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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큰 문제와 큰 시야.

by 격암(강국진) 2021. 10. 18.

2021.10.18

유발 하라리의 책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이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습니다. 이 책은 워낙 많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 딱히 중심 줄거리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독후감을 쓸 책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한가지 중심 줄거리는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인류는 이제까지 겪은 적이 없던 거대한 문제들 (환경, 기술적 발전으로 인한 위협, 핵전쟁등)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그것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지구적 연합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그런 연합의 뼈대가 될 수 있는 후보들을 여럿 거론하지만 사실상 어느 것도 확실한 대답이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으며 세속주의를 제외하고는 답을 거론한다기 보다는 그것이 왜 답이 될 수 없는가를 설명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종교와 민족주의는 안되고 자유주의나 시장주의도 부족하다는 겁니다. 앞의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인류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자유 민주주의 조차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자유주의의 본질에는 이성적 개인이 존재하는데 다가오는 문제는 이 인간의 불합리성과 한계때문에 생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낭만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신화는 우리 모두의 안에는 진리를 알고 있는 자아가 존재하며 그 자아를 깨달았을 때 우리가 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만 사실 그런 신화는 종교적 신화들처럼 환상이라는겁니다.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다뤄야 할 데이터들은 그정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직 세속주의만이 그다지 흠이 없는 것으로 묘사되지만 인간의 한계라는 점에 대해서 답이 없기는 매한가지입니다. 

 

여기서 잠깐 과거로 돌아가 보면 침팬지나 고릴라가 1-20마리로 된 무리를 짓듯이 인간은 본래 기껏해야 100여명정도의 무리를 한계로 해서 사회를 이루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문화가 발전하고 특히 문자가 사용되면서 언어가 발달하여 인간은 거대한 사회를 이루고서도 그걸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원시인들에게는 도통 이해가 안되는 왕권이라던가 돈이라던가 민주주의 같은 개념들을 만들고 그것을 모두가 믿는데 성공할 능력이 호모 사피엔스에게는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기록하고 축적하여 문명을 발전시킨 겁니다. 

 

인간이 애초에 거대한 사회를 만드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거대한 분업은 거대한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분업을 하고 지식을 축적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거대한 인구를 먹여 살리는 일은 당연히 불가능합니다. 이 말은 뒤집어 말하면 인간이 문명화되기 이전에는 지속적으로 멸망과 비극이 반복되었다는 뜻입니다. 어쩌다 먹을 것이 부족해 지거나 맹수들의 수가 늘어났다거나 홍수가 났다거나 하면 작은 부족들은 순식간에 몰살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당시의 사회규모로는 이런 재난은 '거대한' 수준이었을 텐데 이 거대한 문제를 당시의 인간들은 더 거대한 사회를 만들어 냄으로서 해결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지금도 문제는 비슷합니다. 이제 수천년 수만년전보다 더 거대한 위기와 질문이 인류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더 거대한 단합과 소통이 필요한 것입니다. 과거에 거대한 사회를 만들던 사람과 그렇지 않고 남아서 수렵채집을 계속 하던 사람들의 운명은 지금 다시 한번 반복될 수 있습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가서 원주민을 거의 다 몰살시켰듯이 뒤에 남아서 새로운 문명에 동참하지 못하고 쳐지는 사람들은 몰살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굳이 그게 새로운 시대의 인간들이 뒤쳐진 사람들을 몰살시킨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번의 코로나 위기가 그걸 잘 보여주었습니다. 코로나 위기에 잘 대처한 나라는 경제와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만 집단적인 야만을 보여준 나라는 그 둘 다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번 위기는 나라가 망할 정도의 위기는 아니었는지 몰라도 다음번에 더 큰 파도가 몰려올 때 야만을 보여주는 나라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의 눈에 그 나라는 자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하라리가 강조하고 있는 것처럼 이제 개인의 지식과 능력으로 사회를 이해하고 이끌어 나갈 수 있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중의 가장 뛰어나고 깊은 지혜를 가진 인간도 사회를 운전해서 우리에게 달려드는 거대한 위기의 파도를 피해 나갈 수는 없다는 겁니다. 미래를 모르니까요.  그렇게 할 가능성이 있는 것은 사실상 단 두가지 존재뿐입니다. 

 

하나는 매우 발달된 AI입니다. 이 인공지능은 전 세계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가지고 지구를 지켜나갈 능력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실 이런 AI는 존재하지 않고 금방 출현할지도 알 수 없으며 우리가 세상의 흐름을 모두 AI에게 맡켜버리고 뒤로 쳐지고 만다면 그 미래는 인간이 필요없는 미래일 것입니다. 알파고가 바둑을 둘 때 우리는 그 바둑을 이해못합니다. 그냥 알파고가 시키는대로 바둑을 둘뿐입니다. 그러니까 오로지 AI로만 문제를 해결하는 미래란 이해는 못하지만 AI가 시키면 인간은 무조건 복종하는 미래입니다. 인간이 AI를 이용한다는 것과 좀 다르죠. 

 

또 하나는 매우 발달된 AI와 연결되어진 다수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집단지성입니다. 첫번째 가능성은 실현되도 문제도 있고 실현여부도 훨씬 불확실합니다. 그래서 사실상 세계를 구할 유일한 비전은 이것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공지능과 연결된 인간이라고 해서 머리에 전선을 꼽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상 온라인 커뮤니티에 모인 소비자 단체 같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보다 더욱 발달된 기술과 더욱 계몽된 인간들을 요구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이번에 재난지원금을 지불할 때 한국에서는 기재부의 고집으로 굳이 88%의 사람에게 준다는 복잡함이 더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에서 전국민 재난지원금을 주는 것보다 4배나 빨리 지급이 끝났다고 하더군요. 백신접종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은 OECD 국가중에서는 백신접종을 비교적 늦게 시작했는데도 일단 접종이 시작되자 전세계 어디보다 빨리 접종을 해서 이제는 거의 최상급의 접종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이 집단지성의 일부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에는 데이터의 흐름을 위한 인프라도 필요하고, 그런 인프라를 잘 사용할 수 있는 사람들도 필요합니다. 빠른 판단도 필요하겠죠. 앞에서 말했다 시피 이런 것들이 모여서 전 지구적 재난에 대해 각각의 나라가 어떻게 대처하는가가 차이가 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차이의 극한에 가면 그 차이가 거의 자살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정도의 차이가 날 수 있습니다. 비트코인같은 것이나 테슬라같은 기업을 보십시요. 집단적으로 그런 흐름을 이해하고 전혀 다른 혁신성으로 반응할 수 있다면 다른 나라들은 거의 사기당하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코로나에 잘 대처한 결과 한국은 다른 나라의 컨텐츠 생산이 거의 멈춰섰을 시기에 오히려 투자를 더 받아서 더욱 양질의 문화컨텐츠를 생산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넷플릭스의 드라마 세계 순위 1등이 한국 드라마일뿐 아니라 다른 드라마가 2편이나 더 있죠. 어쩌면 이것도 그저 시작일 수 있습니다. 한류가 만들어 내는 이 거대한 변화가 오히려 작은 변화들로 여겨질 만큼 이것들이 모여서 한국의 경제적 외교적 지위를 크게 바꿀 수도 있습니다. 거대한 파도속을 홀로 잘 헤쳐나가는 배처럼 말입니다. 

 

그 끝에 가면 이상사회의 모범으로서의 위치가 있습니다. 참 웃기는 일입니다. 박근혜 정권이 불과 5년전이고 그때만 해도 헬조선이 유행어였는데 우리는 벌써 인류 사회의 이상으로서 한국을 이야기하는 위치에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이것은 많이 이른 이야기이기는 합니다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는 한국이 잘나서라기 보다는 시대가 그렇기 때문입니다. 

 

글의 처음에 말한대로 인류는 지금 미증유의 거대한 문제들과 부딪히고 있습니다. 이것들은 자본주의 파산이라던가, 기후재앙으로 인류멸망 운운하는 이야기도 그렇게 낯설지 않을 정도의 스케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세계는 정신적 파산상태입니다. 세계의 2강이라 불리는 중국과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도 그다지 세계가 보고 따라할 모범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혁신으로 세상을 구원할 길을 찾아야 하는데 이에는 기술만 필요한게 아닙니다. 앞에서 말한것처럼 그 기술과 하나되어 집단지성을 발휘할 이상적 사회가 필요합니다. 다시 말해 일론 머스크 같은 기업가로는 한계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기술과 경제를 넘어서는 지성적 사회 공동체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마침 코로나 위기라는 작은 시험대가 세계에 주어졌습니다. 아시다시피 서구권과 일본은 여기서 낙제했죠. 가난한 나라들은 자기 살기 바쁘거나 죽기 직전입니다. 대만이나 싱가폴같은 것은 나라가 아니며 중국은 세계의 리더가 될 자격이 애초에 없습니다. 한국이 나선게 아닙니다. 말하자면 왠만한 나라들이 전부 탈락해서 한국밖에 안남았달까요. 한국은 지금 자유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쯤 됩니다. 격리없이 시민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없이 코로나와 싸워이길 수 있다는 유일무이한 증거입니다. 물론 누군가는 그걸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다음번에 코로나 보다 더 쎈 바이러스가 퍼진다면 그때는 한국을 따라할 겁니까. 아니면 미국이나 영국이나 일본을 따라할 겁니까? 다음번 선택은 생사의 선택일 수도 있습니다. 

 

불과 10년전만 해도 북한문제에도 발언권이 없던 한국이 갑자기 이제는 세계적인 책임감을 느낄 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미 그런게 아니라면 말이죠. 세계 민주주의와 인권 그리고 식량난과 기후문제에 이르기까지 한국이 나서야 할 것같은 때가 다가오는 겁니다. 물론 한국 혼자 뭘 할수는 없겠죠. 한국의 경제규모로 보면 한국은 사실 대단치 않습니다. 하지만 모범을 세우고 유행을 선도한다는 쪽으로 가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마스크를 왜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을 봐라 거기는 다 마스크 잘쓰니까 죽는 사람이 훨씬 적다라는 식이 되면 돈과 권력은 한국으로 모여들 수 밖에 없습니다. 

 

어느 쪽이 원인인지 결과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한류는 극한으로 잘되고 있습니다. 음식, 음악, 드라마, 웹튠등 여러분야를 총망라합니다. 이것이 세계가 이미 한국을 하나의 모범사회로서 진정한 선진사회로서 인식하기 시작하기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한류때문에 그런 인식이 퍼지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쪽이 되건 흐름상 한국은 지금 급물살을 타고 있습니다. 마치 몇년안에 통일도 할 그런 기세입니다. 

 

이것은 물론 한국인에게 자랑스럽고 좋은 일이지만 이건 꼭 그런 일만은 아닙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모든 일의 원인은 거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하는 절박함이 지금 지구에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답으로 여겨지면 시도해 봤다가 아니라고 여겨지면 버려지겠죠. 어쩌면 한국은 자랑스런 리더국가가 되는게 아니라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유리 사다리 건너기에서 맨 앞에 서있는 사람에 불과할 수 있습니다. 맨 앞에 세워두고 언제 죽나 본 다음에 그걸 따라 하겠다는 것이죠. 큰 문제는 큰 답을 요구합니다. 그리고 그 시대적 상황이 지금 한국을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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