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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한국인은 왜 한국 젓가락을 쓰는가?

by 격암(강국진) 2020. 2. 20.

2020.2.20

 

한국 사람들은 보통 스텐레스로 된 젓가락과 숫가락으로 식사를 한다. 우리는 이것에 아주 익숙하기 때문에 이를 당연히 여기지만 사실 이것은 그렇게까지 당연한 것은 아니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아주 기이하게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일단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손으로 식사를 하거나 칼과 나이프 그리고 포크를 쓰지 젓가락을 쓰지 않는다. 게다가 베트남, 중국, 일본, 한국등은 젓가락을 쓰지만 젓가락의 모양은 서로 조금씩 다른데 특히 한국이 특이하다. 한국은 바로 쇠로된 젓가락을 쓰는 것이다. 이 젓가락은 일본이나 중국의 나무 젓가락보다 잡기 어렵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한중일의 젓가락차이를 말해주는 동영상같은 것을 찾아보면 그 밑에 한국 젓가락이 쓰기 어렵다는 말이 아주 많이 달려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세계로 눈을 돌리면 한국인은 남북한을 합한다고 해도 전세계 인구의 1%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적어도 최근까지는 한국이 그다지 잘사는 나라도 아니었기 때문에 외국인이 한국인의 젓가락을 어떻게 보는가가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국사람이 어떻게 사는지가 큰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한류도 있고, 한국이 더 잘살게도 되어 더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 한국의 젓가락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사람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같다. 심지어 수십년간 젓가락을 써왔다는 중국인이나 일본인들 중에도 한국 젓가락을 잘 쓰지 못하겠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 왜 한국인은 쇠로된 젓가락을 쓰는가? 이 문제를 답하는 흔한 방식은 문화적 차이와 역사적 맥락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젓가락뿐만 아니라 포크에 대해서도 언제부터 이 도구가 보편화 되었다던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논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한중일의 젓가락차이에 대해서도 이러니 저러니 하고 이유를 가져다 붙이고 역사와 문화를 논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조금 생각해 보면 이런 것들이 그다지 신통한 방법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젓가락은 음식을 먹는 도구다. 그리고 이 목적은 아주 여러가지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그래서 젓가락이 좋은지, 포크가 좋은지 심지어 맨손이 좋은지는 역사와 문화적 맥락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예를 들어 보통 유목민족이었던 유럽의 음식이 덩어리로 나와서 탁자 위에서 칼로 잘라먹는 일이 많은 것에 비해 극동아시아의 농경민족들은 미리 칼로 음식이 잘게 잘라 나오고 따라서 젓가락을 쓰게되었다라고 하는 설명을 생각해 보자. 

 

이게 설명일까? 그럼 유럽은 왜 음식을 미리 잘라주지 않는가. 그럼 우리는 왜 음식을 미리 자르는가. 하나의 질문은 다른 질문으로 옮겨가고 그것이 끝도 없이 이어져서 설명처럼 보이는 설명은 설명이 된다기 보다는 그냥 먼 과거에 우리가 모르는 어떤 선택이 이뤄졌고 그것이 바뀌지 않고 있다는 말밖에는 되지 않는다. 

 

또다른 예를 들어 보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맨손으로 식사를 한다. 우리는 젓가락을 쓰고 서구인들은 포크를 쓰기 때문에 이것을 미개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들도 맥도널드에 가면 대개 그냥 햄버거를 손으로 잡고 먹는다. 포도 먹을 때 젓가락이나 포크 쓰는 사람이 있나? 즉 우리도 손으로 먹을 때는 손으로 먹는다. 그런 걸 당연시 하면서 다른 문화에서 손을 쓰면 그걸 미개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을 것이다. 

 

1608년 토머스 토리에이트라는 영국인은 이탈리아를 여행하고서 여행기를 썼는데 이 여행기를 보면 자기입장에서 정당화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영국에 포크가 보급된 것은 17, 18세기의 일이다. 미국은 더 늦어서 18세기에나 포크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16세기 후반에서 17세기 초반까지 활동했던 영국의 세익스피어도 포크를 쓰지 않고 식사를 했다. 당연히 포크를 쓰지 않았던 1608년의 토머스는 이탈리아에 가서 거기 사람들이 포크를 쓰는 것을 보게 된다. 그는 포크라는 신문물을 찬양했을까?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손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일을 잘하지 못해서 포크를 쓴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합리화를 하는게 이렇다. (이 내용은 헨리 페트로스키의 포크는 왜 네 갈퀴를 달게 되었나라는 책에 나온다.)

 

다시 원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왜 한국인은 한국 젓가락을 쓰는가? 우리는 이제 이 질문에 대해 합리적인 답을 할 수 없는가? 앞에서는 일종의 문화적 상대주의로 이유를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지만 나는 여전히 한명의 한국인이자 그저 한 사람의 개인으로서 그 이유를 말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즉 현시대를 사는 한명의 한국인으로서 왜 우리는 한국 젓가락을 쓰는가를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오늘날에 우리가 나이프와 포크를 구할 수 없어서 젓가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또 더 구체적으로 젓가락도 원한다면 중국이나 일본의 것을 쓸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쇠로된 한국 젓가락을 쓰는가?

 

 

 

 

나는 다른 무엇보다도 먼저 젓가락이 매우 경제적이고 대중적인 도구라는 점, 어떻게 말하면 민주적인 도구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젓가락은 비록 그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 좀 어렵기는 하지만 그 기능이 아주 뛰어나고 단순하여 만들기 쉽다. 그래서 모든 대중이 쉽게 쓸 수 있는 도구다. 

 

지금도 거북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좀 비싼 양식집에 가면 포크와 나이프를 다양하게 줘서 당황스러웠다. 내가 잘못된 순서로 나이프와 포크를 쓰면 웨이터가 와서 내가 쓰지도 않은 포크를 가져가는 일이 생긴다. 그러면 창피했다. 하지만 이제와 생각하면 우리는 묻게 된다. 애초에 왜 저렇게 많은 도구가 필요할까?  한정식집에 가면 그저 수저세트 하나 있을 뿐인데 양식 코스에는 왜 도구가 저렇게 많은가?

 

포크와 나이프가 여러벌이고 다 모양이 틀린다는 것은 뒤집어 말하면 그 도구들이 그다지 범용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뜻한다. 크기와 모양에 따라 용도가 다르다. 나이프와 포크는 젓가락에 비하면 훨씬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고 만들기 어렵다. 그래서 특정 용도에서는 더 뛰어날 수 있지만 범용이 되지 못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음식에 따라 도구를 바꿔야 더 효율적이 된다. 

 

그런데 격식을 차린 레스토랑이라면 도구를 다양하게 갖추겠지만 보통의 가정이라면 어떤가. 한국에서는 최고의 부자도 가난한 서민도 실질적으로 거의 같은 도구를 써서 음식을 먹는다. 왕이나 대통령이나 재벌의 젓가락이라고 해서 뭐 대단한게 아니다. 이렇게 보면 유럽의 문화는 그다지 대중적이지 않다는 느낌이 든다. 식문화에 절차가 많다. 시간많고 돈많았던 부자들은 별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대다수 대중은 부자들과는 다르게 먹고 마셨을 것이다. 

 

즉 포크나 나이프를 쓰는 식문화는 자연히 부자와 대중을 구분하게 되는 도구라는 것이다.  마치 거대한 성이 하인들을 쓸 수 있는 귀족만 관리가 가능한 집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젓가락이라는 대중적이고 민주적인 도구가 그래서 좋다. 나아가 대중적인 식문화가 전체 대중이 음식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의 삽겹살집이나 숯불갈비집은 대중적인 식당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그런 종류의 음식들을 어떻게 먹을까를 생각해 보라. 좋은 고기를 쓰는 스테이크 집은 종종 온갖 화려한 식기를 쓰고 전채니 후식이니를 곁들여서는 그걸 아주 비싼 음식으로 만들 것이다. 결국 대중이 먹기 힘든 음식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서구 음식문화는 거품이 너무 많아 보여서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반대편을 보면 젓가락의 민주성에 대해서는 손가락이 더 민주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역시 도구를 쓰는 것이 손가락보다 편한 점이 있다고 믿는다. 손을 더럽히지 않고, 뜨거운 것도 다룰 수가 있지 않은가.  그래서 손으로 먹는 것보다 포크나 나이프를 쓰는 것보다 젓가락을 쓰는 것이 마음에 든다. 

 

우리가 젓가락 중에서 쇠로된 젓가락을 쓰는 것에 대해서 말해보자. 나는 한번은 일본인에게 왜 한국은 쇠젓가락을 쓰냐고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그 일본인에게 거꾸로 묻고 싶었다. 왜 그들은 서양인에게 나무로 된 포크나 나이프를 쓰지 않냐고 묻지 않는가? 음식을 먹는데 쓰는 도구가 물기에 약한 나무보다 쇠로 만들어 지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닐까? 

 

쇠로된 젓가락은 더 청결할 뿐만 아니라 자원을 아끼는 일이기도 하다. 스테인레스젓가락은 원하면 거의 영원히 쓸 수 있다. 나무 젓가락은 그렇지가 못하다. 나무 젓가락이 집기도 쉽고 심지어 더 예쁜 경우도 있지만 매일 매일 쓰고 물로 씻는 식기를 나무로 만든다는 것은 한계가 크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나무 젓가락을 대개는 일회용으로 여긴다. 

 

물론 쇠로된 젓가락은 문제가 있다. 무겁다. 그래서 한국의 쇠젓가락은 짧고 둥글지가 않고 납작하며 따라서 사용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무게를 줄이기 위해서 그렇게 만드는 것이다. 중국 젓가락이 한중일 중에서 제일 긴데 그걸 그대로 쇠로 만들면 엄청난 무게가 나갈 것이다. 

 

이 문제도 최근에 발전이 있었다. 요즘에는 안이 비어 있는 쇠젓가락이 나왔다. 그래서 좀 더 크고 둥글게 생겨도 그다지 무겁지가 않다. 즉 미끄러지지도 않고, 그다지 무겁지도 않으면서 잡기 좋게 크고 긴 젓가락도 나온 것이다. 이쯤 되면 왜 나무젓가락을 써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세계화의 시대다. 이제 음식들도 맹렬히 섞이고 있다. 스파게티를 먹을 때 포크를 써야 할까 젓가락을 써야 할까를 고민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 한국 음식은 한국 도구로 먹는게 자연스러운데 한국 음식이 외국에서 인기를 얻으면 한국의 쇠젓가락도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지킬 것은 지키고 개선할 것은 개선해야 한다면 우리는 스스로 한국이 왜 한국 젓가락을 쓰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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