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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이용할 나라와 존경하는 나라

by 격암(강국진) 2020. 12. 2.

1982년에 제작된 미국 SF 영화 블레이드 러너를 보면 그들이 그린 미래에서 일본은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길가의 가게도 일식을 팔 뿐만 아니라 거리의 간판도 일본어로 덮여있었기 때문이다. 세계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일본은 급성장했고 1980년대만 해도 일본이 세계를 정복할 것처럼 그 위세는 대단했다. 1988년에 제작된 액션영화의 고전 다이하드 1에서 액션이 벌어지던 빌딩이 미국에 있는 것이지만 일본회사의 소유였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일본은 문화적으로도 세계적 인기를 누렸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은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았고 그의 작품은 미국에서 리메이크 되었으며 일본 가수 사카모토 큐는 1963년에 미국 빌보드에서 일본노래로 1위를 차지해서 요즘 BTS가 빌보드 1위를 할 때 자주 언급되고는 한다. 일본의 망가와 애니메이션은 특히 인기가 좋아서 지금도 한국이 따라잡을 수 없는 상황이다. 미국에 디즈니가 있었다면 일본에는 지브리 스튜디어가 있었다. 30년전만 해도 아직 정식수입도 안된 미야자키의 애니를 대학생들은 열심히 불법복제판으로 돌려봤고 드래곤 볼이나 슬램덩크 같은 일본만화의 인기는 한국에서도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일본노래의 불법복제 테이프도 돌아다녔다. 일본에 문화개방을 하기 이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대단했던 일본도 최근 한국이 부상하면서 비판을 받는 면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한류와는 달리 일찌기 존재했던 이 일본 문화 열풍은 결코 아시아 사람들의 사회적 위상과 이미지를 개선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이 해내기 전까지는 거의 불가능한 거라고 여겨졌던 거였다. 그래서 BTS의 월드 투어에 미국이나 유럽의 백인 소녀들이 몰려와서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이 일본인들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많은 황인종 계열의 아시아 사람들이 한류에 고마워 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 남자도 멋질 수 있다라는 것은 불과 10년전만 해도 상상하기 힘든 것이었다. 일본은 사실 그들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백인우월주의의 고착화에 기여한 것처럼 보이는 면이 많다. 

 

이런 변화는 물론 한국 혼자만의 힘은 아니고 세상이 바뀐 덕분이다. 아마 30년전에 슈퍼맨을 만든 감독이 모든 기술을 그대로 써서 슈퍼맨 영화를 한국에서 만들되 출연진들만 한국인으로 했다면 사람들의 호감은 커녕 비웃음만 샀을 것이다. 하지만 해외에서도 인기가 좋았던 드라마 도깨비처럼 초자연적인 힘을 가진 한국인 외모의 남자가 나오는 드라마가 미국인이나 유럽인을 포함하는 외국인에게 인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은 한국이 이뤄낸 작지 않은 성과다. 

 

이같은 것을 정리해 보자면 흑백론적으로 구분할 수는 없지만 나는 일본이 이용하면 좋은 나라가 되는데에는 성공했지만 진정으로 존경할 만한 나라가 되는데는 실패했다고 표현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은 아직은 그렇지 않더라도 존경할만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일본이 도달하는데 실패한 곳에, 그리고 중국도 도달하는데 실패한 곳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존경할만하다라는 말은 물론 애매한 말이다. 특히 우리가 이 말을 한국인이 거만해져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표현이다. 그래서 좀 더 설명하자면 내가 말하는 존경할만한 국가란 그것이 남의 나라지만 기꺼이 우리가 우리 사회의 미래로 삼고 싶은 나라다라는 뜻이다. 

 

일본이 존경할만한 나라가 되지 못했던 것은 한편으로 말하면 일본문화와 사회가 보편성을 가지지 못했다는 뜻이고 다른 표현으로는 일본은 세계를 설득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열심히 노력하여 자수성가하고 훌룡한 업적을 이뤘다면 그런 사람이 존경스럽다라고 말하는데 이는 어느 정도 그런 노력이 우리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이 재벌 3세로 태어나 엄청난 자산을 물려받고 내가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부자가 되었다면 그런 사람이 대단하다고는 할 수 있어도 존경할만 하다고 하기는 어렵다. 부자의 자식으로 태어나는 것은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그저 알아두면 쓸만한 사람, 이용할 만한 사람이 될 뿐이다. 

 

일본이 약진했을 때 세계는, 특히 서구는 당연히 자기 사회를 반성하는 계기로 어느 정도 일본을 인정했을 것이다. 그들은 왜 남들보다 빨리 성장하는가,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하고 탐색했을 것이다. 그를 위해서 일본에 유학생을 보내기도 하고, 일본 문화와 역사를 공부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결국 존경할만한 국가가 되지는 못했다. 그래서 그들의 경제적 성공의 정점에서 세계를 이끌 국가로 적합하지 않다는 판정을 받고 플라자합의에 도달했으며 그들의 버블붕괴이후 더더욱 비판받고 있다. 결국 일본은 일본의 운과 특이성때문에 성공했을 뿐 일본 사회 그 자체가 세계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는 공감대가 세계에 퍼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일본의 근현대사는 단순하게 말하면 메이지 유신 이후 천황숭배를 하다가 미국에게 패전한 역사다. 그렇게 일본은 민주국가가 되었다. 하지만 이는 외적 요인에 의한 개혁이었으므로 그것만으로 일본의 정치사회적 수준이 세계적으로 존경할만한 수준에 도달할 수 있었을리가 없다. 역사는 가정이 없다지만 만약 그것이 가능해졌었다면 패전 이후 일본의 정치는 적어도 세계대전을 일으킨 전범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주도했었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일본정치는 그런 게 아니다. 지금의 일본을 존경한다는 것은 세계가 히틀러의 나치당이 지배하던 독일을 존경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일본의 길을 지금 중국이 따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미국의 쇠락과 중국의 부상을 지적하지만 중국을 이용할 국가로 생각하는 사람은 많아도 중국을 본받고 중국을 그들 나라의 미래로 생각하고 존경할 나라는 별로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경제 2위 국가라는 중국의 문화적 영향력은 오히려 요즘 쇠퇴하는 느낌을 준다. 차라리 중국의 경제 군사력이 대단하지 않았을 때는 중국 문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던 세계가 요즘은 중국 문화를 경계한다. 중국인들을 받아들이기 두려워한다. 중국이 존경할만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들의 나라가 중국처럼 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던 홍콩조차도 민주화 시위로 몸살을 앓고 있지 않은가. 한국식으로 말하자면 일본의 식민지였던 부산이 나는 한국이 되기 싫다고 민주화 시위를 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다. 

 

세계에서 존경받을만한 나라로 여겨져 왔던 것은 서구 국가들이다. 그들은 단순히 우리가 돈이 많다라고 자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대 국가의 정치적 모범으로 자신들을 내세우고, 과학과 예술 분야에 있어서 전 세계가 그들을 따라 배워야 한다고 자랑해왔다. 애초에 역사를 고대 중세 근대 현대라는 식으로 구분하고 서구권은 현대를 살고 있으나 다른 나라의 정치수준은 근대나 중세수준이라는 식으로 파악하는 것 자체가 서구가 만들어 낸 것이다. 

 

하지만 많은 나라들은 그것을 어느 정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만 해도 미국와 유럽의 나라들을 목표로 삼아 더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면서 그들 나라의 예술가며 지식인들을 열심히 공부했다. 뉴욕커는 다르다, 파리지앵은 다르다는 식의 말을 적어도 2-30년전만 해도 참 많이 했다. 언제나 선진국민은 한국인들과는 달리 이렇다 저렇다는 말을 스스로 했다. 미국의 대통령 트럼프는 미국은 더이상 세계의 경찰 역할을 하지 않겠다며 불평했지만 따지고 보면 미국이 그런 역할을 했던 것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존경받을 만한 나라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트럼프의 그런 말은 스스로 미국은 더이상 존경받을 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자백하는 것이다. 미국대통령으로서는 어리석은 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이 일본과 중국과 다른 것은 한국이 자력으로 민주화투쟁을 통해 민주주의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달성한 투명성과 공평함이 한국을 존경할만한 나라의 후보정도는 될 수 있는 힘을 준다. 홍콩과 태국시위에서 한국 노래가 울려퍼지는 것은 이때문이다. 또 다른 요소는 한국이 가장 정보화가 잘된 나라라는 점이 코로나 사태가 터지면서 부각되었다는 것도 있다. 코로나 상황을 통해 세계는 한국에 주목하게 되었는데 비록 한국이 일본이나 중국같은 경제적 힘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치안이나 위생, 정치측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졌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는 거꾸로 한국인들에게는 그 대단하다는 서구가 어느 정도 허풍이었다는 자각을 하게 만들었다. 한국에는 신천지가 있고 전광훈 목사같은 사람이있지만 서구에는 그런 사람이 훨씬 더 많은 것같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이야기는 한가지 사실을 잘 보여준다. 진정으로 부유한 국가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단지 이용할만한 나라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우리는 존경할만한 나라 즉 세계의 미래를 보여주는 모범국가가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세계는 한국을 받아들이고 한국의 힘이 커지는 것을 용납할 것이다. 그것이 진정으로 세계에 도움이 되는 질서를 확대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이 진정으로 존경할만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이 이미 그 미래에 도달했다는 자만을 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미래로 더욱 더 나아가야 한다.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뭔지 고민하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진정으로 이것이 미래라는 진정한 서구문화의 대안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런 비전이 일본이나 중국의 그것들과는 달리 세계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때 한국은 진짜 부유해 질 것이다. 세계가 한국이 빨리 그렇게 되도록 도울 것이다. 그게 바람직한 세계라는 것을 세상 사람들이 납득하는 것이 바로 한국이 존경할만한 나라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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