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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성욕과 식욕, 동서양의 차이

by 격암(강국진) 2021. 12. 30.

2021.12.12

인간은 모두 성욕과 식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인종차별적 이야기가 되기 쉽기 때문에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강조하는 일은 별로 없고, 이걸 객관적으로 증명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일 것같지만 동양과 서양사이에는 성욕과 식욕의 정도가 차이가 있는 것같다. 미리 말해두지만 이건 그냥 내 개인적 인상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이야기를 정리해 보는 것은 주로 문화적 자유를 위한 것이다. 즉 보통 사람은 이렇다는 기준의 압력에 쉽게 굴복하지 말고 자기 생각대로 살면 된다는 것이다. 요즘 시대에 이건 상식이지만 이것에 반하는 일을 오히려 해방의 메세지로 말하는 일도 많은 것같다.

 

세계는 점점 작아지고 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인간은 이렇다 저렇다하는 식으로 모든 사람을 하나의 인간이라는 보편적 잣대로 이야기하는 일이 많을 수록 우리는 개개인에게 더 강력하게 좁은 상식을 강요하게 된다. 성생활은 좋은 예다. 서양의 기준이 흘러넘치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인데 아직 성경험이 없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된다. 그리고 성생활에 대한 강조가 나같은 한국인에 대한 입장에서 보면 지나친 경우도 있는 것같다. 즉 즐거운 성생활이 행복에 중요한 것이기는 하지만 조금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인상을 받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서양에서 부부가 나오는 방송을 보면 그들은 끝없이 서로를 허니니 달링이라고 부르고 사랑한다를 외치며 서로가 여전히 서로에게 성적으로 매력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일이 많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방송에서 뿐만 아니라 실생활에서도 '한국인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 부부사이에 성은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이며 이것은 노년기에 접어든 사람들에게도, 한국인에게도 미국인에게도 그렇다고 나는 믿는다. 하지만 물론 그게 다는 아니다. 이것 역시 서양에서도 동양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서양에서는 유독 성을 너무 강조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화목한 부부란 서로가 서로의 몸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그런 부부다라고 딱 결정지어놓은 느낌이다.

 

그런데 이런 지적을 나같은 한국사람이 서양인에게 한다면 그들은 뭐라고 할까? 아마 그들은 동양인들은 여전히 성을 터부시하며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너희들도 성욕이 있지 않냐고 말할 것이다. 물론이다. 동양인도 성욕이 있다. 하지만 이런 흑백논리적 반박은 뭔가 찜찜하다. 인간이 식욕이 있다는 것이 인간이 먹기위해서만 산다는 뜻은 아니다. 서양이라고 어떤 선이 없는게 아니다. 서양이라고 7살난 아이가 섹스를 하는게 정상이라고 하지는 않지 않은가.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구적 문화패권의 시대를 오래 살면서 서구인들은 그들의 상식을 강요하는 일이 많았고 그들과 다르면 그걸 억압의 결과라고 하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즉 자기들만 정상이고 자기와 다른 사람은 문화적 억압으로 비틀어진 인간이라는 식이다.

 

사실 서양인과 동양인은 유전적인 차이도 분명하다. 대체적으로 백인들은 한국인들보다 훨씬 더 빨리 성인같은 외모가 되고 더 빨리 늙는다. 이 때문에 한국 사람이 미국인이나 프랑스인을 만날 때 서로 제일 놀라는 것중의 하나가 외모로 추정한 나이다. 한국 사람에게 누군가가 14살난 여자아이와 섹스를 했다고 하면 대부분 매우 놀란다. 이것은 일정부분 한국의 나이세는 방식이 틀려서 나이 인플레이션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14살은 서양나이로는 12살이나 13살인데 그 시절에는 한두살차이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모를 보면 너무 다르다. 서양의 14살은 한국인이 보기에는 종종 20대 심지어는 30대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이것은 반대로도 사실이다. 30대인 한국사람이 서양인이 보면 10대중반처럼 보이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서양의 14살난 여자아이가 섹스를 해도 괜찮다는 말은 아니지만 사실 그들의 사진을 보면 내가 아는 여대생들보다 훨씬 어른같아 보이는 일이 많다.

 

다시 말해 그게 중요한 기준이 될 수는 없겠지만 사실 외모로 보면 한국인의 성생활이 20대나 되어서야 활발하고 서양인은 10대부터 그렇다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는 것이다. 이런 유전적 차이가 있는데도 그냥 인간이라는 테두리 안에 다 집어넣고 고등학생도 성생활의 권리가 있다 운운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럼 왜 초등학생은 성생활의 권리가 없는가? 이게 지금 누구 기준인가?

 

여담이지만 법적인 현실은 이런 외모적인 현실과는 반대다. 미국에서 성인이 미성년자와 섹스를 하면 크게 처벌받지만 한국에서는 그다지 큰 처벌이 없는 것같다. 강간이 아니면 그냥 대충 봉합되는 느낌이다. 이건 또 왜 이런지 모르겠다. 미국법은 청소년을 바보취급하고 한국법은 청소년의 판단을 존중해 주는 것인가?

 

내가 미국이나 영국에서 살면서 느낀 동서양의 차이점중 하나는 식욕에 대한 것이다. 성욕과 마찬가지로 당연히 서양인들도 식욕이 있고 그들도 나름 미식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서양인 그중에서도 특히 미국인과 영국인은 어떤 의미로 식욕이 없는 것같아 보인다. 한국인인 내 관점에서 보면 그들에게 음식은 그냥 에너지원이고 맛있는 음식은 설탕덩어리나 고깃덩어리라는 느낌이랄까?

 

내가 서양 요리 문화에 대해 무식하다거나 비만환자가 넘쳐나는 서양이 식욕이 부족하다는 것이 말이 되냐고 말하는 소리가 이미 귀에 들려오는 것같다. 내가 말하는 것은 삶의 중심으로 식사를 생각하는 태도가 한국인과 서양인 특히 미국인의 경우는 많이 다르다는 점이다.

 

한류 드라마나 영화가 서양에 도달하고 나서 많이 들리는 지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의 드라마나 영화에는 유독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은 누굴 만나면 언제 밥한번 먹자고 하고, 뭔가를 선물로 줄 때는 종종 먹는 걸 주는데 그걸 주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게 아주 몸에 좋아요.' 한국인은 반찬없이 밥을 먹는 것에 거의 죄책감을 느낀다. 서구화된 이유로, 바쁘다는 이유로 서구인처럼 먹고사는 사람도 많지만 한국사람들은 미국드라마를 보다가 식빵에 젤리피넛버터같은 걸 발라서 아이들 점심이라고 싸주는 장면이 나오면 저게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인가하고 어리둥절해한다. 그 미국 사람의 집은 그럴듯하게 보이는 걸로 봐서 중산층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의 제일 흔한 취미가 등산인데 사실 한국인이 산에 가는 주된 이유는 산행 후에 먹고 마시는 것이다. 산밑에 동동주에 파전과 도토리묵을 파는 집이 없다는 것은 한국인에게는 분노가 생기는 수준의 일이다. 미국인은 한국인이 집집마다 김치냉장고가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 한국에 얼마나 많은 식당들이 있는가에도 놀란다. 한국의 나이트라이프도 뜨겁기로 유명한데 이것도 상당 부분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한 것이다.

 

이걸 두고 미국인은 이렇다던가, 한국인은 이렇다고 단언하는 것은 나름의 문제가 있을 것이다. 빠른 일반화다. 하지만 그렇다면 그것 이전에 인간은 이렇다는 말은 문제가 없다는 말인가? 게다가 사실 그 인간이라는 것이 이 서구중심적 사회에서 곧 서구인을 의미하는 경우가 많은데도 말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오늘날 이때문에 해방이라는 말은 너희들도 서구인처럼 변할 수 있다는 뜻일 때가 많다. 서구인과 다른 것은 인간의 본성을 억압한 결과이며 그 억압을 제거하면 너희들도 자연스러운 인간인 서구인과 같아질거라는 식이다.

 

요즘 한류열풍이 뜨겁다. 나는 한국문화가 인기를 얻어가면서 내가 이 글에서 지적한 문제가 여러분야에서 지목되고 있다고 믿는다. 미국 할리우드 문화가 세계를 지배할 때 우리는 문화적 지배를 받는 다는 느낌도 없었다. 식문화와 성문화가 할리우드식으로 독점되고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동양인 남자는 결코 매력적이지 않다는 것이지만 성문화나 식문화도 이에 못지 않다.

 

서구시청자들은 눈맞으면 바로 침대로 들어가서 섹스를 하는 커플이 나오지 않는 한국 드라마를 참신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첫키스를 하는데 10화나 걸려도 상관하지 않는다. 먹고 마시는 일에 몰두하는 한국인들을 보면서 저것도 나름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인들은 술을 마실 때 종종 아무 것도 없이 술만 마신다. 한국인에게 술이란 그 자체도 좋지만 종종 안주를 먹기위한 핑게다. 안주없이 술만 마시는 사람은 뭔가 아주 충격적인 일을 겪은 비정상적인 사람이다.

 

우리가 어딘가에 선을 그어서 이것이 좋은 것이고 저것이 나쁜 것이라는 절대적 기준을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문화적 패권은 그런 일을 자연스럽게 해낸다. 어떤 사회도 어딘가에는 선을 긋고 어떤 종류의 상식을 만든다. 미니스커트는 한때 한국에서 충격적인 옷이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옷이 되었다. 그렇다고 노출은 권리니까 지금 한국 길거리에서 누드로 다녀도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는 선의 문제고 정도의 문제지 흑백논리의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그 선은 말로 하기 어렵고 잘 보이지 않는다. 문화적 패권때문에 특정 문화에 자꾸 노출되면 그냥 그 선이 자연스러워 보이고 그 선을 넘으면 비정상인것 같고 그렇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은 길거리에서 누드로 다니지 못하지만 대중목욕탕에는 거리낌 없이 간다. 이것도 문화적 선을 흡수한 결과다.

 

나는 꼭 한국이 정답이고 기준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몇가지는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세계는 지극히 오랜동안 서구 문화 패권에 휘둘려온 결과물이다. 그래서 우리의 눈은 어느 정도 그 방향으로 편향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해방이나 자유라는 말이 꼭 나쁜 건 아니지만 그런 말도 잘 들어야 한다. 그 말은 정상인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문화적 해석에 따라 반대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게이를 비정상인으로 보면 게이를 치료대상으로 보고 치료하는게 바로 '해방'이라는 뜻으로 쓰일 수 있다. 성욕을 비정상으로 보면 그걸 없애는게 해방이다. 직장인이 되는게 정상이면 가정에서 탈출하는게 해방이다.

 

한류열풍은 내가 한국인이라서 더 기쁜 것이지만 그래도 나는 전체 인류에 대한 큰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서구 문화만 있으면 사람들은 서구 문화가 뭔지를 모른다. 이제 한국문화도 인기니까 그들은 둘을 나란히 놓으면서 아 서구 문화라는게 이런거구나하는 것을 한국 문화와 함께 배울 것이며 그들 자신의 문화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도 가지게 될 것이다.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정답이 미국문화도 한국문화도 될 필요는 없다. 자기의 선택대로 살면 된다. 그러나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넓게 생각하고 신중히 선택하지 않으면 자기의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자유를 위해 나선 길이라고 생각한 것이 사실은 그냥 세뇌의 결과일 수 있으며 노예가 되는 길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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