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문화의 보편성과 미래 한국

by 격암(강국진) 2021. 1. 9.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정치, 가치관 전반에 걸쳐서 서구문화는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공산주의건 자유민주주의건 지금 세계에 널리 퍼진 정치 이데올로기들은 대개 서구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금의 세계는 서구 문화가 크게 발전시켜 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뒤집어 말해서 지금의 세계는 서구 문화가 실패하고 남긴 결과물이기도 하다. 인류 모두에게 보편적이라고 주장되던 서구 문화는 사실상 미국과 유럽을 제외하고는 거의 어디서도 온전히 성공한 적이 없는 것같다. 이제까지 서구권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선진국이라고 여겨지던 일본도 그 안을 들여다 보면 제대로 보편성을 가진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고 하기 어렵다.

 

문화의 보편성이란 그 문화가 널리 공감을 받을 수 있고 여러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뉴튼 물리학이 영국이나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똑같이 작동하는 것처럼 말이다. 일본이 한때 엄청나게 기세가 좋았지만 30년 불황에 빠진 이유중의 하나는 일본의 문화에 이같은 보편성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는 극도로 발전하고 영향력이 커진 일본과 공존할 수 있을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미국 기업은 일본 기업의 성공비결을 배울 수 없었고 일본이 미국이 해온 것처럼 인류에게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비전국가가 될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사실 일본의 정신은 패전후 억지로 서구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봉건제에서 그리 멀리 나와있지 않다. 일본의 정치적 리더들은 여전히 메이지 유신때 집권한 세력의 후신들이며 2차세계대전의 전범들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미래를 위한 정치로 나아가 본 적이 없다.

 

이 문제는 지금의 중국도 겪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제국주의적이고 후진적 문화는 보편성이 없으며 따라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져갈 수록 세계의 고민은 깊어가고 있다. 세계는 일본에 이어 다시 한번 발전하고 영향력이 커진 중국과 공존할 수 있을 것을 믿기 힘들어 진 것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중국이 쉽게 고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중국은 내부적 안정을 위해 팽창을 추구하고 민족주의를 추구한다. 그것이 멈추면 내부적인 반성이 일어나게 될텐데 지금의 중국은 그것을 견딜 수 없을 것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가 더 잘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다른 나라들때문이라고 말하면서 세상과 불화하게 되는 것이다. 

 

서구의 문화는 결국 세계를 그다지 많이 바꾸지는 못했다. 게다가 그것은 이처럼 공간적으로 보편적이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보편적이지 않았다. 즉 그것은 설사 과거에는 통했을지 몰라도 심지어 서구에서조차 이제는 낡은 것이 되어서 서구 사회의 판단은 이제 더 이상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코로나로 인해 알게 된 서구 사회의 진짜 얼굴은 한국에게 충격을 준다. 어제만 해도 대선에 불복하는 미국 시민들이 미국의회에 난입하고 그 과정에서 사람도 죽어서 세계적인 충격을 줬다. 영국이며 프랑스같은 서구 사회의 정치현실을 봐도 그것에 비록 여전히 존중할만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냥 이대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예를 들어 코로나대처는 둘째치고 치안을 보라. 좀도둑과 강도를 걱정해서 밤거리를 돌아다니지 못하는 것이 많은 서구의 현실이다. 그게 한국이 본받아야 할 국가의 모습일까? 한때 제레미 리프킨은 유러피안 드림을 통해 유럽이 새로운 미래를 제시해 줄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오늘날의 유럽은 그렇게까지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기서 우리는 문화란 것에 대해 잠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통상 문화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 특수성에 대해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까 한국 문화나 미국 문화라고하면 그것은 마치 철수의 얼굴에는 큰 점이 있다라는 특징처럼 한국이나 미국의 특징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표면적 특징과 차이에 주목해서 문화를 이해할 때 문화가 퍼지는 것은 제국주의적 침략처럼 이해되게 된다. 즉 미국 문화가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미국 사람같아지는 것이고 한국 문화가 퍼지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한국 사람처럼 살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를 지키려면 이래서는 안되지 않는가? 그러니 우리는 자연히 문화적으로 폐쇄적이 되기 쉽다. 중국과 일본에서 한국 문화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문화의 보편적 측면에 대해 생각해 보면 이야기는 상당히 달라지게 된다. 문화란 어떤 의미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기술이고 기계다. 그래서 나는 종종 문화나 언어는 인공지능같은 것이라고 봐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천연의 인간은 침팬지보다 그리 뛰어나지 않다. 그러나 인간이 일단 문자같은 기록의 미디어를 통해서 누적시키고 발전시킨 언어나 문화를 탑재하고 나면 인간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인간은 이미 사이보그다. 자연 그대로의 인간은 마치 윈도우가 깔리지 않아서 작동하지 않는 피씨나 다름없다. 침팬지의 무리처럼 겨우 한가족끼리만 협동할 수 있다. 하지만 문명화된 인간은 거대한 공동체를 만들어 불가사의하다고 할 정도의 대단한 힘을 보여준다. 

 

이런 문화의 보편적 측면과 서구 문화의 시간적 공간적 비보편성에 주목하게 되면 우리는 한가지 결론에 이르르게 된다. 그것은 바로 21세기의 인류는 새로운 문화적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은 서구 문화의 한계를 넘어 공간적으로 더 보편적일 뿐아니라 낡은 문화의 한계를 넘는 미래적인 문화를 찾는 일이다. 물론 많은 나라들은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이러한 과업을 해내려고 노력중이다. 마치 세계의 많은 과학자들이 더 본질적인 자연법칙을 찾아내려고 하고 있거나 여러나라의 엔지니어들이 더 좋은 전기차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듯이 말이다. 미국이나 독일은 물론 일본이나 중국 사람들도 자신들이야 말로 이 과업을 해낼 수 있을거라고 믿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인류 문명이 인간을 침팬지 수준으로 생활하는 원시인에서 문명인으로 만들어주었듯이 그들은 이 새로운 문화가 우리를 다시 한번 한차원 더 합리적인 존재로 만들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21세기에 한국의 의미는 굉장히 크다. 한류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좋아진 지난 2020년 한해는 단순히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가 좀 더 잘 알려지게 되거나 돈을 좀 더 벌었던 한 해가 아니라 전 인류가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는 이 대안적 문화의 발견에 있어서 한국이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가능성을 제시해 준 한 해였다. 

 

생각해 보면 이런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은  최근 서구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서 가난한 나라에서 부유한 국가로 진입한 거의 유일한 나라다. 한국이 가입하게 된 인구 5천만이상에 일인당 국민소득 3만불을 말하는 50-30 클럽을 이야기하는 것은 이걸 지적하는 한가지 방법이다. 게다가 한국은 일본처럼 이미 진취성이 사라지고 보수적으로 침몰해가는 나라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위치도 부족하다면서 역동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는 나라다. 한국은 그 민주주의가 일본이나 중국보다 뛰어날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인 것이다.

 

최근의 변화는 더욱 눈부시다. 코로나 1년동안 한국 경제는 OECD국가 중 가장 잘 버텨서 이제 한국의 경제규모가 G7의 이탈리아를 넘어서게 되었다. 게다가 방역문제는 물론 정치문제에 이르기 까지 한국관련 뉴스가 세상에서 자주 나오다 보니 서방세계에서도 자국의 문제를 비판하기 위해 한국을 예로 등장시키는 일이 많아졌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미국을 보라, 독일을 보라, 프랑스를 보라 하는 식으로 떠들던 것을 생각하면 세상은 불과 1년만에 엄청나게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고 있다. 앞으로 1년이 지나면 한국의 위상은 정말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던 곳까지 올라갈 것이다. 마치 이전에는 한국가수가 빌보드 1등을 연거푸 하는 일을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말이다.

 

한국은 미래적인 국가고 문화적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 서구 문화에 거부감을 느끼던 중동이나 동남아의 여러 나라들도 한국 문화에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데 이와 동시에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한국 문화는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는 한류가 그걸 해내기 전까지는 일본이나 중국도 제대로 해낸 적이 거의 없는 일이다. 아시아의 대표로서 한국문화는 멋진 아시아인의 이미지를 전세계에 만들어 냈다. 한류는 지금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중동에서 몽고로 러시아 미국 남미까지 별다른 저항을 받지 않고 퍼지면서 세계를 하나로 잇는 연대를 만들고 있다. 이는 한국문화가 가진 보편성을 보여준다. 미국의 새뮬엘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을 이야기하지만 정작 한류는 불교국가건 이슬람국가건 기독교국가건 상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한국적 문화의 보편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의식주에서 한국의 역사, 윤리등 모든 면과 연관이 있는 것이기에 몇줄로 정리할 수는 없는 것이며 앞으로도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미국 문화의 보편성이 뭔가를 몇줄로 쓰는 것도 힘들다. 게다가 아직 그 한국적 보편성이라는 것 자체가 완성되었는가도 불확실하다. 하지만 우리는 한국 문화와 보편성이라는 측면에서 우리가 주목할만한 몇가지를 생각해 보면서 이 글을 마칠 수는 있을 것이다.

 

하나는 배움은 우리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열망이다. 교육은 합리적 사회를 만드는데 있어서 핵심적으로 중요한 주제일 수 밖에 없다. 한국의 교육도 비판할 부분이 많지만 한국 사회가 가진 교육적 열정의 힘은 주목할만하다. 먹는 것보다 공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믿음은 모든 나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아마도 한국이 제국주의를 추구하지 않고 책읽기와 자기 수신을 강조했던 조선의 후예이기 때문에 생겨난 일일 것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많은 학생들이 엄청난 시간동안 공부를 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고등학교 졸업생이 대학에 진학한다. 이같은 교육적 열정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한글의 존재다. 더 많은 대중이 지식을 습득하도록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낸 국가가 조선이다. 이런 글자가 하나 밖에 없으니 이런 나라는 전무 후무하다는 뜻이다. 덕분에 한국은 지금 문맹률이 지극히 낮다. 한류가 퍼지는데에도 한글이 배우기 쉬운 문자라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 모든 것은 배움이 인간의 삶을 향상시킨다는 오래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런 태도가 사회의 합리성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두번째는 진취성이다. 한국은 새로운 단계로 발전하려는 욕망,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고 싶은 욕망이 아주 강하다. 이때문에 한국은 지극히 정보화된 사회가 되었다. 스마트폰 보급률과 인터넷 속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 음악이 세계적 인기를 얻는 것도 SNS와 유튜브의 활용에 힘입은 바가 크다. 시대가 전기차의 시대라고 하면 누구 보다도 먼저 전기차를 사고 전기차의 주식을 사들이려고 한다. 이는 테슬라가 세계적 화제라도 테슬라 자동차에 냉담한 일본인들의 태도와는 크게 다른 것이다. 

 

정보화에서 앞선다는 것은 왜 한국이 미래를 위한 문화를 선도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 한가지 이유다. 그건 한국이 가장 먼저 미래를 살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더 빛나는 미래로 가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이 한국 정치를 발전 시킨 한 이유일 것이며 한국 사회가 미래로 가장 빨리 나가는 한가지 이유일 것이다. 가장 미래적 사회에서 가장 먼저 미래를 주도할 문화의 기본틀을 발견하게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세번째는 의인 혹은 평범한 영웅이다. 어느 이야기에나 주인공이 있고 어느 나라에나 영웅이 있지만 한국의 영웅들은 서구적인 영웅에 비하면 훨씬 보통의 인간이다. 이는 미국의 마블 코믹스나 서부 영화류에 나오는 영웅과 한국의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영웅을 비교하면 보다 분명해 지는 것인데 서구의 영웅은 말하자면 귀족이고 엘리트다. 그들은 애초에 모든 면에서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 생각의 깊이에서건 윤리적인 면에서건 강인한 힘에 있어서건 타고난 왕의 핏줄 같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서구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그런 엘리트 주의에 빠지기 쉽다. 세상에는 아서왕 이야기의 아서왕이나 그의 기사들처럼 애초에 타고나길 다르게 태어난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그런 의미의 영웅은 매우 드물고 있다고 해도 대개 많은 허술함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은 종종 봉준호 감독의 괴물에 나오는 가족들처럼 평범하다 못해 평범이하의 인간들처럼 보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타고난 재능때문에 영웅이 되는게 아니라 그들의 행동을 요구하는 상황이 그들을 잠시간 영웅으로 만들 뿐이다. 세상을 구하고 싶어서 영웅이 된다기 보다는 하필 그 자리에 있어서 내가 아니면 세상이 망할 것 같으니 나설 수 밖에 없다는 식의 영웅으로 나는 이것을 의인의 문화라고 부르고 싶다.

 

의인이란 영웅과는 좀 다르다. 의인은 잘나서 좋은 일하는 것도 아니고 안할 수 있으면 편하게 조용히 살 것 같은 그런 사람이다. 그러나 어쩌다 상황이 나를 부르면 나설 수 밖에 없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의인을 만든다. 그래서 문화컨텐츠를 보면 서구는 배트맨이나 슈퍼맨같은 영웅이 지켜주는 사회처럼 보이지만 한국 사회는 다수의 의인이 지키는 사회로 보인다. 의인은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실 모두가 의인일 수 있다. 이 네러티브는 굉장히 민주적이지만 민주주의의 본가를 자처하는 서구에서도 그렇게 자주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는 항상 완벽한 그리스 신같은 잘생긴 영웅이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주 흔하다. 한국은 오히려 혼자 잘난 척 하는 사람을 좋게 보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유한한 인간이라는 점을 기억하는 겸손한 영웅이 더 평가받는다. BTS를 포함하는 한국가수들이 평가받는 부분도 종종 이런 부분이다. 말하자면 BTS는 스스로 겸손한 영웅이 되려고 하고 모든 아미에게 의인이 되자고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에는 정의 문화가 있다. 이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우리와 접촉했던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태도다. 사람은 물론이고 살던 집에도 입던 옷에도 우리는 정이 든다. 한국에는 심지어 미운 정이라는 말도 있다. 아무리 미워했던 것이나 사람이라도 그것에 대해 일말의 연결을 느끼는 것이다. 외국인들 중에는 한국인의 친절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한국인의 정을 보고 하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인에게 만남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래서 인사를 꼭 안해도 되지만 인사를 하고, 대접을 꼭 안해도 되지만 가족처럼 대접을 한다. 하나만 줘도 되지만 두개를 줄 때가 있다. 나는 정의 문화가 잘 나타나는 것이 바로 부모에 대한 효의 마음이며 가족이나 식구간에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한다. 여러가지 복잡한 일이 있어도 사람들간에 흐르는 정의 중요함을, 뱃속에 있었고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그 정을 한국인들은 잊지 못하는 것이다. 

 

정의 문화는 자연스레 우리가 우리 주변의 환경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무엇이든 우리가 접했던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의 일부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이는 만물을 또렷하게 고립된 것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 서구의 본질주의적, 배중률적 관점과 대비되는 것이다. 정의 문화는 우리의 정체성이 진공속의 돌맹이같은 것일 수없다고 말한다. 우리의 경계는 언제나 희미하다. 우리와 접촉한 환경은 사실 어느 정도 우리 자신이기 때문이다. 21세기는 확률적 사고가 어울린다. 그런 의미에서 접촉을 통해 경계를 섞어가는 정의 문화는 미래적이기도 하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며 가장 중요한 것을 모두 언급했다고 할 수도 없다. 이미 언급한 예들만 봐도 알겠지만 아주 중요한 것도 그것을 개념화해서 또렷히 인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언급한 이것들도 당연히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다. 이런 요소들은 서로 서로 연결되어져 있다. 하지만 이 몇가지의 예들만 봐도 한국 문화가 세계적인 인기를 얻을 수 있는 이유는 어떤 보편적 요소들이 설득력을 가지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보편적 문화를 창출하는 일은 한국을 위한 일이고 단기적으로는 돈이 되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손해를 보는 길같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세상의 중심이 되는 길이다. 요사이 플랫폼 사업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지만 궁극의 플랫폼은 문화다. SNS나 메신저 프로그램이 세계를 뒤흔들어왔다. 요즘 SNS가 많은 비판을 받고 시들해져 가는 가운데 한국이 세계가 소통하는 다음번 방식에서 중심이 된다면 그것이 한국의 미래를 밝게하지 않을리가 있는가. 누군가가 한국어가 영어처럼 세계의 공용어가 될거라고 말하면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한류의 인기로 외국인들이 한국어로 이야기하는 사례는 지금도 가끔 나오고 있다. 세계는 빠르게 변하고 있다. 무슨 일이 가능할지 우리는 모른다. 

 

어떤 사람은 경제력도 중요하지만 군사력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문화도 중요하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경제라고 말하기도 한다. 군사력도 중요하고 경제규모도 중요하지만 보편문화를 창출하는 일도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간의 관계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경제력이 있으면 군사력이 저절로 올라간다. 그러나 러시아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 역은 반드시 옳지 않다. 21세기에는 군사력이 있다고 무조건 돈을 벌 수 있는게 아니다. 시장에서 승부봐야 할 일을 군사력으로 승부보려고 하면 시장은 위협을 느끼고 그런 위협의 제거에 나설 수 있다. 시장의 보복으로 무참히 패배할 수도 있는 것이다. 궁극의 플랫폼은 문화다. 보편문화에 있어서 앞서나가면 경제력은 저절로 올라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국의 경우에서 보듯이 그 역은 반드시 옳지 않다. 21세기에는 경제력이 있다고 소프트파워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문화적으로 승부해야 할 일을 경제적 위협으로 해결하려고 하면 세계는 그런 위협의 제거에 나설 것이다. 문화는 시장의 판도를 바꾸고 어떤 나라를 경제적으로 완전히 무너뜨릴 수도 있다. 

 

'주제별 글모음 > 한국문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의 어른, 한국의 어른  (0) 2021.02.18
황화론과 세계의 미래  (0) 2021.01.19
한국인처럼 살기  (0) 2020.12.30
한국과 문화의 힘 그리고 생존의 문제  (0) 2020.12.28
국뽕의 역습  (0) 2020.12.26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