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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신파와 빨갱이

by 격암(강국진) 2021. 10. 18.

오징어게임의 성공 때문에 요즘 한류열풍 이야기가 많다. 그리고 그런만큼 세상에서 더욱 많이 쓰이는 말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신파다. 신파는 본래 일제시대에 가부키같은 구파극에 대비하여 만들어진 말로서 다음 사전에 의하면 신파극은 재래의 창극과 현대 연극 사이의 과도기적 형태의 극을 말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말하는 신파란 이런 것이 아니다. 이 글의 핵심적 주장의 일부이기도 하거니와 신파란 정확한 정의가 없는데 사람들은 관객에게 어떤 감성적 공감을 호소하는 듯한 장면이 나오면 그걸 신파라고 부르곤 한다. 예를 들어 부모나 자식이나 동료의 죽음을 보고 슬퍼하는 캐릭터를 보여주면서 슬픈 음악을 깔고 슬로우 비디오 장면을 튼다던가 하는 식의 장면이 나오면 사람들은 그걸 신파라고 부른다. 이렇기 때문에 우리가 쓰는 신파라는 말을 그대로 번역할 수 있는 영어단어는 없다. 말그대로 번역하면 new wave쯤 되지만 이건 그런 뜻이 아니기 때문이다. 전형적인 (typical)정도가 신파를 설명하는 단어다. 

 

그런데 신파라는 말을 쓸 때 발생하기 쉬운 것이 오만과 딱지 붙이기다. 말의 남용은 좋지가 않다. 내가 비슷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빨갱이같은 말이다. 요즘은 좀 덜하지만 과거에는 걸핏하면 자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에게 습관적으로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들이 말하는 빨갱이란 공산주의자도 아니고 북한찬양자도 아니다. 이들은 그냥 뭐든지 자기 마음에 안들면 빨갱이라고 부르는데 그들은 사실 국가보안법때문에 단지 재일교포하고 이야기만 해도 간첩으로 의심받기도 했던 과거 시대의 공포를 이용했던 것 뿐이다. 즉 빨갱이라고 상대를 부르면 국보법으로 공포를 가지니까 아무 맥락도 없고 정의도 없이 빨갱이라는 말을 남용했던 것이다. 

 

신파도 좀 이런 면이 있다. 신파란 말은 공격적이다. 대중 문화물이 받을 수 있는 최악의 평중 하나가 지겹다, 이런건 이미 많이 본거 아냐라는 말일 것이다. 그러니까 신파는 창작자에게 공포를 주는 단어이며 마치 빨갱이처럼 문맥이 애매하게 남용되는 경향이 있다. 평가를 해주는 사람들은 신파라는 말을 하는 순간 그것이 어떤 효과를 주는지 알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듯이 신파라는 말은 요즘 정의없이 쓰인다. 그래서 어떤 것을 신파라고 부르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그것은 그저 낡았다, 전형적이다같은 말을 조금 다른 말로, 조금 더 악의적으로 말하는 장치일 뿐이다. 

 

그러나 단지 이것뿐이라면 나는 굳이 글까지 써가면서 신파라는 말을 비판하지 않을 것이다. 애매한 뜻을 가진 단어가 만드는 일반적인 문제는 그 단어의 사용이 무고한 희생자까지 만든다는 것이다. 나 역시 야 이건 너무 신파다 싶은 영화를 볼 때가 있다. 하지만 신파라는 말을 너무 많이 쓰면 한국 드라마나 영화가 가진 장점도 죽이게 될 수 있다. 한국 드라마가 일본에 진출했을 때 일본 사람들은 남자도 눈물을 흘리는구나 하는 것에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 드라마의 특징이었고 지금은 일본 드라마에서도 남자가 우는 장면이 나온다. 미국 드라마의 시청자들은 한국 드라마가 감정의 롤러코스터라고 부른다. 그에 비하면 미국 드라마는 너무 메말라서 관객을 끌어들이는 힘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신파적'인 것에 매몰되어서도 안되겠지만 신파라는 말을 너무 남용하다보면 한국 컨텐츠의 힘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전형적이라는 말은 언제나 나쁜 것이라고만 생각할 것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도 교회에 가서 목사님이 예수를 사랑하자고 말하면 참 전형적이군, 또 저 이야기야라고 말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판에 박힌 것이 언제나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전형적이라는 것은 그 사회가 가진 윤리적 이데올로기적 특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 한국인답다는 뜻도 된다. 우리가 그런 것조차 전형적이라고 말하며 섯불리 제거하려고 들면 그건 우리가 가진 정체성을 건강하게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기 파괴가 되어 버린다.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다른 한국적인 것을 그냥 이런 건 전에 많이 느껴봤다면서 우리는 왜 일본이나 미국처럼 안만드냐고 하는 소리가 된다. 그런데 사실 그것도 일본 사람이나 미국 사람에게 전형적인 것은 마찬가지다.  

 

한국 사회는 가족 윤리를 강조한다. 효와 자식 사랑은 정말 지겹게 반복되는 정신이며 그러면서도 효과를 보는 메세지 이기도 하다. 나는 아니야, 그게 지겨워라고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수의 한국 사람들은 여전히 늙은 어머니가 나오고, 예쁜 아이가 나와 위기에 처하는 장면이 나오면 긴장하고 눈물흘린다. 설사 그게 내 아이가 아니더라도 아이는 보호해야 한다. 삶의 무게에 짓눌린 사람이라도 늙은 부모를 위해 혹은 어린 자식을 위해 자기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한국 사회에 많이 있다. 그게 한국 컨텐츠가 가진 특징이자 큰 힘중의 하나다. 아니 사실 그걸 넘어 자식사랑과 효의 문화는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구심력을 만들어 내는 문화적 특징중의 하나다. 그러므로 그건 자주 반복되는데 그런 만큼 그것도 신파로 불리는 경우가 아주 많다. 

 

나는 승리호가 신파라고 비판하고 모가디슈는 신파가 아니라서 좋았다고 말하는 평을 여러번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이게 정말 옳을까? 승리호에서 사람들이 말하는 신파를 빼고 모가디슈에서 신파를 더더욱 빼면 더 좋은 영화가 정말 되는 것일까? 나는 사람들의 의견을 꼭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꼭 이게 한국적이라고 단언하거나 한국적인 것이 옳고, 한국은 변하지 말아야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에 대해서는 옳다 그르다는 말은 통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신파같은 애매한 말로 두리뭉술하게 모든 것을 비판하는 일이 남용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뿐이다. 그리고 한국적 문화도 고정되지 않고 점차 변해가야하겠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기존의 한국 문화도 사랑해 주었으면 한다. 그걸 어디선가 본 것같다고? 맞다. 그럴 것이다. 하지만 그런 걸 다 버리면 무조건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드라마나 영화에 대해 이건 신파라고 말하면 뭔가 더 고상해 보일런지 모르지만 그 정도로 잘 만들기도 어렵다. 대안이 있어야 비판할 수 있는건 아니지만 대안없는 비판이 너무 잦으면 그건 문제다. 게다가 낡은 것도 약간의 조정을 거치면 새로운 것으로 태어나는 일도 많다. 그런데 신파네 뭐네 하며 자주 때리면 아예 한국적인 것이 모두 포기될 수 있다. 

 

나도 신파를 싫어하고 막장드라마를 싫어한다. 내 기준으로는 말이다. 하지만 한류가 퍼져나가는 국면에서는 오히려 신파를 옹오해주고 싶다. 누구도 본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드라마는 나도 보고 싶다. 그런 드라마가 세계로 퍼지는 모습도 보고 싶다. 하지만 그런 것만 답이 아니다. 익숙한 것도 허용해 줄 수 있어야 그런 드라마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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