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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누가 나에게 고마워해주기를 바라지 말라.

by 격암(강국진) 2021. 11. 18.

21.11.18

사람이란 시야가 유한한 법이고 솔직히 말하면 아주 많은 사람들의 시야는 정말 시야라고 할 것도 없이 좁으며 자기 중심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어떤 사람이 자기가 이룬 것을 대부분이 아니면 전부 자기 탓으로 여긴다거나 남이 이룬 것을 자기 탓으로 여기는 문제다. 즉 내일이건 남의 일이건 다 자신이 이뤘다고 생각한다. 부모가 거의 떠먹이듯이 자식을 키워도 그 자식의 입에서 나는 참 나혼자서 척척 다 알아서 했다는 말이 잘도 나온다. 뭐하나 모르는 후배 열심히 키워주면 그 후배가 나중에 가서 나는 참 내가 모든 일을 다 알아서 했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 보통이다. 모든 것이 갖춰진 재벌 3세의 성공기도 결국 내가 피나는 노력으로 뛰어난 창의력과 결단력으로 살았기에 성공했다는 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이것은 성공에 대한 이론의 문제다. 나는 왜 성공했는가를 진짜로 이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성공은 대부분 운때문인데 사람들은 그것이 대부분 노력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말콤 그래드웰의 아웃라이어라는 책은 바로 이 것을 말하기 위해 쓰여진 책이다. 성공한 사람들을 연구해 보면 결국 그들은 적당한 장소에 적당한 때 운좋게 있었기 때문에 성공한 것인 경우가 많더라는 것이다.  성공을 위해서는 재능도 필요하고 노력도 필요하지만 재능이 있다고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노력을 한다는 것도 사실은 운이 좋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경우가 많다. 즉 노력하는 것도 운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훌룡한 하키선수는 1-3월의 출생자가 많다고 한다. 그들은 운좋게 같은 학년생들보다 몇달 일찍 태어났고 어린 시절에는 그것도 큰 차이라서 약간 더 잘할 수가 있었고 그래서 더 많이 칭찬을 받고 더 많이 기회가 주어지는 행운을 누렸다. 그들의 노력도 그런 환경속에서 행해진 것이다. 이걸 생각하면 사소한 차이로 좌절하고 사라진 재능도 얼마든지 있었을거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우리는 종종 우리가 가진 가장 큰 행운을 알아보지 못한다. 물고기가 자기가 물에서 사는 것을 모르는 것처럼 우리는 타고난 환경이 가진 문화적 특징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같은 재능을 가지고 있었더라도 중국인으로 태어난 것과 아프리카인으로 태어난 것 그리고 미국인으로 태어난 것은 다른 결과를 만들 것이다. 하지만 내가 미국인인 것을 행운으로 여기는 미국인은 별로 없다. 

 

이러한 무지속에서 우리는 성공에 대한 이론들을 만든다. 그리고 그 이론들이 바로 내가 왜 성공했는가 혹은 내가 왜 실패했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해 준다. 문제는 이런 이론들은 모두가 아니면 거의 대부분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내가 연구소에 있었을 때의 일이다. 아이들 교육에 대해 동료 연구원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다. 동료 연구원들은 전부 명문대 출신에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이니 말하자면 공부분야에서는 프로선수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아이들 교육에 대해 뭔가 말을 하면 그들은 종종 그들의 아내로부터 당신이 공부에 대해 뭘 아냐는 핀잔을 듣고는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어떨 때는 별 근거도 없이 어떤 권위를 쉽게 믿어서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이 미국의 무슨 대학교 연구실 출신이라거나 서울대를 나왔다는 이유로 전문가로 여길 때가 있다. 하지만 대개 익숙한 자기 주변의 사람들은 무시한다. 그들이 공부의 전문가가 분명한 경우에도 그들은 그들을 그저 운이 좋았다거나, 특이하게 재능이 좋아서 노력도 없이 성과를 낸 특수한 경우로 말하고 무시해 버리는 것이다. 자식이 서울대 병원 의사라도 고졸 사기꾼에 속아서 건강약품을 사는 노인은 얼마든지 있다. 사람들은 합리적으로 누굴 믿고 누굴 안믿지 않는다. 

 

공부만 이런게 아니다. 여러분도 생각해 보면 연애, 투자, 운동, 다이어트, 병을 고치는 법등 여러주제에 대해 무수히 많은 이론들을 들었을 것이다. 그것들은 어떤 때는 과학의 이름으로 근거를 좀 가지고 주장되기도 하지만 대개 근거가 희박한 것이다. 심지어 수많은 사람들이 연구하고 방법을 찾았을 주식투자에 대한 이론도 전문가들의 예언을 평가해 보면 원숭이의 투자보다 좋을게 없었다. 결국 미래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는 믿는다. 어떤 사람은 훨씬 더 쉽게 많이 믿어서 온갖 일에 대해서 이론이 있고 그걸 확실하게 믿는다. 

 

물론 완전히 이론없이 사는 사람은 없다. 나도 그렇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어떤 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문제다. 그 이론은 남들과 다를 때가 많은데 그렇게 되면 남을 도와주고도 결코 고맙다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한다. 오히려 우리는 종종 원망을 듣거나 그 사람이 내 덕으로 뭔가를 이룬 것같은데 전혀 엉뚱한 사람에게 고마워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당신이 누군가에게 날마다 밥을 주고 있어도 자신은 제대로 자기 역할을 못하는 사람으로 구박을 받는데 누군가가 단 한번 밥해줬다고 그 사람에게 고마워하는 그런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날마다 불이 나지 않게 동네를 지켜서 화재를 막아도 아무 하는 일없이 돈벌면 미안하지 않냐는 핀잔을 들을지도 모른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화재가 없으니 소방관은 놀고 먹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인연이 조금 있는 사람이 입만 열면 이 사람은 내가 전부 키웠다 운운하는 경우도 세상에는 많다. 

 

맨 처음에 말했듯이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다. 게다가 당신에게 고마워하지 않는 그 사람의 생각이 실제로도 옳을 수 있다. 박근혜탄핵으로 이어진 최순실 사건이 불거진 것은 그녀의 딸인 정유라와 관련된 입시비리나 학교행정에 대한 압력 혹은 말을 선물받은 일따위가 중요한 이유들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아마도 최순실은 자신은 딸인 정유라를 위해서는 모든 일을 했으며 따라서 정유라는 최순실에게 고마워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 정유라는 엄마에게서 벗어나고 싶어했다고 한다. 엄마에게 고마워하기는 커녕 자기 인생에 간섭하는 엄마가 싫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이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길을 가다가 불이 난 것을 본다. 우리의 이론에 따르면 이걸 그냥 내버려 두면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다. 당신은 그것을 원하지 않으므로 그 불을 끌 것이다. 그냥 그 불을 내버려 두고 사람이 많이 죽으면 그때가서 내가 그럴줄 알았다라고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당신이 그 불을 끌 때 당신덕분에 살아난 그 사람들이 당신에게 고마워하지는 않는다. 적어도 항상 그렇지는 않다. 그들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고 다른 이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일은 날마다 반복된다. 당신은 수 많은 불을 보고 그것을 끄지만 인사를 받고 좋은 평가를 받는 일은 드물다. 전에 말했듯이 오히려 욕을 먹는 일도 많다. 

 

그러므로 누가 나에게 고마워하기를 바래서는 안된다. 그들은 알지 못한다. 그리고 사실 나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그렇게 믿을 뿐이다. 세상은 오직 한번 사는 것이라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를 알 방도가 없다. 실은 당신의 이론이 틀려서 당신이 아무 일도 하지 않았더라도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고, 심지어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다. 

 

이것이 씁쓸하다면 우리는 한가지를 기억해 있다. 실은 우리 자신도 남에게 충분히 고마워하며 살고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도 자기 중심적이라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공짜로 받았는지, 얼마나 많은 호의를 나도 모르게 받아서 이렇게 멀쩡히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알고 보면 우리의 평생 은인인 사람들이 수두룩 한데도 우리는 그걸 인식도 못한 살고 있다. 우리도 남에게 충분히 고마워하지 않고 있다. 그걸 생각하면 세상은 공평하다. 고맙다는 말을 못들으면 어떤가. 나도 충분히 감사하고 있지 못하다. 그게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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