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한국예능과 다음 한류

by 격암(강국진) 2020. 10. 20.

나는 이전부터 한류의 성공은 어떤 간단한 비결이나 정부의 지원같은 것 때문이 아니고 한국 사회가 혁신을 통해 가장 최근에 선진국에 도달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생각해왔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뿐 아니라 최근에 민주화 혁명에 도달한 유일한 나라이며 이같은 점은 다른 나라가 간단히 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국은 한류를 통해서 세계에 뭐가 바람직한 인간상이며 사회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은 아직은 드라마나 음악에 비해 세계적으로까지 퍼져 있지 않은 한국 예능이라는 분야를 주목하면 더욱 더 분명해 진다. 

 

 

사실 한국예능이 한국의 방송가를 장악하고 외국에서까지도 인기를 얻게 된지는 오래되었다. 러닝맨같은 예능 프로그램은 동남아에서 굉장한 인기여서 출연자들이 그 나라를 가면 공항이 팬으로 가득 매워진다는 이야기를 이미 몇년 전에 들은 적이 있다. 이광수같은 사람은 베트남에서는 장동건못지 않은 인기여서 유재석이 그에게 아시아의 프린스라는 별명을 주기도 했다지 않은가. 복면가왕이나 꽃보다 할배 그리고 너의 목소리가 보여같은 한국 예능프로그램 포맷은 미국을 포함한 서구에 수출되었다. 또 최근 한국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예능프로그램 놀면 뭐하니의 환불원정대 동영상을 보면 한국어 댓글보다 영어를 포함한 외국어 댓글이 더 많다. 이런 걸 보면 한국 예능이 넷플릭스같은 것을 통해 서구권까지 진출하고 인기를 얻어 진정한 세계화를 하는 날도 머지 않아 올 것같다. 이건 말하자면 돈터치미같은 노래가 한국음원순위 1등을 하는게 아니라 빌보드 차트 상위에 오르는 미래이며 이미 높아진 한국의 지명도가 말도 안되게 상승하는 미래다. 그만큼 한국예능은 한국적이고 미래적이라고 할만한 것이 많이 축약되어져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뭘까? 한국예능은 뭐가 한국예능인가. 예능이란 사실 애초에 잘못지어진 이름이다. 강준만의 책 대중문화의 겉과 속에 따르면 예능이라는 이름의 시작은 단순히 방송국 PD의 분야를 나눌 때 시사, 드라마, 예능으로 나누기 때문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본래는 코미디, 노래, 버라이어티 쇼 모두가 예능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 사람들이 말하는 예능프로그램이란 완전한 대본이 있는 본격 코미디쇼나 음악쇼와는 다른 것이다. 예능이란 보통 코미디처럼 웃기는 프로그램이고 때로는 감동도 주는 데 사전대본이 없는 리얼리티쇼같은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것은 자유로운 형식을 가지고 있어서 그때 그때 인기있는 사람을 부르기도 하고 그 포맷을 완전히 바꾸기도 하는 프로그램이다. 놀면 뭐하니나 러닝맨, 무한도전, 삼시세끼 같은 것이 대표적인 예들이지만 한국에서는 워낙 예능의 인기가 좋아서 요즘은 부분적으로라도 예능적 요소가 여기저기 들어간다. 예를 들어 구해줘홈즈는 생활정보를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볼 수 있지만 출연자들이 집에 대해 대본없는 반응을 하게 해서 예능적인 요소를 넣었고 그게 인기를 얻는 큰 비결이다. 부동산업자나 건축가가 그냥 집만 보여주는 프로그램은 구해줘홈즈처럼 인기가 없다. 

 

다시 말하지만 예능의 본질은 두가지 인데 하나는 즉흥이고 하나는 유머다. 대본대로 하는 것은 예능이 아니다. 예능은 마치 한판의 게임같다. 마치 웇놀이 게임을 하는 것처럼 최소한의 규칙은 있지만 언제나 프로그램 진행중에 예상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런 상황들에 그때 그때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예능의 본질이다. 하지만 이것뿐이라면 이건 소위 리얼리티 쇼라고 불리는 것이 될 것이다. 단순히 진지하게 달리기 경주를 하거나 암벽등반을 해도 예능일까? 밀림에서 생존하기를 해도 예능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한국 예능을 한국 예능답게 만드는 것은 유머다. 이 유머는 편집자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고 출연자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안녕하세요같은 프로그램은 종종 말도 안되는 분노유발자들을 불러 왔지만 여전히 유머감각을 잊지 않았다. 이 부분은 드라마와 영화에서도 반복되는 것이다. 변호사같은 암울한 시대를 그린 영화도 우리는 언제나 해학과 웃음을 잊지 않는다. 그것이 한국영화를 한국영화답게 만들고 한국예능을 단순한 리얼리티 쇼 이상으로 만드는 부분이며 심지어 음악도 한국의 흥을 바닥에 깔고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예능 방송의 본질이 즉흥이라고 해서 한국이 진짜로 편집도 없고 대본도 없는 방송을 할리는 없다. 연출된 상황과 연출된 반응을 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예능의 본질이 아니라고 하는 이유는 한국 예능의 재미가 본질적으로는 그런 연출에서 나오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유튜브에 보면 아주 많은 리액션 동영상이라는 것이 있다. 그건 어떤 영화나 뮤직비디오 같은 것을 처음보고 그에 대해 솔직한 반응을 하는 것을 찍은 것이다. 혹자는 이런것도 인기를 위해 연기를 하고 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연기만으로 인기있는 리액션동영상을 찍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단한 재능이다. 리액션이란 예능처럼 그때 그 순간에 즉흥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해서 다시 찍기나 비밀의 대본으로 인기있는 예능을 만들기는 어렵다. 적어도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은 한국 예능의 본질을 강하게 들어냈다. 처음 이 방송을 찍을 때 한국예능이 뭔지 아는 한국 출연자들도 모두 이 방송은 망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왜냐면 그냥 시골의 집하나 구해서는 아무 대본도 없이 밥만 지어먹으라고 하면서 방치하고 녹화를 했기 때문이다. 아마존 밀림에서 생존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웃기는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고 시골집에서 밥만 지어먹으니 이게 무슨 방송인가 했을 것이다. 대본이 없는 것도 정도가 있는거 아니냐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방송은 성공한 예능프로그램이 되었다. 첫째로 엄청난 양의 자막을 편집과정에서 달고 교차편집을 통해 각 행동과 반응의 의미를 만들어 냄으로해서 찍고 있는 출연자도 모르는 재미를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둘째는 출연진 그 자체였다. 아무 방송거리가 될만한 것이 없는 상황에 던져놓고 맘대로 하라고 하는데도 그들은 어떻게 해서든 뭐가를 찾아 내서는 뭔가를 한다. 유머와 감동이 그래도 나온다.  

 

놀면뭐하지라는 프로그램도 그렇다. 이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유재석이 나온다는 것 이외에는 포맷이 없다고 한다. 뭐든지 한다라는 발상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것은 거의 무책임할 수도 있는 것인데도 그렇게 시작하고 또 인기프로그램이 된다. 지금 인기있는 환불원정대라는 그룹도 이전에 싹쓰리 활동을 하던 이효리가 프로그램 중간에 즉흥적으로 말한마디 한것을 현실화한 것이다. 시청자가 하라고 하면 집을 짓던 식당을 하건 공부를 하건 뭐든지 할 태세다. 

 

이런 한국예능이 미래적이고 한국적이라고 하는 이유는 이 즉흥성과 유머야 말로 21세기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재미있게 웃고 즐기다보면 이런 진지한 측면은 잊어버리기 쉽지만 현대사회에서 즉흥성이 없이 사전대본에 의해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걸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유머를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 뭘 의미하는 것이겠는가?

 

현대 사회는 복잡하다. 그래서 여기서 하던 방식대로 다른 데에서 하면 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이쪽의 상식이 저쪽의 상식이 아니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자주 살던 곳이나 일하는 환경을 바꿔야 한다. 그러니까 내 상식, 내 계획에 따라서만 행동하는 사람은 현대사회를 잘 살아갈 수가 없다. 게다가 현대사회는 빨리 변하기도 한다. 그래서 내가 사는 곳이나 일하는 곳을 바꾸지 않아도 상식이 바뀐다. 나는 어제와 똑같이 행동했는데 어제는 괜찮게 통하던 행동이 오늘은 허용이 안되는 식이다. 현대사회는 거대한 예능판이다. 우리는 끝없이 즉흥을 요구당한다. 그러면서도 웃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살 수가 있다. 

 

나는 현대를 게임의 시대라고 부르기 좋아한다. 우리는 우리 삶을 여러개의 게임들이 중첩된 것으로 파악해야 현대에 잘 적응할 수가 있다. 게임은 경계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게임은 규칙을 가지는데 그 규칙은 바뀔 수도 있다. 그러니까 목욕탕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누드로 있어도 되지만 결혼식게임을 하면 옷을 입는데 있어서 지켜야 할 규칙이 있다.

 

이걸 예절이나 매너라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그런 말은 우리의 세계, 우리의 삶을 단일한 하나로 그것도 거의 변하지 않는 하나로 파악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주체인 나는 하나다. 전통은 중요하므로 예절은 본래 이러저러해야 한다는 식의 말이 많다. 하지만 게임이란 말에는 그런 선입견이 없어서 회사의 사장이라도 온라인 게임에 접속해서는  막내대접을 받는 것이 이상한 게 아니다. 록콘서트장에서 관객으로서 미친듯이 소리를 지르는 것은 관객이라는 역할을 롤플레이하는 게임을 하는 것과 같다. 심야식당의 사장으로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사장이라는 역할을 플레이하는 것이고 같은 사람은 가게 바깥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할 것이다. 오늘날 내가 누구인줄 아냐는 말은 게임의 시대에 게임의 경계를 모르는 사람이 하는 가장 부적절하고 꼴불견인 말이다. 

 

놀면뭐하니라는 예능은 부캐(부캐릭터)라는 말을 대중화시켰다. 유재석은 새로운 프로젝트가 되면 마치 자기가 자기가 아닌 사람인 것처럼 행동한다. 지금의 유재석은 환불원정대라는 걸그룹을 제작하는 지미유라는 제작자다. 바로 앞의 싹쓰리 활동을 할 때는 린다 지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이효리와 함께 유두래곤으로 불렸는데 다시 새로운 프로젝트가 시작하자 이효리와 자신은 서로 모르는 사람인 척 할 뿐만 아니라 과거도 변조한다. 이건 그야말로 롤플레잉게임이다. 시대정신이 방송에서 구체화된 것이다. 

 

이런 형식은 게임의 경계를 분명히 해준다. 지금은 천옥으로 환불원정대에서 활동하는 이효리는 천옥으로 행동한다. 남편은 없고 동거하는 남자가 있으며 무섭고 센 언니다. 이름을 천옥으로 함으로써 그녀는 지금의 나의 행동은 오직 환불원정대라는 게임의 내부에서만 통용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녀가 험한 말을 해도 그것은 천옥이라는 캐릭터로 롤플레잉게임을 하는 제한된 의미만 가진다.

 

즉흥과 유머는 현대사회 나아가 미래사회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덕목이다. 그래서 한국 예능은 미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것이 매우 한국적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한류의 인기비결이며 한국 문화에 젖어있는 한국 사람들이 잘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한국적 문화가 미래적이며 선진적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래서 한국 예능의 세계화가 진정한 다음 한류라고까지 말하는 것이다. 예능은 그냥 웃음거리가 아니다. 그것은 가장 기본적인 생활방식과 연결되어져있다. 다시 말하지만 미래사회, 현대사회는 거대한 예능판이다. 우리의 현실이 예능이다. 지금 시대에 뒤진 나라들은 시대에 뒤진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에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누구나 예능을 잘 만들고 찍을 수 있는게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사람들이다. 일본문화는 너무 오랫동안 같은 것을 반복하면서 완벽하게 하는 것을 추구했다. 말하자면 춘향가를 들으면서 비록 춘향가는 이미 수없이 들어서 알지만 미묘하게 다르게 부르는 부분, 혹은 완벽에 다가가려고 하는 노력따위를 평가하는 그런 문화에 몰입한 것이다. 그래서 음식문화도 변화가 엄청 느리다. 한국은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즉흥적으로 음식을 만들어 간다. 그렇게 해서 새로운 한국 음식들이 나온다. 한국에서는 반년도 못가는 가게가 흔하지만 일본에서는 수십년된 가게들이 즐비하다. 30년전과 똑같은 우동이나 돈까스를 만든다고 자랑스럽게 말할 것같은 문화다. 이 양자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앞에서 말한대로 현대 사회의 환경에서는 일본문화는 너무 보수적이다. 그래서 미래적이라고 할 수는 없고 그런 문화속에 있었던 일본인들이 한국예능을 찍을 수는 없는 것이다. 즉흥은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기없는 일본예능은 종종 가학적 변태성때문에 화제가 될 뿐이다. 

 

예능의 정신은 위기의 순간에도 나타난다. 요즘은 거의 매년 혹은 10년마다 세계를 뒤흔드는 일이 생긴다. 화재가 생기고 지진이 생기고 전염병사태가 생긴다. 여기서 메뉴얼만 따르는 일본인들의 대처가 충분히 빠를 수 있을까? 이번 코로나 사태는 부정적인 답을 보여준다. 일본인들은 지하철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고 뛰어든 한국인에게 놀란다. 용기이전에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빠르게 판단하고 반응하는 일이 일본인에게는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예능은 기민하지만 적절하게 반응하는 한국 대중의 특징을 보여주기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유럽은 어떤가? 일본정도는 아니라도 서구 선진국들도 너무 오랜 동안 혁신이 없었으며 그래서 보수적이기는 마찬가지다. 따라서 그들도 예능을 찍기에 필요한 재능이 부족하다. 한국의 예능이 서구에 도달한다면 그들은 얼마지나지 않아 그들에게 지금 뭐가 부족한지를 잘 느끼게 될 것이다. BTS는 서구 연예인들이 절실함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자기절제와 훈련양에서 한국 연예인들은 서구 연예인들을 부끄럽게 한다. 한국 예능이 언젠가 서구에 도달하면 그들은 자신들이 낡은 전통에 매달려 깊게 잠들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복면가왕의 미국판을 보라. 한국 복면가왕은 거의 전설의 가수급이 나와서 노래를 잘해서 인기다. 하지만 미국 복면가왕은 훨씬 더 급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나온다. 왜 그럴까. 그리고 그건 꼭 왜 그래야만 할까. 이런 질문이 의미가 있다. 

 

마지막으로 왜 중국은 예능을 할 수 없는가를 말하고 이 글을 마치고 싶다. 예능의 본질이 즉흥과 유머라면 그것은 자유로우면서도 인정 있는 정신을 요구한다. 금기로 범벅이 되어서 스스로를 제한하고 말실수를 할까를 두려워 하는 분위기에 익숙하면 예능을 할 수 없다. 중국은 선진국들에 비하면 진취적이지만 여전히 민주화가 되지 않은 나라고 사상적 통제가 심하다. 그런 나라에서 자 이제 자율을 줄테니 재미있게 해봐라고 해도 그들은 스스로 지침을 요구할것이다. 즉 정치와 문화가 충돌하기 때문에 중국의 예능은 불가능하지는 않아도 언제나 한국판 짝퉁이 될 것이다. 이미 완성된 한국판을 보고 허용된 것만 따라하는 그런 것은 진정한 예능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게 해도 한국문화를 막아놓은 중국내에서는 인기가 있을 수 있지만 세계화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복제된 즉흥은 즉흥이 아니니까 말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