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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한국이 성장한 이유

by 격암(강국진) 2021. 9. 12.

21.9.12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서구가 세계를 주도하게 된 이유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다. 그에 따르면 그 이유는 본질적으로 서구만이 발전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사실 서구는 중세때만해도 아랍이나 중국보다 뒤져 있는 지역이었다. 우리가 쓰는 숫자를 아랍숫자라고 하는 이유도 아랍지역의 수학이 서구로 진출하고 그것이 서구의 상업과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기 때문이며 과거의 중국은 일찌기 과학이든 문화든 서구보다 앞서 있었는데 그를 보여주는 것 중의 하나가 중국 정화의 선단이다. 서구의 콜럼버스 선단을 애들 장난처럼 보이게 만드는 정화의 선단은 서구보다 먼저 미대륙을 발견하기도 했지만 그것으로 그만이었다는 것이다. 즉 아랍이든 중국이든 세상은 변하며 발전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 스스로가 세계의 중심이라 중요한 일은 자기나라에서만 일어난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에 비해서 서구는 자료를 축적하고 신대륙을 탐험하여 자기를 확장하려는 노력을 계속한 결과 세계를 주도하게 된 것이다. 

 

약간 당연해 보이기도 하는 이 이야기가 흥미로운 한가지 이유는 지금의 보수적 선진국을 보면 딱 과거의 중국이나 아랍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미국과 서유럽국가들 그리고 일본도 그렇지만 모든 선진국들은 대개 보수적이다. 독일이 약간 예외적일 뿐 이들 나라는 한국보다 훨씬 보수적이라 덕분에 많은 혁신성 지수에서 한국은 7년째 9년째 연속 세계 1등을 하고 있다. 많은 선진국민들은 외국에 별로 관심이 없고 있다고 해도 그 관심이 무슨 오지여행의 대상으로 가지는 관심 정도다. 그러니까 세상에서 중요한 일은 다 자기 나라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같지 않은가? 

 

사실 그럴만도 하다. 내가 처음으로 외국에 나가본 것은 1993년의 일이다. 이때 나는 영국에 교환학생으로 나갔었고 유럽을 여행했었다. 그때는 그게 외국과의 내 마지막 인연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 외국경험은 계속되었다. 나는 박사학위를 받은 후 이스라엘에서 연구원생활을 했고 21세기에 들어서는 미국과 일본에서 일한 적이 있다.  사실 불과 10년내지 15년전만 해도 세상은 정말 달라 보였다. 선진국의 대학이나 연구소를 당시에 경험해 본 사람들은 외국의 그것들이 얼마나 대단해 보이는지 대부분 기가 죽게 될 수 밖에 없었다. 엄청난 시설과 연구자들도 그렇지만 연구비도 가난한 한국과는 애초에 비교가 되질 않았다. 한국의 교수들은 당시만 해도 대학입시때 성적이 어땠다는 둥, 서울대 다닐 때 과톱이었다는 둥하는 이야기가 자랑거리로 붙어다녔지만 외국에 다녀보면 노벨상 수상자나 그 정도 대단해 보이는 사람들이 학회에 흔히 보인다. 좀 과장하면 아인쉬타인을 신화로 생각하며 책을 읽던 사람이 외국에 가보니 아인쉬타인이 삼촌이거나 스승인 사람들을 만나는 식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5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대단한 성장을 했고 아직도 다른 선진국을 우습게 보는 것이야 물론 건방진 이야기지만 더이상 전과는 같지가 않다. 세상이 이렇게 된 이유는 생각해 보면 하나다. 우리가 잘한 것이상으로 그들이 멈춰서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이미 15년 30년전부터 자신들이 완전한 상태에 도달했다고 생각했다. 즉 그들은 보수적이었던 것이다. 인적 자원이건, 물적 자원이건 전혀 경쟁이 되지 않을 정도의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사회는 발전이 느렸다. 배가 불렀기 때문이다. 

 

한국이 인터넷에 있어서 선구적이었던 이유도 기술 이나 정책 이전에 대중이 달랐기 때문이다. 한국인들은 우리는 뒤져있고 후진적이니 빨리 선진국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초조했고 3년이나 5년쯤 전과 지금이 다른게 없다면 거의 죄책감을 느꼈다. 우리는 입만 열면 선진국은 이렇지 않다는 말을 하고는 했다. 그런데 이 선진국은 사실 좀 미화되고 과거의 영광에 둘러싸인 곳이었다. 한때 삼성이 소니를 이기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시절에 저들은 저토록 대단하니 우리는 무한히 쫒아가야 한다는 식으로 좋게만 해석된 곳이었달까. 한국에서는 프랑스인의 똘레랑스를 배워야 한다고 외치는 사람이 인기가 있었던 적도 있었다. 당시의 프랑스는 거의 숭배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마이클 잭슨은 위대하지만 BTS가 비슷한 경지에 가는 걸 보고 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듯이 우리는 이제 프랑스를 무시하지는 않지만 프랑스를 좋게만 보지는 않는다. 한국의 관용이나 프랑스의 똘레랑스나 그게 그거다. 우리는 이제 프랑스혁명보다 1987년의 6월항쟁이나 박근혜 탄핵 이야기를 더 많이 하는 것같다. 홍콩사람이나 미얀마사람이 영화 1987을 보면서 투쟁의식을 고취한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우리도 자부심이 생겼다. 

 

한국이 성장한 이유에는 여러가지 설명이 붙는다. 그러나 그 모든 설명은 어쩌면 한가지보다 못한 것일 것이다. 그것은 한국인은 만족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전에 비하면 한국은 이미 부자가 되었다. 예전에 비하면 한국은 이미 인권이건 복지건 훨씬 좋아졌다. 아직도 한국만이 지옥이니 뭐니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들중 많은 수는 사실 외국을 제대로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이다. 여행가서 잠깐 보는게 아니라 정착해서 살아보면 어느 나라나 심각한 문제가 있다. 한국이 전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말하는 것은 과장이고 오만이지만 이제는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못하지 않다. 

 

그럼 왜 한국인들은 만족하지 않을까? 한국인들의 열정이 식지 않았던 것은 결국 그 역사가 만들어 낸 문화와 눈높이에서 원인을 찾을 수 밖에 없다. 정치는 어때야 하는가, 인간은 어느 정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말할 때 비록 일제와 해방 이후의 현실은 처참했지만 여전히 한국인의 눈높이는 매우 높았던 것이다. 마치 1년에 1억도 벌지 못하면 너무 챙피해서 살 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죽자사자 연봉 1억을 달성하려고 노력하듯 한국인은 이 높은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한탄하면서 죽자사자 뛰어왔다. 그래서 외국인들은 한국 사람이 공부하고 일하는 것을 보면 미쳤다고 한다. 2등국가 국민이면 어떤가, 학벌이 나쁘면 어떤가, 좀 무시당하고 과거를 잊으면 어떤가하는 말이 안통하는 나라였던 것이다. 지금도 그 높은 눈높이를 우리는 쉽게 여론과 언론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성장률이 OECD에서 1등을 해도 우리는 경제가 폭망이라고 말한다. 한국 방역이 전세계의 모범사례로 칭찬을 받아도 정부는 책임을 지라고 말한다. 

 

불안은 우리를 좀 먹는다. 높은 자살률과 낮은 출산률은 더 나아가려고 하는 강박이 주는 불안의 결과일 수 있으며 이것이 꼭 칭찬만 할일은 아니다. 실제로 한 미국교수는 수업에서 한국학생과 미국학생을 비교하면서 같은 성적이면 미국학생은 이정도면 좋다고 자부하는데 한국학생은 성적이 그저 그렇다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 적도 있었다. 이건 낮은 자존감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20세기 이래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선 유일한 나라인 한국을 만든 것은 멈추지 않고 더 나아가려는 이 높은 이상때문이었다. 

 

그 높은 이상이 뭘까? 그건 단순히 고기먹고 쌀밥먹는 정도는 아니다. 그건 인간답게 살고 싶다는 이상 아니 인간이란 애초에 이정도는 살아야 인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이상이며 그것은 분명 상당부분 조선시대로부터 한국인들이 물려 받은 것이다. 조선은 하도 욕을 많이 먹어서 거의 배울 것이 하나도 없는 국가가 되었지만 그 조선이 또한 한국인의 높은 눈높이를 만들어 낸 원인이다. 세종대왕이 조선의 왕이 아니라 영국이나 독일의 왕이었으면 과학혁명의 아이작 뉴튼이나 종교 개혁의 마틴 루터는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유명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조선은 결코 제국이 되지 못하고 세계정복도 못했지만 한국이 제국의 역사가 없는 유일한 선진국이 된 지금은 그런 과거도 자랑스러운 것이 되었다. 우리는 누굴 침략하고 약탈해서 부자가 된 적이 없는 유일한 선진국이다. 이것도 높은 눈높이의 일부다. 

 

한국은 단군신화에서 이미 교화를 말했지만 거기까지 가지 않더라도 조선시대부터는 절대적으로 교화 즉 문화적 계몽으로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을 이상으로 여겼다. 무력에 의한 질서가 아니라 교화에 의한 질서이며, 인간이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조직속의 자기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깨달은 인간, 수련된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배웠다. 이것이 선불교와 선비의 문화다. 유약한 왕이 넘쳐나는 곳이라고 배운 조선은 실은 왕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보다는 개인의 생각이 더 소중하다는 이상이 작동하는 선진적인 나라였다. 

 

나도 이렇게 블로그로 생각을 적고 있지만 한국 사람들은 지금도 열심히 자기 생각을 적고 발표하고 있다. 한국인들은 여전히 배가 고프고, 여전히 이렇게 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나라에 큰 위기가 닥치면 기꺼이 전 국민의 절반은 거리로 뛰쳐나와서 핏대를 세울 수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한국이 성장한 이유? 다른 모든 이유보다 이것이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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