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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한국 음식 어디까지 갈까

by 격암(강국진) 2020. 10. 27.

일본에 있었던 때의 일이다. 연구실 교수님에게 한국에 다녀오면서 홍삼차를 드리며 한국에서는 몸에 좋다고 하는 차라고 했더니 웃으신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기가 아는 한국 사람들은 자기에게 먹을 것을 줄 때마다 다들 몸에 좋다는 말을 꼭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만큼 먹을거 좋아하고 동시에 보약 따지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같다. 잘먹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는 생각이 머릿속 깊이 박혀있어서 인삿말도 식사는 하셨습니까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고 부모가 자식에게 전화걸면 대개 하는 대화의 내용이 밥은 잘 챙겨먹냐는 것이다. 

 

요즘 한국 음식의 인기가 해외에서 증가하고 있다. 최근에는 농심 신라면 블랙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인스턴트 라면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한국 치킨이나 고추장, 쌈장의 인기가 해외에서 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이 중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처럼 세계적으로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가 되고 어딜가나 한국음식점이 있는 나라가 될 수 있을까? 나는 한국 음식의 잠재력이 상당하며 그것이 지금 현실화되고 있다고 믿는다. 다만 이제까지는 그 경제력이나 세계적 지명도가 세계 음식 문화에 영향력을 끼칠정도가 되지 못했을 뿐이다.

 

한국인의 음식에 대한 열정은 세계 어느 나라 사람 못지 않다. 꼭 한국음식만 맛있다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맛이란 주관성이 있는데다가 비싸고 귀한 재료를 쓰면 맛이 좋은 요리가 되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어느 나라건 돈이 많아지면 맛있는 요리를 즐길 수는 있다. 게다가 세계 각국의 요리 레시피가 자연히 그 부자나라에서는 수집되고 활용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 음식이 맛있는가같은 질문은 아주 애매하다. 일반적으로 말하자면 부자나라 음식이 맛있다. 같은 중국음식이라도 중국이 지금처럼 부유해지기 전에는 홍콩이나 대만음식은 맛있었지만 중국본토음식은 비싼 호텔음식이라도 외국인에게는 입에도 대기 힘들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나라의 문화속에 먹는 것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이 있는가 아니면 먹는 것이란 그저 배만 부르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가 하는 것에 따라 큰 차이가 있기는 하다. 먹을 것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이 있는 사람들은 없는 재료를 가지고도 좀 더 잘 먹을 수 있는 법을 더 고민하고 그냥 배만 부르게 먹는 것이 아니라 격식과 균형을 생각하며 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관심과 노력이 경제력이라는 도움까지 얻게 되는 날이면 본격적인 잠재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만큼 고기 부위를 모두 쓰고 잘 분류해서 쓰는 나라가 별로 없다. 서양사람이 소의 부위를 구분하는 방법은 아주 단순하고 안 먹는 부위도 많다. 그래서 예전에는 미국이나 일본에 간 한국 사람들이 그 나라 사람들이 먹지 않는 소꼬리같은 것을 싸게 사다가 먹고는 했다고 한다. 소나 돼지를 자세하게 부위별로 구분하여 이름을 붙이고 그 맛을 구분해서 먹는 한국 문화의 관점에서 보면 외국의 고기 소비 문화는 단순해 보인다. 

 

고기를 굽는 방식도 그렇다. 물론 맛있는 고기는 어떻게 먹던 맛있다. 최고급 소고기와 저질 소고기는 요리방법이 달라도 대개 고급 소고기가 더 맛있다. 하지만 주방에서 커다란 덩어리의 소고기를 구워서 내놓는 스테이크를 먹는 외국인과 식탁 한가운데에 숯불을 피워서 한조각씩 구워 바로 먹는 한국인을 비교해 보자. 한국의 방식이 훨씬 뛰어나고 따라서 같은 질의 고기라면 대개 한국식이 더 맛있을 수 밖에 없다. 그 이유는 고온의 숯불이 표면을 빨리 익히기 때문에 육즙손실이 적기때문이고 익으면서 생긴 열로 맛이 활성화된 고기를 바로 먹기 때문이다. 주방에서 구워서 식탁에 가져가고 식사를 하면서도 고기가 식어가는 스테이크는 비록 뜨거운 주물판으로 보완을 할 수도 있지만 이에 비하면 현명한 고기먹는 방식이 아니다. 

 

고기만 그런가. 야채는 더 그렇다. 사실 한식은 악명이 높은 요리다. 시기별로 좀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몇십년전만 해도 밥먹는데 반찬이 한두가지면 이게 뭐냐고 펄펄뛰는 것이 대다수 한국인들이었다. 밥을 준비하고 그 주변에 반찬을 몇가지나 꺼내어 늘어놓아야 식사라고 부를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한국인의 특징이다. 전라도의 한정식에 나오는 반찬의 종류는 맛은 둘째치고 그 다양성과 숫자를 생각하면 외국에서는 왕도 누리지 못하는 호사스러운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먹는 나물이며 야채가 매우 많다. 한국 사람들은 막연히 전세계가 이런 것으로 생각하지만 가까운 일본만 해도 산채나물이라는 게 한국에 비하면 매우 단촐하다. 그래서 요즘은 한국의 나물요리를 세계적으로 그냥 나물로 부르기도 한다. 외국에서는 그런 걸 먹질 않았으니까. 한국인은 참으로 다양한 것을 먹는다. 

 

한식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만 이야기하려고 해도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찌개고 탕이고 국이다. 한국인의 식사란 본래 몇가지의 작은 반찬들이 있고 찌개나 구이같은 요리가 한가지 있으며 그리고도 모자라서 사람마다 국을 한 그릇씩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리고 가정에서 자주 먹는 국만 해도 된장국, 미역국, 황태국, 콩나물국, 소고기국, 김치국등 많은 국이 존재한다. 끼니 마다 이렇게 챙겨먹는 것이 한국의 보통 식사였다는 것을 외국인이 알면 놀랄 것이다. 그걸 다 언제 준비하냐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가정식이란 대개 단촐한 미소된장국에 한그릇의 음식일때가 많다. 

 

간편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한국문화가 달가운 것만은 아닐 것이다. 서구화가 많이 된 요즘은 그냥 간편하게 먹는 식사가 편할 뿐만 아니라 맛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국따위 꼭 먹어야 하는가, 오무라이스나 카레처럼 그냥 한그릇 먹으면 편하고 맛도 충분히 좋지 않은가 생각하는 것이다. 제대로 된 한식이란 단순화된 가정식이라도 이미 매우 매우 번거롭다. 시대에 뒤진 것같기도 하고 종류만 많을 뿐 그다지 맛있지 않다는 생각도 들 수 있다.

 

그러나 한식을 우습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익숙한 외국에서 전래된 식사는 이미 부유한 나라에서 상업화되고 개량된 요리들이고 한식은 지금 무섭게 그렇게 되고 있는 중이라는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떡볶이를 생각해 보자. 한국에서는 애들간식정도로나 생각되는 떡볶이가 요즘은 외국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한다. 우선 떡이 특이하다. 일본만 해도 떡이라하면 찹살떡이라 떡볶이 떡같은 떡이 아니다. 다른 나라는 대개 먹는 쌀의 종류 자체가 한국과 다르다. 떡볶이에 들어가는 고추장이나 간장 소스도 우리는 당연한 것이지만 사실 외국의 입장에서 보면 매우 많은 시간과 노력을 거쳐서 만들어 낸 특이한 소스다. 요즘은 고추장과 쌈장이 그래서 외국에서 주목받는다고 하지 않는가. 이런 식으로 한국이 가진 작은 음식들이 하나 하나 주목받기 시작하면 그제서야 우리는 한국은 특이한 나라였구나, 한국에는 생각보다 요리가 참 많구나하는 자각을 하게 될 것이다.

 

시대적 조류를 좀 탔다고 해도 한국인은 여전히 한국인이다. 한국인의 가정식은 여전히 정성스럽다. 한국인은 사람은 잘 먹어야 하며, 잘 먹지 못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쌀밥을 먹지 않았으면 배가 안 고파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인이며 반찬도 없는 식사를 계속하는 것은 서글프고 불쌍한 삶이라고 느끼는 것이 한국인이다. 한국인에게 식사란 맛도 있어야 하지만 그 이상이다. 단순한 에너지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지탱하는 그 무언가가 식사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입된다고 느낀다. 정성스런 식사를 준비하는 것은 그래서 단순히 탐욕스런 행위가 아니라 성실한 삶의 자세로 여겨진다. 같이 밥을 먹는 것은 그래서 더 의미있는 일이 된다.  한국인은 가족을 먹는 입이라는 뜻인 식구라고 하고 동료를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이런 정신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도가적인 영향이 있나하고 추측해 볼 뿐이다. 도가적인 이야기에서 인간은 약초를 먹거나 무슨 신비로운 단약을 먹고 신선이나 도사가 되는 깨달음을 얻는다. 조선의 의서 동의보감에서는 약식동원이라고 해서 약과 음식을 같은 것으로 말하고 있다. 음식을 먹는 것이 잘못된 우리를 고쳐준다는 것이다. 요즘은 이 땅에서 나는 먹거리가 우리 몸에 맞다는 신토불이같은 말도 많이 쓴다. 이 모든 이야기에는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라는 정서가 있다. 즉 우리는 뭔가를 먹고 그 때문에 우리가 만들어지고 변한다. 

 

이는 전통따위를 들먹이지 않아도 한국사람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특이한 발상이다. 그리스 이데아론을 그 정신적 발원지로 여기는 서구인들의 관념론적인 사고 방식에 따르면 입장이 반대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나의 본질은 먹는 것따위로 바뀌지 않는다. 한국인의 사고 방식은 환경과 나를 또렷히 구분하지 않지만 서구인의 사고방식은 개인의 정체성을 환경과 훨씬 또렷히 구분하기 때문에 먹는 것이 곧 내가 된다는 사고 방식은 그 효과가 크게 감소된다. 그래서 결국 음식이란 여전히 객체다. 그것은 에너지일 뿐이며 욕망의 대상일 뿐이다. 성스러운 것이 아니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그저 음식을 소유하고 소비하는 행위다. 

 

한식이 진정으로 잠재력을 발휘하고 세계적으로 보급되면 그것은 단순히 또 하나의 맛있는 식품이 보급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정신적 쇼크를 불러 오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왜 다를까를 묻다보면 우리는 기본적 철학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때는 물론 한국인들도 자신도 몰랐던 자기를 더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이게 당연한거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특이한 거였어하고 말이다. 세계는 한식으로 시작해서 서구 문화 전반에 대한 반성에까지 도달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한국 음식 어디까지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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