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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일본의 라면, 한국의 라면

by 격암(강국진) 2020. 11. 6.

나는 일본에서 10년을 살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입맛에 맞지 않았지만 일본의 라면도 좋아하게 되었는데 사실 똑같이 라면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뿐 일본의 라면과 한국의 라면은 아주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 차이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있는 것같아 오늘은 그에 대해 좀 써볼까 한다. 

 

세상에 워낙 많은 종류의 라면이 있으니 일률적으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나는 한국과 일본의 라면이 가지는 차이를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라면은 요리사의 라면이고 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라면이다. 반면에 한국의 라면은 가정의 라면이고 국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라면이다. 

 

보통 라면을 소개하면 사람들은 그 역사적 전개를 말하는 경향이 있다. 중국의 라면이 일본에 와서 발달했고 그것을 삼양라면이 가져와서 한국에서도 인기있는 음식이 되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그것도 의미있는 일이지만 지금의 라면을 보면 라면은 그냥 한국의 음식이 되었고 일본의 음식이 되었으며 단지 이런 역사적 이유로 이름만 라면이라는 것이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것은 바로 일본과 한국의 라면이 어떻게 다른가를 보면 자연히 나타난다. 

 

중국의 라면이란 당겨서 만드는 면이라는 뜻으로 말하자면 그냥 수타면을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도 중국집 수타면은 그렇게 만들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후 한국과 일본에서는 그 면과 국물과 고명이 워낙 많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면 자체도 물론 수타면이 아니게 되었다. 백년전의 일본라면이란 닭뼈 국물에 간장으로 소스를 더한 소유(간장)라면이고 지금도 이와 비슷한 라면은 일본에 분명 많이 있지만 그 맛은 지금 전혀 달라졌다. 국물이 많이 달라져서 생선과 소, 돼지의 육류를 국물에 사용하는 일도 보편적이 되었고 면도 아주 다양하게 바뀌었다.  

 

그런데 일본에 살아보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에 비해 면발 자체를 훨씬 더 많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일본 사람들이 많이 먹는 다른 면요리인 메밀국수와 우동을 보라. 물론 일본도 라면처럼 뜨거운 국물에 메밀이나 우동가락을 넣어서 먹기도 하지만 아주 자주 일본 사람들은 그냥 삶은 메밀국수와 우동을 완전히 물에서 건져내서는 먹기전에 간장 소스에 잠깐 담궈먹거나 약간의 소스를 뿌릴 뿐이다. 

 

 

일본인들이 면발을 얼마나 사랑하는가는 일본에서 얼마나 다양한 면들이 팔리고 소비되는가를 봐도 알 수가 있다. 굵기나 모양, 찰기에 따라 아주 다양한 면들이 만들어지고 그런 면들이 또 라면집에서 사용되어져서 일본에서 라면을 사먹어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라면이란 으례 이런 정도의 면발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본에선 선입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본에서는 우동과 칼국수같아 보이는 면도 라면에서 사용되고 그걸 우동이라고 부르면 우동이고 라면이라고 부르면 라면이 된다. 이에 비하면 인스턴트 식품으로 여겨지는 한국의 라면들은 일부 예외도 있지만 거의 같은 면발을 가지고 있다. 인스턴트냐 아니냐를 떠나 그 다양성이 크게 다르다. 

 

그런데 사실 일본의 대표적 면요리라고 하는 라면은 우동이나 메밀에 비해서 가정에서 쉽게 먹을 수 있는 요리는 아니다. 문제는 국물에 있다. 일본에 살면서 느낀 또 한가지는 일본은 국물요리라는 것이 매우 빈약하거나 없다시피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대적인 것인데다가 일본의 요리에 해박한 사람들은 이러저러한 반례를 들 수도 있는 문제이므로 설명이 필요하다.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물론 한식이며 그것도 가정식이다. 한식은 그 기본을 밥과 국 그리고 반찬과 탕이나 찌개같은 것으로 한다. 그래서 한국에는 이미 많은 이름을 가진 가정식 찌개나 탕이 많이 있다. 집에서 끓인 곰탕이나 미역국 그리고 콩나물 국이나 닭백숙 같은 것은 한국 사람이라면 익숙한 것이다. 

 

하지만 오랜간 육류를 먹는 것을 금했던 탓인지 일본에는 이런 국이나 탕이 널리 레시피를 가지고 만들어지고 있다는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그저 미소된장국이 널리 먹히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일본의 가정에서는 한국 보다 더 자주 면을 삶아 먹는다면 한국의 가정은 일본에 비하면 국이나 탕류를 훨씬 더 자주 만들어 밥과 함께 먹는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에는 이름을 가진 탕과 찌개가 아주 많이 있다. 

 

다시 일본의 라면으로 돌아가보자. 일본의 라면은 이제 간장(소유)라면 뿐만 아니라 돈코츠라면, 미소라면, 시오라면, 쯔케면, 아부라소바등 여러가지로 다양화되어있다. 그 중의 하나인 돈코츠라면은 돼지뼈를 삶아서 만든 육수로 라면 국물의 기본을 삼는 것인데 한국과 가까운 후쿠오카 지역에서 1950년대 이후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인지 한국도 부산과 밀양등지에는 돼지국밥이 있다.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에 의해 전해진 것같다는 이 돼지국밥도 돼지뼈를 삶아서 만든 육수에 밥을 말아 먹는 것이며 실은 밀양에서는 처음에는 소면을 넣어 먹기도 했다고 한다. 돼지뼈 국물에 국수를 넣어 먹는 요리라니 그 맛이야 나라마다 다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유사성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나는 여기서 한국의 돼지국밥이 돈코츠라면의 원조라는 암시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단지 두가지를 지적하고 싶다. 첫째로 한국의 돼지국밥은 당연히 그 역사가 1950년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한국은 돼지고기를 먹지 못하던 과거가 있었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로 돼지국밥은 국과 밥이다. 즉 국물요리가 국밥이 되건 면요리가 되건 따로 이름을 가지고 존재하는 형태다. 일본은 이와다르다. 일본에는 돈코츠라면은 있어도 돼지국밥은 없다. 말하자면 일본의 돈코츠 라면은 라면가게의 요리사가 만들어 낸 창작품이다. 

 

돈코츠라면은 내가 왜 일본의 라면은 요리사의 라면이고 면발을 강조하는 라면이라고 하는가를 잘 보여준다. 이 말은 꼭 돈코츠 라면의 국물이 맛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맛집의 국물은 맛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한국 국물이면 무조건 맛있겠는가. 하지만 그 국물요리의 저변과 역사는 일본이 훨씬 짧다. 

 

한국에는 삼계탕이며 미역국이며 김치찌개며 하는 식의 역사가 길고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먹는 국물이 있는 요리들이 있다. 한국의 라면이란 단순하게 말하면 그런 전통적 국물에 면을 집어 넣는 것이다. 국물이 먼저고 면이 나중이다. 맛있는 국물이 있는데 여기에 면을 넣으면 그게 또 아주 맛있다라는 식이다. 그리고 한국 국물요리의 힘은 그 저변이 넓고 역사가 길다라는 것에서 나온다. 삼계탕이나 설렁탕 같은 것이 1950년대의 어느 한국 요리사가 만들기 시작한 그런 음식도 아닐 뿐더러 요즘은 가정에서 전만큼 요리를 안하기는 하지만 집집마다 닭백숙이며 소뼈곰탕같은 것을 직접 끓여먹는 것은 한국에서는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다. 

 

요리는 물론 요리사가 잘한다. 하지만 더 넓은 저변과 역사를 가진 문화속에서 자라나온 국물요리와 어떤 가게 주인이 만들어서 팔기 시작했으며 그 이후에도 가정에서 만들어 먹지도 않는 국물이 가지는 힘은 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일본에는 정말 많은 라면집이 있다. 그 라면집은 물론 한국처럼 인스턴트 라면을 끓여주는 집이 아니라 체인점이거나 개인 라면집으로 그 주인이 자신만의 라면요리를 만들어 파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요리로서 생각보다 비싸고 때로는 그 이상으로 맛있을 수 있다. 라면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선입견이 없으니 요리사의 창의력이 더 발휘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요리, 가정요리에는 그 나름의 힘이 있다. 싸고 맛있으며 만들기 쉬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런 레시피가 널리 퍼질 수도 없고 자주 만들어 먹을 수도 없을 것이다. 일본이 라면으로 아주 유명한 나라인데도 최근에 한국의 인스턴트 라면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데에는 이런 차이가 힘을 발휘한 것이 아닐까. 진짜 일본라면의 맛은 인스턴트 라면으로는 맛보기 힘들다. 이건 어디까지나 요리다. 그래서 심지어 누가 만드는가에 따라서도 맛이 크게 다를 수 있다. 

 

요리사의 요리와 가정요리의 차이는다른 것도 있다. 요리사의 맛이란 일부러 널리 알리려고 하는 게 아니다. 특수한 장비를 쓸 때도 있고 일부러 비결을 숨길 때도 있다. 요리사는 가게를 해서 돈을 벌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기도 쉽다. 일본은 벌써 20년 이상 경기침체를 겪고 있다. 그러니까 경기가 나빠져서 외식이 줄어들고 가게들이 망하다보면 일본의 라면이란 나중에 가면 그런게 있었던가 싶게 사라질 수도 있다. 만약 김치가 요리사의 요리라면 경기가 나빠지면 김치문화가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김치는 가정요리 문화이므로 그런 일은 일어나기 훨씬 어렵다. 

 

이제까지의 내용을 보면 일본의 라면이나 한국의 라면은 모두 자국 문화와 자국 요리사의 노력의 결과이지 어디선가 유래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 것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 음식은 이름만 라면일 뿐 사실 같이 거론하기 힘든 음식이라는 것도 알 것이다. 그야 말로 같은 게 하나도 없다. 

 

나는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우리 문화가 훨씬 더 강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일본의 요리사가 만든 라면은 한국인이 배우기 쉽다. 전문가가 시도만 하면 금방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도 다양한 면발을 즐길 수 있고 일본 요리사들이 개발한 메뉴를 즐길 수 있다. 한국은 빠르게 일본 음식 문화의 비결을 흡수할 수 있다. 둘째로 앞에서 말한 것처럼 가정까지 파고들지 못하고 전문가 요리사들사이에서만 존재하는 음식문화는 유실되기 쉽다. 일본의 경기 침체가 계속 되면 멀지 않아 요리식 라면도 한국이 더 잘 만들게 될 수 있다. 일본의 오래된 가게들이 발전없이 있다가 망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마지막으로 일본은 반면에 우리 음식문화를 가져가기 어렵다. 일본의 요리사가 김치 담그는 법을 못배우겠는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김치문화가 일본으로 전파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한두명의 일본인 김치전문가가 생기는 수준일 것이다. 김치만 그런게 아니다. 한국의 음식문화에 기반한 한국의 인스턴트라면도 일본은 배우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 라면은 지금도 맛있지만 앞으로는 빠르게 더 맛있어 질 것이다. 반면에 일본 라면은 이제 그 정점에 와있거나 오히려 쇠락하는 것같다.  한국 음식 산업의 미래는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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