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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집이 중요해지고 있다.

by 격암(강국진) 2022. 12. 25.

22.12.25

요즘 부동산 위기에 대한 말이 사방에 가득하다. 서울 어디의 아파트값이 반년만에 40%쯤 빠졌다는 식의 기사가 여기저기 나온다. 영끌해서 집을 산 사람들이 후회한다는 기사도 많다. 그런데 나는 이런 경제적 차원과는 다른 의미에서 집이 중요해진다는 생각이 든다. 즉 머물 공간으로서의 집이 드디어 중요해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코로나 사태로 인해 지난 몇년간 집안에 갇혀 지내던 생활을 해본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경험은 세상을 어느 정도 비가역적으로 바꿨다. 지금도 재택근무를 하거나 온라인 수업을 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무엇보다 사람들에게 집에 있어 보니 좋더라 같은 경험을 남긴 것이다. 더구나 코로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람이 북적이는 일은 많이 생겼지만 여전히 사람 많은 곳이 꺼림직하다는 사람도 많이 있다. 

둘째는 고령화로 퇴직인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인구의 허리를 담당하는 베이비붐 세대가 본격적으로 퇴직 연령에 도달한 지금 사람들은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훨씬 늘었다. 사실 한국인들은 학업이며 직장때문에 그리고 바깥에서 먹고 마시는 걸 좋아하는 야행성 행동패턴때문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짧은 사람들이다. 그것이 지금 바뀌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시대의 변화다. 과거부터 꾸준히 계속되는 정보화는 조금씩 조금씩 재택 근무와 계약직 근무를 늘리고 있다. 원한다면 집에서 근무할 수 있는 방법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니까 사람들은 점점 더 잠만 자는 집이 아니라 일하고 먹고 머무는 곳으로서 집을 다시 보게 된다. 잠자는 기능을 빼고 모든 것이 아웃소싱되었던 시대의 조류가 뒤집어 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주거문화는 이런 현실에 뒤쳐지고 있다. 한국의 집은 지루하고, 사생활이 없으며, 개성도 역사도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주거가 아파트인데 이 아파트는 한국의 전통주거가 일제를 거치고 일본주거, 서양주거와 만나면서 말도 안되게 변형되어 대충 마감된 집이다. 보통 아파트라고 하면 서양주거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파트는 물론 한국전통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완전히 서양집이라고 할 수도 없다. 집은 모양만 중요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바닥난방이 모더니즘 건축과 결합되어 주거가 된 것은 한국이 최초다. 온돌이 깔려 있다고 해서 아파트가 어떻게 한국집이냐고 하겠지만 온돌은 한국 주거문화의 핵심이며 주거문화를 결정적으로 바꾸는 핵심요소이기 때문에 그걸 그렇게 사소하게 봐서는 안된다. 한국인은 보통 벽지를 바르고 바닥난방을 한 집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한다. 한국이 아파트 공화국이 된 이유는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보통 잘 언급되지 않는다. 그건 아파트가 따뜻하기 때문이다. 

아파트는 보통 옆면과 위 아래가 다른 집으로 둘러 쌓여 단열이 된다. 새시의 단열성능이 부실했던 예전에는 보통 한국의 아파트는 베란다 공간이란 것을 둬서 다시 단열을 했다. 요즘은 2중 3중창을 가진 새시를 하니까 베란다 확장을 해도 단열이 나쁘지 않다. 이러니까 작은 연료비를 들여도 따듯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한국 아파트는 따뜻할까? 이미 답을 했지 않냐고 하겠지만 사실 실내 온도가 따뜻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온돌문화가 없는 외국인들은 하지 않는다. 지금도 일본이며 독일이며 외국에 가보면 겨울에는 한국 기준으로는 정말 실내가 춥다. 그들은 방안에서 실내난방을 하는 문화밖에 없었는데 이걸로는 실내를 따뜻하게 하는데 한계가 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전통적으로 겨울에는 추운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실내에서도 두꺼운 옷을 입고 지내는 걸 지금도 당연시한다. 그들은 아직도 한국 찜질방이나 한국 온돌방을 경험하면 놀란다. 겨울인데 이럴 수가 있냐는 것이다. 지난 평창 동계 올림픽때는 그래서 바닥난방이 되는 선수기숙사가 외신으로 소개되기도 했었다. 

한국 아파트가 따뜻한 이유는 온돌문화를 가진 한국인들은 본래 집안은 겨울이라도 따뜻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문화가 우리안에 있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옷을 가볍게 입고 신발을 신지 않는 문화를 가진 우리는 추우면 그냥 참아야 한다거나 다시 두껍게 입고 신발을 신겠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집이 이렇게 추우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옥의 온돌방은 보통 매우 작다. 그래서 작은 연료비로도 굉장히 뜨겁게 데울 수 있다. 반면 서양식 구조를 가진 양옥집을 전부 바닥난방을 하면 연료비가 말도 안되게 나오거나 여전히 춥다. 그러므로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 된 것이다. 연료비를 아끼면서도 한국인이 만족할만큼 따듯한 집이 아파트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쁜 한국인들은 이보다 주거문화를 더 발전시킬 수 없었다. 생활문화가 이미 바뀐 우리가 한옥에 가도 불편하지만 한옥처럼 오랜기간 발전된 주거가 아닌 한국 아파트는 앞에서 말한대로 지루하고, 개성이 없으며, 사생활이 없다. 그러니까 그저 밤에 잠만 자러오는 곳이라면 상관없지만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손님을 초대하기에 적당하지 않으며, 집에서 어떤 활동도 할 수가 없고, 설사 부부간이라고 해도 하루종일 붙어있으면 불편하여 각자 시간을 보내고 싶은 법인데 상대방의 모든 행동을 다 느끼며 살게 되어 불편하다. 결국 이러면 싸움이 나기 쉽다. 

대안이 없지않은가, 누가 멋진 그림같은 저택에 살면 좋은 줄 모르는지 아는가라고 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서울에서 정원있는 단독주택 짓고 살려면 가격이 얼마나 할까? 50억? 100억? 설사 수도권으로 가도 가격이 훨씬 더 많이 떨어지지는 않으며 더 외진 곳으로 가면 이번엔 시골의 전원주택이 되어 나름의 문제가 있다. 이런게 대안일 수는 없지 않은가. 

한국에 대안이 없다는 것은 일단 맞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주거문화가 혼돈에 빠져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머무는 공간으로서의 집의 중요성이 오히려 커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것은 새로운 집의 표준을 만들고 개발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아직 아파트처럼 전국에 대단위로 공급할 답은 없는 것같지만 그래도 개선의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비록 완전 성공하여 인기를 얻지는 못했지만 대안을 제공하기 위한 시도들을 몇가지는 말할 수 있다. 먼저 미국에서는 타이니 하우스라는 작은 집 운동이 있다. 하지만 이건 땅이 넓어서 건물이 문제지 그 건물을 놓을 땅은 얼마든지 있는 나라에 더 적합한 것같다. 1인가구가 늘어나는 한국에서는 오히려 고시원같은 작은 방들을 가진 쉐어하우스 건물이 대안일 것이다. 원룸이 어떻게 대안일 수가 있냐고 하겠지만 그냥 원룸이 아니라 커뮤니티 공간, 서비스 공간, 공용공간이 존재하는 건물이다. 어차피 혼자 사는 사람은 사생활 문제가 없으니 방은 작아도 된다. 그 밖의 공간은 공동으로 쓰면 생활하기는 편하고 가격도 그리 비싸지 않을 수 있다. 쉐어하우스는 한국에서도 2010년 이후로는 여기저기 생겨났다고 한다. 

그 다음은 협소주택이다. 협소주택은 작은 땅위에 대개 2-4층의 건물을 짓는 것을 말한다. 땅이 작으니까 집값이 줄어든다. 이렇게 땅을 줄여야 시골에 가지 않아도 집을 지을 수가 있다. 여러층을 가지고 있어서 아파트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공간들을 많이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에어비앤비같은 곳에 내놓으면 인기도 있다. 하지만 생각보다 건축비를 생각하면 내부 공간이 작다. 아무래도 제약을 많이 가지고 지으니까 구조가 복잡해 지기 쉽다. 구조를 복잡하게 짓는다는 것은 건축비, 관리, 내구성등에서 단점이 될 수 있다. 

마지막은 복층주인세대를 가진 원룸건물이다. 주인세대란 이런 건물의 가장 높은 층 부분을 말하며 보통 복층으로 이뤄져 있다. 법에 따르면 복층에는 바닥난방을 하지 못하게 되어 있고 층고에도 제한이 있어서 복층부분은 지붕이 기울어져 중앙만 층고가 높고 옆으로 가면 높이가 낮아진다. 보통 3-4층으로 지어져서 주인세대 아래쪽은 임대를 주기 위한 방들로 이뤄져 있다. 내가 바로 이런 곳에 살기 때문에 여러 곳을 구경해 본 경험이 있다. 임대용 방들은 다양하다. 어떤 곳은 그냥 건물의 1-2층이 한세대, 3-4층이 또 한세대로 지어지기도 하고, 2룸이나 3룸같은 큰 구획으로 임대용 방들을 만든 곳이 있는가 하면 작은 방들 잔뜩 만들어 주인세대를 제외하고 10개 이상의 원룸들로 이뤄진 집도 있다. 

이 모든 대안들은 결국 아파트가 아니고도 가성비가 뛰어나게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목표를 위해 지어졌다. 예를 들어 마지막의 주인세대는 사실 그 땅에 단독주택을 지어서는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층수를 올린 후 건물의 맨 위에 단독주택을 올린 거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러면 아래층에서 임대수익이 생기니까 도시에서도 단독주택을 짓는 일이 가능해 지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보통 협소주택보다 훨씬 내부공간이 큰 집을 가지게 된다. 

이런 주택들은 아직 한국의 주류가 되지 못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 이유는 건축노하우가 아직 누적되지 못했기 때문이고 여전히 부동산의 중심이 임대보다 소유에 머물기 때문인 것같다. 이런 집들은 점점 더 잘지어지고 있지만 아직은 충분히 잘 지어지지 못하고 있고 사람들은 여전히 집을 소유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인들은 투자가 너무 부동산에 몰려 있다. 임대를 살아도 주식같은 부분에 투자하면서 살면 괜찮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빚을 내서라도 내 집을 마련한 후 평생 그 집값을 갚아나가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은 것같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고 있다. 무엇보다 처음 말했듯이 머무는 공간으로서의 집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까지의 아파트가 부족하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그래서 아파트도 많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변화의 속력이나 다양성을 생각하면 거대 아파트 단지가 바뀌는 속력보다는 쉐어하우스등 위에서 말한 집들이 변하는 속력이 훨씬 빠를 것이다. 게다가 1인 가구나 2인가구가 늘어나고 무엇보다 투자가 꼭 부동산이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임대를 생각하기 시작하는 경향도 늘어가고 있다. 한국의 개인 주식 투자자의 수는 인구가 거의 3배가 되는 일본과 비슷하다. 

요즘 나는 재미있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한국 사람들이 재미있게 사는데 주거 문화의 발전이 굉장히 중요하다. 한국은 워낙 빨리 빨리 바뀌는 나라니까 사람들이 금방 좋은 물건들을 보여주게 될 거라고 믿는다. 그날이 오면 역시 사는 건 아파트가 편해라는 지긋지긋한 말좀 그만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왜 거기서 만족하고 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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