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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선생님의 명복을 빕니다.

by 격암(강국진) 2020. 7. 10.

얼마전인 10일 새벽 30분경에 박원순 선생님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떴습니다.  듣기로는 선생님은 비서였던 옛 직원의 성추행 고소에 휘말렸다고 합니다. 그 소식이 들리고 선생님이 잠적한 지 반나절 만에 시신이 북한산 숙정문근처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진실은 확실하지 않지만 정황상 그 고소에 대한 책임의 문제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으신 것같습니다. 

 

 

선생님이 살아오신 길을 소개한 책에 희망을 심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서 소개하는 선생님의 삶을 보다보면 몇가지 키워드가 떠오르게 됩니다. 그것은 소수자, 비주류, 개척자같은 말들입니다. 사실 선생님에게는 여러번 사회적 주류가 되어 편히 살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 첫번째 기회는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를 입학한 때였습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그대로 대학을 다니고 졸업했다면 선생님은 편안한 주류의 삶을 살았겠지요. 하지만 시위에 단순참가한 일이 커져서 선생님은 결국 학교를 관두게 됩니다. 두번째로 선생님이 편안하게 살 수 있었던 기회는 사법고시에 합격했을 때였을 겁니다. 서울대생이 감옥에 가고 대학도 쫒겨난 끝에 어찌 저찌 어두운 터널을 통과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사회적 주류로 살 수 있게 된 겁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검사일을 겨우 1년하고 관두고 인권변호사라는 돈안되고 힘든 길을 갑니다.

 

항상 이런 식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여러번 비주류의 길을 가고 거기서 개척자의 길을 갑니다. 그리고 성공을 일궈냅니다. 하지만 그 성공의 열매에 안주해서 편안하게 주류의 삶을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좀 살만하다 싶으면 모든 걸 뒤로 하고 다시 새로운 길로 나섰습니다. 그가 한국을 대표하는 시민운동가가 된 것도 정치권이 그를 부르는 것을 뿌리치고 나서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아름다운 가게, 아름다운 재단, 희망제작소 같은 것을 만들었습니다. 뭔가 하나가 자리를 잡았다 싶으면 언제나 훌훌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른 일자리로 갔습니다. 

 

따지고 보면 선생님이 최초로 주류의 길로 간 일은 2011년에 서울시장이 된 것이었습니다. 당시는 이명박 정권때였고 노무현 대통령이 투신 자살하신지 2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언제나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소수자로서 일하던 선생님도 당시에는 모든 것이 무너지고 있다고 느끼셨는가 봅니다. 더이상은 그저 시민일 수 없다고 느끼셨나 봅니다. 긴 산행끝에 정치권에 투신하기로 결심한 것으로 저는 기억합니다. 그리고 선생님은 바로 서울시장에 당선되어 이제까지 내내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꼽히시기도 했습니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그간 서울시에 박원순이 있었기에 든든했습니다. 박근혜 탄핵을 위한 촛불시위때도 선생님이 시장이 아니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흘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오히려 그 서울시장이나 강력한 여권의 정치가라는 무게가 선생님을 죽음의 길로 몰아넣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박원순이 지금도 그저 일개 시민운동가였다면 어쩌면 벌받을 것은 벌받고 해명할 것은 해명하는 길로 갈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아니 어쩌면 애초에 고소고발같은 것이 있지도 않았을지도 모르죠. 

 

선생님은 책과 자료를 광적으로 모르고 책도 많이 쓰신 분이지만 언제나 이론보다는 실천을 앞에 두는 분이었습니다. 난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의 가운데에 뛰어들어서 그 일중독자적인 에너지와 창의력으로 어떻게든 일이 되게 만드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분이 사셨던 것을 보면 참 무모하고 산을 옮기는 것처럼 느리게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서 보면 정말 산을 여러개 옮겼다는 생각이 들 만큼 많은 것을 이룬 분이기도 합니다. 

 

선생님의 마지막에 대해서는 잘알지 못하므로 그것에 대해 옹호하거나 비판하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선생님을 고소했다는 그 직원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사건의 진실이 다른 사실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지금 제가 누리고 있는 풍요와 자유는 박원순같은 분들 덕분이라는 겁니다. 대한민국이 요즘 자랑스러워 지고 있습니다. 외국인들도 칭찬한다고 합니다. 한류가 퍼진다고 합니다. 박원순같은 분들이 없었다면 그렇게 되지 못했을 겁니다. 박원순은 위대한 한국인이었습니다. 

 

고마우신 분들의 부고를 들으면 언제나 안타깝지만 노무현 대통령때는 달랐습니다. 노회찬 의원때도 달랐습니다. 그리고 지금 박원순 선생님이 세상을 떠난 일도 다르군요. 뭔가 섭섭하고 비판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해도 사람들이 선생님에게 너무 매몰차지 않았으면 합니다. 돌아가셨지 않습니까. 게다가 앞의 두분도 그렇지만 박원순 선생님도 돌아가시고 나서도 이 나라를 지켜주실 분이니까요. 

 

언제나 기억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편히 잠드세요. 

 

7.10. 1:34. 강국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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