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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한국인처럼 살기

by 격암(강국진) 2020. 12. 30.

한국인처럼 산다는 것이 뭘까?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체계적인 한국학이다. 한국학이란 한국인처럼 산다는 것이 뭔지에 대한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정리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한 개인의 체험의 한계를 극복해서 한국인처럼 산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두번째는 이보다 더욱 중요하다. 그것은 한국문화와 외국 문화의 접촉이 많이 일어나서 대대적으로 데이터가 생산되는 일이다. 타인을 모르면 나를 알 수 없다. 한국인이 한국만 들여본다고 한국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데이터가 거의 없다면 그 데이터를 모아서 연구를 한다고 해도 핵심은 빠지기 쉽다. 그래서 지금처럼 한국 문화가 외국에 많이 수출되고 그것이 외국인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때가 와야 우리는 비로소 한국인처럼 산다는 것이 뭔지에 대해 제대로 알게 되기 시작한다. 이 말은 뒤집어 보면 세계는 물론 한국인들조차 이제까지 한국인처럼 산다는 것이 뭔지를 잘 몰랐다는 말이다.  최근 한국 문화의 인기때문에 이제는 외국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많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이 다시 인터넷을 통해 빠르게 정리되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즉 우리는 바로 지금 이순간 한국을 세계인들과 함께 발견하고 있다. 지금은 한국학의 황금기가 시작되는 때이다. 

 

그래서 한국인처럼 산다는 것이란 무엇일까? 그걸 여기서 몇줄의 글로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이제 우리는 중요한 몇가지를 나열할 수 있다. 그것들은 워낙 한국인에게는 당연한 것이라 얼핏보면 대단한 영향이 없는 것같지만 실은 아주 큰 의미를 가진 것이다. 

 

첫째는 집이다. 한국 문화의 핵심중의 하나는 바로 온돌이다. 온돌은 바닥난방이고 바닥이 따듯하기 때문에 우리는 실내에서는 신발을 신지 않는 좌식 생활을 한다. 서양식 가구들이 들어오고 난 후에도 여전히 한국인들은 걸핏하면 바닥에 들어눕고 티비가 있는 거실에서 화려한 소파의 앞 바닥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티비를 보는 일이 흔하다. 한국인들은 따스한 온돌 바닥에 등을 지지는 즐거움을 일찍부터 알았기 때문에 서양식 생활이 그걸 어느 정도 망치게 되자 이번에는 찜질방이라는 문화를 발달 시켰다. 찜질방에 가서 따스한 바닥과 공기를 즐기며 하루를 보내는 경험은 우리가 좌식생활을 어느 정도 포기하고 서양식 생활과 좌식생활을 혼합시켰기 때문에 희석되고만 한국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이 찜질방이 미국에도 성공적으로 수출되어 미국인들에게도 인기가 좋다고 한다.

 

온돌은 단순히 바닥이 따스하다라는 것을 의미하는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한국인의 윤리 전반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다. 상황이 분리를 허용치 않을 때 윤리는 바뀐다. 여름 해변에서 속옷이나 다름없는 노출심한 옷을 입고서 남녀가 어울려 물놀이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은 상황상 그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작은 집을 여러칸 짓는 것을 허용하는 온돌기술은 한국 가족윤리의 근원이다. 온돌은 연료를 방의 바깥에서 태우는 것이기 때문에 작은 온돌방을 여러칸 지을 수 있다. 실제로 한옥은 종종 각각의 아궁이를 따로 가진 작은 온돌방들이 마루로 연결된 구조를 가진다. 외국처럼 집안에서 불을 때는 식이면 방이 작으면 호흡문제가 있다. 따라서 엄청난 부자가 아니라서 큰 집을 여러채 지을 수 없으면 남자고 여자고, 부모고 자식이고 모두 어울려 먹고 자는 생활을 해야 한다. 이것이 우리의 삶 전체에 큰 영향을 주게 된다. 

 

물론 오늘날은 온돌이 아니라도 난방기술이 나름 발달해서 외국이라고 해서 개인 프라이버시를 무시하고 살지 않는다. 특히 부자나라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문화는 연속성이 크다. 그래서 여전히 외국에서 바닥난방은 신기하고 비싼 것이며 사람들은 신발을 신고 집안에서 살고 침대는 필수다. 그들은 한국드라마를 보면서 맨발이나 흰양말 신은 발로 집안을 돌아다니는 한국인들을 보며 믿을 수 없어 한다. 바닥난방은 지금 세계로 보편화되어가고 있다. 한류가 강해지면 아마 그 인기는 지금보다 훨씬 더 높아질 것이다. 나는 온돌이 보편화될 때 그것은 생각보다 훨씬 큰 변화를 일으킬 것이며 세계인들이 한국인처럼 살게 되는 현상을 만들어 낼 거라고 생각한다. 온돌때문에 단순히 바닥난방뿐만 아니라 그들의 집 모양자체가 바뀔 수 있고 한국에서 있었던 것처럼 그들의 삶도 바뀔 수 있다. 이제까지 서구화되어왔던 한국이지만 이제 세계가 한국화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옥과 한국의 아파트는 주목을 받을 것이다.

 

둘째는 언어다. 언어는 한 문화의 핵심을 포함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한국어를 말할 때 우리는 물론 한글의 의미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한글덕분에 한국은 유달리 문맹률이 낮은 나라가 되었다. 미국영화를 보면 스펠링 대회가 종종 나온다. 즉 영어를 날 때부터 하는 미국인들도 영어 철자를 대회를 열어서 해야 할 정도로 알파벳과 영어는 그 표기가 애매한 곳이 있다. 한글은 그런게 없어서 한국에서 맞춤법은 상대적으로 아주 사소한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중국어나 일본어와는 달리 디지털 시대에도 한글은 적합한 글자다. 이때문에 한국에서 IT 산업이 빨리 발달했다는 주장도 있다. 

 

한글의 위대함은 아주 자주 강조되지만 사실 그 위대함은 이제 겨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한글에 비해 한국어 자체는 어렵기만 하고 그다지 대단한 것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한다. 확실히 한국어는 서양문명이 계속 발달시켜온 영어같은 언어에 비해 개선할 점이 있다. 특히 개념이 좀 어려워지면 알고보면 다 일본에서 만든 한자기반의 말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물리학책이나 의학책 같은 걸 한국어로 번역해 놓은 것을 보면 때로 처참할 정도로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한국어에도 뛰어난 점이 많다. 그리고 한글의 사용덕분에 단점은 줄어들고 빠르게 장점은 늘어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어는 의성어, 의태어가 잘 발달되고 뭔가를 묘사하는 일이 효과적인 언어다. 얼마전에 BTS의 노래말중에 소복소복이라는 단어가 나온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런 단어를 영어로 번역하려면 아주 어렵다. 일본어는 한자를 버리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동음이의어가 한국어보다 훨씬 많다. 중국어도 한자에 기반한 언어이므로 한글에 기반하여 발전하고 있는 한국어에 비해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앞에서 말한 소복소복같은 다양한 표현들이 쓰일 수 있는 것은 그것이 한자 기반 문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자를 조합해서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가는 것에는 당연히 한계가 더 크다.

 

한국어는 지금 이순간에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누군가가 한국어로 글을 쓰고 말하면 그게 다 한국어의 발전에 조금씩 기여하는 것이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어떤 어려운 것을 평이한 한국어로 설명하게 된다면 그게 한국어를 어느 정도 더 완성시키는 것이다. 세계인들이 한글을 배우고 한국어를 하게 되는 것은 세계가 한국인처럼 살기 시작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한 단계다. 그들이 한국인에게 정이 뭔지, 한이 뭔지, 애교가 뭐고, 효자가 뭔지 알게 되는 날 그들은 한국인처럼 산다는 것이 뭔지를 더 잘알게 될 것이다. 

 

세째는 음식이다. 한류라고 하면 음악이나 드라마를 생각하지만 사실 외국에서는 이미 한국문화라고 하면 한식을 떠올리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한국인처럼 먹고 마시는 것은 분명히 한국인처럼 사는 것의 핵심 중 하나다. 지금 처럼 한류가 인기가 있기 전인 30년전에도 나는 한국음식이야 말로 한국 문화의 핵심이라고 말하는 재미교포를 만난 적이 있다. 한국인처럼 먹고 마시는 것은 바로 한국인의 문화적 정체성을 지켜온 힘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일제 식민지까지 겪었지만 우리 식문화를 보존했다. 이는 한국 문화의 뛰어남을 보여주는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문화가 이렇게 뛰어나기에 한국은 일본에게 동화되지 않고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한국적 식문화의 핵심은 건강에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한식이 건강에 좋은 음식이라고 소개된다는데 이런 소개에 한국인들은 당황할지 모르지만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나는 한국 사람처럼 '몸에 좋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민족을 이제까지 본 적이 없다. 맛있다라는 말은 외국인들도 많이 한다. 프랑스나 중국이나 이탈리아처럼 음식으로 유명한 나라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 이야기는 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인은 맛과 더불어 꼭 몸에 좋다는 말을 한다. 맛이 없으면 안되지만 몸에 좋은게 오히려 더 중요하다. 많은 외국인들은 보약같은 개념을 잘 이해못한다. 

 

한국인에게 먹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것이라서 전통적으로 밥한그릇에 김치 한접시로 밥을 먹는 사람은 매우 불쌍한 것으로 여긴다. 요즘도 국도 없이 식사를 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고 최소한 몇가지 반찬을 죽 늘어놓고 골고루 먹지 않으면 안된다는 잔소리를 한국 사람은 습관적으로 한다. 외국인들은 때로 한국 드라마를 보고 한국 식탁을 믿을 수 없어 한다. 물론 이것은 그들이 한국 반찬이란 대개 대량으로 해서 냉장고에 저장해두었다가 꺼내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기에 하는 말이지만 한국인들은 식사를 할 때 보면 그 앞에 늘어 놓은 음식의 종류가 그들 기준으로는 말도 안되게 많기 때문이다. 그걸 끼니마다 다 언제 요리해서 먹냐는 것이다. 

 

한국치킨은 지금 세계적 인기다. 한국의 불고기와 한국식 바베큐도 세계적 인기다. 하지만 한국 음식의 진짜 특징은 야채에 있다. 한국인은 온갖 종류의 채소를 다양한 방식으로 먹는다. 물론 여러가지 김치들이 대표적이지만 나물도 종류가 많고 찌개에도 야채를 넣는다. 비빔밥은 몇가지 요소만 빼면 훌룡한 채식주의자의 요리다. 물론 절에서 먹는 음식도 채식이다. 한국 음식의 기본인 장도 결국 콩으로 만든 것이다. 이때문에 한국음식은 외국의 채식주의자들에게 주목받는다고 한다. 불쌍하게 샐러드나 먹던 채식주의자들이 한국의 비빔밥을 먹어보고는 자신들이 불쌍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는다는 것이다. 다량의 채소를 먹는 것이 물론 몸에도 좋을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식문화를 몇줄에 정리할 수는 없지만 한국의 식문화는 각별하다. 한국인이 먹고 마시는데 진심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식당이 얼마나 많은가. 외국인들이 한국의 밤문화를 경험하고 그들의 삶이 매우 따분한 것이었다는 것을 자각했다는 말도 있다. 한국인처럼 산다는 것에서 한국인처럼 먹고 마시는 것은 아주 중요한 한 부분이다. 그리고 한국인은 이제서야 한국인처럼 먹고 마시는 것이 당연한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기 시작하는 중이다. 

 

네째는 역사다. 역사야 어느 나라나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역사는 특이하다. 우리가 만약 가난한 후진국으로 끝내 망해 버렸다면 그 특이함이 빛을 발하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언젠가 당당하게 자립하는 날이 오면 한국 역사의 특이함은 한국인처럼 사는 것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한국인처럼 산다는 것은 그런 과거의 연장선상에서 스스로를 파악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다.

 

한국역사의 첫번째 특징은 길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외국에는 족보가 없다. 누군가의 37대손같은 말은 외국에서는 믿기 힘든 말이다. 미국에서 살아보고 나는 처음으로 산마다 골짜기마다 이야기가 넘쳐나고 음식이 있는 땅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개인과 가족의 역사만 긴게 아니다. 나라의 역사도 외국은 그다지 길지 않다. 사실 한국은 왕조의 길이 자체가 유난히 길어서 조선만 해도 이미 5백년이다. 왕건이 고려를 세운 때가 천년전이다. 그 천년동안 유럽과 중국에서는 수없이 많은 전쟁이 있었고 나라가 나타났다 사라졌고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서유럽의 국민의식을 만들어 낸 백년전쟁은 영국과 프랑스의 영주들간의 전쟁으로 1337년에서 1453년까지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 끝에 유명한 잔다르크가 나타나고 이 전쟁 이후 영국이나 프랑스의 개념이 보다 확실해 졌다고 한다. 이 시기는 1347년부터 시작되어 유럽에서 2천만명을 죽인 흑사병의 시기와도 겹친다. 우리가 고려 5백년을 살고 1392년부터 다시 오백년이 지속되는 조선을 시작시켰던 것을 생각하면 한반도가 천국은 아니라고 해도 다른 나라는 태평성대였는데 전쟁과 질병으로 한반도만 고생했던것과는 거리가 멀다. 또한 한 민족이고 한 나라의 사람이라는 개념을 가진 것의 길이를 보자면 우리가 서양보다 더 길다. 잘난체하는 중국도 마찬가지다. 지금 중국의 몸통을 차지하는 한족은 불과 몇백년전인 청나라때만 해도 인간취급못받는 하층민이었다. 징기스칸을 중국인으로 파악하는 중국의 개념은 아주 현대적인 발명이다. 

 

선진국이 된 한국은 제국주의를 거치지 않고 선진국에 도달한 유일무이한 나라가 될 것이다. 다른 외국인들은 대개 그들의 조상들이 어떻게 전쟁을 잘해서 영토를 넓혀 나갔나, 그들의 군대는 얼마나 강력했나를 자랑하는 데 익숙하다. 다시 말해 그들의 영광은 그들이 정복왕의 후손이라는 것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역사란 거의 다가 누가 누구를 힘으로 정복했고 누가 무력으로 나라를 통일했나에 대한 것이다. 미국은 외부 식민지가 그다지 없었지만 내부적으로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학살하는것을 개척이라고 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세상의 문화적 중심이 서구에 있는 세상에서 한국인들도 애써 광개토대왕같은 사람을 소환해서 비슷한 자랑을 해보려고도 하지만 사실 한국의 역사에 위대한 정복왕따위는 거의 없다. 한국의 역사는 침략하는 역사가 아니라 주로 침략에 맞서 싸운 국난극복의 역사다. 제국주의적 역사관 속에서 한국인들은 때로 이것을 부끄럽게 여길 때도있다.

 

하지만 그 귀족과 왕의 영광된 역사 뒤에는 오랜간 전란에 시달린 일반인들이 있고 강력한 제국이 없으면 무질서가 시민들의 삶을 더욱 더 극악한 수준으로 떨어뜨린다는 가정이 있다. 말하자면 다른 나라를 침략하지 않고도 오래 존재하는 고려나 조선같은 나라는 세상에 있을리가 없다는 가정이 있는 것이다. 생각하면 기묘한 일이다. 우리는 이미 21세기를 살고 있다. 지금 세상에서 군대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여 영토를 넓히면 칭찬받아 마땅한 위대한 지도자라고 말하나? 나는 살인범이 아니지만 우리 조상이 통쾌하게 살인을 했던 것은 위대한 일이라고 정당화하는가? 

 

이는 아직까지 이 세계가 서구 중심적이며 문화로 세계를 통일한 나라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민주주의의 역사는 짧다. 이 역사에서 미국과 프랑스는 18세기 말의 미국독립전쟁과 프랑스혁명을 자랑하지만 한국이 성공하고 그 역사가 제대로 알려지게 된다면 한국의 역사가 주목받을 것이다. 프랑스가 제대로 나라로 서기도 전에 15세기의 세종대왕은 민중을 위해 한글을 만들고 관청의 계집종이 애를 낳고 7일간 쉬는 것은 너무 짧으니 백일간 휴가를 주라고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도 한국의 것이고 아직도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이 조선왕조실록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게 뭔지 알면 외국인들은 한국의 역사를 다시 볼 것이다. 오늘날의 대통령도 사관이 쫒아다니며 행적을 기록하는 것을 허락하지 못하니까 말이다. 과거가 이러하므로 한국이 민주주의 국가로 세계적인 성공을 하고 나면 그 과거를 보건데 이건 당연한 일이라고 하지 않겠는가.  

 

역사가 현재가 과거와 대화를 나눈 결과인 것처럼 한국인처럼 산다는 것도 그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한국의 경제적 문화적 성장속에서 우리는 그걸 발견하게 된다. 일단 발견하고 나서 보면 한국인처럼 산다는 것은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이었으며 지금의 한국의 성공은 그것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알고보니 성공은 운명이었던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은 한국학의 황금시대가 시작되는 때이며 우리와 세계가 한국을 발견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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