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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한국과 문화의 힘 그리고 생존의 문제

by 격암(강국진) 2020. 12. 28.

2020년은 한류의 힘이 크게 화제가 된 해였다. 이것은 물론 기쁜 일이지만 관점에 따라 우리의 성공은 충분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기회는 동시에 위기이기도 하다. 한국의 문화적 성장은 그저 잘되면 좋은 것이 아니다. 충분한 문화적 힘이 없을 때 한국은 조만간 생존의 문제에 부딪힐 수도 있다. 한국은 이제 진짜 선진국이 되던가 아니면 몰락을 해야 한다. 성장하지 못하면 현상유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기 시작할 것이다. 그것이 2020년에 한국이 처한 현실이다. 왜 그런가. 우리는 이 이야기를 미국과 중국에서 시작하고 나중에 일본과 중국을 옆에 둔 한국의 입장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전개할 수 있을 것이다. 

 

일찌기 2002년에 조지프 나이는 그의 책 제국의 패러독스에서 하드 파워와 소프트 파워를 소개했다. 여기서 말하는 하드 파워는 경제력과 군사력같은 것이고 소프트 파워는 교육, 학문, 문화등에서 나오는 힘을 말한다. 조지프 나이는 미국이 비록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가장 큰 하드파워를 가졌지만 소프트 파워를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 글의 핵심적 메세지는 소프트 파워의 전쟁도 하드 파워 전쟁 이상으로 살고 죽는 문제가 될 수 있으며 특히 거대 강대국에 둘러싸인 한국에게 그렇다는 것이다. 

 

소프트 파워를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은 강대국의 힘은 상당부분 그 개방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는다. 이것은 이미 로마 제국의 시대에도 그랬다. 로마의 성장도 그 개방성때문이었다. 정복당한 땅의 사람이 얼마지나지 않아 로마의 최고지도자가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이 로마였던 것이다. 단순히 힘으로 정복하는 것은 한계가 지극히 크다. 진정한 국가의 성장은 법치에 기반한 개방성에서 나온다. 즉 법률과 규칙을 지키는 한 사람들은 자유를 누리며 심지어 외부의 사람들도 그 국가의 일부가 되는 길도 열려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오늘날처럼 강대국이 된 것도 미국이 이민자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역량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인이건 아일랜드인이건 독일인이건 미국에서는 미국의 꿈을 꿀 수 있었다. 그것이 미국의 힘을 키웠다. 그렇기 때문에 수 많은 유럽의 인재들이 미국으로 이주했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소프트 파워란 어떤 국가가 성장하고 나서 증가하는 성장의 결과물이기도 하지만 그 이상으로 국가가 성장하기 위한 전제조건일 수 있다. 즉 소프트 파워가 있어야 진정한 강대국이 될 수 있고 소프트파워가 한 나라의 성장의 한계를 결정하게 된다.

 

소프트 파워가 없이 우리는 스스로 망하는 길로 간다. 그런 예는 많다. 좋은 예들은 옆나라 일본과 중국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소프트파워는 이념의 문제를 포함한다. 지금 한반도가 왜 분열되어 있는가. 가장 큰 문제가 이념의 문제가 아닌가.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공산주의를 포용할 수 있는 소프트파워가 남한에 없기 때문에 한반도가 분열되어 있는 것으로도 말할 수 있다. 덕분에 세계최고가 될 잠재력을 가지고도 스스로 비참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남북통일 경제권이 인구 1억의 규모로 커진다면 세계 어느 나라가 한국을 무시할 것인가. 한국이 중국, 러시아, 유럽으로 직접 연결되는 시대에 누가 한국의 존재감을 실감하지 못할 것인가. 그런데 왜 북한은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이 갈 수 없는 나라로 남아 있는가. 정작 정전선언도 거부하는 미국의 시민들도 관광가는 북한인데 말이다. 

 

강대국의 힘이 법치에 기반한 개방성에서 나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법만능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흔히 세상의 모든 문제를 법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만 사실 복잡한 법시스템은 체제의 실패다. 세상의 모든 문제가 법률로 해결될 수는 없으며 법시스템은 윤리와 가치 시스템이 그 기반에 존재 해야 제대로 작동한다. 예를 들어 점심을 굶는 아이가 있다고 하자. 그런 아이에게 점심을 주는 법을 만드는 것은 반드시 이 상황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그 이전에 굶는 아이는 돌봐준다는 윤리와 가치가 존재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이 없어도 그런 아이를 두고 보지 않는 친구와 어른들이 존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내가 이런 법에 반대한다고 이해하는 것은 오해다. 다만 법은 언제나 효율적이지 않고 역효과가 있을 때도 있다는 것을 잊고 모든 문제를 법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 세상은 실패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법만능주의는 법이 즉 국가가 해결할 것이니 나의 책임은 없다는 식의 윤리적 타락도 만든다는 걸 기억할 필요도 있다. 법과 개혁은 반드시 필요한 곳에서만 작동해야 한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나머지 문제는 윤리와 가치의 영역에 속해야 한다. 

 

그러므로 강대국의 개방성과 법치는 소프트 파워에 대한 자신감 혹은 문화적 자신감에 기초할 수 밖에 없다. 미국이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했을 때 미국은 스스로의 소프트 파워를 과대평가했다. 미국은 비록 땅이 넓고 인구가 많은 중국이라도 그들과 소통했을 때 미국은 위협받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아마 그들은 공산당 독재같은 것은 필연적으로 무너질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중국인들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을 사랑하게 될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미국적 가치관에서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현재의 중국 독재 통치를 참지 못할 거라고 이해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미국은 천안문사태가 벌어지던 그 시절쯤에 중국은 분열되고 힘을 잃을 거라고 생각했지 지금처럼 공산당 독재를 하면서도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될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중국이 지금처럼 거대해진 상황에서도 하나의 나라를 유지하는 것은 하드 파워이상으로 분명 그 대단한 소프트 파워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입장에서 중국인들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해서 그 힘을 과소평가할 수는 없다. 확실히 수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기반으로 한 그 사회적 구심력은 대단하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적으로 중국에 대한 혐오가 증가하는 것은 중국의 소프트 파워의 한계를 보여주는 일이고 미중 분쟁의 결과를 결정지을 결정적인 문제다. 

 

우리는 미국의 소프트 파워가 오늘날 그 한계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한 예는 한국과도 연관이 있다. 최근 미국 자본으로 미국에서 미국감독이 찍은 영화 미나리가 골든그로브측에 의해 작품상 후보가 아니라 외국어영화상 후보가 되어서 화제가 되고 있다. 이 문제는 동양인 이민자는 진정한 미국인이 아니다라는 인종적 문화적 차별이 아닐까? 만약 이 영화가 스페인어를 많이 쓰는 영화였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타란티노감독의 영화에 그런 예가 있다. 미나리는 미국에 정착한 한국계 이민자의 이야기다. 하지만 이탈리아 마피아의 영화인 원스 어폰어 타임 인 어메리카도 이탈리아 이민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럼 이 영화도 이탈리아 영화란 말인가?

 

엄청난 개방성을 가진 것같았던 미국이지만 결국 미국은 미국이 백인의 국가라던가 영어를 쓰는 기독교인들의 국가라는 국가적 정체성의 문제때문에 고통받고 있다. 당연히 이런 말은 공식적으로 법에 정해진 것이 아니다. 지금 미국이 보여주는 폐쇄성은 결국 미국이 스스로 자신의 소프트 파워가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의 포용과 성장이 불가능하며 쇠락만이 남았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의 개방성이 한계를 보이는 지점에서 미국의 인재들은 유출될 것이다.

 

반면 봉준호가 아카데미에서 한국어 작품으로 작품상을 받은 것은 미국 문화의 위대함을 말해주는 것이다. 즉 미국은 다시 한번 한국을 포용할 만큼 큰 소프트 파워를 가졌다는 것을 증명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성장과 독주가 미래에도 계속될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질 것이다. 미국은 중국처럼 한국은 본래 중국의 일부라던가, 김치나 한복은 본래 중국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한국은 한국이라고 말하면서도 한국을 인정할 만큼 그들은 자신의 소프트 파워에 자신감이있다. 

 

지금 일본과 중국쪽에서 한국에게 견제가 들어온다는 말을 우리는 많이 듣는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한국의 성장이 일본과 중국에게 위협이 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그들이 한국 문화를 금지하거나 견제하고 폄하하려고 하는 것은 상당부분 한국이 군사독재시절에 문화를 검렬하던 것을 연상시킨다. 지금의 세계에서는 미국과 일본 파워의 약화와 중국과 한국의 성장때문에 권력의 지진이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세계 모든 국가에게 기회이자 도전이 될 것이다.

 

지금 일본과 중국에게는 한국 문화를 삼키고 소화해 낼 과제가 주어졌다. 한국 문화때문에 일본과 중국이 망할 것같은 위기가 생겼다고 말하는 것은 물론 과장이지만 이 과제가 그들에게 사소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도 옳지 않다. 한국의 성장은 그들에게는 상당한 위협이다. 일본과 중국은 링컨과 케네디는 두려워 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미국 문화에 어느 정도 면역을 가지며 소프트 파워 전쟁에 임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이 김대중과 노무현에도 그렇게 자신만만할까? 그들이 정말 택시운전사, 변호인 그리고 1987같은 영화에도 담담할 수 있을까? 일본과 중국에게는 미국문화 이상으로 한국 문화가 치명적일 수 있다. 

 

사실 일본과 중국은 소프트 파워 전쟁에서 패배하고 있고 여유를 잃었다. 그래서 그들은 그걸 군사 경제문제로 즉 하드 파워의 문제로 바꾸려고 한다. 작년에 있었던 일본의 한국에 대한 경제제재는 경제문제이지만 실은 그 이전에 역사의 문제다. 돈으로만 치면 몇명 남지도 않은 징용공에 대한 피해보상을 하는게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일본은 경제와 정치를 구분한다는 원칙을 허물고 경제전쟁을 시작해 버린다. 그로인한 피해가 터무니 없어졌다. 얼마전에 중국은 쓸데없이 BTS를 한국전쟁과 연결시켜서 비판했다. 그 이전에는 아예 한한령으로 한국에게 부당한 일방적 경제제재를 가했다. 그런 일로 늘어나는 것은 중국에 대한 반감뿐이다. 미국과 싸운다면서 한국을 적으로 만들어서 좋을 게 없다. 그런데 왜 그런 어리석은 일을 할까? 그들은 결국 소프트 파워가 부족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사방에 적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소프트 파워 전쟁이라고 말은 했지만 이 전쟁의 결판은 우리가 더 많은 앨범을 팔거나 더 많은 영화를 파는 것이 아니라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가, 어느 쪽이 어느 쪽을 합리적이라고 납득하는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즉 일본 대중이나 중국 대중이 한국을 좋아하고 그들의 정부가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이긴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런 일은 불가능하지 않고 흔하게 일어난다. 사실 한국 내부에서도 현 정부를 싫어하고 지극히 일본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보수지지 성향의 시민들이 상당히 있다. 반정부 시위에 성조기는 물론 이스라엘 국기나 일본기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외국 소프트 파워의 희생자들이다. 그들은 우리 정부가 잘못한다고 생각하고 우리 정부가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펼치려고 때로는 감탄이 나올 정도의 열정을 보낸다. 식민지로 지배받았던 나라에서 반일종족주의같은 책을 집필하고 그 책을 베스트셀러로까지 만드는 일은 우리나라가 얼마나 일본 소프트 파워에 크게 점령당해 있는가를 보여준다. 

 

한국은 부자가 될 것이다. 군사적으로도 강해질 것이다. 즉 한국의 하드 파워는 커질 것이다. 하지만 한국의 생존에 있어서 소프트 파워는 하드파워 이상으로 중요하다. 소프트 파워의 문제를 하드 파워의 문제로 바꿔서 싸우는 것은 한국으로서는 선택할 수도 없는 전략이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애초에 현명한 선택이 되지 못한다. 적을 만들 뿐이다. 거대한 강대국들이 한반도를 둘러 싸고 있고 우리는 당분간 그들을 하드 파워로 이기기 불가능하다. 우리가 살길은 소프트파워뿐이다. 

 

이제까지의 한국은 어떤 의미로 껍질속에 숨어있었다. 그리고 이제 한국은 그 껍질을 깨고 더 성장해서 제대로 된 선진국중의 하나가 되려고 한다. 그런데 껍질은 우리를 보호하는 역할도 하고 있었다. 우리의 소프트 파워가 강대국에 걸맞지 않을 때 우리를 성장시키기 위한 개방은 재난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물론 그것은 성장을 위한 기회이기도 하다. 한일문화개방이 오늘날의 한류열풍을 만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소프트 파워의 문제는 분명 돈과 연관이 되어 있지만 긴 안목이 필요하다. 짧은 안목으로 돈을 쫒으면 우리는 이 돈과 명분을 모두 잃게 된다. 중국의 한한령이 이것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성장하면 중국의 자본과 인력이 한반도에 밀려 오게 된다. 중국의 것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미국의 자본과 인력도 더 들어온다. 그리고 우리가 중국과 미국을 한국화하려고 하듯 중국과 미국은 우리를 중국화하고 미국화하려고 한다. 이전보다 더 강력하게 말이다. 일단 한국이 선진국이 되겠다고 개방성을 높이고 성장의 잠재력을 보인다면 그 결과 외국으로부터의 도전은 더 심해 질 수 밖에 없다. 그 상황에서 한국이 제대로 문화적 저력을 보여준다면 한국은 크게 성장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다면 한국은 제자리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기회가 곧 위기다. 한국은 지금 큰 기회앞에 있다. 다시 말해 이것은 큰 위기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선진국 근처까지 갔다가 지금 비참하게 사는 나라는 많이 있다. 

 

아무리 잘해도 충분한 것은 없겠지만 한국은 잘하고 있다. 한국은 세계 보편 중의 당당한 일부로 나아가고 있다. 더이상 존재감없는 변방의 작은 나라가 아니다. 하지만 위기감이 없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소프트 파워 전쟁에 대한 이해가 없는 것도 곤란하다. 이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다. 돈 이상의 문제고 중국이나 일본같은 나라가 바로 옆에 있는 상황에서 정말 생존의 문제다. 우리의 윤리나 정치는 더더욱 많이 외세에 의해 교란될 것이다. 우리가 돈에 대해서 잊어버릴 수록 우리는 부자가 될 것이다. 소프트 파워는 결국 돈을 만든다. 하지만 소프트 파워는 윤리와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우리는 부자나라의 시민이 아니라 의로운 나라의 시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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