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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황화론과 세계의 미래

by 격암(강국진) 2021. 1. 19.

2021.1.19

2020년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세계적인 사건은 코로나 19의 유행이겠지만 지난 20년동안 있었던 사건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들자면 그것은 아마도 중국의 부상과 위협일 것이다. 중국은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래 일본을 경제규모 3위로 끌어내리고 2등을 차지한 후 엄청나게 몸집을 키웠다. 중국은 이제 미국을 넘어 세계를 위협하는 나라로 성장했다. 미국이나 유럽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중국이 이미 얼마나 대단해 졌냐를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의 부상과 일본의 몰락 역시 조만간 이 중국의 부상만큼 이나 큰 사건이 될 것같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극동아시아의 미래를 넘어 세계의 미래를 바꾸는 더 대단한 사건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이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역사의 흐름을 보는 문화적 관점이 필요하다. 일찌기 하버드의 역사학자 그레이엄 엘리슨은 신흥강국과 기성강국간의 무력분쟁을 투키디데스의 함정이라고 불렀다. 투키디데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에 있었던 전쟁을 기술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기술한 사람으로 그레이엄 엘리슨은 점점 강해지는 신흥강국과 기성강국은 역사적으로 결국 부딪혀왔다는 것을 지적하고 불가피해 보이는 미국과 중국의 충돌을 경고하기 위해 이 말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비문화적 관점은 역사를 신흥강국과 기성강국간의 경쟁만으로 파악하게 만드는 오해를 만든다. 하지만 역사는 보다 다자적인 것일 수 있고 기성의 강자가 여러 후보들중 자신의 후계자를 선택하면서 진행되기도 한다. 물러나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래도 그것이 그나마 최선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절대 다음번 패권을 쥐게 할 수 없는 상대도 있다. 그런 상대를 억누르다보면 제 3자가 이득을 얻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그 상대는 절대 허용해 줄 수 없다.

 

좋은 예는 영국의 시대 이후 미국이 강자로 떠오른 역사다. 미국이 영국과 전쟁을 해서 세계 패권을 빼앗았는가? 전쟁은 오히려 영국과 독일 사이에서 있었다. 당시의 독일은 지금의 중국을 당시의 영국은 지금의 미국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미국도 결국 그 전쟁에 참전하기는 했지만 전쟁에 먼저 휘말려 든 것은, 그리고 괴멸적 피해를 입은 것은 영국과 독일이었다. 19세기에는 별볼일 없었던 미국은 두 번의 세계 대전동안 상대적인 이익을 봤고 미국에서 미래를 본 다수의 뛰어난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가서 미국의 패권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여기서 문화적 친화성과 보편성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영국은 독일과는 이질적인 문화를 가졌고 미국과는 문화적 동질성이 있었다. 심지어 지금도 영국은 유럽의 일부가 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대서양건너의 미국과 친밀하게 지내고 있다. 그리고 물론 미국과 독일의 차이를 넘어 자유민주주의의 미국과 나치의 독일은 문화적 보편성에서 더 큰 차이가 났다. 어떻게 말하면 영국은 독일과의 싸움을 통해 다음번 세계패권국은 미국이 되도록 만든 것이다. 왜냐면 미국중심의 세계에서는 영국이 비록 최고가 아니더라도 살아갈 방법이 있지만 나찌가 지배하는 독일중심의 세계에서는 전혀 그 길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쟁이 커지고 계속되면 어부지리를 얻게 될 것이 미국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것이 죽도록 싫었다면 반대로 독일에게 통큰 양보를 해서라도 미국이 패권국가가 되는 것만은 막아보겠다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영국이 택한 길이 아니었다. 

 

이 문화적 관점은 극동아시아에게는 더욱 중요하다. 문화적 간격은 미국과 유럽보다 미국과 극동아시아 사이에서 오히려 더 크다. 그리고 지난 20년이 아니라 20세기 후반부에서 지금까지의 세계 권력 구도를 한 줄로 정리해 보자면 그것은 미국의 패권과 극동아시아의 도전이라고 불러야 할 것이다. 이 시기 일본과 중국은 모두 세계 패권의 후보자로 여겨질 정도의 산업발전을 이룩했다. 

 

첫번째 도전자는 일본이었다. 미국이 1990년대 IT붐으로 다시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서기 전에는 한 때 세계 10대 회사중 8개가 일본회사였다고 한다. 그만큼 일본의 산업은 성공적이었다. 그때의 기세만 보면 IT붐은 일본에서 일어나고 구글이나 애플도 일본회사여야 할 것같다. 그리고 일본이 확실히 새로운 패권국가가 되었어야 할 것같다. 하지만 일본은 제대로 도전도 못하고 무너졌다. 일본은 플라자합의 이후 추락하고 산업이 무너진다. 그들이 자랑하던 반도체나 전자 산업 그리고 조선업의 우위는 한국으로 넘어왔다. 지금은 중국이 미국에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그다지 성공적이지는 못하다. 미중 분쟁이 거의 전쟁수준인 가운데 저정도 버티는 것도 대단하지만 과연 중국이 계속 버틸 수 있을까?  중국 이외에 누가 중국 중심의 세계를 꿈꾸는 가. 그들은 세계인들의 민심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세계는 그들에게 지도자의 자리를 넘기지 않을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실패는 그들 자신의 한계를 보여준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바로 문화적 이질감때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미국은 그들이 미국의 후계자가 되는 것을 결코 용납할 수가 없는 것이다. 사실 일본이나 중국은 한국의 입장에서도 믿음직하지 않다. 그들이 한국에게 경제보복을 하는 모습을 보라. 미국이라고 해서 천사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미국에는 그래도 절차라는 것이 있다. 법에 대한 존중이 있고 공식적으로 추구하는 문화적 이념적 명분이라는 것이 있다. 아니 그건 트럼프 이전이었으니까 있었다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설사 트럼프의 미국이라고 해도 아베의 일본이나 시진핑의 중국과 비교할 수는 없다. 적어도 미국에는 유의미한 정치적 견제라는 것이 있고 의미있는 선거가 있다고 우리는 믿지만 자민당의 일본이나 공산당의 중국은 그런게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문화를 주목해 보면 한가지가 명백하다. 이제까지의 미국에서는 존경할만하고 매력적인 아시아인의 이미지가 만들어진 적이 없었다. 미국에 흑인 차별이 있니 없니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같은 미국 문화물에서 단 한종류의 인종만 실종되다시피 하는데 그것이 바로 황인종이다. 이들은 결코 영웅이나 대통령으로 나오지 않는 거의 유일한 인종이다. 오직 개그 캐릭터나 악당으로나 나왔다. 이것은 황인종이 유럽인종을 해할 것이라는 황화론이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얼마나 뿌리깊은가를 보여준다. 일본과 중국의 부상은 그걸 오히려 강화했을 뿐이다.

 

이걸 뚫어낸 BTS나 봉준호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유럽에서 활약하는 축구선수 손흥민도 만약 그가 한국인이 아니었다면 훨씬 더 좋은 대접을 받았을거라는 말이 있다. 이런 황화론 덕분인지 미국에 비하면 한줌의 경제력만 가진 북한이 세계의 악의 중심으로 여겨지고 스스로 선진국이라고 자랑하던 일본인들도 미국문화내에서 그저 구경거리같은 존재로만 남아있었다. 일본인은 그저 칼이나 휘두르는 닌자나 사무라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아시아인 특히 아시아 남자에 대한 이미지는 지금보다 훨씬 좋았어야 할 것이다. 일본의 최전성기때에도 일본인들은 대개 경제동물들일 뿐이었다. 

 

한중일이 모여있는 극동 아시아는 이미 대단히 성장했고 지금도 어느 다른 지역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세계의 중심이다. 세계는 당연히 이 지역에 오고 싶어한다. 그들도 그 문화와 경제를 즐기고 같이 성장하고 싶어한다. 공장도 오고 지식인도 오고 기업도 오고 과학자도 오는 것이다. 그리고 물론 돈도 올 것이다. 후진국은 그 선진성때문에 선진국은 문화적 경제적 활력때문에 극동 아시아에 매력을 느낀다. 어떤 지역이 진취적으로 발전한다는데 그곳을 외면하면 손해기 때문이다. 그곳이 산업과 문화와 금융의 세계적 중심이 되버린다면 그곳을 외면하는 자신들은 시골에 고립된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문제는 일본도 그랬지만 중국도 세계와 특히 지금의 세계패권을 쥔 서구와 문화적으로 다르다는 데 있다. 황화론을 넘지 못한 것이다. 일본과 중국의 문화와 정치는 보편성이 떨어진다. 그들은 어떤 의미로 21세기의 나치 정권이다. 세계는 그들을 세계 질서의 중심으로 삼을 수가 없다. 그런 세계에서 그들이 지낼 장소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되면 피할 수 없는 미래는 미국과 중국의 정면충돌밖에는 없다.

 

이런 시기에 한류가 퍼지고 한국의 경제가 성장하는 것은 하나의 큰 돌파구가 된다. 예를 들어 몇달전에는 중국이 홍콩을 정치적으로 탄압한 일과 미국의 뉴욕타임즈 홍콩지사가 서울로 자리를 옮기기로 결정한 일이 화제가 되었다. 다시 말하지만 세계는 극동아시아에 오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들이 문화적이고 정치적인 문제를 느낄 때 그들은 극동아시아에 있으면서도 그들과 정치 문화적으로 공존할 수 있는 나라를 택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래서 홍콩에 있었는데 더이상 그들은 중국을 참을 수 없었고 이사갈 장소로 한국을 택한 것이다. 

 

어떤 의미로 일본과 중국의 이러한 문화적 정치적 무능이 한국을 키웠다. 한국의 반도체 산업은 플라자 합의 무렵의 미국과 일본이 충돌했을 때 한국이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다. 그전에는 일본이 세계반도체의 강자였다. 지금은 미국이 중국의 화웨이를 망하게 하자 다시 한국이 이익을 얻을거라고 말하고들 있다. 다른 분야에서도 같은 질문은 계속된다. 극동아시아의 인적교류와 물류중심이 될 허브공항은 한국의 공항인가 일본의 공항인가 아니면 중국의 공항인가. 극동아시아의 금융중심은 어디에 있어야 할까? 여기서도 정치 문화적 요소는 큰 힘을 발휘하게 된다. 왜냐면 경제적 정치적 문화적 갈등이 커질수록 그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로 중국과 일본은 황화론을 극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스스로 망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몰락은 한국에게 기회를 줬다. 일본은 한국을 억누르는 족쇄로 작용해 왔다. 일본의 존재를 유럽에 비교하면 이렇다. 세계 2차대전이 끝난 후 세계는 독일을 분단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를 분단한다. 그리고 미국은 프랑스의 분단은 외면한 채 나찌가 지배하는 독일과 친하게 지내면서 유럽을 독일을 통해서 이해하려고 든다. 어처구니 없는 가상 역사지만 동아시아에서는 실제로 존재하는 이 모순된 구도는 지난 70년간 지속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악효과가 누적되어왔다. 물론 오늘날 미국이나 유럽은 한국이나 중국과 직접 대화하지만 서구 사회에 극동 아시아 지역이 어떤 곳인가를 설명해 온 것은 일본이었다. 서양인들은 주로 일본의 눈으로 극동 아시아를 바라봐 왔고 조선을 한 때 식민지로 삼았던 일본의 시각이란 극동 아시아에서 유일한 문명국은 일본이며 중국은 물론 특히 한국은 미개하고 감정적인 나라였고 이것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다는 것이다. 일본이 보는 한국의 이미지가 뭘까? 세계가 삼성과 LG를 높게 평가하는 지금도 일본에는 한국 물건이라면 싸구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의 G7가입에 반대하는 유일한 나라도 일본이다. 

 

이렇게 만들어져 온 한국에 대한 오해와 극동아시아 지역 전체에 대한 문화적 이질감은 지금 빠르게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것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물론 한류지만 단순히 문화수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기업과 우리 경제 그리고 우리 정치와 우리 방역이, 나아가 우리 도시와 우리 농업이 세계로 뻣어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과 LG가 한국기업인 줄도 몰랐던 세계는 지금 한국을 재발견하고 있다. 중국이나 일본같은 거대한 나라들이 만들어 온 장막을 뚫고 한국은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상이 어느 정도 본격화되면 그 부상은 더 빨라질 것이다. 왜냐면 이제까지 그것은 한국을 억눌러온 족쇄가 풀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한류와 함께 비로소 아시아인을 재발견하고 있다. 비틀어진 일본과 중국의 관점에서 벗어나서 한국의 관점에서 이 지역을 다시 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치 문화가 서구에서 조차 존경할만한 것으로 널리 인정될 때 그래서 세계에 진정한 한류열풍이 불 때 한국의 부상은 단순히 한국이 조금 더 돈을 버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부상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힘의 질서를 다 바꿀만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그것은 서구가 아시아 지역을 한국을 중심으로 다시 이해하는 미래이며 황화론을 끝장내는 미래다. 그 미래에서 한국은 동아시아 지역이 세계와 통하는 진정한 창이 될 것이다. 세계는 한국을 통해 동아시아와 접촉하고 동아시아는 한국을 통해 세계와 접촉하는 것이다. 그 이유는 하나다. 문화적 거리와 신용 때문이다. 즉 한국은 세계를, 서구를 포용할 수 있는데 일본과 중국이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문화적 경제적 중심으로 떠오른 한국이 이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한국이 이런 일을 맡기에는 아직 힘이 부족하다. 하지만 그것이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위한 것이 될 때 세상은 그 부족함을 채워줄 지도 모른다. 사실 앞에서 말한대로 이미 그렇게 해왔다. 한국의 기적적 성장은 그것에 힘입은 것이다. 그리고 세상에는 한국에 부족한 그 힘을 만들어 낼 방법도 있다. 온갖 족쇄만 가진 한국은 또다른 족쇄로 성장을 제압당해 왔기 때문이다. 그 족쇄란 바로 북한이다. 상상해 보라. 무슨 통일같은 것이 아니더라도 남북한의 관계가 한국과 중국같은 것이기만 해서 자유왕래가 가능해진다면 세상은 얼마나 바뀔 것인가. 흔히들 남북통일을 독일통일과 비교하지만 서독은 한국만큼 동독때문에 제약받지 않았다. 한국은 북한때문에 그냥 섬인 것보다 훨씬 더 고립되어져 있는 상태다. 북한이 차라리 바다였다면 북쪽으로 배를 타고 왕래했을 것이다. 하지만 북쪽을 쳐다도 볼 수없는 것이 한국이다. 본래 대륙의 일부인 한국은 북한을 관통해서 만주와 몽고까지 이어질지도 모른다. 우리는 거기에 공장을 짓고 호텔을 짓고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다. 싼 연료와 물건을 수입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북한이라는 둑으로 막혀있던 한국의 성장이 그것을 넘어 인근에까지 차고 넘치기 시작할 때 한국의 국력은 지금과 비교될 수 없을 것이고 한국은 극동아시아의 질서를 지키는 한축으로 성장할 것이다. 

 

얼마전에 한국의 드라마 스위트홈이 미국 네플릭스 순위에서 3위를 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전에는 BTS가 빌보드에서 연거푸 1위를 한다는 소식이 있었고 한국의 비비고 만두가 세계적으로 무려 1조원이나 팔렸다는 말도 들었다. 그런 가운데 중국의 기업들은 미국 주식시장에서 상장폐지되는 일도 있었다. 물론 그래도 미래는 모른다. 그런 것들은 그저 작은 시작일 뿐이다. 그러나 그런 작디 작은 변화들은 한가지 커다란 미래의 시작일 수 있다. 바로 황화론을 뛰어넘고 동아시아가 세계를 이끌어가는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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