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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생활에 대하여

좋은 쇼핑을 위한 조언들

by 격암(강국진) 2021. 12. 28.

2021.12.5

살다보면 이런 저런 물건들을 사게 될 일이 생긴다. 설사 꼭 필요한 건 아니더라도 생활의 변화를 위해 새로운 물건을 사는 일은 종종 있는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쇼핑을 하게 되는데 안타깝게 그 결과가 영 엉망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좋은 쇼핑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일까? 마구 돈을 펑펑쓰면 기분이 좋으니까 돈이 없는게 문제지 쇼핑은 언제나 쉬운 것일까? 가지고 싶은 물건은 어차피 잔뜩 있으니까?

 

좋은 쇼핑을 위한 첫번째 규칙은 아마도 이걸 기억하는 것일 것이다. 물건이란 일단 늘어나면 다 짐이고 부담이라는 것이다. 즉 쇼핑은 좋은 쇼핑이 되지 못하면 안하니만 못하고 설사 좋은 쇼핑을 했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돈이상으로 지불해야할 것을 가지게 된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새로 이사를 했다고 하자. 이사를 새로 한 김에 낡은 가구들은 버리고 새롭게 집을 꾸미기로 했다. 돈도 마침 넉넉하다. 그러면 문제는 없는 것일까? 문제는 아주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새로 이사간 집을 새로운 물건들로 꽉꽉 채워 놓는 사람들이다. 그 하나 하나의 탁자며 소파며 책꽂이가 예쁜가 비싼가 하는 것은 두번째 문제다. 그 조화가 전혀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장 비싸고 좋은 인테리어는 텅빈공간이라는 것을 모르고 집을 비좁게 만드는 것은 최악이다. 공간이 남아도는 듯한 집은 편안하고 부유해 보인다. 그런데 대개의 경우 우리는 자꾸 물건을 늘리기 때문에, 혹은 원하지 않아도 물건이 늘어나기때문에 이 반대의 경우가 많다. 몇십억짜리 집에 살아도 그 집이 고물상같아서는 보람이 없다.

 

그러니까 쇼핑을 하게 되면 그것이 여러분이 가진 다른 것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게 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테리어나 패션만 그런게 아니다. 생활이 그렇다. 여러분이 자전거를 산다는 것은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를 보관하고 관리한다는 것이 생활속으로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러분의 삶은 텅빈 아파트처럼 비어있지 않다. 다른 일들로 채워져 있다. 그러니 자전거를 쇼핑하는 일이 여러분의 삶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 뭘 포기하고 밀어내서 자전거타기를 그 생활속으로 집어넣고 조화를 이룰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때 이번에는 아파트가 아니라 여러분의 생활이 잡다한 활동으로 채워진 고물상처럼 될 것이다.

 

좋은 쇼핑을 위해 기억해야 할 두번째 규칙은 우리가 쇼핑 자체를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쇼핑은 종종 쇼핑을 해서 생기는 물건 이상으로 그 쇼핑을 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 앞에서 가구의 예를 들었기 때문에 가구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해보자. 세상에는 돈이 없는 사람도 많지만 안목이나 교양이 없는 사람은 더 많다. 그래서 같은 돈을 들여도 어떤 사람들은 꽤 멋지게 집을 꾸며놓고 쾌적하고 편리하게 살지만 어떤 사람들은 완전히 거지같이 산다. 옷을 생각해 보라. 왜 코디네이터같은 직업이 있겠는가? 그냥 비싼 옷입는게 최고라면 말이다. 인테리어는 집이 입는 옷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돈을 써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전문가가 만들어 놓았다는 결과물을 그냥 복제하면 되는 것일까? 도움을 받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정답을 그냥 베끼는 것은 그다지 최고의 쇼핑이라고는 할 수없다. 우리가 자기 고집을 부리고, 자기 생각을 집어넣으면 아마도 그 결과물은 객관적으로 봐서 전문가의 조언보다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생각하고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그 과정을 즐겨야 한다. 좋은 쇼핑은 결과물이상으로 그 자체가 즐거운 것이다. 시간이 없다고 할지 모르지만 그건 서두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서두를 필요는 없다. 사실 이 세상의 거의 모든 쇼핑은 엄밀하게 말하면 사치다. 다시 말해 그걸 빨리 안해도 큰 일은 안난다는 것이다. 불편할 뿐 그냥도 살 수 있다. 당장 잘 곳이 없으니 침대하나 당장 사겠다는 생각이 꼭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그다지 좋은 쇼핑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대충 산 침대는 마치 바느질을 할 때의 첫바늘처럼 다른 가구를 살 때도 제약조건을 주게 되어 대충산 침대하나가 온 집안을 다 바꾸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까 좋은 쇼핑의 첫번째는 쇼핑을 안하고 버티는 것이다. 이 정도면 좋다는 생각이 들어도 참아야 한다. 그러면서 계속 보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침대는 침대면 된다고 할지 모르지만 머리위에 물건을 놓을 곳이 있다거나 스마트폰충전선같은 것이 있으면 더 좋을지 모른다. 어떤 때는 접어서 치울 수 있는 침대가 좋을 것이고 어떤 때는 중후한 원목의 느낌이 방의 분위기를 기분좋게 만들 수 있다. 매트리스보다 조금 큰 침대를 사면 침대끝이 쪽마루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어떤 침대는 로보트 청소기가 밑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문제일 것이다. 어쩌면 이런 긴 생각의 끝에서 침대따위는 없애고 푹신하고 두꺼운 이불을 깔겠다고 할지도 모른다. 이 생각하나하나에 따라 돈의 차이도 커지고 결과물에 대한 만족도도 커진다. 무엇보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애써 돈들여 산 침대가 처치곤란이 된다.

 

이렇게 하나의 물건에 대해 시간을 두고 생각을 하고 정보를 모으면 나중에는 머리가 복잡해지는 일도 생긴다. 그럴 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충분히 보고 충분히 정보를 모은 후에는 그 정보들을 잊어버리고 자기 마음이 가는 곳을 따라가야 한다는 것이다. 친구나 전문가의 답을 그냥 따라할 필요는 없다. 내 마음이 끌리는 것이 답이다. 객관적 정답은 없다.

 

쇼핑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글쎄 독서도 시간낭비가 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리고 잘한 쇼핑은 절대 시간낭비가 아니다. 쇼핑을 즐긴다는 것은 낭비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생활을 최적화하는 것이다. 바지 두벌이면 잘 살 수 있는데 바지를 마구 사면 5벌이 있어도 입을 게 없을 수 있다. 돈도 낭비지만 집이 좁아지고 쇼핑을 대충한 만큼 평상시 고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입지도 않는데 버리지도 못하는 옷들이 다들 많이 있지 않은가.

 

쇼핑에 쓰는 시간은 가장 문화적인 시간이며 심지어 철학적인 시간일 수도 있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쓰는가 하는 것이다. 컴퓨터 한대를 사는데 몇배의 시간을 들였다고 해서 꼭 시간낭비일까? 차를 한대 사는데 6개월간 수많은 공부를 하면 그건 시간낭비일까? 컴퓨터를 사면서 내 생활을 점검하고, 요즘 컴퓨터 시장에 대해서 공부하는 것이 왜 시간낭비일까? 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사실 책을 보면서 그 안의 정보를 얻는 것을 종종 죽은 공부다.

 

미술관에 가는 것은 문화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서랍장이나 침대를 사는 것은 문화적인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아주 엉터리같은 가구를 살 생각이기 때문이다. 가구를 만드는 나무들에는 어떤 나무들이 있을까? 어떤 칠을 하면 가구의 색깔이 바뀔까? 어떤 형식의 가구는 어떤 나라에서 기원한 것인가? 왜 가구는 이런 규격을 가지게 되었을까하는것이 미술이나 건축과 상관이 없다는 말인가?

 

쇼핑은 우리를 성장시킨다.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이라서 그렇다. 그래서 전문가의 정답만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재미도 없고 교육적 효과도 없으니 돈들인 보람이 덜하다. 좋은 쇼핑은 즐겁고 유익하며 하고 나서 두고 두고 그 결과물이 우리를 흐뭇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좋은 식사가 먹방러가 마구 밥을 먹듯이 먹는게 아니듯 좋은 쇼핑도 그저 사는데 중독된 사람들의 행동이 아니다. 사실 좋은 쇼핑은 조금씩 조금씩 우리 자신을 찾아내고 만들어가는 자기성찰 행위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무소유를 말했던 법정스님이야 말로 좋은 쇼핑이 뭔지 아는 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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