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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정복하지도 정복당하지도 않는 나라

by 격암(강국진) 2021. 6. 2.

한국의 역사를 보면 희안한게 있다. 그것은 한국은 정복당하지도 정복하지도 않는 나라였다는 것이다. 한국은 일본처럼 섬나라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냥 힘이 없었던거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힘이 없는 나라는 정복당해서 사라진다. 힘이 있는 나라는 정복해서 땅을 넓히는 것이 지구상의 대부분의 나라의 과거였다. 그래서 우리가 과거의 위대한 왕이라고하면 결국 대다수 정복왕이 아닌가? 천년,이천년을 약탈하지도 약탈당하지도 않았던 역사는 사실 기이한 것이다. 

 

우리가 약탈당하지 않았다니 무슨 소리냐, 우리의 역사는 약탈당한 수난의 역사가 아니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을 침략한 일본이 만들어 낸 것같은 이 견해에 대해서는 한국을 공부한 외국의 학자들이 오히려 반박하고 있다. 조선시대와 고려시대등의 역사를 보면 물론 약탈과 침략의 기간이 있었지만 실은 그 시대에 지구상의 다른 지역은 훨씬 더 끔찍했다는 것이다. 중국과 유럽에서는 끝없이 전쟁이 이어졌다. 침략을 하거나 당하거나 하면서 왕조는 일이백년을 못가고 무너졌고 국경선의 위치도 크게 바뀌었다. 그러니까 한국의 족보라던가, 조선왕조실록같은 기록들이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것이다. 백년 전의 내 선조가 어디서 살았던 누구인지 알게 뭔가, 세상이 이렇게 불안정한데. 

 

그에 비하면 한반도에는 몇백년간 한번의 침략도 없었던 때도 있었고 왕조는 5백년 천년을 유지하고는 했다. 전쟁준비로 백성들을 괴롭히고 스스로 먼저 영토전쟁에 나서는 왕도 없었다. 만주에 사는 부족은 몇백년마다 한번씩 크게 힘을 얻어 중국 대륙을 차지해서 원나라를 만들고 청나라를 만들었지만 그럴 때도 한반도에 사는 사람들은 그 제국의 일부가 된 적이 없었다. 심지어 그 대단하다는 징기스칸때도 만주에 바로 이어진 한반도가 원나라가 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복하지도 정복당하지도 않는 나라라는 것이 정말 중요한 일일까? 그건 그냥 사소한 우연이며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일이 아닐까? 우리가 이에 주목해야 하는 큰 이유가 있다. 우리는 바로 지금 나라들이 정복하지도 정복당하지도 않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간의 영토분쟁이 여전히 국지적으로 있기는 하지만 21세기에 군사력이 세다고 해서 다른 나라를 처들어가 영토를 넓히려고 하는 나라가 있는가? 우리 나라의 군사력만 해도 세계 6위 수준이니 우리보다 군사력이 약한 나라는 세계에 넘쳐난다. 설사 할 수 있다고 해도 우리는 지금 그 나라들에 군대를 보내서 영토를 넓히고 싶은가?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그건 우리가 인본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민주국가들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민주국가 사이에서는 영토확장을 위해 제대로된 전쟁이 일어나기 극히 힘들다. 사람도 많이 죽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설사 베트남 같은 나라가 우리는 한국이 되고 싶어요 한다던가 중국의 일부가 우리도 한국이 되고 싶어요한다고 해도 무조건 환영하기는 어렵다. 그들이 한국인이 된다면 그들은 한국인으로서의 의무뿐만이 아니라 권리도 가질 것이다. 그러니까 땅이 넓어진다고 무조건 좋아할 수는 없다. 한국에 노동자가 부족하면 중국인들 천만명쯤 받아서 해결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인권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그 중국인들도 사람이니 마치 원자재 수입하듯 수입해서 쓰고 버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쓸모있는 시민인 동시에 우리가 돌봐줘야 하는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해서 서구 열강도 수없이 많은 식민지들을 독립시켜준 것이다. 이때문에 한 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였던 영국이 조그만 섬나라로 돌아간것 아닌가. 북한과의 통일도 내부적 혼란을 걱정하면서 베트남 사람이나 중국인이 한국에 가득해 지는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있을까? 우리는 그들을 문화적으로 융합해서 한국인으로 만들 수 있을까? 

 

나는 한국이 정복하지 않는 나라였던 것에는 기본적으로 같은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한국사람들은 서구열강이 식민지를 포기하기 아주 오래전부터 식민지같은 개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조선이나 고려가 힘이 넘칠 때 주변으로 땅을 넓혀서 약탈을 하고 부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국경선에서 침탈이 일어나면 혼내주고 그만둔다. 아예 정복해서 씨를 말려버리거나 지속적인 약탈을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다. 그저 조용히 시킬 뿐이며 이것은 마치 우리는 우리끼리 잘 살테니 선은 넘지마라라는 태도다. 이것이 우리나라를 전면적으로 침략하고 심지어 병합한 일본과 조선의 차이였다. 

 

제국주의적 침략주의적 국가였던 세계의 대다수 나라와는 달리 우리는 일찌감치 오백년전부터 과거로 관리를 뽑고 지역에 관리를 내려보내 백성을 돌보는 일을 한다. 우리는 낭만적으로 묘사된 공작이니 영주니 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유럽의 봉건제를 보고 들어왔지만 그 구조는 결국 힘있는 놈이 그 지역의 사람들을 지배한다는 구조다. 왕이 어떤 사람을 어떤 지역에 파견하고 그 지역 사람들을 잘 돌봐주라는 것이 봉건제가 아니다. 그 지역은 그냥 그 영주의 개인소유다. 다만 영주도 자기보다 서열이 높은 사람에게 충성하고 보호비를 뜯기는 것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상납의 의무가 잘 지켜지는 것이지 그 지역민이 행복한가 아닌가가 아니다. 이것은 조폭과 경찰의 차이다. 봉건제는 조폭조직이고 조선시대의 관리들은 공무원이었다. 서양의 성들이 왜 그렇게 요새처럼 폐쇄적이었을까? 자기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폭력적인 시대를 살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낮은 담장의 한옥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한다. 그렇게 살 수 있었다는 이야기니까. 

 

다시 말해 이미 조선시대에만 해도 새로운 땅이란 약탈할 새로운 지역이라기 보다는 관리해야 할 지역같은 것이었다는 의미다.  조선시대에 약탈과 차별이 없었다는 말이 아니다. 그런건 언제나 있고 사실 지금도 있다. 그러나 고작 십여만명의 사람들이 하나의 작은 지역에 살고 많은 사람들이 노예였던 고대 아테네가 민주주의의 고향이라면 한반도같은 큰 지역이 하나의 질서위에서 살던 조선은 이미 공화국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당대의 다른 나라와는 시스템 자체가 출발이 다르다. 들어주지 않더라도 윤리와 법을 들먹이며 백성들이 관리의 부패를 비판할 수 있는 나라와 애초에 국가의 조직이 조폭구조인 제국주의의 나라, 봉건제의 나라는 기본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한반도가 정복하지도 정복당하지도 않는 나라였던 이유는 결국 그 문화가 특이하게 달랐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일본사람과 함께 살아보니 싫은 것이다. 일본은 지금도 마치 세습하는 것처럼 정치가들이 자신의 지역구를 대를 이어 지배하는 경우가 한국보다 많다. 한국이 왕조에 미련이 없으며 박정희의 딸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는 했지만 결국 탄핵당하고 물러난 것도 한국인 안에 존재하는 민주적 역사때문이다. 우리는 차별을 혐오하고 인간은 평등하다는 생각에 훨씬 깊은 신념을 가진다. 중국보다 그렇고 일본보다 그러하며 저 서양국가들과 비교해도 더 뛰어나면 뛰어났지 뒤지지 않는다.

 

민주적 역사는 결국 배움의 역사이며 누구나 배우면 제대로 된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한반도에서는 아주 뿌리가 깊다. 한글 창제는 1443년의 일이니까 약 580년전의 일이다. 일반백성을 위한 문자를 만든다는 것은 신분에 관계없이 인간은 배우면 교화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는 뜻이다. 1443년에 한글창제라는 결실이 생길정도로 조선에는 그런 생각이 퍼져있었던 것이다. 이에 비하면  종교개혁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마틴 루터의 반박문사건은 1517년에 있었던 일이다. 유럽의 교황중에 일반인도 성경을 잘 읽으라고 문자를 창제한 교황이 있었던가? 조선의 건국은 1392년의 일인데 미국의 독립전쟁은 1775년에 있었고 프랑스혁명은 1787년에 있었다. 세상은 조선을 봉건제로 파악하여 전근대라고 말하지만 그 조선은 사관들이 왕의 행적을 모두 기록하고 왕은 그걸 볼 수 없는 나라였다. 이것은 지금도 못하는 일이다. 

 

우리는 왜 일본을 침략해서 그 땅을 차지하려고 하지 않았을까? 우리 백성들 교화할 자신도 없는데 일본 섬을 다 차지하면 뭐하겠는가. 힘이란 우리를 지킬 정도만 되면 되고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오직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가 한 이 말은 실은 적어도 조선 시대 전체를 통해 흐르던 생각이었다. 사람은 오직 배움으로만 제대로된 사람이 되며 온 세상 사람들을 잘 교화할 때 좋은 세상이 온다는 이 계몽주의적 믿음은 이미 조선시대때부터의 상식이었다. 이게 왜 왕권신수설 운운하는 봉건국가인가.

 

사실 홍익인간 재세이화 즉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며 세상에 있으면서 다스려 교화시킨다라는 말은 이미 고조선 건국신화에 나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냥 그러려니 한다. 심지어 세종이 한글을 창제한 일도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공부하면 누구나 인간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매우 최신의 생각이다. 이 생각이 강해지면 혈통이나 성별은 중요하지 않게 된다. 인간은 보편적인 진리를 배우면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익숙하면 그것이 사실은 특이한 것이라는 것을 잘 모르게 된다. 한국성공의 기초를 만든 교육열은 사실 특이한 것이며 이는 배움에 대한 긴 역사가 만들어 낸 것이다. 가난한 나라들이 대개 이렇지 않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성공한 아주 특이한 사례라는 것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에 도달한 아주 특이한 사례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은 아마 일본에 흡수되어 사라진 오키나와의 류큐왕국같은 곳일 것이다. 우리는 바득 바득 저항해서 다시 독립했고 독립하고 나서 다시 6월항쟁이며 촛불시위를 통해 민주국가를 만들었다. 보통은 독재정권 타도가 안된다. 왜 이런가.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복하지 않지만 정복당하지도 않는 나라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무력이 아니라 교화가 세상을 이롭게 한다고 믿으며 살았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사람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며 그래서 누구나 제대로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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