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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쌍하지만 지겹다.

by 격암(강국진) 2022. 5. 24.

22.5.24

문재인 대통령 사저 앞이 요즘 시끄러운 모양이다. 퇴임하여 공직에서 물러난 대통령이 뭐가 두려운지 모르겠다. 연일 그 집앞에서 확성기로 어찌나 시끄럽게 구는지 사람들이 귀가 아파서 보청기를 빼는 노인들이 있을 정도라고 한다. 방송에 나온 그 자칭 보수주의자들의 말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이 SNS도 안하고 아무 일도 안하고 조용히 있으면 자신들은 물러가겠다고 한다. 그런 걸 요구할 수 있는게 민주주의이며 자신들의 국민된 권리란다. 상의도 입지 않고 트럭위에 서서 몇마디 말마다 쌍욕을 하는 그들은 뭔가가 굉장히 분한가 보다. 백신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책임지라고 하는 현수막도 보인다. 

 

나는 그들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나는 그들이 불쌍하다고 까지 생각한다. 하지만 동시에 지겹고 두렵다. 사실 이들이 전부가 아니다. 그 모든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대통령을 지지하여 뽑아준 사람들도 지겹고 조국일가를 끝장내겠다고 달려드는 검찰도 지겹고 그들을 지지하고 뭐가 문제냐고 말하는 사람들도 지겹다. 지겹고 두렵다. 어떤 때는 마치 말이 통하지 않는 짐승을 보는 것같다. 한편으로는 참 악연이라는 생각도 든다. 생각이 다른 그들과 나는 어떻게 생각하면 떨어질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 그들이 행사하는 한표의 권리가 내가 속한 한국의 정치를 바꾸고 한국인이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바꾼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나도, 내게 소중한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물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서로에게 욕을 하게 되고, 분노하게 되는 일이 생긴다. 나는 저런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욕먹는 것이 싫다. 물론 저 사람들도 나같은 사람에게 바보같은 사람들이라고 욕을 먹는 것이 싫을 것이다. 설사 내가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들도 알 것이다.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바보스럽고 혐오스럽게 보인다는 것을. 그래서 그들은 거꾸로 바보이고 혐오스런 인간은 바로 나라고 우리라고 펄펄 뛰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그저 그들이 가진 동기의 전부는 아니라고 해도 중요한 동기일 것이다.

 

이럴 때 자주 등장하는 것이, 그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서로 포용하고 이해하자는 주장이지만 이런 말들은 사실 그저 문제를 강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사람들의 한가한 이야기로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새치기를 하는 사람과 줄서기를 하는 사람들도 그저 생각이 서로 다른 사람들일 뿐인가? 그러니까 새치기를 하는 사람은 계속 새치기를 하고 줄서기를 하는 사람은 계속 새치기를 당하는 것이 아름다운 포용과 이해의 현실인가?

 

생각이 다르다는 것은 최소한 일관성을 가지는 그 생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일관성이라는게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지만 오늘은 여자를 쳐다본 것이 성추행이라며 펄펄 뛰다가 내일은 강간범도 인간적으로 이해해줘야지 뭘 저런 걸가지고 시끄럽게 구냐고 하는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일단 인정해 줄 그 '생각'이라는 게 없다. 그들은 그때 그때 자기에게 편한 말들을 가져다가 쓸 뿐이다. 오늘은 불교신자, 내일은 캐톨릭 신자, 오늘은 채식주의자, 내일은 스테이크 먹방을 하는 유튜버인 식이다. 자기 이데올로기라는 것,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무슨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하는가? 그런 말은 유치원생도 부모에게 할 수 있다. 엄마는 차이를 인정하고 나를 동등하게 대해줘야 한다고 말이다. 내가 이렇게 떼쓰는 것은 모두 시민의 권리라고 말이다. 그런게 아름다운 공존의 장인가? 미국이 사드 레이더 설치한다고 하면 찬성하다가 그걸 내 집앞에 하면 데모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 존중을 받아야 하는가. 존중이고 비하고 거기 그런걸 할 수 있는 일관성을 가진 생각이라는게 있나? 

 

자신이 남에게 당할 때는 정말 사소하고 우연한 것도 사람 죽일 듯이 분노하다가 태연하게 자신은 그보다 훨씬 심한 짓을 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 않냐고 대충 얼머부리고 넘어가는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가. 조국일가에 대해, 위조되었을지도 모른다는 그 빌어먹을 놈의 자원봉사 표창장에 대해 분노하고 성명서를 발표하는 사람들은 왜 그보다 훨씬 심한 경제적 부패나 입시 비리에는 침묵하는가. 그 대학교 학생회들은 어쩌면 그렇게 분노를 선택적으로 하는가.  조국일가에게 분노하던 한 보수 대학교수는 얼마전에 바로 자기 자신이 고등학생 논문을 써줬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런 낯부끄런 짓을 하면서 잘도 자신은 사회적 지도층이라고 언론에 대고 온세상 문제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잘도 떠든다. 

 

결국 한발 뒤로 물러서 보면 자기가 어떻게 사는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별다른 고민도 없는 사람들, 세상을 둘러보고 지금 내가 어떤 사람인지, 한국이 어떤 나라인지 알아볼 의지도 없는 사람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알면서도 자신의 이익과 욕망을 위해 고의적으로 원칙과 합의를 뒤흔드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중의 하나가 바로 일관성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그런 무일관성을 변명하기 위해 남들 욕하기에 몰두한다. 그러니까 몇천억 해먹은 사람에게는 마음이 평화로운데 자원봉사 표창장이야기가 나오면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화가 치민다.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은 그러니까 다 더럽고 다 일관성이 없지 않냐는 것이다. 이게 내로남불이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사람이란 본래가 욕망덩어리이고 유한하다. 사람이란 결국 짐승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육체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아름 다운 이성간의 사랑을 제 아무리 찬양해 봐야 그 감정의 맨 밑바닥에 있는 것은 DNA가 시키는 짐승같은 욕망이다. 사랑이 단지 그런 원초적 욕망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사랑이 그런 감정과는 무관하다고 단언하는 것도 어리석은 것이다. 남녀간에 친구가 존재하냐 안하냐 가지고 지구 끝까지 싸워도 남녀간의 사이가 흑백으로 욕망의 대상인지, 아니면 그런 것이 전혀 없는 사이인지 결판나지 않는다. 제 아무리 배우자에게 헌신적인 사람들이라고해도 그들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에게 단 한순간도 성적인 유혹을 느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나는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만 그런 말을 결혼따위는 무의미하고 짐승처럼 되는게 당연하다고 이해하는 사람들이 문제를 이상하게 만들 뿐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지겹다. 그래도 두렵다. 누구나 뛸 수 있는 거리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누군가는 마라톤을 완주하고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한다. 이게 다 똑같은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냥 서로 생각이 다른거라고 주장하기에는 그들은 일관성이 없을 뿐 아니라 행복하지도 않다. 서로 생각을 어느 정도 존중한다는 것은 앞에서 말한대로 그 존중할 생각이라는 것이 일관성을 가지고 존재해야 할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힘이 있어야 한다. 대개는 불행한 것도 자기 선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면 불행은 첫째로 자기 파괴적이다. 자기를 파괴하는 사람들은 일단 인간적으로 불쌍할 뿐만 아니라 결국은 사회적으로도 문제를 만든다. 예를 들어 마약을 하는 것을 왜 사회적으로 금지하겠는가? 마약은 자기 파괴적일 뿐만 아니라 결국 그 파괴된 인간이 사회적인 피해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불행도 자기 선택이라고만 말할 수 없는 더 중요한 이유는 사실 그들은 그 생각이란 걸 자기만 가지는 것이 아니라 대개 주변에 퍼뜨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자기 파괴적이고 모두를 불행하게 만들 생각을 퍼뜨리는 것도 존중해 줘야 할 사상이라면 사기꾼은 뭐하러 처벌하는가? 

 

다시 말해 내가 말하는 지겹고 두려운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자기 파괴적이고 남들도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허세와 체면을 중요시하고, 가치관이 단순하고 물질적이고, 남들에게 공존할 수 있는 공간과 시간을 주는게 아니라 마구 침범하여 자기 삶을 다른 사람의 삶과 뒤섞어 버리는 사람들은 세상에 넘쳐난다. 일관성도 없으면서 예의범절 따질 때는 지긋지긋하게 따지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이 많네 지위가 높네하면서 평가하고 굽신거리고 청탁넣기를 생활화하고 남들 줄서고 세금낼 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 현명함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너무 많다. 

 

이들을 인정해 줄 수 없는 것은 이들이 단지 나와 생각이 다르기 때문이 아니다. 이들은 우선 앞에서 말한대로 일관성이 없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자기 파괴적이다. 이들은 스스로 행복해 질 수가 없다. 스스로가 비참해서 남들도 한사코 붙잡고 다 같이 불행해지자고 하고, 그게 싫으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보라고 외친다. 그걸 위해 수단으로 삼는 것이 바로 아들같아서, 딸같아서, 호형호제하는 형제같아서같은 식의 표현이고 사실은 관심이 1도 없으면서 남의 일에 파고들어서는 기필고 평가를 하고 정당화를 요구한다. 내 인생은 개똥인데 네 인생은 뭐가 다르냐, 너도 똥같은 인생이라는 것이다. 옥석을 구분할 식견은 하나도 없으면서도 기필코 이게 옥이고 저게 돌이라거나 모두가 돌이라고 외치고야 만다. 드라마를 보면서 저런 나쁜 놈, 저런 나쁜 놈하고 말하지만 정작 일상 생활에서 자신의 행동은 바로 그 드라마 작가가 욕하는 그 악역들의 행동을 따라가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새치기는 생각이 다른게 아니다. 새치기 하는 사람도 당하기를 싫어하기 때문이다. 즉 일관성이 없다. 게다가 새치기를 당연시 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사회는 지옥같다. 자기들도 새치기 하는 사람들과 살기 싫어한다. 자기들끼리 발목잡으며 살 때는 지긋지긋해 하다가 줄서기 하는 멀쩡한 사람을 보면 사람이 순진하네, 사람이 어리석네, 사람이 융통성이 없네 하면서 바로 그 자기파괴적이고 불행한 삶을 한사코 전파하려고 하는 사람들. 지겹고 두렵다. 자기 삶이 견딜 수 없다면서 변하려고도 안하고 오히려 주변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이런게 우리가 그저 생각이 다를 뿐이니 서로 존중하고 공존해야 할 대상인가?

 

세상은 본래가 인간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우리는 그것을 개간하고 바꿔서 인간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 문화의 공간은 넓히는 것은 둘째치고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다. 언제나 세상에서는 뭔가가 넘쳐서 흐르고 그것들은 그 사람사는 공간을 파괴하고 본래의 혼돈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나야 나 하나 지킬 공간을 유지하고 다만 그걸 조금 인터넷에 공개하는 사람일 뿐이다. 그렇게 해서 세상에서 너무 멀어지지 않으려고 하고, 세상에서 힘도 얻는다. 하지만 그 세상이 때로는 지겹고 두렵다. 그게 나를 아프게 한다. 어쩌면 그렇게도 변하는 것이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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