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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누가 중국을 죽일 것인가?

by 격암(강국진) 2021. 6. 17.

21.6.17

오늘날 세계에는 한가지 큰 의문이 있다. 그것은 왜 중국이 죽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나는 이미 10년전에도 20년전에도 중국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말하는 중국인이나 중국계 미국인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들이 한결같이 말하고 있는 것은 중국 사회는 굉장히 부패해있다는 것이며 빈부격차가 워낙 크고 부자들은 외국으로 돈을 빼돌려 여차하면 외국으로 도망갈 준비만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중국 경제의 파산으로 중국이 모래성처럼 사라질 거라는 주장은 유튜브를 검색하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질문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한가지 중대한 점은 바로 세계를 지배하는 서구적 시각이다. 유럽과 미국은 아시아인들을 무시했다. 그들은 중국에게 이렇게 의존해도 중국이 결국 알아서 붕괴할 것이며 서방의 패권을 중국이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사실 한국과 중국은 특이 사례다. 지난 세기에는 매우 가난했는데 서구의 자본과 문화가 들어가서 서구를 압박할 정도로 성장한 나라는 이 두 나라 밖에 없고 한국은 더 특이해서 평균소득이든 민주주의든 선진국수준에 도달했지만 대개는 멕시코나 필리핀처럼 되는 것이 더 보편적이다. 

 

그러나 지금 미국도 중국에게 무력하게 흔들리고 있고 유럽은 중국에게 큰소리도 못내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서구 사람들은 그들의 소프트파워를 과신하며 중국을 견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무력이 영원히 중국보다 강할 것이고, 그들의 경제력이 중국보다 강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그 이전에 그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믿었다. 일제가 일본문화가 친일파를 양산하여 조선이 영원히 망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처럼 서구문화는 결국 중국에 친미파를 양산하여 중국이 영원히 서구를 추종하게 될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유지되는 한 중국은 위협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서구인들은 그들의 역사를 보편화해서 그들의 역사발전단계를 인간문명의 보편발달과정으로 놓고 비서구인들을 그들이 도달한 근대에 도달하지 못한 사람들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말은 중국이 발전하고 한국이 발전하면 그들은 서구인이 된다는 것을 말하며 중국인이나 한국인은 아직 서구인이 되지 못한 덜 문명화된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아예 유전적으로 백인은 가장 진화가 많이 된 인종이고 동양인이나 흑인은 진화가 덜 된 인종이라는 인종차별적 시각의 소프트 버전이다.

 

이 오만이 결정적으로 패착이 된 것은 미국과 유럽의 소프트 파워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자국의 영화관을 애국주의 영화로 채우고 있는 중국은 이제 서구의 영화를 겁내지 않는다. 어벤져스나 해리포터가 중국에서 인기를 얻는다고 그것이 중국 내부의 결속을 방해할 것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중국에게 훨씬 더 위험한 것은 오히려 한국 영화다. 한국 영화는 독재와 경제적 착취에 반대하는 메세지가 사방에 깔려 있다. 봉준호의 영화 살인의 추억만 해도 단순히 연쇄살인범의 영화가 아니다. 그 안에는 연쇄살인범을 잡지 못한 것은 당시 시위대를 막기 위해 경찰을 동원한 정부의 책임도 있다는 사실이 깔려 있다. 이런 한국 영화나 드라마는 아주 흔하다. 중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얻었던 응답하라 1988만해도 그 시대상황에 민주화운동이 나온다. 

 

문제는 민주화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역사도 있다. 최근 나는 한국의 영화 남한산성을 중국 사람들이 보고서 어리둥절해 했다는 유튜브 동영상을 본 적이 있다. 그에 따르면 중국 사람들은 청도 명도 모두 중국이라고 배웠는데 한국이 명과의 의리를 지키느라 청에게 공격당하는 것이라던가 청나라 사람들이 중국어를 하지 않고 이상한 언어를 쓴다는 점에 충격을 받는다고 한다. 이건 중국인의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한족이고 청나라는 만주족의 나라이니 생기는 문제다. 이런 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면 중국이라는 개념 자체가 붕괴할 수도 있다. 사실 한족을 노예처럼 부리던 만주족이 세운 나라가 청나라인데 지금 한족들이 청나라는 중국의 전신이며 그들은 청나라의 후손이라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징기스칸도 자기들의 조상이고 말이다. 

 

다른 예도 있다. 한국 연예인들의 언행에 중국은 매우 민감해 한다. 대표적인 것이 BTS가 밴플리트상 수상식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한 발언이있는데 한국 전쟁때 같이 싸운 미국에게 감사를 표하는 BTS의 인사말에 중국인들이 난리를 피우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많은 중국인들은 한국 전쟁이 북한의 침공으로 시작되었다거나 중국이 북한과 함께 지금의 남한을 적으로 해서 싸웠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래서 중공군에게 한국인들이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중공이 조선을 도왔다고만 배웠기 때문이다.  

 

문화와 경제의 거리는 앞으로 더욱 작아져서 경제적 봉쇄없이 문화적 봉쇄가 불가능해 질 것이다. 일본이 한국회사인 네이버의 라인이 자국의 메신저 시장을 장악한 것이 싫어도 메신저가 너무 중요해져서 라인을 퇴출시키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 네이버는 일본에서 한국의 웹튠을 팔고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회사들은 아마존, 페이스북, 테슬라, 마이크로소프트, 구글같은 회사들로 이 회사들의 상품은 문화인지 경제인지가 구분하기 어렵다. 페이스북이나 구글에게 중국정부가 자국 회사들에게 하듯이 검렬과 감시를 요구하는 것은 결국 실질적인 경제장벽이다. 또 미국이 화웨이를 의심하듯이 중국은 테슬라가 정보를 도용할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장벽들은 존재하고 이런 장벽들은 플랫폼비지니스나 정보통신경제가 커지면 커질 수록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자유로운 정보소통울 허용하면서 문화적 장벽을 세우는 일은 불가능하다. 

 

중국이 지금 애국주의 신화를 만드는데 광분하는 것은 이런 현실 때문이다. 즉 머지않아 그들은 완전한 경제봉쇄를 하든지 아니면 문화적 개방을 해야 한다. 그런데 쇄국이 선택지가 될 수는 없다. 따라서 개방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혹은 이미 중국을 흔드는 문화적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은 애국주의 신화를 더 강화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중국이 가지는 온갖 문제의 원인을 외부의 억압으로 보는 신화를 가지고 있다. 중국인들은 왜 선거도 제대로 못하는 중국공산당의 압제에 저항하지 않는가? 그것은 우리는 중국인이며 중국 공산당이 저 외적으로부터 본래 중국의 것이었던 것을 되찾아 모두를 부자만들어 줄 것이라는 약속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은 이 약속이 실현가능한 것이라는 착각을 만든다. 적어도 중국은 강하다라는 것이 중국공산당이 미디어를 통해 중국인들에게 주입하고 있는 메세지다. 그래서 다수의 중국인들은 홍콩사람들을 포함한 중국인들의 눈물에 등을 돌리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일제가 하던 짓이나 독일의 나치당이 하던 짓이나 중국이 지금 하는 짓이나 다 비슷하다. 중국인의 애국주의가 맹목적으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그만큼 그들의 광기가 말기에 접어들었다는 뜻이다. 말기적 애국주의는 언제나 팽창을 요구하고 적에 대한 공격을 원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현실의 불편함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극단적 방법을 써서라도 지금 이기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게 될거라는 공포에 빠진다. 

 

이런 현실에서 한류가 미국과 유럽에 도달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메세지적으로 중국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한국 컨텐츠지만 중국인들은 한국을 소국이라고 부르면서 깔아뭉개려고 한다. 다시 말해 한국이 존경의 대상이 되거나 권위가 되기에는 한국이란 나라의 국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류가 서구에 도달한 것은 한국인에게도 큰 놀라움이었지만 중국에게도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BTS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콘서트를 할 때 백인소녀들이 거대한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 동양인 남자들에게 환호성을 보내는 모습, 손흥민이 영국 시민들에게 영웅으로 존경받는 모습, 한국드라마가 넷플릭스 세계 순위의 상위권을 채우는 모습은 바로 일본인은 물론 중국인들이 가장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세계에 특히 서구에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런데 그 인정을 일본도 아니고 한국이 받기 시작하고 있다. 그들은 G7회의 같은 것을 보면서 중국이야 말로 G7의 일원이 되어야 하며 서방국가 정상들과 다정한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그들은 악당으로 취급받고 그들이 원하는 자리에는 한국이 서있다. 한국은 작지만 세계의 한류붐이 커지면 권위를 획득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권위가 위협할 대표적인 곳은 바로 중국이다. 왜 중국은 한국이 하는 걸 할 수 없는가 하는 질문과 함께 말이다. 

 

우리는 4차산업혁명같은 미래 기술 혁명이 인류 앞에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통신이나 인공지능같은 미래 산업분야가 중요해 질 수록 문화전쟁은 치열해 질 것이다. 개방이 필연적인 것이 될 때 쇄국을 택한 나라는 북한처럼 가난해 질 것이고 개방을 택했는데 자신을 지키지 못하는 사회는 구심력을 잃고 무너질 것이다. 미래는 사람들이 설득력있는 비전에 따라 국적을 초월해서 새로운 게임을 벌이는 사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설득력과 매력이 없으면 단숨에 무너지고, 매력이 있으면 단숨에 세계를 지배하는 파워를 가지게 될 수 있다. 

 

사실 한류가 있다고 해도 세상에 스며든 중국과 일본의 영향력은 아주 깊다. 그래서 한국은 무시당해 왔다. 중국과 일본은 모두 한국은 주체적인 나라가 못되고 언제나 어딘가의 식민지였다고 세계에 가르쳤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일본을 싫어하는 한국인이 보면 황당한 생각이지만 미국인들을 포함한 많은 서구인들은 그래서 중국의 영향력이 커지면 한국은 간단히 중국의 편에 합류할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심지어 중국인들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 이래서 요즘 한국 정부가 한국 전쟁에 참전한 해외 병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고, 해외 순방을 나가면 대통령이 우리는 한국 전쟁에서 함께 싸운 혈맹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주 현명한 일이다. 물론 이런 제스춰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한국이 박근혜를 탄핵하는 것같은 대단한 민주주의 역량을 보여주는 역사가 있기에 한국은 간단히 군사독재에 굴복하지 않으며 중국같은 나라와는 크게 다르다고 서구인들이 믿게 된 것이다. 

 

누가 중국을 죽일 것인가? 한국밖에 없다. 물론 세계와의 공조가 필요하다. 세계는 이미 그걸 느끼지 못했다면 앞으로 점차로 느끼게 될 것이다. 한국이 부상할 수록 중국이 죽는다는 것을. 한국에게 힘을 실어 줄수록 중국의 횡포가 줄어든다는 것을. 서구의 소프트파워는 허약해 졌으며 중국을 죽일정도의 잠재력이 있는 것은 오직 한국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한가지 예만 들어도 이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부상은 중국의 눈으로만든 역사가 아니라 한국의 눈으로 본 역사가 세계로 부상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게 세계적 표준이 될 때 중국은 위협을 느끼게 될것이다. 세계는 중국을 다시 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말들은 우리가 중국과 이제껏 없었던 치열한 문화전쟁을 치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한국과 일본사이에 있는 역사 논쟁보다 오히려 더 큰 전쟁이 될 것이다. 인류의 미래를 결정할 그 전쟁은 사실 이미 시작된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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