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3.1
박하사탕은 1999년에 나온 이창동 감독의 영화다. 최근 우연히 해외 언론에서 한국 최고의 명작 영화 중 하나로 박하사탕을 꼽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나는 넷플릭스에서 박하사탕을 보게 되었다. 놀랐던 것은 너무나 유명했기에 나 스스로 이미 본 줄 알았던 박하사탕이었지만 사실 난 이 영화를 본 적이 없었다. 당시는 내가 해외에 있었던 때였고 그때는 한국 영화를 해외에서 보기 힘든 때였기 때문이다. 이번에 그 영화를 보고 난 감상을 적는다. 스포일러는 최소화하겠지만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있다.
이 영화는 사진작가를 꿈꾸던 한 순수한 청년의 타락을 통해 폭력은 피해자를 상처입히는 만큼이나 가해자도 상처를 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누구나 착하고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싶어한다. 그런데도 왜 세상에는 험한 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위선적인 행동을 해서 남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 것일까? 그것은 그들도 상처입었기 때문이다. 거친 언사와 남을 억누르는 강함을 보여주는 사람들, 차별적 언사와 권위주의적인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라고 해도 그들의 대부분은 사실 그들 자신의 약함때문에 그런 태도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들도 사실은 피해자였다. 누군가에게 무시당하고, 누군가에게 이유없이 두들겨 맞거나 굴욕적인 행동을 강요당하고, 누군가에게 사기를 당하거나 버림받은 것이다. 이런 폭력이 주는 상처가 그들을 거칠게 만들었고 그들의 삶을 아름답지 않게 만들었다. 그러나 피해자로서 받은 상처는 사실 작은 부분일 뿐이다. 그들에게 진정으로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은 피해가 아니라 오히려 가해다. 우연에 의해서건 주변의 강요에 의해서건, 먹고 살기 위해서건 아니면 그저 그때의 기분이나 피해의식때문이건 우리는 살면서 가해자가 될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때 우리는 더욱 깊게 상처받는다. 피해자일 때 우리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지만 억울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고 일종의 도덕적 우월성을 간직할 수도 있다. 그런데 가해자가 되고 나면 내가 이따금 욕했던 그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나은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 수록 세상은 지옥이 된다. 자기 자신을 나쁜 놈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대개 세상은 다 나쁜 놈이라고 말한다. 자기가 더 더러운 인간일 수록 세상은 더러운 인간으로 가득 차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말그대로 세상은 지옥이 되는 것이다. 조지오웰이 쓴 미래소설 1984년에서 누군가를 교화시키는 작업의 끝은 배신을 강요하는 것이었다. 배신당한 자는 자기를 지키고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만 배신자는 지옥을 빠져나갈 수 없다.
이 영화는 1980년의 광주민주화 운동때 점령군으로 끌려간 한 군인이나 고문 경찰의 이야기를 그리기 때문에 언뜻 본 사람은 어쩌면 이 영화를 지극히 정치적인 것으로만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1999년에 이 영화를 봤다면 그런 의미가 더욱 강하게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2022년에 이 영화를 보면 정치적인 의미 이상으로 문화적인 의미가 더 강하게 보인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은 지금도 한국에서 생생히 살아있는 한국인의 문화이며 조금 더 폭을 좁혀서 이야기 하면 지금의 노인세대 내지 보수적인 사람들의 문화다. 여기서는 그걸 보수문화라고 부르기로 하자. 그들이 어떻게 놀고 어떻게 먹고 어떻게 인사하고 어떻게 일하는 가하는 것이 그 안에 다 포함되어져 있다. 보수 문화를 한마디로 요약하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지금의 한국은 그때와는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이 영화를 지금 보는 사람은 보수 문화를 더 생생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차이는 소위 막장드라마라고 하는 공중파 방송국들이 만드는 드라마와 Jtbc나 TvN 그리고 OCN이 만드는 드라마와의 차이이기도 하다.
보수 문화에서는 남의 감정을 살피거나 니것 내것을 가리는데 있어서 섬세함이 없다.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의 삶을 마구 침범해서 억압하고 상처를 주는 일이 많으며 얄팍한 말솜씨와 처세술로 위선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쉽다. 그러니까 뒤로는 그의 돈을 훔치면서 앞으로는 죽고 못사는 형제처럼 군다던가 뒤로는 그 사람의 배우자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으면서 앞에서는 친절한 웃는 낯을 보이는 일 같은 것을 계속 하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보면 보수 문화의 본질은 위선이다. 보수 문화는 위선의 문화다.
보수 문화는 공식적으로는 체면을 강조하고 지극히 선한 사람이어야 할 것을 강조한다. 보수문화의 세상에는 근거를 알 수 없는 규칙과 관행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걸 모두가 지킨다고 말한다. 보수 문화는 중요한 것은 너의 생각이 아니라 강자의 생각이라고 말하고 사람들에게 계속 자기의 마음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무슨 무슨 척을 하면서 살라고 강요한다. 이런 위선이 필요한 것은 물론 진짜 현실의 세계는 공식적으로 말하는 세계와 다르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우리는 화목하지 않은 데 화목한 척하고 하고, 친절하지 않은데 친절한 척하고, 사랑하지 않는데 사랑하는 척 한다. 모두가 어느 정도는 더러운데도 그걸 인정하지 않고 공공의 장소에서는 모두가 천사처럼 새하얀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속마음은 다르다. 어차피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누군가를 억압하고 사기쳐서 살고 있다.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나는 이창동의 초록물고기를 보고 비로소 한국영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이창동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것은 이런 우리 삶속의 위선을 고발하고 자기를 지키며 살아가는 인간이다. 초록물고기의 막동이도 그랬다. 죽더라도 현실과 부딪히고 자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그의 작품을 좋아하게 된 것같다. 현실은 지옥같고 재수가 아주 좋지 않으면 우리는 결국 그 현실에 패배할 수도 있지만 자기를 부정하고 계속 무슨 무슨 척만 하면서 사는 위선의 삶은 진정으로 우리를 죽이는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때문이다. 우리 이런 위선의 삶을 벗어던지고 멋진 척좀 그만할 수 없냐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창동은 한류의 선구자다. 이런 의미에서 1980년대 이래의 민주화운동은 사실은 문화운동이었다. 그것은 위에서 말한 보수문화가 싫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보다 자유롭고 개인주의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자라나온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사회적 움직임의 본질은 사소한 것이라고 말한다. 바로 서로 덜 상처주고 위선적인 행동을 강요할 필요가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진짜 폭력적인 인간이 도덕을 강요하고 진짜 도둑놈이 남의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열변을 토하는 그런 세상이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살기 힘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우리 스스로의 삶이 망가지기 때문이다. 우리 스스로가 가해자로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2022년에 본 박하사탕에서 이창동은 누구도 가해자가 될 필요가 없는 세상 그런 세상을 만들어가 보자고 말하고 있는 것같다. 누구나 진짜로 순수하고 착했던 시절이 있다. 그걸 서로 망칠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 세상이 싫지 않은가. 하지만 그건 물론 어렵다. 이미 지옥에 빠진 사람들은 보수 문화속에서 탈출하기란 불가능하다고 단언한다. 오히려 그런 세상으로 가자고 하는 사람들이 사기를 치고 있는 진짜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박하사탕에서는 그들의 말을 이렇게도 표현한다. '니가 그렇게 대단해?'
하지만 돌아보면 헬조선이니 뭐니 해도 그래도 과거보다는 지금이 낫다. 우리는 이미 많이 전진했다. 지금이라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고 우리는 미래에도 문제를 가질테지만 우리는 또 그것을 지적하고 고쳐갈 것이다. 희망을 가지자 개혁은 불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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