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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뒷트렁크의 교훈

by 격암(강국진) 2022. 4. 28.

22.4.28

일전에 다른 용도로 쓰려고 작은 상을 하나 샀습니다. 그런데 그 상을 어느날 자동차 뒷트렁크에 놓고 트렁크 문 연 채 앉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그 중의 한가지는 내가 원하는게 그렇게 대단한게 아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한옥집의 툇마루에 대한 꿈이 있습니다. 재정적으로나 관리의 측면에서 도저히 한옥집에 들어가 살 엄두는 안나지만 여기저기 한옥집에 갈 일이 있어서 툇마루에 앉아보면 그게 너무 좋은 겁니다. 말하자면 바로 이런 풍경이 너무 멋지고 부러웠습니다. 

 

 

사실 이런 풍경과 사진을 보고 싫다고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다들 관리는 어떻게 하는가, 돈은 어디서 나는가, 내가 사는 곳에 저런 곳이 있기는 하나 뭐 이런 이유로 실제로 툇마루가 있는 집에 사는 사람이 거의 없을 뿐이죠. 문제는 꼭 한옥인 것도 아닙니다. 양옥중에도 깊은 지붕과 썬큰 가든 같은 걸 설치해서 툇마루에 앉아 있는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집들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집들도 비싸죠. 게다가 돈 문제가 1도 없다고 해도 자신이 원하는 집을 짓는다는 건 정말 엄청난 시간과 정신 에너지를 들이는 일입니다. 생각해야 하고 걱정하고 선택해야 일이 돈말고도 끝없이 많으니까요. 집을 짓는게 아니라 집의 화장실하나라도 리모델링해보신 분들은 이걸 아실 겁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면 초라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 앉아보면 상상이상으로 괜찮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동차의 뒷트렁크 자리였습니다. 바깥에서 보면 자동차의 뒷트렁크라는게 좁고 불편하고 심지어 불쌍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앉아 보면 적어도 혼자 앉아 있기에는 아주 넉넉한 공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훨씬 좋습니다. 사실 한 사람이 필요로 하는 공간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에서 보여준 툇마루 같은 것에 나무 칸막이 같은 걸 하고 앉는다면 한 사람분의 공간은 자동차 뒷트렁크 공간보다 그다지 클 필요가 없습니다. 실제로 앉아 보면 그 정도만 크면 공간이 넉넉하고 생각보다 편안합니다.

 

 

비좁을 것같았던 공간이 생각보다 훨씬 좋아서 저는 이게 왜 이렇게 좋은지에 대해 생각에 빠져들었습니다. 몇가지 이유가 생각나더군요. 첫째로는 좌식 공간이 생각보다 편하다는 겁니다. 아마도 이건 한국인의 특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에 상을 하나 놓고 신발을 벗은 채 다리를 쭉 펴고 뒤에 등을 기댈 공간이라도 있으면 이게 엄청 편합니다. 뭐랄까 그럴듯한 의자나 소파에 앉으면 당연히 편하겠죠. 하지만 신발벗고 바닥에 주저앉아 발을 뻣는 순간 한국인은 단순히 편하다 아니다로 표현하기 힘든 어떤 감각을 느끼는 겁니다. 그래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거실에 멋진 소파를 사놓고도 그 앞의 바닥에 주저앉아서 티비를 보고 있는 것같습니다. 

 

 

두번째로 제가 느낀 것은 높이 입니다. 한옥 마루가 그토록 좋게 느껴지는 이유는 마당과 마루의 높이 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냥 주저앉는게 아니라 나는 주저 앉아 있는데도 앞의 풍경이 내려다 보이는 구도가 좋은 겁니다. 이 부분을 왜 그런가하고 물으면 그냥 그게 인간의 본성인가 봅니다라고 밖에는 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아마 나는 푹파인 곳에 앉아 있는게 더 좋습니다라고 누군가 말씀하신다면 저는 반박할 수 없겠죠. 하지만 전형적인 한옥 사진을 보면 이 부분에 대해서 각자 생각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보통 한옥에서는 마당에 있는 사람이 서있는데도 마루 위에 놓인 상의 음식을 눈높이에서 보는 정도로 마당이 꺼져 있습니다. 그러니 마루에 앉은 사람의 머리가 마당에 서있는 사람의 머리와 같은 높이거나 더 높은 것이죠. 바로 그런 마루에 앉는 것이 기분이 좋은 것입니다. 절과 고택등 많은 곳이 이런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앉으면 앉는다는 것의 즐거움이 더 커집니다.

 

저는 이 높이의 마술이 한옥이 가지는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양주택은 이런 특색이 없지요. 적어도 한옥처럼 마루가 주거보다 내려앉는다라는 것이 상식일 정도로 높이에 대한 어떤 원칙이 있는 건 아닌 것같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냥 평탄한 바닥에 소파나 침대같은 가구를 놓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한국인들도 그렇게 살죠. 대개의 아파트 바닥은 평탄하고 그 위에 가구를 놓고 사니까요. 여기에는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한옥의 툇마루에 앉아서 아 좋다라는 감정을 느낀다면 특히 그렇습니다. 그게 왜 좋은가. 상당부분 높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특징이 없는 현대 한국의 집은 그런 감동이 거세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느낀 것은 야외 생활의 즐거움입니다. 화단이랄 것도 없는 보잘 것없는 작은 땅 앞에 차를 세우고 뒷트렁크에 앉아보니 꽃가루도 날리고 이따금 작은 벌레도 날아들어 귀찮은 것도 있었습니다. 또 이따금 주변 소음때문에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불편을 제쳐두면 차츰 제가 바깥에 앉아 있다는 사실이 상당히 괜찮게 느껴졌습니다. 사실 차를 어디에 세우냐에 따라 그런 문제들이 줄어들기도 하고 말입니다. 

 

요즘 캠핑이 인기입니다. 그런데 캠핑의 핵심중의 하나는 바로 사방이 막혀있는 집에서 탈출하는 것입니다. 요즘은 냉난방도 잘되있고 단열도 잘된 집에서 대부분 사시죠. 그런데 그런 집들은 대개 바깥과 안의 공간이 잘 분리되어 있습니다. 겨울에는 추우니까 당연하고 여름에는 더워서 금새 에어컨을 틉니다. 그런 냉난방이 필요없는 봄가을에도 대개 환기를 자주 시키지 않습니다.

 

우리는 닫힌 공간에 사는 것에 익숙해졌습니다. 바람이 불고, 새소리가 들리고, 구름의 그림자가 지나간다던가 하는 환경, 특히 환기가 아주 잘되어 있는 환경으로부터 동떨어져서 삽니다. 그런 환경은 그런 환경대로의 장점과 매력이 있습니다만 사람이 이불속이 좋다고 이불속에서만 살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다가 답답해서 바깥으로 나오면 그건 외출이 됩니다. 외출은 외출의 장점과 매력이 있습니다만 또 불편하고 힘든 것도 있죠. 

 

그런데 한옥의 마루에 앉는 것은 외출도 아니고 닫힌 집안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곳에 오래 앉아 있으면 그런 장소는 닫힌 공간에 있는 것과 외출을 하는 것과는 또다른 장점과 매력이 있다는 것이 느껴집니다. 그늘이 진 마루에 앉아 있으니 피곤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바깥 공기를 쐬고 있으니 사람이 마치 삶아지고 있는 듯이 의식이 흐려지는 듯한 느낌이 또 없습니다. 

 

화단옆에 차를 세우고 상앞에 앉는 것은 그냥 평범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제가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고작 양팔넓이의 공간이면 행복할 수 있는데 나는 그보다 열배 백배는 더 크고 만들기 어려운 어떤 것을 욕심내고 있었던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젠가 제가 집을 짓는다면 저는 그곳에 정말 작은 방을 하나 만들고 싶습니다. 작은 방과 높이를 가진 마루 그리고 그늘과 작은 화단이면 저는 꽤 행복할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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