제나 여자가 아니다. 남자는 책임자이고 여자는 보조 역할이라는 말이 여성에게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친목회같은 곳에서도 총무같은 사람을 뽑아서 돈관리를 시키고 연락을 담당하게 한다.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구나 그 총무 자리를 하고 싶던가? 총무같은 걸 하면 일은 잔뜩 하고 잘 못하면 비판당하고 모임에 빠지고 싶어도 자기가 총무면 그러기 어렵다. 그러니까 그런 자리를 맡지 않고 그냥 내 편한 대로 살다가 불편하면 총무에게 항의나 하면서 사는게 더 편하지 않던가? 총무나 반장같은 건 하고 싶다는 사람도 있지만 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지 않던가?
남자이건 여자이건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누구나 책임지는 자리에 서고 싶어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계속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입장으로 몰리는 남자들이 좋기만 할 리가 없다. 이 세상이 정말 가부장적 사회라서 가장이 되면 집안 사람들이 모두 가장에게 절대 복종하는 그런 세상이면 또 모른다. 가부장제는 무너져서 가장이라고 해도 명령을 하면 듣지도 않게 된 것이 현실인데 이런 저런 아쉬운 일이 생기면 그래도 당신이 가장이잖아라는 식으로 책임만 떠앉게 되는 것은 최악일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의 예는 소위 기러기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들일 것이다. 자녀와 아내는 외국에 나가있고 한국에서 돈을 벌어서 생활비만 보내는 기러기 아빠들은 가부장제가 무너진 세상에서 도대체 어떤 입장에 있게 되는가? 나는 기러기 아빠라는 말은 들어 봤어도 기러기 엄마라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 경우도 있을 수는 있지만 그런 말이 없는 것은 대개 일이 어떤 식으로 돌아가는가를 알려준다.
나는 결코 여성보다 남성이 더 피해자라는 식의 말을 하고 있는게 아니다. 남성이 어떻고 여성이 어떻다는 식으로 뭉뚱그려서 누가 가해자고 피해자라고 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다. 가부장제는 남자를 높여주는 제도니까 그런 악습으로 인해 피해자가 되는 것은 여성뿐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오해다. 집집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래서 여성들은 남성의 억압을 느끼지만 남성들 중에는 퐁퐁남 운운하면서 여성에게 이용만 당하는 것이 남자라는 주장도 나오는 것이다. 이런 일반론들은 모두 진실을 포함하고 거짓도 포함한다. 그래서 단순한 일반론은 결국 모두 옳지 않다.
불이 나지 않는 마을의 소방관은 하는 일이 없어 보인다. 그것은 사실일 수도 있고 화제 예방을 잘하기 때문에 소방관이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데도 마을 사람들이 그 소방관이 노는 것처럼 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설사 소방관이 놀고 있더라도 소방관이라는 직업을 없애보면 그리고 나서 화재가 나고 그 화재가 마을을 크게 태우면 사람들은 느낄 것이다. 대기하는 것도 소방관의 일이었다는 것을. 전쟁이 없으니 군대가 필요없고 군인은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식의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고 가족이건 회사건 지역공동체건 집단속에서 살아간다. 그럴 때 우리는 서로의 희생과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가 힘든 건 아는데 다른 사람은 하는 일이 없는 것같다. 피곤하지만 언제나 안전한 곳에서 일하는 샐러리맨이 노는 소방관을 보면서 너는 맨날 노는구나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식이다. 그 소방관은 잠시 후 말그대로 목숨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가부장제는 확실히 나쁜 것이다. 그렇지만 가장의 역할과 가치는 여전히 남아 있다. 그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말이다. 이럴 때 관습에 따라 암묵적으로 가장의 역할을 남자가 수행할 때 남성은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남녀가 평등한 세상을 만들자면 우리는 그 피해자가 여성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다. 물론 여성도 피해자다. 그건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가부장제의 전통에 따라 왕처럼 편하게 사는 남자란 오늘날에는 상상속에나 있는 허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더이상 가장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는다. 책임만 잔뜩 있다. 그리고 종종 겉으로는 그럴 듯해 보여도 무겁기만한 책임을 견디기 어려워서 무너지는 남성들은 잔뜩 있다. 나는 가정폭력을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남자가 가정폭력범이 되는 가장 흔한 이유가 바로 이 책임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책임지라고 하는 사람도 없고 책임질 능력도 없는 사람이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면 그건 무능한데 출세한 사람처럼 된다. 그러면 좌절하고 폭력도 휘두르기 쉽다.
이걸 위해서는 여성이 피해의식만 느끼는 게 아니라 책임감도 떠맡아 줘야 한다. 내가 책임자고 내가 리더고 내가 가정을 지킨다는 생각을 가지고 행동해야 남성의 책임이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비로소 여성 CEO도 늘어나는 사회가 될 것이고 남성들이 여성에게 명령을 듣는 것이 더욱 더 자연스러워 질 것이다. 그리고 그럴 때 모두가 더 만족스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큰 문제가 출산율이 떨어지고 결혼이 인기가 없어지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현실의 뒤에는 지금 내가 이 글에서 말한 요소도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다들 힘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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