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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지난 10년의 한국 대중 문화를 돌아보며

by 격암(강국진) 2021. 10. 22.

2021.10.21

2009년에 내가 쓴 글을 하나 읽었다. 그 글에서 나는 새로운 사회적 변화는 이미 많이 일어났는데도 새로운 문화, 새로운 문학, 새로운 영화는 나오지 않는 것같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세상이 정말 바뀌려면 그런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럼 그때로부터 12년이 지난 지금 대중문화는 뭐가 바뀌었을까? 

 

보기 나름에 따라 여러가지가 지적될 수 있겠지만 나에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공중파 방송들이 컨텐츠 시장을 독점하던 세상이 TvN이나 Jtbc, OCN 같은 다른 방송에서 드라마와 예능을 만들고 히트를 치게 만드는 세상으로 바뀐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것은 나영석과 신원호 PD가 만든 작품들이다. 나영석은 여러 작품들을 했지만 꽃보다 할배를 2013년에 발표했고 삼시세끼를 2014년에 발표했다. 신원호는 응답하라 1997을 2012년에 발표했다. 물론 다들 아시겠지만 이 작품들은 하나로 끝난게 아니라 크게 인기를 누린 끝에 시리즈로 계속 발표되었다. 신원호는 응답하라 시리즈를 끝내고 슬기로운 시리즈를 발표하기도 했다.

 

 

이 시기 이 작품들만 인기를 누린 것도 아니고 이것이 최대의 인기를 누린 것도 아니지만 이들을 거론한 이유는 이들이 이 시기에 일어난 새로운 문화적 변화를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들만 히트를 친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인기를 누렸고 그 덕분에 세상사람들이 이런 것도 좋아한다는 확신을 여러사람에게 주었다. 그래서 나영석과 신원호의 작품들이 아니어도 아래에서 내가 말한 특징들을 공유하는 작품들은 많이 나왔다. 

 

이들의 작품을 보면 특징이 있다. 그것은 악역이 없다는 것이고 그와 긴밀하게 연결된 것이기는 하겠지만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서사가 약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치 뮤직비디오를 찍듯 느린 템포로 출연인물의 감정적 반응을 천천히 그리고 클로즈업해서 보여주는 일이 많다. 즉 인과적으로 전개되어져 나가는 큰 줄거리가 작품의 핵심이 아니다. 이들의 작품은 소위 막장드라마로 불리는 드라마들과 크게 대조되는데 거기에서는 항상 극악의 캐릭터가 존재하며 가족관계, 사회관계가 복잡하게 사람들을 얽어매고 있다. 그리고 전체적인 줄거리를 짧게 요약해서 들으면 마치 드라마를 다 본 것같은 느낌이 들정도로 서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래서 흔히 지적되는 것처럼 출생의 비밀같은 깜짝 반전 스토리가 남발되는 것이다. 서사가 중요해서다. 

 

반면에 악역이 거의 없거나 가족관계가 거의 강조되지 않는 것이 나영석 신원호 작품의 특징이다. 이 말은 비록 사랑하고 크게 의지하는 가족같은 사람이 등장해도 그들은 대부분 '이해가능한' 존재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이해가능하다는 것은 불화와 갈등이 해결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류의 작품을 보면 우리는 세상에는 이해못할 사람이 거의 없으며 따라서 치유를 받는 느낌을 받는다. 응답하라 1988같은 드라마를 보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가족이나 친구관계로 나오지만 그 안에는 악역도 없고 이해못할 짓을 하는 사람도 없다. 다만 각자의 입장이 있고 그래서 상처를 주고 받는 일이 어느 정도 있을 뿐인데 그것이 소소한 일상이 펼쳐지는 소시민의 삶이며 결코 막장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살인, 출생의 비밀, 원한같은 강력한 감정이 지배하는 것이 그 삶이 아니다. 

 

하지만 서사가 약한데도 왜 이들의 작품들은 인기를 얻었을까? 그걸 극단적으로 잘 보여준 작품이 바로 삼시세끼였다. 꽃보다 할배, 꽃보다 누나, 꽃보다 청춘등 꽃보다 시리즈로 인기를 얻은 나영석이 만든 것이지만 삼시세끼에 처음 출연한 사람들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망했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어디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고 딱히 뭘 하라고 대본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농촌에서 하루 세끼 밥을 해 먹는 것만으로는 방송할 것이 없다고 출연자조차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삼시세끼가 큰 히트를 쳤다. 이에 대한 설명은 여러가지 존재하겠지만 나는 그것이 인간 혹은 개인에 집중한 것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출연진도 몇명없고, 서사가 아예 없다. 제한된 공간에서 서툰 밥짓기를 하는 것만을 찍어 놓고 제작진은 엄청난 편집을 하고 자막을 붙였다. 삼시세끼같은 프로그램은 그래서 출연진이상으로 제작진이 만드는 것이다. 즉 그들은 아무 것도 없기에 들어나는 개인의 세세한 모습을 자세히 관찰하고 그것을 이해하기 쉽도록 편집하고 자막과 음향효과로 설명도 한 것이다. 

 

그래서 나영석 신원호가 대표하는 문화적 변화는 결국 개인주의적 문화의 강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인간을 더 섬세하게 보는 것이다. 그들은 사회나 가족같은 집단이 만들어 내는 어떤 서사나 이데올로기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개인 그 자체를 자세히 관찰하고 묘사하는데 집중한다. 가족이 등장해도 그 가족이 모두 '이해가능한 수준'으로 존재해 줄 때 극을 지탱해가는 힘은 갈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생활의 요동속에서 들어나는 개인의 내면묘사에서 나오게 된다. 나의 아저씨같은 드라마를 보고 외국인이 개인주의가 강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읽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 것은 이같은 측면때문일 것이다. 이같은 것은 사극이나 복수극같은 드라마에서는 가려지기 쉽다. 즉 서사가 개인을 가리게 된다. 

 

삼시세끼나 응답하라 1997은 만드는 사람조차 그래서 성공을 예측하지 못한 것이었다. 실제로 거대 서사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그 재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직도 막장드라마는 만들어 지고 있고, 미생같은 드라마가 만들어 질 때 원작작가가 공중파 방송을 피하고 싶어했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개인의 관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낡은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공중파 방송에 많이 있고, 사실 막장드라마류의 드라마도 시청률은 잘 나온다. 그런걸 잘보는 사람들은 지금도 있다. 특히 노인들이 그렇다. 그들이 미생같은 드라마에 손을 대면 서사가 더 극단적으로 요동치고 그래서 반대로 인물은 밋밋해 진다. 

 

하지만 큰 스케일의 서사와 개인의 묘사는 반드시 상호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사실 개인의 묘사가 섬세하지 못하면 서사의 힘도 약해진다. 예를 들어 한명의 인간이 죽는다고 해도 개인적인 감정을 잘 표현하면 그것이 큰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천명이 죽어도 보는 사람입장에서 시큰둥하게 된다. 최근의 히트작 오징어게임의 6편에서는 주로 세 사람의 죽음이 자세히 그려지는데 그 죽음에 대해 수많은 세계인들이 공감한 것은 한국 작가가 개인의 감정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섬세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그게 빠졌을 때 어벤저스에 나온 타노스가 클릭한번으로 온 우주의 절반의 생명이 죽여도 사람들은 눈물한방울 안흘리게 된다. 

 

개인주의적 드라마들은 다수의 출연자들을 자세히 관찰하고 묘사한다. 그래서 설혹 그 안에 표면적으로 큰 갈등이 있어도 그것이 이해가능한 것으로 묘사한다. 우리는 그런 드라마를 보면서 세상을 좀 더 다면적으로 봐야 할 것을 배우게 되고 치유를 받기도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인생은 단순히 한달수입의 크기로만 비교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로 양분해서 봐야 할 것도 아니다. 인생에는 훨씬 더 깊지만 그래도 이해가능한 측면들이 있다. 우리는 그러한 이해에 도달함으로써 모두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행복한 세상에 살 수 있다. 이런 컨텐츠들이 주는 메세지는 이렇다.  

 

개인을 보라. 좀 더 섬세하게. 그러면 우리는 선과 악으로 나뉘어 싸울 필요가 없다. 이것은 아름다운 신화이지만 사실 신화다. 현실은 막장드라마도 아니지만 나영석, 신원호가 보여주는 그런 평화로운 곳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너무 말도 안되는 짓을 하는 사람들은 멀리하면서 섬세하게 서로를 봐주는 사람들은 가까이 하면서 아름답고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알고 보면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따듯한 사람들이다. 어쩌면 이것이 코리안 드림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오늘날 한류가 인기를 얻는 근원적 이유중의 하나일 수 있다. K-pop가수들도 선한 영향력을 말하고 있지 않은가. 12년전 나는 새로운 문화운동이 없다며 이래서 세상 변하겠냐고 걱정을 했다. 아직도 세상은 다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지금 돌아보면 강력한 문화운동은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걸 한류열풍이라는 열매로 수확하기도 하고 있는 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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