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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중화민족이라는 신기루

by 격암(강국진) 2020. 10. 30.

중국은 거대한 골치덩이다. 중국이 골치덩이인 한가지 이유는 중국이 개념적인 모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중국이 민족주의로 국가통합을 추진하게 되면 중국은 모순적인 눈으로 세계를 보게 되고 다른 나라에게 공격적으로 굴게 된다. 이 세상 모든 것을 빼앗긴 것으로 파악하는 사람에게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한 권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가진 개념적 모순이란 바로 그 국가와 국민들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다. 중국은 광대한 영토를 차지한 나라다. 그러다보니 한국같이 작은 영토와 균질한 문화를 가진 나라에 비하면 그 개념이 무리한 면이 훨씬 많이 존재하게 된다. 그래서 하나의 중국이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며 존재한다는 말을 지나치게 강하게 말하기 시작하면 억지가 발생한다. 중국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더 겸손해 질 필요가 있다. 계속 중국이고 싶다면 진짜로 중국을 세울 필요가 있다. 

 

 

중국은 보통 청의 후예라고 여겨진다. 지도를 펴보면 중국이 지금 차지하고 있는 영토 그리고 중국이 이건 중국이라며 주장하는 영토는 모두 청나라의 영토에 기반되어 주장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청나라는 어떤 나라였는가. 청나라는 근대국가가 아니었고 무력으로 점령해서 세운 봉건국가다. 청은 만주지역을 발원지로 하는 후금이 세운 나라다. 그리고 후금은 청나라가 된 이후에도 정복을 계속 해서 지금 독립운동을 하는 티벳이나 신장 지역을 복속시키고 18세기 중반무렵 역사상 최대의 면적을 차지했지만 19세기에는 이미 몰락해서 지배력이 줄었고 20세기초에는 완전히 망했다. 한때 인기있었던 황비홍이라는 액션영화가 있다. 그 영화의 주인공 황비홍은 중국을 침탈하는 서구와 맞서는 인물인데 이 인물은 앞머리를 면도하는 변발을 하고 나온다. 이 변발은 바로 청이 만주에 기원한 민족에 의해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널리 알려진 중국의 옷 치파오도 본래는 만주족의 전통복장이었다.

 

그러니까 봉건국가이며 정복국가였던 청의 주인은 만주족이고 티벳이나 신장 그리고 지금 중국의 몸통을 차지하고 있는 한족은 정복당한 사람들에 불과했다고도 볼 수 있다. 마치 일본제국속의 조선인들처럼 말이다. 백년 이상 같은 나라였으니 하나의 나라인거 아니냐고 쉽게 말할 수도 있지만 인도는 1858년부터 1947년까지 영국령이었다. 그렇다고 인도가 당연히 영국과 한나라가 되었는가? 상황이 다르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산업혁명도 거치지 않은 중국의 18, 19세기에서의 백년이 대영제국이 세계를 지배하고 미디어도 발달한 19, 20세기의 백년보다 길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조선과 일본처럼 작고 가까운 나라들이 몇십년을 합쳐도 하나의 나라가 되지 않는데 교통도 불편하던 시대에 엄청난 거리로 떨어지고 문화가 전혀 다른 나라들이 정말 저걸로 하나의 나라가 되어 서로를 공동체의 일부로 느끼게 되었을까? 미국도 크지만 미국은 헌법을 만든 합의에 기초한 나라고 청나라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 

 

이런 나라가 망하고 그 땅에 다시 나라가 세워지는데 어째서 청의 영토를 모두 차지하는 하나의 국가가 세워져야 할까? 왜 신장과 티벳이 한족이 지배하는 중국의 일부이어야만 하는가. 왜 한족과 몽고인이 같은 나라에 속해야 하고 징기스칸이 한족의 선조가 되어야 하는가. 중국은 제대로 선거도 하지 않는 일당독재의 나라이니 이게 정상적으로 국민의 뜻을 반영했다고도 할 수 없는데 말이다. 

 

생각해 보라. 한때 영국은 세계 전역에 인도를 포함한 많은 식민지가 있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 했다. 그 영국이 완전히 망했다고 해보자. 그걸 인도 사람들이 1당독재를 하는 나라로 재건하면서 인도공화국을 세운 후 과거의 대영제국의 영토는 전부 인도의 땅이며 아서왕의 전설은 그들의 전통신화이고 세익스피어의 희극은 그들의 전통문화라고 하면 이게 말이 될까? 이에 대해 호주가 항의를 하면 그걸 군사적으로 억압하고 다른 나라에게는 이건 내정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할까?

 

지금의 중국은 일단 지금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영토를 모두 중국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서 그 영토안에서 일어났던 과거의 일들은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식으로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고구려나 발해도 중국의 역사로 주장한다. 그러니까 지금의 중국이 마치 기원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중국의 역사를 묘사한다. 우리는 하나라, 상나라, 주나라에서 시작해서 명나라와 청나라 그리고 지금의 중화민국으로 이어지는 역사에 아주 익숙해서 그걸 마치 사실로만 여긴다. 하지만 중국처럼 거대한 땅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의 역사를 수천년전까지 한줄로 이어서 기술하고 그래서 마치 중국이 수천년전부터 있었으며 이 세상에 중화민족이라는 사람들이 예전부터 존재했던 것처럼 말하는 것은 아주 무리가 크다. 우리가 이런 익숙한 중국의 역사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면 우리는 자연히 지금 중국이 중국의 일부라고 말하는 티벳이나 신장지역은 그저 변방이며 말그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곳으로 여기게 된다.

 

중국의 영향이 실제로 컷다고 해도 이런 관점은 지나치게 일방적이다. 우리는 이런 봉건적 사관에 속아서는 안된다. 이런 역사는 말하자면 대한민국의 경제적 기적은 모두 박정희같은 한 사람의 결단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식의 신화를 만든다. 나머지 모든 한국사람들이 흘린 피와 눈물은 무가치한 것이 되고 그들에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된다. 

 

이런 관점이 가지는 문제는 하나 둘이 아니겠지만 아마도 가장 중요한 문제중의 하나는 이런 허구의 신화가 거대한 피해의식을 만들게 된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그 피해의식은 세상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게 된다. 마치 독일나치처럼 말이다. 최근에는 BTS가 이런 민족주의의 피해를 입기도 했다. 지금의 중국인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일당독재? 공산주의? 자본주의? 빈부격차? 이런 많은 이유들도 다 일리가 있겠지만 중국을 지배하는 공산당은 자연히 중국인들이 불행한 이유를 중국의 바깥에서 찾는다. 즉 그들은 외국에 의해 억압당하고 수탈당했기 때문에 불행하다는 것이다. 

 

그들은 신화를 만든다. 그것은 우리는 본래 위대한 민족이었고 세상은 전부 우리 것이었는데 그것을 빼앗아 간 저 나쁜 외적들 때문에 지금 힘들게 살고 있으니 우리가 뭉치면 우리는 다시 옛것을 회복하고 위대한 시대로 돌아갈 수 있다는 신화다. 이런 신화안에서는 세상의 땅이고 문화고 전부 중국의 것이 된다. 왜 안그러겠는가. 위에서 나는 대영제국을 물려받은 가상의 인도공화국을 말한 적이 있다. 그 가상의 인도공화국은 전세계 모든 문화를 그들의 고유문화라고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중국은 이와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 그것도 최대의 대제국을 만든 것은 청과 원의 몽고 만주계열 민족이었는데 한족이 지배하는 중국이 이런 자부심을 가지는 것이다. 몽고의 글자같은 것은 이제 못쓰게 억압하면서 말이다. 이건 대영제국의 영광을 지적하며 인도인이 우리가 세계를 제패하던 민족이라고 자랑하는 식이다. 

 

나는 최근에 한국 예능을 그대로 표절하고 있는 중국의 현실에 대해 중국인들이 댓글을 단 것을 소개하는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중국인들도 이제는 중국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 하나같이 한국 예능의 표절이며 중국은 단 하나도 창의적인 프로그램을 만들지 못한다고 부끄러워 한다. 그런데 거기에 단 댓글을 보면 일부지만 이런 식의 관점을 보여준다. 어차피 한국문화는 중국의 문화를 한국이 훔쳐간 것이니 중국이 한국의 예능 프로그램 좀 베낀다고 해서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즉 내가 도둑인 건 인정하는데 너희들도 도둑이니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논리다. 이 말들은 어떻게 가상의 신화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피해의식이 세계에 대한 위협으로 바뀌게 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중국이 불공정하고 나쁜 짓을 해도 중국에서는 우리는 어차피 많이 당하고 빼앗긴 나라니까, 사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본래 중국 것이니 우리는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식의 관점이 통하게 된다. 이건 나치의 선민사상과 비슷한 중화민족판 선민사상이고 이런 관점은 중국이 행하는 도적질을 모두 정당화해주게 된다. 

 

한국 음식이 뜨면 한국 음식은 어차피 중국것의 모방이니 중국이 그걸 자기거라고 주장해도 잘못된 것은 없게 된다. 한복이 뜨면 이제는 한복도 중국의 것이니 한복을 중국이 자기거라고 주장해도 잘못된 것은 없게 된다. 일부 중국인들은 한국도 북한도 본래 중국의 일부라고 공공연히 말하고 돌아다닌다. 나는 벌써 20년전에 뉴욕에서 그렇게 말하고 다닌다는 중국계 대학교수를 본 적이 있다. 이렇게 어차피 모든 것은 다 중국것이고 한국 자체가 사실은 중국이다라고 말하는 중국이 힘을 가진 나라라는 사실은 두려운 일이다. 중국인의 피해의식은 이 세계를 모두 다 삼키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같다.  다음번에는 징기스칸이 정복했던 땅도 본래 중국이라고 주장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미 이런 중국인의 공격적 선민사상에 많이 침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많은 사람에게 한자는 중국사람이 만들었다라는 말은 매우 상식적으로 들릴지 모른다.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봐도 이런 문장은 자연의 법칙처럼 절대적인 이야기가 될 수는 없다. 한자는 한글처럼 누가 혼자서 만든 것도 아니고 수천년전에 만들어져서 동북아시아 일대에서는 어디나 쓰던 글자였다. 이 글자를 굳이 지금의 중국인의 선조가 만들었다는 주장의 의미는 뭘까? 

 

나는 어떤 사람들처럼 갑골문까지 올라가서 실은 한자를 한민족의 선조가 만들었느니 하는 주장을 펴려는 것이 아니다. 중국인이 아니라 조선인이 한자문화를 만들었다라는 주장을 하려는게 아니다. 나는 허구의 중화민족개념으로 극동 아시아 문화의 모든 것을 완전히 중국이 독점하려는 주장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런 과도한 자부심은 결국 초라한 현실과 만나서 파괴적 폭력으로 이어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국과 중화민족 개념의 허구성에 대해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중국은 지금 아주 위험한 나라가 되었다. 국력은 아주 강해졌는데 그 정신은 유치하기 짝이 없고 자아성찰이 없다. 지금의 중국을 보고 있으면 히틀러의 독일이 자꾸 떠오르게 된다. 

 

나는 중국인들이 위대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다만 그들이 내가 한국인들을 위대하게 생각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중국인들도 위대하다고 생각하게 되기를 바란다. 한국에도 위대한 민족의 신화가 있다. 내가 한국인들이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런 신화를 믿어서가 아니다. 몇몇 극단적 민족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말하듯 한국인들이 본래는 세계 문명의 중심이었고 그 영토가 아주 광대한 면적을 차지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화려한 신화의 주인공이어서가 아니다. 한국인이 위대한 이유는 한국인들이 기꺼이 민주화를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나라를 독재와 봉건에서 진짜로 구해냈기 때문이다. 이 나라를 진짜로 한국인들의 나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중국인들도 위대할 수 있다. 나는 그들이 위대해지기 바란다. 그래서 중국인들 스스로에게도 그리고 전 세계의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도 위험하지 않은 중국인들이 되어서 한국인들을 포함한 주변 나라의 사람들과 좋은 친구로 지낼 수 있게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 그들은 먼저 중국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자아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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