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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결혼제도 정말 사라질까?

by 격암(강국진) 2021. 11. 2.

21.11.1.

결혼제도의 붕괴는 가정이라는 자연스러운 공동체 전통이 사라지는 일이다. 결혼제도가 꼭 영원할 필요는 없지만 그 공동체의 역할을 대신할 어떤 사회적 제도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많은 개인들은 여러가지로 취약해 질 것이고 큰 사회문제가 될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출산률감소로 인한 젊은 인구의 감소다. 결혼제도 없이도 아이는 키울 수 있고 그런 방법을 찾아내면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설혹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도 과연 수천년된 결혼제도가 사라지고 새로운 제도가 정착하는 과도기가 어느 정도의 혼란을 만들까. 그 혼란의 크기는 예측할 수 없는 수준이다. 가정은 말하자면 인간사회의 원형으로 수없이 긴 세월을 지켜온 것으로 그만큼 윤리적 가치관적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심하게 말한다면 가정이 없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존재를 우리가 과연 인간으로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일 정도다. 그게 가능하다고 해도 그건 어떤 다른 존재가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결혼제도가 사라지긴 왜 사라지냐고 그건 과장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들에게 여러 해외 매체에서 21세기에 사라질 것중의 하나로 결혼제도가 꼽힌다는 사실이 크게 와닿지 않을런지는 모르며 적어도 그것이 한국의 현실은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한국의 현실을 보라. 한국은 전세계 최저의 출산률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요즘 사람들이 결혼을 점차로 늦게하는 추세라는 사실도 크게 기여 한다. 요즘은 40대에 결혼하거나 비혼으로 사는 사람도 늘고 있다. 

 

그저 막연히 결혼제도가 영원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우선 스스로가 결혼제도에 대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봐야 할 것이다. 노년세대를 제외하면 요즘 한국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그리고 습관적으로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요즘은 20대 초중반의 여성이 결혼하면 '왜 그렇게 빨리 결혼하냐, 아깝다.'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이 많다. 생각해 보면 나도 그런다. 사람이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되는 것이고 진정한 삶을 시작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노인들, 결혼을 꼭 해결해야 할 인생의 숙제로 여기는 노인들의 태도는 사라지고 있다. 결혼하지 못한 노총각 노처녀를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태도는 연일 스스로가 진보적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비판받고 있다. 

 

한국 여성들은 결혼이란 여자가 손해보는 것이며 나아가 인생을 망치는 것이라는 말을 직접 많이 하거나 적어도 많이 듣는다. 여자가 결혼하여 배우자가 생기고 임신을 하고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인생 망하는' 것이라는 말을 직설적으로 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암시하는 사람은 아주 많으며 이것은 아예 공공연하게 진보적 페미니스트에 의해 교육될 때도 있다. 이들에 따르면 관습적인 가정이란 오로지 여성착취를 위한 제도라는 것이다. 편의상 나는 이 주장을 유부녀론이라고 부를 것이다. 유부녀론은 결혼제도에 있어서 여성은 무조건 피해자이며 남성은 착취하는 가해자라는 주장을 바닥에 깔고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여성은 결혼을 해서는 안되고 이미 결혼한 여성은 피해의식을 가져야 한다. 결혼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은 이미 희생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결혼이 손해라는 말은 유부녀론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남자들 사이에서도 있다. 즉 결혼제도에 있어서 남성은 무조건 피해자이며 여성은 착취자라는 것이다. 이런 말이 어디있냐고? 페미니스트에 대응되는 남성권리옹호론자같은 것은 제도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주장이 공식화되지 않았을 뿐이다. 사실 이런 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나는 30여년전에 대학에 다닐 무렵 이런 말을 했던 후배를 기억한다. 평생 연애를 해본 적이 없던 그 후배의 주장에 따르면 여자들은 미래에 대한 부담도 없이 젊을 때에는 잘생긴 남자들과 어울려 놀다가 결혼적령기가 되면 자기처럼 밤이고 낮이고 공부만 하던 사람을 찾아와 결혼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결혼하고 나면 자기는 계속 죽자고 일을 하면서 그런 여자를 먹여살리고 사치를 부리게 해줘야 한다고 말하며 분개했었다. 최근에 나는 소위 설거지론이라는 말이 인터넷에서 유행했다는 말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그게 뭔가해서 찾아보니 바로 내가 들었던 30년전의 말이 그 설거지론과 거의 같은 말이었다.

 

아줌마론이든 설거지론이든 그들은 듣는 사람들을 분개하게 만들고 피해의식을 느끼게 만드는 일종의 세뇌적 이데올로기다. 여기에 설득당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피해자로 여기게 된다. 미혼자들은 결혼을 망설이게 되고 기혼자들은 이혼을 택하지 않더라도 자신을 피해자로 여기며 울분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두 주장은 모두 일정 부분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설득력이 있는 것이다. 

 

한국과 외래 문화가 혼재하는 한국에서 각종 문화적 관습중 자기 편한 것만 택하고, 남 공격하기 좋은 것만 택해서 이건 공평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은 아주 많다. 예를 들어 남녀평등은 오늘날 상식이지만 여성중에 자기보다 학벌이 낮고 돈을 못버는 젊은 남자를 만나서 가정주부를 시키고 결혼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사실 남자들 중에는 그런 사람들이 더 많은데 말이다. 또한 집안일을 하는 여성 가정주부를 비하하는 일에는 분개하며 가사노동의 가치를 높게 봐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전업주부로 사는 남자가 있다면 저런 백수는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고 서슴없이 말하는 한국 사람은 많다. 여성론자들은 남자들이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말하고 싶겠지만 그 점에서는 여성도 예외는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결혼제도가 위기에 처하게 되는 근원적인 이유는 결혼제도를 지탱하는 두 개의 큰 기둥인 섹스와 자식이 모두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보다 개방적인 성윤리가 그 자체로 옳고 그른가를 논하는 것과 개방적인 성윤리가 결혼제도를 흔드는가 하는 것은 서로 다른 문제다. 개방적인 성윤리는 결혼제도를 위태하게 한다. 위에서 말한 설거지론의 중심적 문제제기중의 하나가 바로 성윤리라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즉 성적으로 제한이 별로 없는 사회에서 남자가 전통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문제제기가 설거지론의 일부로 포함되어져 있다. 

 

개방적 성윤리는 전적으로가 아니라면 상당부분 서구에서 유입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가 만들어 낸 것이다.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가치있게 말하고 자유의 확장이 무조건 세상을 더 살기 좋게 만든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의 테두리를 건드리게 되고 이것을 적어도 일부의 진보주의자들은 억압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교통법규없는 자동차 문화가 있을 수 없듯 자유만 있는 공동체는 있을 수 없다. 그런 공동체가 있다면 그건 사실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방적으로 착취당하며 그 공동체의 테두리를 위해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오랜간 서구를 선진국으로 여겼기 때문에 서구의 문물이 바람직한 것이며, 적어도 그렇게 살아도 사회가 붕괴하지 않고 발전할 수 있는 문화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므로 미국 사람처럼 사는 것이 선진적이며 진보적이라는 식의 태도가 존재했고 지금도 존재한다. 하지만 한국도 이미 선진국의 하나가 되었고 다른 선진국의 삶이 그렇게 바람직한 것만은 아니라고 할 때 우리는 이런 비주체적 문화수용의 태도를 반성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흑인들을 생각해 보면 전체 아이의 절반이 편모나 편부에게 키워진다고 한다. 그리고 흑인은 가난하고 범죄자가 되는 경우가 아주 많다. 이것이 과연 미국 문화가 그들을 망친 것이 아닌게 확실할까? 잘못 퍼진 서구문화가 종국에는 한국인들을 비참하게 살게 할 가능성이 없을까? 사실 서구 문화가 들어가서 서구 사람만큼 잘 살게된 유일한 나라가 한국이며 이말은 부정적인 사례가 훨씬 많다는 말이다. 

 

나이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서구 문화의 영향이 때문인지 요즘은 나이가 들어서 큰 나이차이를 가지고 연애하는 일에 대한 사회적 비난도 별로 없다. 연애와 결혼을 굉장히 깊게 연관된 것으로 보던 과거에는 나이가 10살씩 차이나는 커플은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는 분위기가 있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고 그 결과 생활이 안정된 나이든 사람이 젊은 사람과 연애를 하는 일이 늘었다. 과거와는 달리 관리를 잘하는 요즘은 40대도 꽤 젊고 건강하다. 차도 있고 집도 있고 돈도 있고 인맥도 있는 사람들과 연애를 하는 것이 좋을까 아니면 아무 것도 없는 젊은이들이 연애를 하는 것이 좋을까? 요즘 젊은이들은 오히려 연애를 잘 안한다고 한다. 본래 집안이 풍족한 사람들은 예외겠지만 가진 것없는 젊은 사람들이 만나면 드라마나 영화에 나오는 것같은 연애를 도저히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나면 오히려 비참해서 안 만난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성윤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사회는 이렇다. 사람들이 결혼을 안한다. 돈이 있으면 연애상대는 어디서든지 쉽게 구한다. 돈이 없어도 가끔 술집같은데 가서 하룻밤 섹스파트너나 구해서 성욕을 해소할 수있다. 오히려 결혼이나 사랑같은 관계는 너무 부담스러워서 섹스를 하는 상대방의 입에서도 사랑이니 결혼이니 하는 말이 나오면 질색을 하고 당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아예 연애와 섹스를 포기하고 사는 사람들도 늘어난다. 물론 생활이 안정된 사람과 사귀는 사람들은 그 사람과 결혼을 하기는 원하지만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대개 결혼하기를 꺼려서 계속 연애만 한다. 10년동거를 해도, 심지어 아이를 낳아도 여전히 그냥 사귀는 사이일 뿐이다. 어느날 싸우거나 다른 상대가 생기면 다음날로 끝이다. 그렇기에 상대방이 결혼하자고 하면 눈물범벅이 될 정도로 감동을 하는 경우가 있다. 이게 지금의 한국 보다 살기 좋은 세상, 남자에게건 여자에게건 좋은 세상 맞을까?

 

결혼제도를 지탱하는 다른 기둥인 자식도 요즘에는 미덥지가 않다. 좀 잔인한 말같지만 오늘날에는 자식을 키우는 일이 그리 수지맞는 일이 못된다. 사람들의 수명은 길어졌다. 자식은 더이상 살아있는 연금이 되어주지 못한다. 경제적으로 의지가 될만한 자식을 키워내는 일은 오히려 점차 더 어려워지고 있다. 요즘은 아이를 하나나 둘을 키우는 것도 버겁다. 교육비는 물론 아이 키우기에 들어가는 시간과 에너지는 날로 커지는데 그렇게 큰 아이가 20대는 물론 30대가 되어도 독립하지 못하는 짐이 될 가능성도 상당히 크다. 돈도 돈이지만 요즘 아이들은 요구사항이 높다. 돈 걱정이 없는 재벌집안이라도 아이를 5명씩 낳았다가는 부모가 바뻐서 자기 시간이 전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뭔가를 많이 하고 싶은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키울 수가 있겠는가? 일에 찌든 현대 한국인이나 집에서 자식이나 돌보고 있는 것은 인생실패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이 애를 여럿 나을 수 있겠는가? 애초에 결혼을 안하고 일중독자로 사는 것이 멋진 인생이라는 말은 언제나 듣고 있는데? 

 

결혼제도, 가정이라는 제도는 사라져서도 안되고 사라질 리가 없다고 말하기는 쉽다. 출산률을 올려야 한다고 말하기는 쉽다. 그런 일이 있어도 성윤리가 보다 개방적이라는 외국에서나 있을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면 결혼제도는 이미 위기이며 문화적 혼동이 심한 한국에서 더욱 위기처럼 보인다. 물론 먼 미래에도 결혼제도는 남아있겠지만 실제로 결혼하는 사람은 상당히 소수인 미래가 지금 살아있는 우리가 죽기 전에 올 수도 있다. 이 글을 시작할 때 와서는 안된다고 말했던 그 미래가 말이다. 이런걸 생각하면 불과 몇년전에 겨우 애들 무상급식하는 걸로 나라망한다고 투표까지 하게 했던 사람이 지금 서울시장을 다시 하고 있는 현실이 암담하기만 하다. 

 

만약 결혼제도가 사회를 지켜가는데 있어서 핵심적인 기능을 한다고 믿는다면 오늘날 같은 시대에는 결혼한 사람에게 강력한 인센티브를 주는 수 밖에 없다. 무상급식이 아니라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필요하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이를 돌보는 일은 단순히 학교보내는 것만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일은 확실히 정치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문화적 변화는 관성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결혼제도가 약화되어져 가는 추세는 이미 엄청나다. 그걸 뒤집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고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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