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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창의적 인간과 질문하는 인간

by 격암(강국진) 2021. 12. 28.

2021.12.6

미래사회는 어떤 인간을 요구하는가라는 질문은 아주 흔하다. 그리고 우리는 대개 그 답으로 창의적 인간을 말한다. 즉 우리가 미래를 준비하고 싶다면 창의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창의적 인간은 어떻게 될 수 있는가? 그게 어떤 사람이며 노력하면 될 수 있는 것이 맞는가? 우리는 그런 추상적인 말보다는 더 구체적인 지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우리의 삶에서 뭐가 문제인지를 지적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는 그 구체성에 있어서 창의적 인간이라는 말보다 질문을 던지는 인간이라는 말이 더 좋다고 믿는다. 지금의 교육은 질문을 던지기 보다는 남의 답을 외우는 즉 더 많은 지식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확실히 글자도 모르면서 창의적이 되기는 어렵고 남의 책 한권도 안 읽어보고 좋은 책을 쓰기는 어렵다. 하지만 학벌이 좋다고 꼭 창의적인 것도 아니고 책을 수없이 읽었다고 독창적인 자기 책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지식이 폭증하는 시대, 지식검색이 점점 더 쉬워지는 이 시대에 우리의 교육은 잘못된 길을 간지 오래라고 할 수 있다. 왜냐면 우리의 교육은 앞에서 말했다시피 자꾸 질문하지 말고 답을 들으라고 하기 때문이다. 교과서를 외우고, 질문이 생겨도 참고 기다리면 그 질문도 다 답을 듣게 될테니 순서를 지켜서 질문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라고 배운다. 그렇지 않고 질문을 권장하는 선생님도 있다고 할지 모르지만 애초에 장시간 많은 학생들과 함께 선생님에게 교과서를 배우고 똑같은 시험을 봐서 평가받는 시스템, 객관적 답을 강조하는 시스템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질문을 억누를 수 밖에 없다. 시험에 나오지 않는 질문은 가치가 없다는 것을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학습하기 때문이다.

 

창의성을 강조할 수 밖에 없는 분야가 예술분야다. 물론 예술분야에서도 선생님으로부터 기법을 배우고 유명한 작품을 모작하는 과정을 거칠 수 있다. 그렇지만 어떤 예술분야도 12년 16년동안 꼼짝말고 앉아서 세계적 작품을 모작만 하라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 사람은 사진기와 다를 것이 없다. 모처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예술적 재능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초중고 과정이 12년이고 대학과정까지 치면 16년인데 우리는 어떤 교육을 받는가?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 그 안에서는 갑자기 창의적으로 사는가? 인공지능의 시대가 창의적 인간을 요구한다는 말은 카메라가 등장하자 사진처럼 그리는 화가가 별로 소용없게 되었다는 말과 비슷한데가 있다.

 

왜 질문을 하는 것이 중요할까?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자신의 무지 나아가 우리의 무지를 깨닫는 것이기 때문이다. 데이터가 부족하고 미묘한 차이이지만 뭔가가 당연하지 않고, 뭔가가 불분명하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우리는 질문을 던질 수 있다. 그리고 새 시대에 우리는 바로 그 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 것을 보고 이건 당연하지 않은데라고 느끼는 능력이다. 데이터가 풍부한 분야는 점점 더 자동화되고 있으며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저소득국가에서 쏟아지는 대졸생들에 의해 처리될 수 있다. 즉 대졸정도의 학력을 가지고 하는 일도 점점 저소득자의 일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여담이지만 우리는 질문하는 인간이 되라는 말을 반항하는 인간이 되라는 말과 혼동해서는 안된다. 확실히 무조건 순응하지 않는 것이 질문하는 인간이지만 무조건 반항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창의적이지 못한 인간이다. 우리가 뭔가를 강렬하게 반대할 때 사실 우리는 그냥 그것의 거울이미지가 되어 있을 뿐이다. 즉 그것의 반대가 참이라고 너무 믿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진정한 질문을 하는 인간은 거의 아무도 주목하고 있지 않은 것을 가르키며 이건 왜 이런가라고 묻는 사람이다.

 

창의적 인간이 되고 자기만의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는 몇가지의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먼저 스스로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에 익숙해져야 한다. 말했듯이 우리는 교육을 통해 그렇게 하지 않는 버릇이 들어있다. 그래서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학교교육은 우리를 군인으로, 단순노동을 하는 노동자로 교육시켜왔다.

 

질문이 중요하다고 해서 공부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답을 찾는데 필요한 것을 찾아서 공부하는 일도 해야 한다. 영감을 주는 지식이나 대화를 가지는 것은 중요하다. 아무 것도 없이 혼자서만 답을 찾을 수는 없다.

 

이런 일을 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서두르지 않는 것이다. 서두르게 되면 우리는 그 질문의 정답이 어딘가에 정확히 써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찾아 헤매게 된다. 계속 남의 답을 찾고 남의 말을 듣고 그것을 외우려고 하거나 그것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게 된다. 사실 누군가가 나와 정확히 같은 질문을 던지고 그것을 추구하여 대단한 정답을 어딘가에 써놓았을 가능성은 종종 매우 크다. 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

 

하나의 질문은 그 답을 생각하다보면 바뀔 수 있다. 하나의 질문은 다른 질문을 부르기도 한다. 우리가 서둘러 남의 답만 읽으려고 하면 새로운 질문이 나타나지 않는다. 게다가 설사 그 사람이 써놓은 답이 정답이라고 할지라도 종종 그 답이 무슨 뜻인지를 아는 것에는 체험이 필요하다. 우리의 질문은 대개 수학문제나 이론물리학 문제가 아니다. 인문학적 질문이나 삶에 관한 질문 혹은 일상생활에 관한 질문은 똑같은 질문이라고 해도 환경에 따라 시대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답이 다르다.

 

만약 공부가 우리로 하여금 더이상 질문하지 않는 상태를 만든다면 그 공부는 잘못된 것이다. 제대로된 공부는 언제나 더 많은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하나의 질문을 답하려고 하면 열개의 질문이 나타나게 되는 것이 바람직하고 정상적인 것이다. 물론 혼동에 빠져서 너무 많은 질문속에서 아무 것도 못하게 되는 것도 올바른 공부는 아니다. 그럴 때 우리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글을 쓰는 것이고 또 하나는 혼자되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은 혹은 강의를 하듯이 말을 해보는 것은 우리의 머리를 정리해 준다. 무엇이 진짜로 내게 중요하고 흥미로운지를 우리는 그 과정에서 알게 된다. 진짜로 완전히 혼동상태에 빠져서 아무 글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다면 우리는 이미 창의적인 정상적인 상태에서는 벗어나서 로보트같은 상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혼자되는 것이 중요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우리는 물론 사람들을 만나면서 여러가지 자극을 받지만 그런 자극들은 끝없이 우리를 기존의 패러다임으로, 뭐든지 당연하다는 태도로 이끈다. 타인의 반응이나 평가는 대개 우리의 질문을 자꾸 죽인다. 자기를 지키고 질문하는 태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홀로인 시간이 필요하다.

 

요즘은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한다. 그런 시대에 우리가 그저 하던대로 하면된다는 타성적 생각을 가지는 순간 우리는 빠르게 시대로부터 뒤쳐지게 된다. 상업의 시대가 열렸지만 계속 농사를 짓고 있으면 점점 상황이 나빠질 것이다. 게다가 예전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데 한 사람의 수명 이상의 시간이 걸렸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인터넷이라는 것이 등장한 것이 반세기도 되지 않았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것은 20년도 안된다. 유튜버가 요즘 초등학생의 장래희망중 하나인데 그렇게 된지는 5년정도 일 것이다. 불과 몇년전에는 전기차가 시기상조라고 했는데 지금은 전기차가 몇만대씩 팔린다.

 

시대가 빨리 변할 때 일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자기 자신과 질문하는 일이다. 우리 스스로가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고 답하는 것을 게을리 하면 우리는 어느새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고 점점 더 헤어나올 수 없는 일에 얽매이며 살게 된다.

 

미래를 정확히 예측해서 그에 맞춰서 사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사람은 본래 이렇게 사는 거라면서 자신이 근거없이 성장기때 배운대로 혹은 주변사람이 하는대로 사는 법을 지키면 둔감한 사람은 빠르게 시대에 뒤쳐지게 될 것이다. 피라미드 사기에서 맨 마지막에 뛰어든 사람처럼 된달까. 요즘은 이미 평생직장이라는 개념도 사라지고 취직해도 몇년밖에 거기서 일하지 않는 사람도 흔하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 객관적 기준으로는 좀 망해도 나쁘지 않다. 그러니까 일단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재미있는 일이 뭔지를 계속 질문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 이외에도 계속 질문을 찾고, 그 질문을 정리하고 그것을 누적시켜야 한다.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잘 살 사람은 잘 살 것이다. 미래는 예측할 수 없다. 다만 확률적으로 큰 비극을 만나서 곤란에 처할 가능성은 커진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다.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다. 마치 몸의 건강을 위해 운동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처럼 우리는 삶의 건강을 위해 질문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너무 무겁지 않게 변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가볍게 살아야 한다. 즉흥적으로 살 수 있어야 하고, 조금은 도박사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새시대가 요구하는 깨어있는 시민이고 진화하는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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