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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새로운 꿈과 새로운 한국

by 격암(강국진) 2020. 12. 20.

역사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기는 하지만 요즘의 한국은 여러모로 한 시대를 끝내고 미래로 나가는 시기를 맞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결핍은 욕망과 꿈을 만든다. 한국은 해방후 극빈을 면하고 싶어서 고깃국에 쌀밥먹는 꿈을 꾸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그랬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자식들인 베이비붐 세대도 결핍이 있었고 꿈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민주주의의 꿈이고 상식의 꿈이다. 국제적 보편성을 가지지 못하고 상식이 무너지는 봉건적 독재적 사회가 베이비붐 세대는 싫었던 것이다.

 

 

이 두 개의 꿈은 각각 국제시장이나 1987같은 영화들을 통해 이야기로 구체화된 적도 있거니와 지금의 한국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꼭 알아야 할 두 개의 흐름이고 보통 보수와 진보로 통칭되기도 하면서 한국 정치의 양대 축을 만들어 오기도 했다. 표면적인 표현때문에 민주주의의 꿈이 경제적 번영을 외면한 것이었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사실 그 반대다. 민주주의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이유이며 심지어 지금의 현대나 삼성같은 대기업이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독재로 망한 후진국들을 보라. 박정희나 전두환같은 군부독재가 계속 되었다면 한국의 경제는 성공할 없었다. 결국 군부독재는 부패하고 부패가 경제를 망친다. 사람들은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봐야 쓸모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위험하니까 그렇다. 그런 나라에서는 그저 권력자에게 아부나 하는 출세의 비결이다. 이런 나라가 어떻게 지금처럼 대단한 경제적 성공을 하겠는가. 독재정권밑에서 삼성만큼 첨단산업회사가 나오기는 어렵다.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한국이 만들어 온 것은 보편성과 객관성을 가진 시장의 법칙이었다. 게임의 법칙이 없는데 게임은 성립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원도 없는 한국이 민주주의 없이 부자나라가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시대가 지금 거의 끝이 나가고 있는 것같다. 물론 한국에는 아직도 많은 개혁과제가 있지만 국민소득 3만불이 넘어가는 한국에서 다시 극빈극복과 민주주의를 가지고 벌어지는 싸움이 세상의 중심이 될 것같지는 않다. 보수 정치권은 정권을 되찾을 가능성이 없다. 그들은 여전히 과거에 갇힌 박사모같은 사람들과 함께 지저분하게 몰락해 갈 것이고 될만한 대권후보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보수정치권의 안티테제인 민주진영에 위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말하자면 보수정치권이 있어서 국민들이 참아준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다시 전두환, 이명박, 박근혜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선택지가 아니지만 그것이 전혀 불가능해지면 오히려 민주진영은 위기에 빠질 것이다. 민주진영의 큰 시대적 소명은 바로 그 군사독재세력과 싸우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들이 약해진 시대에 그들은 어떤 비전을 가졌는가? 이것은 민주진영이라는 정치가 집단의 과제일 뿐만 아니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인의 숙제이기도 하다. 

 

한류가 세계적 인기를 얻고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일본을 뛰어넘으며 한국이 정치 군사 경제적으로 당당하게 프랑스나 영국같은 나라와 함께 선진국으로 여겨지는 그 시대가 목전에 있다면 그 다음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만약 그저 선진국에 도달하는 것이 목표의 전부라면 한국은 그 목표에 도달하자마자 쇠퇴할 것이다. 선진국이 되는 것은 그저 통과점이 되어야 한다. 새로운 목표를 가지는 것은 미진한 개혁을 완결하고 한국인들이 겪는 생활의 불안을 해소하며 언론개혁과 사법개혁을 이룩하고 한반도 평화를 이룩하는데 있어서도 핵심적으로 중요하다. 

 

그래서 지금 이 시기에 한국사회가 가진 가장 큰 과제는 바로 새로운 내러티브 혹은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다. 이제까지 가난하고 힘없던 한국사회에서는 그 꿈도 지역적이었다. 그저 밥먹고 살게 되는 것이 아니면 저 선진국들처럼만이라도 상식이 통하는 시스템을 가진 나라가 되는 것이랄까. 거기에는 세계적 규모에서 한국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말해주는 내러티브가 없었다. 다른 누구보다 한국 사람들 스스로 한국을 세계적 패권국가들의 종속변수로 여겨온 것이다. 

 

지금의 노인세대는 한국을 한의 정서로 설명하기 좋아했다. 애매한 점도 있지만 그 한의 정서는 한국인을 주로 시대의 수동적 피해자로 묘사하기 때문에 나는 그걸 싫어했는데 이런 과거의 풍조때문에 지금도 한국을 이야기하면서 한의 정서 운운하는 외신을 본 적이 있다. 아마도 한국의 나이 많은 그 누군가가 그 옛날 내러티브를 다시 그 외신기자에게 들려주었을 것이다. 

 

이제는 다르다. BTS가 빌보드를 석권하고 삼성핸드폰이 세계에 퍼진 시대에 한의 정서 운운하는 이야기는 요즘의 젊은 시대에게 낯설다. 우리의 역사를 수많은 외침에 시달려온 역사가 아니라 실은 최근의 일이백년을 제외하면 아주 평화롭고 선진적이었던 역사로 말하는 목소리도 나오기 시작했다. 특히 코로나 19가 세계적으로 퍼지면서 많은 한국인들과 세계인들은 한국과 외국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내러티브는 이미 바뀌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자칫 침략적 제국을 꿈꾸는 사람들을 주목받게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꿈은 제국주의여서도 안되고 일 수도 없다. 그런 낡은 꿈은 시대착오적이다. 한국인만 부자가 된다거나 한국이 외국에게 큰소리 치는 걸 꿈꾸는 것은 졸부가 동남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 가서 추악한 짓들을 했다는 이야기를 연상시키게 만든다. 우리는 겨우 그렇게 되려고 미래로 나아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는 지금 하나가 되어야 할 필요가 증가하고 있다. 인구 문제나 환경 문제, 자원 문제, 기후 문제등 여러 문제들이 긴박해 졌을 뿐 아니라 무기는 너무 발달했고 지금도 쏟아져 나오는 기술은 그것이 반드시 무기가 아니더라도 인류가 함께 고민해야 할 필요가 있어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은 핵무기보다 무섭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코로나 19로 세계가 지금 멈춰서 있는 가운데 백신이나 치료제 가지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지 않은가. 

 

지금 세계는 한국의 선진성에 주목하고 있다. 그것은 기술의 문제이기도 하고, 문화의 문제이기도 하겠지만 코로나와 가장 잘 싸우고 있는 것이 한국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지금 전세계적으로 튀는 사례다. 그래서 미국도 유럽도 한국에 주목하는 것이다. 한국만 잘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해도 중국이나 대만 그리고 뉴질랜드같은 나라들은 가장 보편성을 가졌다고 말하기 어려운 예들이다. 

 

이러한 선진성은 단순히 한국은 코로나같은 질병과 잘 싸우는 나라라는 것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세계가 당면한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한국이 하나의 모범사례로 작동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있다. 민주주의가 코로나와 싸워 이길 수 있다면 태국과 홍콩 사람들에게 한국 사회는 희망일 수 있다. 바로 이런 문장이 단지 태국이나 홍콩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나라들에게서 성립할 수있는 것이다.

 

불과 몇년전만 해도 한국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지금도 한국은 천국이 아니고 미래에도 한국은 문제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등 세계의 모든 나라들에는 우리나라 이상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한국 드라마가 세계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이유중 하나다. 현실과 드라마는 다른 것이지만 많은 외국인들에게 그 드라마는 자신들이 살고 싶은 나라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꿈은 지루하게 반복되는 미국이나 일본의 영화나 드라마가 보여주는 꿈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은 동서양 모두에서 인기가 있을 뿐만 아니라 기독교와 불교 그리고 무슬림등 여러 종교권에서 모두 인기가 있다. 북한과 이란에서도 인기가 있고 남미와 동유럽에서도 인기가 있다고 하지 않는가.

 

한국은 전세계에서 유일무이하게 제국주의를 거치지 않고 선진국이 된 나라다. 우리는 다른 나라를 침략해 본 적이 없으며 그러면서도 긴 역사를 가지고 자기를 지켜왔다. 세계에서 일반국민을 위해 새로운 문자를 만든 유일 무이한 나라이기도 하고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를 가지고 있었고 한때 세계 최고의 제품이었던 도자기 역사에서도 큰 자리를 가지고 있는 문화국가다. 

 

우리가 종종 재미있고 흥미롭게 보고 있는 일본의 사무라이역사나 서양의 봉건주의 역사는 깨끗한 눈으로 다시 보면 결국 승자의 눈으로 쓰여진 깡패들의 역사다. 그때는 다 그랬지 하면서 칼로 사람들을 학살하고 착취했던 사람들의 역사를 미화한 것이다. 현재의 기준에서 조선의 역사를 보면 비판할 것이 많겠지만 현재의 기준으로 서양과 일본의 과거를 보면 그건 완전히 도둑과 깡패의 역사라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이런 이야기는 단순히 한국을 미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왜 한국적 내러티브안에서 세계가 평화로울 수 있는가를 말해주기 위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내러티브가 완성되고 성장할 때 위대한 한국이 되는 것도 꿈은 아니다. 따지고 보면 미국도 초라한 식민지출신의 후진국에 불과했다. 그러나 탈권위주의와 개척정신이라는 미국의 꿈을 완성하자 세계의 사람들이 그 미국으로 이사를 가서 미국을 위대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무한한 성장을 꿈꾸는 미국적 꿈은 이제 더이상 옳지 않다. 지금의 미국의 처참한 현실이 그 꿈이 옳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가 새로운 꿈을 찾고 있다. 과연 그 답이 중국몽일까? 그렇지 않다. 중국인들을 제외하고 중국인이 되고 싶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몽은 어딜 보나 결국 미개한 제국주의에 불과하다. 한국의 이야기는 이미 세계적 호응을 받기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완성하기 위해 훨씬 더 뛰어나고 많은 이야기꾼들이 필요하다. 그 꿈이 훌룡하다면 이번에도 세계가 한국을 위대하게 만드는 것을 도울 것이다. 

 

이 글은 두 가지만 다시 강조하고 마치고 싶다. 첫째로 새로운 이야기가 완성되고 나면 그것은 표면적으로는 한국이 손해보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사실은 우리를 부자 만들어 줬던 것이라는 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돈을 잊어버리면 잊어버릴 수록 우리는 부자가 될 것이다. 완전히 돈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부자말이다. 

 

두번째로 한국의 여러 개혁 과제들을 보면서도 이 내러티브의 문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육문제나 서민 생활고 문제같은 것에 대해 듣다보면 이 내러티브의 문제는 뜬구름 잡는 것같고 시간낭비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실은 반대다. 우리는 당장 오늘의 문제도 해결해야 하기에 사회현실에 대해 그때 그때 대응해 가야 한다. 그러나 이 대응들은 사실 임시처방에 불과하다. 내러티브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채 경제든 교육이든 십년뒤 백년뒤를 말하는 것은 헛소리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은 실은 어떤 기본적 가정에 자기가 빠져있다는 사실 자체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대착오적 개혁은 금방 뼈아픈 댓가를 요구한다. 

 

우리는 이제 배가 부른가? 아니면 배가 고픈가? 뭐에 배가 고픈가? 이 질문에 어떤 스케일로 답하는가 하는 것이 한국의 미래를 결정한다. 한국은 이미 선진국인데 고깃국에 쌀밥을 먹는 것을 꿈꿔서는 한국을 발전시키는게 아니라 망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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