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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문화의 시대와 한국인이어야 할 이유

by 격암(강국진) 2022. 1. 2.

2021.12.22

최근 그야 말로 문화의 시대가 열렸다고 할만큼 한국문화의 인기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예를 들어 추정에 불과하지만 BTS 하나의 경제효과가 1조라던가 5조라는 말이 나오고 있는 시대이며 BTS는 한류의 일부에 불과하다. 완전히 선을 긋기는 어렵지만 우리는 게임, 음식, 드라마, 패션, 화장품등 여러 분야의 성과가 문화적 인기의 결과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한때 현대차를 한해 내내 팔아도 쥬라기 공원 영화 한편의 수익밖에는 거두지 못한다는 한탄이 있었다. 이것이 지금 극복되고 있다. 이런 문화의 시대는 당연히 수없이 많은 의미를 가지지만 나는 정치적인 의미가 아주 크고 비교적 빨리 현실화될 분야라고 생각한다. 문화의 시대가 공고해질수록 우리는 이제 본격적으로 과거와 결별하고 새로운 한국을 만나게 될 것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에는 한가지 신화가 따라다닌다. 그것은 바로 위대한 리더쉽이 이 성장을 만들어냈다는 신화다. 그 신화의 주인공은 때로 이승만이나 박정희같은 정치가이고 아니면 정주영이나 이병철같은 재벌 1세들이 주로 맡는다. 이 신화에 따르면 한국의 경제적 성장은 바로 이 리더들이 어떤 결정을 했기 때문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예를 들어 5개년 경제개발계획을 발표하고 중화학공업중심의 산업을 발전시키기로 했다던가, 어느날 삼성의 경영자가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자고 결정함으로서 우리는 지금처럼 부유한 나라에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이 신화의 내용이다. 나는 이 글에서 이 신화를 구세주 신화라고 부를 것이다.

 

나는 이 구세주 신화를 믿지 않는다. 물론 수없는 기여들이 다방면에 있었다. 그러나 가장 큰 것은 한국의 전통이고 한국 문화이며 한국의 대중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물론 운도 따랐다. 사실 똑똑한 사람은 세계에 수없이 많다. 그런데 가난한 나라가 선진국이 된 사례는 실질적으로 한국밖에 없다. 이러저러한 결단이 한국을 만들고 삼성을 만들었다면 그런 결단으로 수없는 나라들이 부자가 되엇어야 하지 않겠는가? 정주영이 다른 나라에 가서도 현대를 만들수 있고 박정희라면 다른 나라에서도 대한민국이 될 나라를 만들었을거라는 생각은 환상에 불과하다. 삼성의 성공은 수없이 많은 삼성의 직원과 한국사회의 도움이 만든 것이다. 한국인들이 교육열이 뛰어나고 근면하지 않았으면 지금의 성공은 없다. 지구상의 많은 나라들이 지금 한국을 보고 발전모델로 삼으려고 하지만 나는 그들 대부분이 실패할거라고 생각한다. 중진국의 함정, 민주화의 실패따위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 한국에는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 아주 많다. 흔히 보수지지자들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대부분 구세주 신화를 믿는다. 왜 그럴까? 우리가 주목할 수 있는 것은 아닌 경우도 많지만 보수지지자들 중에는 상대적으로 부자거나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재벌이나 부자들이 지금의 한국의 성공은 소수의 리더때문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래야 자신들의 기여와 권리가 더 커지니까 그렇다. 삼성창업자의 결단 하나가 삼성을 만들었다면 삼성은 온전히 삼성가문의 것이어야 한다. 재벌3세는 이게 다 우리 할아버지거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가난하고 교육수준이 낮은 사람들이 보수인 이유도 종종 이때문인 것같다. 그들은 민중의 힘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대개 무력감을 느끼며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민중이 이 자랑스런 한국을 만들었다는 설명보다는 저 대단하신 분들이 우리를 구해줬다는 설명이 더 그럴듯하다. 이들은 실질적으로 지금 봉건국가를 살고 있다. 박사모가 박정희나 박근혜를 말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모시는 분들은 왕족이다.

 

이런 나의 묘사가 다소 거칠었다고 하더라도 양해해 주길 바란다. 사실 이 글의 핵심은 지금부터다. 한국의 성공이유에 대해서 과거에 뭘 믿었더라도 그건 과거의 일이다. 그런데 문화의 시대가 열리면서 이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되었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 주장이다.

 

한국 문화가 인기가 생겼다는 말은 외국에 나가서 나는 한국인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뜻이다. 삼성이나 현대와 LG가 더 적극적으로 이건 한국제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문화란 그 본질이 대중적이다. 다시 말해 비록 BTS같은 사람들은 참으로 대단해 보이지만 그리고 실제로도 대단한 면이 많지만 심지어 그들조차도 그들 혼자만의 힘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비교적 분명하다. 그들을 배출한 것은 한국 대중이다. 한국어와 한국 문화와 한국 회사와 한국 대중이 그들을 키웠다. 앞에서 나열했던 다른 분야들도 그렇다.

 

다시 말하면 드디어 지금 우리는 심지어 재벌들조차도 자신들이 한국 사회에 기대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을 좀 더 확실하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시대로 걸어들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사실 보수를 지지하는 노인들 중에는 삼성을 수사하면 삼성이 외국으로 가버린다고 그러면 우리는 어쪄냐고 말하는 분들도 있었다. 그들 눈에는 한국 대중이 재벌기업의 은혜로 살지 재벌기업이 한국 대중의 은혜로 성장한다는 것은 보이지가 않는 것이다.

 

이 사실은 정치적으로 아주 중요하다. 기생충의 봉준호감독이 보수정권밑에서 블랙리스트에 있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난 최근에 심지어 오징어 게임의 황동혁 감독도 블랙리스트에 있었다는 말을 들었다. 어떤가. 정말 미친 것같아 보이지 않는가? 그런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가? 지금 오징어 게임의 성공이래 한류의 성공 이유가 뭔냐는 외국의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리고 그 분석이 점차로 수렴하는 곳은 민주화 운동의 역사다. 정부가 돈을 투자해서 된게 아니라 민중의정치의식이 결국 문화적 발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좋은 반례가 바로 엄청난 돈을 쓰는 중국이 소프트파워가 없는 것이다. 한국과 중국은 지금 이 시대 가장 극명하게 대조되는 국가가 되고 있다. 한국의 성공은 소프트파워가 미래라는 것이고 중국의 성공은 하드 파워가 결국 우위라는 것이다. 그 진짜 답이 뭐가 되건 중국은 지금 전세계의 미움을 받고 있고 따라서 한국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사람들은 늘어난다. 한국이 이겨야 정의가 승리한다는 구도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사람을 진보니 보수니 양분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한국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한국의 보수정치권을 지배하는 정치인이나 핵심 지지층에는 앞에서 말한 구세주 신화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 지금의 시대는 그들이 권력을 가지는 것이 더욱 더 위험하다. 마치 원숭이를 제트기 조정석에 앉혀놓는 것과 같다. 이것이 과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윤석렬같은 보수 대권후보가 과연 대통령이 되면 어떤 문화적 재앙이 올지를 상상해 보라. 박근혜 이상일 것이다. 우리는 이미 한류성공의 달콤함을 맛보기 시작하고 있는데 그것의 퇴조는 박근혜 시대 이상으로 뼈져린 아픔을 줄 것이다.

 

한국 사회는 시끄럽다. 그것은 스트레스를 준다. 그런데 이 시끄러움의 상당부분은 사실 한국의 기득권층이 학계와 법조계와 언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수정치권은 기득권층의 보호막이 되고 있으니 그들은 학계와 법조계와 언론을 이용해서 최대한 나라를 뒤흔든다. 보수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숨긴다. 포털은 민주정부의 성과를 숨기고 보수 정치가에게 유리한 기사를 도배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만약 한국의 기득권층이 그들의 힘을 이용해서 보수 정치권을 작정하고 공격한다면 국민의 힘은 한달도 되지 않아 가루가 되고 존재조차 없을 것이다. 자원봉사 표창장 문제로 나라가 얼마나 시끄러웠는가. 그런데 50억 받은 사람이 나타나도 현정권이 공격받는게 지금의 이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박사학위가 가짜라도 경력이 가짜라도 분노의 시위는 없다.

 

그런데 문화의 시대에는 어느 정도 보수정치권을 공격하는 기득권층이 등장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구세주 신화는 문화를 죽인다. 그리고 그게 지금의 기득권들에게도 해가 된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회사가 위험해지고, 그들의 장사가 되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주식이 폭락할 것이다. 보수가 정권을 잡으면 어떤 나라가 되는가를 보고 싶다면 일본을 보라. 그게 바로 보수 정치가 계속된 미래다. 아니 우리는 일본보다 쌓아놓은 돈도 적으니 더 끔찍할 것이다.

 

한류가 퍼지는 소식을 듣는 것은 기분좋은 일이다. 하지만 이 현상은 국내적으로도 심지어 인류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국내의 정치를 바꾸고 동아시아의 판세를 바꾸고 나아가 세계의 권력 구도가 바뀌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들 대부분이 실현되는 것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지만 문화의 시대가 국내정치에 주는 영향은 곧 결정적 전환점에 도달한다고 나는 믿는다. 일단 사람들의 눈이 확 바뀌고 나면 백신 안맞는다고 외치고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구분안되는 소리나 하고 한국 망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우굴우굴한 보수 핵심지지자들은 매우 낡아보이게 될 것이다. 그들은 구제불능으로 보이며 결코 정권창출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 보일 것이다. 그들로는 안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이게 된지는 오래다. 불행히 아직도 눈이 바뀌지 않은 사람들이 많이 남아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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