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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건축가가 짓는 집, 집장사가 짓는 집

by 격암(강국진) 2023. 1. 27.

23.1.26

한국에서 집하면 아파트다. 그리고 한국의 아파트들은 한 단지안에서는 서로 완전히 똑같은 것은 물론 다른 지역의 아파트도 거의 똑같은 도면을 가지고 있다. 시대가 같다면 말이다. 이것은 한국에서 건축가가 활동할 영역이 매우 좁다는 것을 의미한다. 온국민이 똑같은 면티를 항상 입는다면 패션 디자이너는 활동영역이 매우 좁을 것이다. 마찬가지 이유다. 안타깝게도 이런 현실은 건축가들이 실험을 하고 실제로 프로젝트를 할 기회를 줄이게 된다. 머리가 좋고 나쁜 걸 떠나서 집을 백채 지어본 사람과 한채도 지어보지 못한 사람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런데도 티비에서 집을 소개하는 건축탐구 집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건축가가 자기가 살려고 지은 집을 소개하거나 자신의 부모님을 위해 지은 집을 소개하는 경우가 엄청많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이것은 건축가의 수를 생각했을 때 스스로 돈을 들여 짓거나 부모님이 부탁해야 집을 지을 수 있지 건축가를 찾아와서 설계비용을 내고 집지어달라는 사람이 생각보다 드물다는 뜻일 것이다. 

 

나는 아파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서 계속 아파트가 아닌 집을 구경하고 아파트가 아닌 집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러다보니 내가 보는 집들은 건축가라기 보다는 지역의 집장사라고 해야 할 사람들이 짓는 경우가 대다수다. 내가 보러다니는 집은 대개 협소주택이거나 아니면 맨위에 주인세대가 있는 원룸건물이기 때문이다. 이 건물에 대해서는 기준이 아직 들쭉 날쭉이다. 어느 지역에서는 높이 제한으로 3층밖에 지을 수 없고 어느 지역에서는 이런 건물을 그냥 단독주택이라고 부르고, 여기서는 원룸빌딩 저기서는 상가주택이라고 부르는 식이다. 

 

집을 보러 다니다 보면 재미있는 것이 아주 엉터리 같은 집을 보게도 되고 매우 흡사한 집을 보게도 된다. 이 엉터리같은 집들이 내가 이건 건축가가 아니고 집장사가 지은 집이라고 여기는 이유다. 예를 들어 지난 번에 본 집은 다락의 복층을 제외하고도 100제곱미터가 넘는 큰 집인데도 부엌에는 원룸에나 들어갈 작은 냉장고가 설치되어 있고 가정용 냉장고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게다가 집에 공간이 넘치는데도 굳이 부엌 싱크대에 세탁기를 설치해 놓았다. 그리고는 커다란 방이 4개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건 10평짜리 원룸에 들어갈 부엌을 40평짜리 집에 설치하고 남는 공간은 다 방으로 만들어 놓은 집이었다. 설마 이런 설계를 해놓고 나는 건축가라고 하지는 않을 것같다. 

 

이밖에도 실패사례는 많지만 굳이 실패한 집들을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집구경할 때도 사진을 보고 그런 집들을 잘 가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우리는 그 지역에서 쓸만하다고 여겨지는 몇개의 집이 분명히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어떤 때는 그냥 쌍동이처럼 똑같다. 이건 상가주택을 한번 지어본 분이 성공적이다 싶으면 계속 유사하게 집을 짓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다. 예를 들어 편백나무를 많이 쓴 집을 좋아하면 천정마감이 항상 그렇고 티비를 놓은 벽의 장식이 성공적이다 싶으면 다음번에도 그렇게 한다. 어떤 분은 길고 좁으며 수직으로 서있는 창을 여러개 나열하는 습관이 있고 어떤 분은 집내부를 하얀 석고보드로 마감하는 특징이 있다. 어떤 분의 시그니처는 천정팬이다. 그러니까 전주든 청주든 그 지역을 집들을 보다 보면 이 시그니처가 보이고 아 같은 사람이 지었나 보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파트에만 살았고 아파트만 봤던 사람들은 집의 구조가 어때야 한다는 데에 대해 생각이 없는 경우가 많다.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나라의 아파트들은 단면도가 거의 같기 때문이다. 이는 슬픈 일이다. 이건 이렇게도 살 수 있다라는 것에 대한 상상력이 원천적으로 억압되어 있다는 말과 같기 때문이다. 아침 점심 저녘 메뉴가 매일 똑같은 사람이 식사의 즐거움에 대해 뭘 알겠는가. 밥이란 건 그저 에너지고 배부르면 그만이라는 생각뿐일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집장사들 사이에서도 반복된다. 그들 스스로가 집에 대한 고민이 없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짓는 집은 사실 아파트 단면도와 거의 같다. 단독주택이든 상가주택이든 말이다. 요즘은 부엌에 대한 유행이 바뀌고 있거나 이미 바뀐지 오래다. 싱크대가 벽쪽에 붙어 있었던 것이 과거라면 싱크대가 앞쪽으로 나와 있어서 요리를 하는 사람이 거실을 정면이나 측면으로 쳐다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새로운 유행이다. 그런데 이렇게 하면 공간적으로 손실이 생긴다. 그래서 싱크대 앞에 식탁을 놓을 공간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아예 식탁따위 놓지 않을 작은 방이거나 공간이 충분한 큰 집이 아닌 경우는 공간이 애매해진다. 건축가와 집장사의 차이는 이런 것에 대한 고민이 없는 것이다. 이건 마치 엔진 마력수도 생각하지 않고 큰 바퀴가 멋있다고 하니까 경차에다가 그냥 큰 바퀴를 달아주는 것과 같다. 

 

하지만 집구경은 그래서 더 재미있는 것같다.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물리학 논문을 읽어서 재미가 있을리가 없다. 그냥 복잡하게만 보일 것이다. 만약 집들이 다 완벽하다면 비평할 것도 없고 웃을 일도 없을 텐데 집들이 마치 실험작 같은 경우가 많고 그게 조금씩 개선되어 나가는 모습을 볼 때도 있으니까 나같은 비전공자도 이건 왜 이럴까 하고 생각하게 되고 누가 봐도 이건 실패작이라고 단언할 수도 있다. 

 

나는 우리 나라 주택시장에도 백종원같은 사람이 등장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백종원은 스스로를 쉐프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장사꾼으로 말한다. 그가 만드는 음식은 맛은 있지만 최대한 가성비를 높인 것이다. 그래야 고급음식점이 아니면서도 돈도 벌 수 있는 음식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그는 빽다방 체인을 만들어서 한국 커피의 가격기준을 확바꿔버렸다. 노력하면 천오백원짜리 커피도 이정도가 되는데 다들 3천원 4천원하는게 당연하다는 식으로 팔면서 맛도 없는 경우가 이전에는 참 많았다. 그는 같은 일을 여러 음식들에서 했다. 외식과 요리의 대중화에 앞장선 훌룡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축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다시 말하지만 지식과 재능이전에 경험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대중적 주택과 건축설계사들 사이에는 간격이 있어 보인다. 그 간격을 파고 드는 사람들이 내가 집장사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보통 충분한 지식이 부족하고 유행에 대한 감각도 솔직히 떨어진다. 건축학과를 나오지도 않았다. 하지만 더 많은 집을 짓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집을 짓는 경험이 누적되고 있다.  

 

어쩌면 몇십년이 지난 후에는 지금의 한국이 주거 문화의 르네상스 같은 때로 불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사는 건 아파트가 좋다라고 반복하며 말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조금씩 바뀌고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이런 실험작을 꾸준히 만들어 내는 집장사 중에서 천재 집장사가 나와서 어쩌면 우리나라 주택의 표준을 만들어 내는 일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유명한 일본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전직 권투선수다. 대책도 없이 도면을 그리다가 동네에서 집짓는 일을 맡았던 것이 그의 대표작인 스미요시 나가야다. 지금 보면 그도 건축가라기 보다는 집장사였다. 일을 해야 실력이 늘고 창의력도 발휘된다. 건축가는 클래식 음악을 하는 음악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BTS처럼 대중음악을 하는 사람이 될 것인가. 한국의 주거문화의 미래에 있어서 이 질문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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