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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자기에게 부지런한 사람, 남에게 부지런한 사람.

by 격암(강국진) 2021. 12. 28.

2021.12.10

우리는 부지런한 사람이 되라는 조언을 받는다. 하지만 부지런하다라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이다. 부지런한 사람이 뭔가? 예를 들어 하루 종일 밥먹을 시간까지 아껴가며 직장일에 매달리는 사람은 부지런한 것인가? 이 사람은 어떤 사람에게는 분명히 부지런하게 보일 테지만 아주 게으른 사람일 수도 있다. 그는 가족에게 게으르고 자신에게 게으른 사람일 수 있다. 진정 중요하고 가치있는 일은 뒤로 한 채 특정한 사회활동속으로 도피하여 바쁜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사실 직장생활이 만만한 사람은 별로 없을 테지만 필요이상으로 직장핑게를 대면서 바깥으로 떠도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는 것같다.

 

좀 더 기본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자. 누구나 24시간을 산다. 하루 종일 잠을 자건, 하루 종일 달리기를 하건 24시간은 24시간이다. 그리고 오직 인간만이 부지런하다거나 시간을 낭비했다는 말을 하면서 산다.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나 해변가에 앉아있는 거북이에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저 자기가 태어난 대로 자신의 본능대로 살고 있다. 시간을 낭비했다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은 그러니까 부지런하게 살지 못했다고 반성하는 것은 오직 인간뿐이다.

 

이 말들이 그러니까 인간도 어떻게 살던 좋은 것이다라는 뜻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혹은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있다. 그 이상에 가까운 것이 보람차고 가치있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은 삶이며 그렇지 않은 것이 부지런하지 못하게 살은 것이다. 나는 다만 그런 삶의 방식이 하나일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으며 사람들마다 같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나 스스로는 농사짓는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 가난하게 농사짓다가 죽는 삶을 원하지 않으나 누군가가 그것에 만족하고 그것을 선택한다면 그것도 좋은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자연인이다같은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는 시대이기도 하지 않은가.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만족했고 자신이 선택했는가 하는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 집어넣은 생각이나 남의 압력때문에 코가 꿰여서 산다. 자기는 뭐가 멋인지도 모르지만 남에게 멋져보이려고 비싼 옷이나 차나 집을 사서 보여주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걸 위해 엄청난 희생을 한다. 체면이나 약속때문에 평생이 자유롭지 못하다.

 

나는 본래 과학자로 살았었지만 이제는 글쓰기가 취미이자 본업인 사람이 되었다. 그런 내 입장에서 보면 글 한줄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대부분 헛살은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곳에 여행을 했어도 그곳에 대한 기록이 없다면 그 기억은 정말 순식간에 희미해 진다. 그러니 하루 하루의 일상은 얼마나 빨리 희미해지는가. 특히 중년을 넘어가면 10년을 살았어도 기록이 없으면 배운 것도 없고 기억에 남는 것도 없어서 그 10년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고 만 것같다. 정말 곰곰히 생각해 보지 않으면 그 10년에 나는 뭘 했더라같은 것이 그저 희미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논문을 남기고, 어떤 사람은 돈을 남기고, 어떤 사람은 명예를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마저도 없다. 게다가 삶의 자취라고 생각했던 그 성취도 시간이 지나면 점점 사라지고 나 자신에게서 멀어진다. 왕년에 뭐뭐했다는 말이 허무해 진다. 오히려 자기가 쓴 한페이지의 글만 못하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책들이 있지만 직접 쓴 글에는 과거의 자신이 있고 자기가 지킬 수 있는 자신이 있다. 사색도 글쓰기도 없이 사는 사람은 매일 매일이 바쁜데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제자리걸음을 했거나 오히려 작아져서 퇴보한 것일 수도 있다. 애초에 어떤 큰 뜻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으니 매일이 바빴어도 시간낭비였고 남에게는 바쁜 사람이었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게으른 사람이었을 수 있다.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같은 질문의 최종적이고 객관적인 답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찾아헤매는 것은 헛짓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개를 들고 내가 가고 싶은 방향에 대한 큰 뜻이 없다면, 다른 말로 해서 어떤 인간다운 재미는 추구하지 못하고 그저 원천적인 소비욕이나 과시욕에 산다면 사료통에 머리를 처박고 사는 가축들과 인간이 다를 바가 뭔가. 이런데도 그저 매일이 바쁘고 피곤하다며 자신은 부지런한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 뭐에 바빴다는 말인가?

 

게다가 사실 요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 일에 바쁘지만 자신에게 게으른 사람을 말했을 뿐 자기에게 게으른 사람들은 대개 어떤 일이건 의미있는 일을 진정으로 최선을 다해 하지 못한다. 그냥 게으른 자신에 대한 죄책감을 없애기 위해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고, 쓸데없는 일을 자꾸 벌여서 안절부절할 뿐이다.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 그 사람은 스스로 자기가 하는 일은 다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푼돈을 아낀다고 하다가 저기서는 큰 돈을 날리고 오늘은 바쁘다고 난리다가 내일은 시간을 마구 낭비하는 그런 삶을 산다. 학창시절에 공부못하는 학생들도 대부분 이런 스타일이다. 진정으로 공부를 안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 한다고 하고 오히려 날마다 공부때문에 바쁘다고 하면서 사는데 옆에서 보면 쓸데없이 시간낭비하다가 시험전에는 시간이 모자라서 쩔쩔맨다. 공부하는 시간이전에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없거나 잘못되어 있다.

 

두 사람이 똑같은 하루를 보내도 한 사람은 충실한 삶을 산 것이고 한 사람은 그저 시간을 낭비한 것일 수 있다. 충실한 하루를 보낸 사람은 밥을 먹을 때는 식사시간을 즐기고 차를 마실 때는 차의 시간을 즐기며 산책을 할 때는 산책을 즐긴다. 시간을 낭비한 사람은 밥먹으면서 차를 걱정하고 산책을 하면서 식사를 걱정한다. 충실한 하루를 보낸 사람은 하루의 끝에서 자기 자신의 체험이 남고 기억이 남지만 하루를 낭비한 사람은 자기가 뭘 했는지도 모른다. 최고로 훌룡한 식사를 했어도 다른 생각에 팔려 무슨 맛인지도 몰랐던 셈이다. 그러니 그 다음날에 대한 생각도 있을리가 없다.

 

게으른게 좋은 건 절대 아니다. 다만 필요한 만큼, 의미가 있는 만큼 바쁜게 좋다. 그걸 넘으면 이젠 몸은 바쁜데 어떤 관점에서는 게으른 사람이 되기 시작한다. 매일 공부하는데 성적은 형편없는 열등생처럼 된다. 겉으로만 바쁘고 부지런 한건 허무하다. 주변사람은 그 사람을 칭찬할지 모른다. 그런 칭찬과 평판이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삶이 자기 내부와 일치할 때만 그렇다. 목적도 없고 방향도 없고 그저 변명용으로 바쁜 부지런함은 사람들을 오래 속이지 못하니 결국 자신과 주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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