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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힘의 나라와 문화의 나라.

by 격암(강국진) 2020. 9. 25.

역사는 그저 과거일 뿐일까? 아니면 과거의 시간은 그 나라의 문화와 관습속에 끈질기게 살아남아서 현대인의 정신을 지배하고 그 성장을 돕거나 제약하게 되는 것일까. 칼로 흥했던 자는 급하면 결국 칼에 의존하려고 하지 않을까? 후자가 맞다고 할 때 한국은 오늘날 아주 특이한 위치에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모든 강대국이 제국의 역사를 가진 힘의 나라일 때 한국은 오로지 하나 존재하는 예외적인 존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오 휴버먼이 1936년에 발표한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라는 책은 서구의 자본주의 발달에 대해 재미있게 서술하는 고전이다. 이 책을 보면 우리는 새삼 서구와 한국은 국가의 시작 자체가 상당히 다르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로마 제국의 붕괴이후 유럽을 지배했던 것은 기독교였다. 한때 기독교의 지도자였던 교황은 한때 유럽땅의 절반을 가질 정도로 유럽을 지배했고 왕이라고 해도 교황의 명령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 과거의 유럽이었다. 하지만 이 기독교가 서구에서 근세나 근대 국가의 출발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서구에서 그런 국가가 출현한 것은 상거래 때문이었다. 

 

활발한 상거래가 어떤 지역 내부에서 이뤄지려면 그 지역은 단일한 권력에 의해 지배될 필요가 있다. 산마다 있는 산적두목같이 여기저기가 각각의 영주에 의해 지배되고 각자 이런 저런 명목으로 수탈을 하는 봉건 구조에서는 광범위한 소통과 전문화를 요구하는 상거래가 이뤄지기 힘들다. 따라서 보다 보편적인 질서가 필요했고 왕이 직접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구조가 좋았다. 물론 교황이 다스리는 전체 유럽이 하나의 왕에 의해 지배되는 것이 더 바람직했겠지만 기독교는 본래 보수적인 삶을 추구하고 개인의 이윤추구를 바람직하지 않아 했다. 그러다보니 종교가 지배하던 유럽은 점차로 왕과 시장경제가 지배하는 곳이 되었고 그만큼 교황의 힘은 약해지게 된다.

 

따라서 이렇게 생겨난 국가들은 군사력으로 상인들을 보조해주는 역할 그러니까 딱 상인회에 기생하면서 보호비를 뜯어내는 조폭과 같은 역할을 했고 이것이 서구국가의 탄생과 발전이다. 이는 근대적 국가가 세워진 이후의 현대까지 상당부분 이어지는데 이 때도 결국 중요했던 것은 경제논리이고 상거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구 사람들에게 국가질서란 본래 개인들의 경제적 이익을 보호하고 증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으며 무력을 통해 유지되는 것이었다. 물론 그들도 기독교라는 정신적 배경을 가졌지만 국가라는 조직이 만들어지고 발달한 것은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 국가의 측면에서 보면 서구 지배엘리트들은 뼈속까지 상인이고 조폭이고 군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과거의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한반도에서는 어땠는가. 조선은 그런 힘의 나라가 아니었다. 제국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조선이 동시대의 유럽이나 일본보다 사회질서가 더 약했냐고 하면 조선은 오히려 일찌감치 중앙에서 과거로 관리를 선발하고 파견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었으니 오히려 더욱 더 국가적 정체성은 강했다고 볼 수도 있다. 일본에서는 1867년의 메이지 유신 이후 있었던 일이 조선에서는 1392년의 조선건국이후 있었다. 잔다르크가 등장했던 백년전쟁이 끝나고 국왕의 권위가 강해진 근세프랑스가 세워진 것은 1453년의 일이었다. 세종대왕이 15세기초에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하고 있을 때 유럽은 아직 국가의 기틀도 못잡고 봉건제도 속에서 갈갈이 흩어져 싸우고 있었다. 

 

한반도에서는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 조선은 힘이상으로 정신이 지배하는 나라였다. 조선은 마치 교황이 유럽을 지배하면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를 보여주는 것같다. 물론 국가의 질서를 만들어 내던 정신적 틀은 기독교가 아니라 유학이었지만 사실 그것은 단지 유학만은 아니고 불교, 도교, 유학을 모두 포함하는 조선문화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와 유학을 완전히 같은 위치에 두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 기독교는 물론 종교다. 하지만 유학은 철학이고 정치사상이다. 조선은 단순히 종교에 몰두하여 신화에 빠져 사는 나라는 아니었다. 이것이 훗날 한국 사람들이 서구 문화를 빨리 습득할 수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힘의 나라와 정신의 나라는 서로 싸우는 방식이 다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을 통일하고 나자 문제에 봉착했다. 전쟁이 끝나면 장수들에게 땅을 나눠줘야했는데 도요토미는 군사력은 있지만 땅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은 1592년에 일본의 침공을 받았다. 전쟁이 터지자 일본은 승승장구하는 것같았다. 한반도의 사람들은 내전도 없었고 누굴 무력으로 공격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무장이 약했다. 하지만 일본은 결국 조선을 차지하지 못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죽고만다. 문화적 방식의 반격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이 성공하지 못한 이유 중의 하나는 의병이다. 왕이 도망가고 관리가 도망가도 어디선가 의병장이 나타나고 백성들이 모여들어 저항했다. 이런 것은 일본에서는 기이한 일이었다. 힘의 나라에서는 마치 장기를 두는 것처럼 대장을 쓰러뜨리면 싸움은 끝난다. 백성은 금방 충성할 대상을 바꾼다. 한 지역의 장이 도망가면 그곳의 백성들은 새 지배자에게 충성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니 선조가 도망가면 전쟁은 끝나야 했다. 중앙의 명령없이 자발적으로 의병을 일으키는게 아니라 말이다. 

 

하지만 조선은 정신이 지배하는 나라였고 조선의 입장에서 보면 일본의 침략이란 남쪽 야만인들의 침공과 같았다. 힘에서 밀리건 말건 우리는 야만인으로는 살 수 없다. 그렇지 않은가? 만약 당신이 기독교도이거나 불교도인데 힌두교가 지배하는 나라가 침략해서 앞으로는 힌두교도로 살아야 한다면 어쩔 것인가? 설사 힘이 부족하다고 해도, 설사 죽을 수 있다고 해도 당신이 충실한 신자라면 그건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그건 이런 문제였던 것이다. 이때문에 무력에 의해 타국에게 억압당하는 상황이 와도 조선은 망하지 않고 계속되었다. 중국의 옆에 있으면서도 한반도는 중국대륙에게 합병된 적이 없다. 그 강대했던 징기스칸의 나라에도 합병되지 않았다. 설사 나라를 빼앗긴지 몇십년이 지나도 조선인은 일본인으로 살 수 없었다. 많은 조선인은 여전히 조선인이었다. 일본문화는 조선인을 삼키지 못했다. 오히려 문화의 나라 국민들이 힘의 나라 국민들을 문화적으로 가르친다. 인간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거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천황숭배란 조선의 수준에서 보면 미개한 문화였다. 이것이 문화가 무력에 저항하는 방식이다. 

 

이게 어디나 이런 건 아니다. 오히려 예외적이다. 중국인들도 일본이 만주를 지배한다고 흥분해서 우리만큼 반항했을까? 그렇지 않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땅이 넓어 중앙질서가 영향을 미치기는 더 힘든데 왕조들의 길이는 한반도의 왕조들보다 더 짧았다. 다시 말해 중국민중은 지배자가 계속 바뀌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었고 애국심따위는 희박하다. 중국 사람들은 국가적 질서가 자기를 지킨다기 보다는 그냥 나는 내 힘으로 산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니 일단 나라가 망했다면 희망도 없는 저항을 하자고 목숨걸고 의병을 조직할 분위기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인구로 보면 조선인은 작았지만 일제에 저항하는 측면에서 보면 조선인은 작지 않았다. 

 

조선은 정신의 나라였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요즘 기준으로 하면 컨텐츠를 만드는 것이 지배 엘리트의 할 일 이었다. 성당의 신부는 뭘 하는가? 설교를 하고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조선의 지배엘리트인 선비는 배우고 글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일찌기 조선시대의 선비 정약용은 사람이 태어나서 책한상자도 남기지 않고 죽으면 그게 짐승이지 사람이냐고 했다. 한반도 사람에게 국가란 정신과 문화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었다. 즉 한반도에서 국가란 문화적 동질성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다. 서구인과 일본인이 뼈속까지 상인이고 조폭이라면 한반도 사람은 뼈속까지 종교인이고 철학자고 학자며 예술가다. 한국 사람은 진리에 도달하고 깨달음에 도달하고 싶어 한다. 그렇게 할 때 진정한 행복에 도달할 것이다.

 

한국만큼 교육열이 높은 나라도 없다. 한국의 지금이 있는 이유는 자식에게 배움의 기회가 있다면 부모가 가정부일을 해서라도 학원비를 벌고 연금이고 뭐고 없이 자녀 교육에 전부 투자하던 지금의 노년층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직후의 한국은 정말 가난했는데도 한국인의 정신은 단순히 가난한 나라의 정신은 아니었다. 배워야 한다는 의지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다. 한국의  전체 고등학생 중 7-80%가 대학에 간다. OECD중 1등이다.

 

기독교의 본산인 유럽에서는 이제 기독교가 거의 인기가 없는데 전세계에서 제일 큰 교회들은 한국에 있다. 공자는 중국사람이지만 중국에서는 유학전통이 사라져서 유학을 공부하려면 한국에 와야 한다고 한다. 지금도 산마다 절이 즐비하고 선불교의 전통도 있으며 세계 어디에도 없는 팔만대장경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한때 불교국가였던 한국이다. 한마디로 유학, 불교, 기독교, 현대학문등 뭐든지간에  배우는 일이라면 우리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인터넷은 미국에서 개발된 것이지만 한국에서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빨리 발전했다. 기술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그 배경에는 새로운 미디어가 열리면 그 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사람들이 한국에는 우글우글하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신문, 방송, 잡지따위로만 정보가 흐르고 등단을 해야 작가가 될 수 있던 시대도 있었다. 시스템이 사람들의 입을 막았다. 하지만 인터넷으로 새로운 통로가 생기자 무수한 사람들이 미친 듯이 컨텐츠를 만들어 올렸다. 한국 영화중 외국에서 인기를 얻었던 초기영화중 하나인 엽기적인 그녀는 본래 이런 컴퓨터 통신시절의 인터넷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가장 스마트폰에 열광하고 가장 SNS와 유튜브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누구일까. 누구나 BTS의 성공에는 인터넷 매체의 활용이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넷플릭스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전세계로 영화와 드라마를 보급하자 그 통로를 통해 한류가 퍼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보면 컨텐츠를 만들고 퍼뜨리고 싶어서 안달인 민족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다. 그건 한국 사람들이다. 낡은 시스템이 그들의 입을 막지만 않는다면 한국인들은 미친 듯이 컨텐츠를 만들어 퍼뜨리려고 한다. 그게 다 어디에서 왔을까? 조선이 힘의 나라가 아니라 정신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한국은 군사독재를 물리치고 민주국가를 만들었다. 이제는 프랑스나 미국이 한국의 투표를 보면서 저게 진짜 민주주의라고 말하는 지경이다. 한국이 군사독재를 물리칠 수 있던 것도 결국 우리의 문화때문이다. 우리는 본래 힘의 국가에서는 못사는 민족이다. 우리는 조선시대에서도 그렇게 살질 않았다. 부당한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을 탄핵해 보겠다고 걸핏하면 백만명씩 광장에 나와서 촛불드는 나라가 세상에 어디나 있는게 아니다. 국난이 나면 의병이 일어나는 나라니까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이다. 

 

문화적 매력도 물론 경제력과 군사력의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 그리고 군사력이 더 큰 역할을 하던 시절에는 이런 측면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부유한 서구권이 문화적 국가고 한국은 문화적으로 빈곤한 것처럼 보였다. 20년 전만 해도 아카데미 수상식을 한국 영화가 빛내고 제2의 비틀즈라는 그룹이 한국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점차 군사력으로 돈을 버는 것이 비효율적이 되고 한국이 선진국대열에 든다고 할 정도의 부를 축적하고 나자 이야기는 달라졌다. 지금도 반지의 제왕이나 어벤져스같은 영화속에서 남성적인 폭력을 자랑하는 전사들은 총과 칼로 역사를 만들고 있지만 이제 역사는 그런 서부개척시대의 카우보이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말하자면 세계는 남성의 것에서 여성의 것이 되었고 군인의 것에서 변호사의 것이 되었다. 군사독재시절에 통했던 것처럼 술마시고 우리가 남이냐고 외치는 남자 상사의 리더쉽은 통하지 않는다. 대화와 협상에 능한 여자가 더 성공한다. 시스템을 맘대로 주무르는 군사독재식의 방법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규칙에 능한 변호사가 힘을 가진다. 태생적으로 전사의 문화를 가진 지금의 선진국들이 만든 문화는 시대에 뒤진 것이 되어가고 있다. 영화를 만드는 데서도 그렇고 정치를 하는데서도 그렇다. 

 

시장경제가 커진 시대에는 엄청난 군사력을 가지고 협박하는 것이 점점 효율이 떨어진다. 중국의 반칙이 더 큰 문제이기는 하지만 트럼프식으로 강대국의 특권을 주장하면서 타국을 누르려고 하면 국제적 지지를 받기 힘들다. 이번에는 중국이지만 중국이 무너지고 나면 그 다음에는 누가 거기에 당할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발달한 기술은 날아오르려고 하는데 트럼프니 시진핑이니 아베니 하는 지도자가 하는 걸 보면 백년은 낡아보인다. 그들은 여전히 중상주의나 제국주의 따위를 반복하고 있다. 결국 제국주의의 후예들은 어쩔 수가 없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서구적 답은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일 것이다. 자본주의가 국가고 국가가 자본주의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자본주의는 국가와 사회발전에 큰 영향을 끼쳐서 서구적 시각으로 보면 그건 너무 당연해 보인다. 세상에 자본주의의 병폐가 깊어져도 사람들이 그걸 헤어나오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수 있다. 그들은 침략하고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너무 당연시 여기는 정신상태에 빠져 있다. 

 

그런데 사실 한국적 답은 다르다. 국가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한국적인 답은 문화와 소통이다. 한국은 그 문화를 국가적 정체성의 근원에 둔다. 다시 말해 우리가 한국적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한국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화적 매력이란 아무래도 가난할 때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때문에 외국이 그저 부러워만 보일 때 한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은 매우 희미했다. 한국의 보수는 전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보수다. 군사작전권을 한사코 타국에 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남의 나라 국기들고 데모하면서 자신을 보수라고 말하는 보수는 세계에 한국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한류열풍이 강해지면서 한국의 정체성이 빠르게 또렷해지고 있다. 이미 아는 사람도 많았지만 외국 특히 선진국이라 불리던 외국도 결코 천국이 아니라는 것을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한국 음악과 영화 그리고 음식이 외국에서 인기를 얻는 것을 보면서 한국의 문화에 대한 자신감이 커지기 시작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이제껏 사랑이 뭔지를 오해했었다고, 인생이 뭔지를 오해했었다고 말하는 외국인들이 나오고 있다. 

 

지금은 문화의 시대다. 앞으로는 문화의 시대다. 이 시대는 제국의 피를 가지지 않은 한국이 잘 살 수 있는 시대다. 사실 제국이란 곧 자본주의고 지금은 그 자본주의의 병폐가 끝없이 세상을 위험에 빠뜨리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렇게 볼 때 한국은 서구가 퍼뜨린, 힘의 나라들이 퍼뜨린 문화적 병폐를 치유할 힘을 가진 아주 드문 나라 중의 하나 일 수 있다. 우리가 계속 우리일 수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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