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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카레와 찌개 그리고 나베

by 격암(강국진) 2020. 11. 30.

 

나는 맛의 달인이라는 일본만화를 좋아한다. 1983년이래 107권이 발매되고 일본에서 역사상 5번째로 많은 판매부수를 기록했다는 이 음식만화는 일본의 음식은 물론 서양과 한국의 음식에 대한 소개도 나오는 만화다. 비록 본격적인 다큐나 문화소개서같은 정밀성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재미있고 사실적인 정보가 많아서 여러번 봐도 배우고 느끼게 되는 면이 또 있다. 때로 그것은 심지어 이 만화를 집필한 사람도 깨닫지 못하는 면이 아닐까 싶은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한국인과 일본인 사이에 서로 다른 면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 이 만화의 24권은 카레를 다루고 있는데 이 부분을 최근에 다시 보면서 나는 내가 인도음식에 대해서 선입견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고 일식이나 한식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 선입견은 애초에 영국에서 시작되어 세상으로 퍼졌는데 내 생각에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선입견을 가지고 있는 것같다. 이는 상당부분 카레라는 음식을 한국인의 눈이 아닌 일본인의 눈으로 보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만화의 이 부분에서는 카레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중요하게 부각된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전문가처럼 말을 못해도 카레가 뭔지는 안다고 하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그러니까 식당에 가서 카레라이스라는 요리가 메뉴에 있다면 그것이 뭔지 알고 시킨다는 말이다. 카레는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적인 음식이지만 일본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거의 일본의 향토음식처럼 변한 것이다. 일본에는 카레 프랜차이즈가 있고, 슈퍼에서는 엄청난 수의 카레를 판다. 한국 사람들도 대부분 황갈색의 걸쭉한 카레를 먹어 본적이 있을 것이고 그 특유의 맛과 향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의 카레는 울금이 많이 들어가서 보다 황색의 느낌이 나고 일본에서 인기있는 카레는 보다 갈색느낌이 난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선입견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가 카레 나아가 인도 음식에 있어서 향신료의 역할을 이상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한국인으로서는 이상한 것이다. 왜냐면 사실 한국요리와 인도요리는 향신료를 다양하게 쓴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카레를 한국의 찌개요리같은 것으로 이해한 다음에 카레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이 선입견내지 오해가 어처구니 없는 것이며, 인도요리에 대한 테러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향신료는 여러가지가 있어서 단순화할 수는 없지만 한국에 있어서건 인도에 있어서건 향신료는 우리가 통상 양념으로 부르는 것들을 포함한다. 그러니까 후추, 겨자, 파, 마늘, 생강같은 양념들이 다 향신료다. 한국인은 특히 마늘을 엄청나게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한국인은 다른 외국인들에 비하면 마늘을 양념으로 조금 넣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수저로 퍼먹는 수준이다. 외국에서는 마늘을 한톨씩 포장해서 파는 곳도 있다고 하니 한국인의 마늘 소비 기준으로 보면 매우 가소로운 것이다. 이 마늘만 봐도 양념이 얼마나 한식에 있어서 중요한가를 우리는 알게 된다. 

 

양념은 음식의 맛뿐만 아니라 영양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다. 인도와 한국에서 쓰는 향신료의 상당수는 본래 약재로도 쓰였던 것들이다. 삼계탕 같은 것을 생각해 보라. 그 안에 들어가는 재료는 한약재료들이지 않은가. 요즘은 아예 한방삼계탕이라고 파는 곳도 많다. 우리가 양념을 뺀 한식 그러니까 양념을 뺀 김치같은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한식에 있어서 양념을 어떻게 넣는가 하는 것은 요리 레시피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 한다. 양념을 제쳐놓고서 한식을 논할 수 없다. 

 

그런데 세상에 모든 요리문화가 이런 것은 아니다. 향신료를 별로 쓰지 않는 요리도 있다. 좋은 예가 일본의 초밥과 튀김, 나베와 우동, 소바같은 요리들이다. 일본의 초밥도 와사비라던가 식초같은 부가 재료가 들어가기는 하지만 대개의 일본 초밥은 생선을 썰어서 밥위에 얹고 그껏해야 와사비 간장정도에 찍어 먹는 것이다. 이런 요리들에는 향신료의 양과 종류가 매우 제한되어져 있다. 우리는 그것을 한국의 찌개나 김치같은 음식과 비교해 보면 알게 된다. 

 

일본의 나베와 한국의 찌개도 언뜻 보면 비슷한 면이 있지만 결정적으로 틀린 부분이 있다. 양념을 많이 쓰지 않는 일본의 나베는 사실 한국 기준으로 보면 종종 제대로 발달이 되지 못한 요리처럼 보인다. 일본에는 나베 전문점이라는 음식점들이 있는데 여기서 파는 나베들은 기본 육수에 손님이 넣을 건더기를 선택하면 여러가지 다양한 나베가 되는 식이다. 닭고기가 들어가면 닭고기 나베고 베이컨이 들어가면 베이컨 나베라는 식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라. 한국에 찌개 전문집이라는 곳이 있고 거기서 건더기를 선택하면 그에 따라 같은 국물이 순두부 찌개, 명태 찌개, 김치 찌개, 된장 찌개등 다양한 찌개로 변하는 곳이 있는가? 

 

모두 찌개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한국의 찌개는 양념을 어떻게 쓰는 가에 따라 서로 완전히 다른 음식이 되기에 보통 각각의 찌개는 각각의 독립된 요리로 전문화되어 있다. 일본의 나베처럼 같은 국물에 이런 저런 건더기를 넣으면 이런 저런 나베가 되는 음식이 아니다. 양념을 쓰는 단계라는 중요한 단계가 없거나 단순화되어 있다는 점에서 한국인의 눈에 종종 나베는 절반만 발달한 요리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저 애초에 맛있는 주재료의 맛으로 먹는 요리랄까. 

 

이렇게 한식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양념이지만 그 역할을 이상하게 이해해서는 안된다. 한식은 물론 인도요리에도 양념이라는 한가지 향신료의 배합이 있는게 아니다. 주요 식자재의 맛을 살리기 위해 넣는 것이 양념이며 따라서 상황에 따라 양념을 다양하게 취향에 따라 넣는 것이지 아무 주요재료도 없이 먼저 양념을 만들고 그 다음에 취향에 따라 주요 식자재를 넣어서 음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찌개를 이런 식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는 찌개가루라는 양념배합이 존재한다는 식으로 찌개 요리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감자를 넣으면 감자찌개, 돼지고기를 넣으면 돼지고기 찌개가 된다고 한식을 이해하는 것이다. 김치찌개 하나를 잘 만드는 방법이 뭔지 고민하는 사람도 많은 한국에서 찌개 요리를 이렇게 단순 무식한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한식에 대한 모욕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은 향신료나 양념쓰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이 향신료 문화를 별거 아닌 것으로 비하하는 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이것은 각종 색을 써서 그림을 그리는 화가의 작품활동을 그냥 페인트칠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게 카레가루에 익숙한 사람들이 종종 인도요리에 저지르는 일이다. 영국은 1600년에 동인도회사를 만들고 인도 진출을 본격화했고 1774년에는 벵갈 총독부를 설치하여 인도를 식민지로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19세기초 영국의 크로스 앤드 블랙웰이라는 회사가 카레가루를 상품화해서 팔게 되었다. 이 카레가루가 세계로 퍼지면서 카레가 인도요리의 총칭처럼 불리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익숙한 그 카레의 맛이 바로 인도의 맛으로 통하게 된 것이다. 

 

맛의 달인에 보면 일본인들은 인도에는 카레가루가 없다는 사실에 놀란다. 그들은 인도 사람들도 자기들 처럼 카레가루를 사다가 거기에 이것 저것 넣어서 만든 것을 인도요리라고 생각하고 먹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이 만약 한식을 이런 식으로 말하는 외국인이 있다면 한국인은 이건 한식에 대한 모욕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겠지만 양념쓰는 문화가 발달하지 않은 일본인들이 그러는 것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나베의 관점에서 카레를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양념쓰는 문화가 발달한 한국사람들이 카레란 무엇인가를 일본인처럼 이해한다면 그것은 더 큰 잘못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일본인들을 이 방면에 대해 비판할 자격이 없다. 나도 카레를 그런 식으로 이해했었기 때문이다. 

 

카레와 찌개 그리고 나베는 비슷한 면이 있고 다른 면이 있다. 인도는 수질이 나쁘고 물이 부족한 나라다. 게다가 음식을 손으로 먹는다. 그래서 인지 물을 많이 넣고 끓여 먹는 한국의 찌개와 국은 겉보기에는 일본의 나베와 비슷해 보인다. 인도요리는 기름이나 요거트, 코코넛 워터 같은 것을 써서 만드는 일도 많은데 아마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양념을 써서 만드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인도요리와 한국요리는 닮아있고 나베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요리는 변한다. 한국인도 일본인도 백년전과 같은 음식을 먹고 있는게 아니다. 일본의 전통적 면요리인 우동과 소바는 면을 먹는 것을 강조하는 느낌이었지만 최근에 발달한 일본의 라면은 복잡한 스프를 만든다. 그 말은 다양한 식자재가 들어간다는 뜻이다. 일본의 나베도 당연히 다양한 재료를 넣어서 먹는 경우가 있다. 마늘에는 질색한다는 일본인에 대한 말만 들었다가 일본에 가보고 요즘엔 일본인 중에도 마늘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 있어서 놀란 경험도 있다. 김치를 좋아하고 마늘을 잔뜩 넣은 라면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많다. 

 

다만 우리는 흔히 우리의 것은 자세히 파악하지만 남의 것은 대충 파악하는데 경우에 따라 그것이 지나칠 때가 있다. 카레에 대한 이야기는 인도가 오랜간 남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비슷한 역사도 공유한 한국인으로서 카레에 대해 느꼈던 바가 있어서 여기에 이렇게 기록으로 남겨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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