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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언론에 대한 글

언론 개혁 가능할까?

by 격암(강국진) 2021. 6. 11.

요즘 살다보면 제일 많이 욕하게 되는 곳이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사법부고 또 하나는 언론이다. 그런데 사법부 개혁은 그렇다 치고 언론은 정말 개혁이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그 개혁의 핵심은 뭐가 되어야 할까? 

 

개혁이란 새롭게 뜯어고친다는 것이다. 나는 이때문에 생기는 오해가 있으며 이에 대해 중요한 단서를 주는 역사가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한류 열풍이 거세고 그 인기에는 한국 드라마도 큰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런데 사실 한국의 드라마는 지난 10년동안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주로 종편때문이다. 종합편성채널 줄여서 종편이라고 부르는 방송국들이 생겨나게 된 것은 2009년에 채널미디어법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때 당시 아주 많은 민주 진영의 논객들은 종편은 악의 미디어가 될 것이며 우리는 지상파 방송을 지켜야 한다는 식으로 이야기 했다.

 

그런데 이유가 뭐가 되었건 종편은 만들어졌고 한국의 드라마 시장은 전혀 달라졌다. 이전에는 한국의 컨텐츠 시장은 지상파 3사가 완전독점하다 시피하고 있었다. 겨우 3개의 채널에서 방송하지 않으면 드라마를 만들어도 다큐를 만들어도 방송할 수 없었기 때문에 채널을 독점한 지상파 방송국들은 강력한 권력을 가졌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사람들은 이 지상파방송국의 드라마에 만족했을까? 그럴리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걸핏하면 재벌이야기에 사랑이야기가 범벅이 되는 지상파방송국 드라마를 지긋지긋해 했다. 오죽하면 매우 인기있었던 드라마 미생을 제작했을 때 원작자는 지상파방송국을 피했다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KBS가 미생을 만들면 다시 이야기가 사랑이야기중심으로 흐를 것이 걱정되었다는 것이다. 

 

한국 드라마를 봐온 사람들은 지난 10년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라. 한국 드라마 시장의 중심은 종편으로 옮겨갔다. 물론 여전히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도 높을 때가 있다. 그러나 시대를 움직이는 것은 종편의 드라마고 예능이 됐다. 이제 노인들이나 보는 막장 드라마를 반복하는 지상파 방송의 영향력은 형편없이 떨어졌고 그것은 넷플릭스같은 채널을 통해 한국컨텐츠가 세계로 뻣어나가기 시작하자 더욱 그렇게 되었다. 시청률이 높아도 소비의 중심이 되는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가 어느 쪽이냐고 하면 평가가 더욱 달라진다. 지상파 방송국이 망했다고 하면 과장이지만 그들은 이제 더이상 지배적 컨텐츠 생산자는 아니다. 

 

앞으로의 전망도 좋지 않다. KBS의 직원들 월급이 모두 억대라는 말이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있는 것이 잘 보여주듯이 단순히 지상파 방송이 종편보다 인기가 있다 없다를 말하기 전에 그 가성비를 따지면 상황은 훨씬 나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세상에는 KBS같은 엄청난 회사가 있고 그 보다 훨씬 작은 종편방송국이 있으며 다시 그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유튜버가 있다. 그런데 만약 이 셋의 시청률이 비슷하게 나온다면 이건 말도 안되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비효율적인 사업이 언제까지 계속될 수 있을 것인가? 그런데 정확히 그렇지는 않지만 지금의 상황이 어느 정도 그렇다. 작은 팀이 만드는 컨텐츠의 질이 거대 시스템이 만드는 것을 오히려 능가한다. 따라서 지금의 지상파 방송국의 미래가 그리 밝지 않은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흐름속에서 '지상파 방송국을 지켜주세요'라는 구호가 없었을까? 많았다. 안에서 밖에서 있었으며 지상파 방송국도 변화의 노력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지만 그 결과는 이렇다.

 

나는 이런 역사를 볼 때 지금의 한국 언론들에게 어떤 자정노력을 기대하거나 개혁을 기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믿는다. 그들은 개혁이 불가능하다.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은 기득권 시스템안의 수익체계에 익숙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대우, 그들의 평가, 그들의 은퇴후 생활따위를 지키려는 힘이 기성언론의 개혁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들은 낡은 시대에 어울릴 낡은 생각에 빠져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거기를 나올 생각이 없다. 왜냐면 새로운 생각은 그들에게 초라하고 위험한 자리를 제공할 것이기 때문이다.

 

언론 문제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언론인들의 편향이나 무능같은 것이 아니다. 문제는 과거의 미디어 조직과 거기에 익숙한 사람들이 이미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고 낡은 것이 되었다는 것이다. 기성언론은 이미 충분히 빠르지도 않고, 충분히 전문적이지도 않으며 새롭지도 않다. 그래서 언론이란 이러저러한 것이다라는 관행과 선입견이 있는 사람들이 말하는 개혁책이란 개혁이 아니라 오히려 보신책이 되고 매몰비용을 증가시키는 낭비가 되고 만다. 말하자면 자동차가 나왔는데 마차도 아직 희망이 있다면서 마차를 자꾸 고치려고 해봐야 결국 자동차의 발전속도를 마차가 쫒아갈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에도 언론은 있겠지만 과거의 언론인들은 점점 더 무성영화시절의 변사같은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변사가 힘을 내고 변사가 개혁해봐야 멀티미디어 시대에 뒤쳐지는 것은 그냥 시대적 흐름이다. 이럴 때 변사직종에 집착하는 것은 개혁이 아니다. 

 

그 대단한 언론인이 어디 감히 블로거나 유튜버와 동급으로 여겨질 수가 있을까? 하지만 포털에서 공중파의 방송과 유튜버의 비디오를 나란히 배치하면 시청자는 그 둘의 차이를 잘 느끼지 못할 것이며 심지어 유튜버의 방송을 훨씬 더 알찬 것으로 인식할 수도 있다. 포털에서 조선일보의 기사와 블로거의 글 혹은 게시판의 글을 나란히 배치하면 사람들은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글이 블로거의 글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기성 언론인들은 이런 걸 받아들일 수 없다. 적어도 빠르게 변하는 세상이 요구하는 만큼은 아니다. 

 

이명박 박근혜때 지상파 방송국에서 퇴출된 언론인들이 여기저기 출연해서 지상파 방송국을 지켜달라고 했던 일이 있었다. 그리고 박근혜 탄핵이후 그들은 직장으로 돌아갔다. 사장도 바뀌었다. 우리는 지금 시대에 걸맞는 지상파 방송들을 보고 있는가? 그들은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서 일한 사람들보다는 원칙대로 방송할지 몰라도 결국 달콤한 시스템안에서 기득권을 즐기는 사람이기는 매한가지처럼 보인다. 그래서 나는 그들의 호소가 지금은 매우 한심하게 느껴진다. 

 

통합은 시대적 과제다. 국민들이 편을 갈라 싸우는 일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도 옳고 그래서 어떤 심판같은 존재를 등장시켜서 나라의 중심을 잡자는 생각을 하게 될 때도 있다. 기성언론이 개혁의 좋은 도구로 쓰일 것도 같다. 그러나 그런 중립적이면서도 합리적인 언론에 대한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통합은 적당한 절충으로 만들어 지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 있는 언론을 적당히 고치고 적당히 타일러서 좋은 언론으로 만들겠다는 생각도 환상에 불과하다. 기성언론은 개혁의 도구가 아니라 사라져야 할 적폐에 더 가깝다. 결과물이 마음에 안들면 그냥 보지 말아야 한다. 

 

결론적으로 말해 언론 개혁이란 지금 있는 언론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채널을 돌리는 것이다. 새 목소리를 만드는 것이다. 오직 그런 견제만이 기성언론에게도 위협이 된다. 그래서 진심으로 변할 생각이 들게 할 것이다. 개혁의 에너지를 기성 언론에게 돌리는 것은 언론을 개혁하는 것이 아니라 낡은 체제를 오히려 연명하게 만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선택이다. 좋은 책을 읽고 좋은 블로그를 구독하고 좋은 유튜버를 구독하는 것이 결국은 언론 개혁의 힘이다. 정말 좋다면 주변 사람에게 추천도 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키워낸 사람들이 언론을 바꿀 것이다. KBS에 시청료를 더 주면 좋은 언론이 탄생할까? 그 돈의 백분의 일을 써서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언론 개혁에 훨씬 더 큰 힘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거의 돈을 받지 않고도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겠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로운 채널이기에 기꺼이 국민을 위해 일할 자세가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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