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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과거를 보는 일본, 미래를 보는 한국

by 격암(강국진) 2021. 3. 11.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적인 나라다. 나는 그 나라에서 10년이상을 살았는데 그 나라에는 알게 모르게 끝없이 세뇌적으로 흘러나오는 목소리가 있다. 그 목소리는 바로 "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나빠?"라는 말이다. 즉 왜 변해야 하는가, 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보수적 목소리다. 이 목소리는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광고에서 전통에 대한 강조를 통해 계속 나온다. 마치 세뇌라도 하고 싶은 것처럼. 

 

이는 전세계에서도 가장 빨리 변해온 나라라고 할 수 있는 한국에서 온 사람에게는 때로 상쾌하게 들리기도 하는 메세지였음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한국은 변해야만 산다라는 목소리와 함께 진행된 개혁들로 인해 피로가 많이 누적되어있다. 그 결과중의 하나가 엄청나게 낮은 출산률이다. 출산률이 낮은 것을 설명하는 방법은 여러가지이겠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는 한가지 방법은 분명히 한국에서는 시대를 쫒아가기 어렵다는 것이다. 예측 불가능하게 빨리 변하는 나라에서는 가능한 모든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공포가 생기게 된다. 그러므로 아이들을 그냥 키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엄청난 돈을 들여서 아이를 키우고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한국은 마치 시간이 엄청나게 빨리 흐르는 이상한 나라와 같아서 제자리에 서있으면 현대에 던져진 원시인처럼 쓸모없는 인간이 된다.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는 먹을 걸 원조받는 전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태어났는데 이제 그 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 하지만 스마트폰 조작이 힘든 노인들에게 지금의 한국이 꼭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가 무력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그래서 노인들은 재래시장같이 옛날 풍취가 있는 곳에 가면 갑자기 자신감이 올라가기도 한다. 이런 일은 중년의 한국인에게도 어느 정도 있다. 

 

그러나 생각하면 일본의 교육이란 결국 과거에 대한 지나친 미화다. 일본은 일제시대나 패전 이후의 가난하던 시절을 너무 미화한다. 그들은 한편으로는 그 시절이 살기 힘든 곳이었다고 말하면서도 그 시절이야 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던 인간적인 시대였다고 미화한다. 일본은 연호라고 해서 자기 나름대로 년도에 이름을 붙이는데 그 중에서 쇼와 시대라고 불리는 시대는 1926년에서 1989년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는 지금의 일본의 노인들이 태어난 시기이며 일본의 마지막 황금기가 끝나는 시기였다. 일본은 이때 이후로 쇠락하여 지금은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일본의 노인들은 하염없이 쇼와의 시기를 그리워 한다. 사실 지금의 일본 모습은 그 시절의 일본을 안간힘을 다해 유지해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금의 일본은 30년은 낡은 것이다. 

 

이는 한국의 정서와는 크게 다른 점이다. 한국은 설사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거에 대한 향수따위는 별로 없다. 물론 한국의 노인들도 자신의 청춘시대를 그리워하며 국제시장같은 영화가 과거를 영광과 추억의 시대로 그리려고 하지만 그런 목소리는 희미할 뿐이다.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1990년대를 그리워 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아직 그 최고 영광의 시대에 도달하지 못했다. 응답하라 1988이 인기있지만 한국의 지금 모습은 일본과는 달리 1988년과는 너무 다르다. 

 

일본은 스스로 가난하고 힘들었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어떤 의미로 그래야 다시 영광의 시대가 온다고 믿는 것같다. 미래로 나아가려는 노력은 오히려 반대로 철없이 거품만 든 생각이라고 비판받는다. 우동도 닭꼬치도 돈카츠도 30년씩 50년씩 똑같이 되도록 예전의 맛을 유지하는 것이 칭찬받는다. 일본의 젊은이들은 그 대단하신 일본의 노인들에게 그들의 젊은 시절처럼 근성을 가지라는 충고를 들으며 좌절한다. 변화하지 않는 사회속의 젊은이는 엄청나게 누적된 계급질서속에서 좌절할 수 밖에 없다. 

 

한국도 물론 젊은이들이 마찬가지 이유로 좌절하지만 한국은 오히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좌절이 더 큰 것같다. 일본은 너무 많은 메뉴얼을 던지면서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하라고 명령을 한다면 한국은 아무 가이드 라인도 없이 그저 성과를 내라고 젊은이들에게 요구한다. 노벨상이니 스티브 잡스니 하는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인들은 공부할 것이 너무 많다. 끝없이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부담은 대개 젊은 세대에게 뒤집어 씌워진다. 

 

일본은 일본이 원하는대로 되고 있다. 일본은 다시 가난하고 먹을 것없는 시대로 돌아가고있다. 노인들이 그토록 원하고 그리워하던 쇼와시대의 중간쯤으로 말이다. 그들은 미화하던 과거로 돌아가지만 사실 그 과거가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미화를 만들어 낸 쇼와세대의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무력해져야 일본에는 새바람이 불 것이다. 

 

한국도 한국이 원하는대로 되어가고 있다. 전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미래에 도달하는 장소가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개혁의 피로를 생각하지 않고 있다. 파괴하고 새로 짓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우리도 어쩌면 꿈꾸던 미래를 너무 미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미화하던 미래에 도달하지만 사실 그 미래가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곳에 도달하는 사람은 정작 아주 소수이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낙오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자살률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인데 더 정확히 말하면 한국의 노인 자살률이 말도 안되게 높기 때문이다. 많은 노인들은 새로운 한국에 적응하기를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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