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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한류가 제시하는 새로운 이야기

by 격암(강국진) 2021. 12. 30.

2021.12.17

봉준호와 BTS 그리고 최근 오징어 게임의 성공이래 많은 국내외 언론과 일반인들이 왜 한국 문화가 인기를 얻는가에 대해 여러가지 설명을 제시해 왔습니다. 안타까운 것은 적어도 초기에 그것이 정말 일본인이나 중국인의 시기심때문에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한류성공의 가장 큰 설명으로 국책사업론이 퍼졌다는 겁니다. 일본이나 중국에는 물론 미국이나 유럽의 기사도 한국 정부가 정책을 잘 폈다, 많은 투자를 했다는 식으로 설명하는 말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헛된 설명은 오래가지 못하는 법입니다. 사실 국책으로 문화사업이 성공한다면 일본과 중국의 돈을 한국이 어떻게 이기겠습니까. 이명박정권때 한식홍보한다고 당시의 영부인이 돈을 마구 썼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아무 효과도 없었죠. 그리고 지금은 한식홍보에 따로 돈을 쓰지 않아도 한국음식은 매우 인기가 좋습니다. 이게 무슨 국책사업의 결과이겠습니까.

 

한국문화가 성공하는 이유는 한가지가 아니며 한국문화라고 뭉뚱그려 말하지만 분야별로 작품별로 매력를 끄는 요소는 서로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와 관련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아주 중요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를 휩쓰는 이야기들의 구조 특히 서구 문화의 이야기 구조가 어떤 것이고 그에 반하여 한국의 이야기는 뭐가 다른가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나온 듄이라는 영화를 보면 다시 한번 확인되는 것이지만 지금 세계를 뒤덮고 있으며 끝없이 반복되어 더이상 매력이 없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왕과 귀족이 나오고 기사가 나오는 봉건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제국주의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사실 서구 사회에서 왕이나 귀족이 하는 주된 일은 싸움이었습니다. 그들은 오직 정복을 통해서 세금을 거두고 나라를 지키고 나아가 나라를 넓혔습니다. 디즈니 랜드에 있는 첨탑이 멋진 성은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유럽의 성을 본따 만든 이 성이 이렇게 생긴 이유는 성바깥으로부터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싸움을 하고 자기를 지켜야 하니까 그렇게 높다란 벽이 있는 성을 만들 필요가 있었던 것이죠. 이 봉건시대에 대한 이야기는 서부영화나 스타워즈같은 영화에서도 구조적으로 복사되어 반복되며 최근에는 슈퍼히어로물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아서왕의 이야기나 어벤져스나 그게 그거죠.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같은 작품들도 물론 그 배경으로 가진 것은 기본적으로 봉건시대의 논리와 문화입니다.

 

이러한 현실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우선 지금의 세계에서 대한민국을 제외하고 선진국이라고 하는 나라는 모두 제국주의의 후예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과거 다른 나라를 침략했고 식민지로 부를 쌓아올렸습니다. 물론 그 이후 그 나라들은 모두 민주화의 과정을 거쳤지만 그런 개혁의 기운은 이미 그 선진국들에서는 희미합니다. 선진국들은 모두 매우 보수적인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봉건주의의 이야기는 매우 훌룡합니다. 봉건주의의 이야기는 적을 바깥에 가지며 세상은 이런 적들의 악의와 혼돈으로 가득 차있는 곳이며 일반사람들은 어리석고 무력하여 자신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그 배경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웅이 필요한 것입니다. 영웅이 모두를 지키고 찬양을 받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영웅에게, 힘있는 자들에게 무력한 시민들이 복종하는 것이 자명합니다. 빛나는 갑옷을 입은 기사에 비하면 무식하고 힘없는 농부는 존재감이 미미합니다.

 

봉건주의의 이야기는 선진국들의 제국주의 과거를 미화합니다. 정복자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만들면 정복은 피할 수 없는 것이며 자연스러운 것이됩니다. 일제를 찬양하는 일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조선이 스스로 일본의 일부가 되고 싶었고 일본은 이를 가여워하여 합병해주었으며 발전시켜주었다는 식의 시각이 정당화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국주의의 후예들이 자신들은 예나 지금이나 참 좋은 사람이었다는 시각을 가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죠. 조선사람들은 절대로 스스로 발전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고 단언하는 겁니다.

 

봉건주의 이야기는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들은 변화와 개혁을 사실은 포기합니다. 왜냐면 그 변화와 개혁은 사실 봉건주의 이야기속에서는 오직 타고난 영웅에게만, 성스런 피를 가진 사람들에게만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영웅이 나타나주면 모를까 그러기 전에는 그저 자기자리에서 조용히 살던대로 사는 수 밖에는 없다는 생각을 봉건주의 이야기는 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새로운 선진국이 하나 나타났습니다. 이 나라는 극적으로 다른 선진국과 다릅니다. 한국은 제국의 역사가 없습니다. 타국을 정복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최근 천년간은 아니죠. 그리고 이 나라는 다른 선진국들과는 달리 아주 최근에 민주국가로 이행했습니다. 그러니까 아직 개혁과 혁신의 기운이 살아남아있는 겁니다.

 

게다가 한국은 단지 최근에 민주국가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깊은 민주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선을 민주국가로 부를 수는 없지만 그 나라는 과거의 일본이나 프랑스같은 그런 봉건국가가 아니었습니다. 거의 입헌군주제나 마찬가지의 나라였죠. 조선은 침략전쟁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할 의도도 없었고 세상 문제의 해결의 핵심에 전쟁이 있다고도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유학적 사상에 기반하여 만들어진 그 나라는 오직 자기 수양을 문제해결의 핵심으로 여기는 선비의 나라였지 일본의 사무라이나 유럽의 기사처럼 칼차고 돌아다니는 무사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과거와 이러한 현실은 어찌 보면 사소해 보이지만 앞에서 말한 봉건주의 이야기와 극적으로 대비되는 문화를 만듭니다. 한국 문화에서 적은 사실상 우리 내부에 있습니다. 세상이 지옥같이 엉망이라면 그 이유가 뭘까요? 마블코믹스에서는 언제나 악당이 외부에 있죠. 한국 영화에서도 악당은 나옵니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인들은 진짜 문제는 우리의 의식, 우리의 공부부족, 우리의 용기부족이 문제라고 말합니다.

 

조선은 위대한 왕이 있으면 그 왕에게 모두 복종하는 그런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모두가 수신제가를 외치며 우선 나의 수신을 생각하라고 가르치는 나라였죠. 왕도 매일같이 공부하러 나가야 하는 나라였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유교를 낡은 것이라고 비판할지 모르나 그 메세지는 우리의 가슴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우리는 효를 그 중요한 가치로 생각합니다. 또한 맹자의 4단도 잊지 않습니다.

 

맹자의 4단은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으로 그 뜻은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애처롭게 여기는 마음, 의롭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고 착하지 못한 것을 미워하는 마음, 겸손하여 남에게 사양할 줄 아는 마음 그리고 옳고 그름을 판단할 줄 아는 마음입니다. 빠르게 읽으셨다면 이 네가지 마음이 뭔지 천천히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한국 사람이라면 유교를 공부했건 아니했건 이 네가지 마음을 읽고 효를 생각하면 마음이 끓어오릅니다. 그 메세지가 우리 문화 깊숙히 존재하기 때문이죠.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는 송강호입니다. 그리고 괴물에서도 택시운전사에서도 송강호는 평범하고 차라리 찌질한 시민도 버릴 수가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건 바로 부끄러움이죠. 못난 부모라도 자식을 버릴 수 없고, 찌질한 택시운전사라도 손님을 광주에 두고 도망가는 것은 부끄러워 할 수가 없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마음이 세상을 구원한다고 한국 문화는 가르칩니다. 무슨 슈퍼파워가 아닙니다. 4단을 잊지않는 사람이 세상을 구원하는 겁니다.

 

오징어게임은 지옥같은 세상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이정재는 이 영화가 이타주의에 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오징어 게임은 가족을 잊지않는 마음, 부끄러움을 잊지 않는 인간들이 있기에 세상에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연애물도 한국의 연애물은 서양의 연애물과는 다릅니다. 서양의 로맨스는 착취와 정복입니다. 나의 욕망에 충실한 것이 로맨스죠. 하지만 한국의 로맨스는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이 더 강조됩니다. 사랑이란 나의 욕망을 채우는 행위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하는 마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베드신도 키스씬도 없이 사랑은 절절해 집니다.

 

이 한국의 민주적 이야기는 지금 세상을 뒤덮은 봉건적 이야기와 다릅니다. 봉건의 이야기는 아무리 화려하게 만들어도 우리의 가슴을 울리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 주인공이 타고난 영웅이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치없는 존재들일 뿐입니다. 죽더라도 그런가 싶을 뿐입니다. 그런데 민주적 이야기에서 우리는 사람 하나 하나를 귀하게 여깁니다. 모든 사람은 다 깨달으면 성인이고 선비이며 부처이기 때문입니다. 산 사람도 죽은 사람도 모두 그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이같은 점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주목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한국과 외국의 차이가 바로 이거라고 누구나 알고 있는 그런 단계에는 이르지 못했죠. 다시 말해 많은 사람들이 모릅니다. 이런 형식화가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닙니다. 어떤 형식을 또렷히 인식하고 그걸 재생산하기 시작하면 생산성은 좋아지지만 매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지금의 봉건주의 이야기가 바로 그 단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할리우드가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고 아무리 화려한 컴퓨터그래픽을 보여줘도 별로 감동이 없는 겁니다. 그러나 이런 형식에 대한 분석이 또렷하게 세상에 퍼질 때 세상은 한국을 다시 한번 평가하게 되고 외국인들은 지금의 세계에 대한 새로운 반성에 진지하게 들어가게 될 겁니다.

 

이러한 이야기의 차이는 또한 국내적인 의미도 있습니다. 사실 이 민주적 이야기는 한국에서 보수정치권에는 통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들은 막장드라마를 좋아하고 봉건주의를 좋아합니다. 한국이 봉건적 질서에서 패배자이며 따라서 충성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우리도 정복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세계가 한국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때 한국의 보수들도 정신을 차리게 될 겁니다. 그들이 떠받드는 미국이며 일본같은 나라들이 이 민주적인 이야기에 열광하고 한국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한사코 보도하지 않고 눈을 돌리고 있지만 말이죠. 그들은 BTS에 열광하는 서구인들을 잘 소화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성공이 과장이거나 미국인들이나 유럽인들이 뭔가에 속고 있다고 생각하죠. BTS가 마이클 잭슨이 절대 될 수 없고 삼성이 애플이 절대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민주적 이야기가 제대로 세계속에 퍼질 때 한류는 완전히 새로운 단계에 들어설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한국도 훨씬 더 빠른 속력으로 새로운 미래를 향해 가게 될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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