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0.17
한국의 부동산은 특이합니다. 우선 한국에는 전세제도라는 것이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이 지구상 다른 어느 나라에도 없으며 굉장히 이상하게 이해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종종 갑을 관계를 뒤집습니다. 전세금이란 기본적으로 융자금이며 따라서 집 주인이 전세를 들어오는 사람에게 빌린 거액의 돈입니다. 또한 제도적으로 보완이 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사실 전세금은 무담보대출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역전세 난도 일어나고 전세금 떼이는 사람들 이야기도 종종 들리는 것이죠. 그래서 외국인들은 전세제도를 이해하기 어려워 합니다. 도대체 뭘 믿고 집주인한테 전재산을 맡기냐는 것이죠. 더구나 그 태도를 보면 전세세입자는 스스로를 을로 보고 갑인 집주인에게 굽신거리기 까지 합니다. 그리고 전세제도를 없는 사람들을 위한 좋은 제도라고만 생각합니다. 돈을 빌려주는 사람이 스스로를 을로 여기는 것이죠.
물론 이에대해서 그거야 이러 저러하다며 한국적 상황을 설명하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저도 그런 설명을 적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설명에 몰입하기 전에 이것이 지극히 한국적인 제도라는 사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이 그게 가계부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망각하고는 한다는 것을 먼저 기억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세제도가 없으면 돈도 없이 몇백채씩 집을 사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은행이 그렇게 돈을 빌려줍니까? 그런데 한국의 세입자는 그렇게 한다는 말이죠. 그래서 이따금씩 대형 사고가 터집니다.
그것이 뭐가 되든 만약 전세제도라는 것의 존재를 가능하게 했던 그 환경이 바뀐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럴 수 있죠. 거듭 말씀드리지만 외국에는 없는 제도인데요. 전세제도가 언제나 당연하다면 우리는 왜 시중은행에 저금을 합니까? 그냥 개인들이 모여서 계를 하면 금리가 훨씬 더 높을텐데. 안전때문에 그렇죠.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중에는 계하는 사람 별로 없습니다. 이래도 전세제도는 영원할까요? 그런데 만약 그 제도가 완화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면 어마어마한 돈이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사라질 겁니다. 일본에 있었다는 과거의 부동산 거품이야기를 하지만 일본에는 전세제도도 없었습니다. 한국의 부동산 거품은 정말 괜찮은 걸까요. 전세가 만든 집의 가치는 거품이 아닌게 맞습니까?
한국 부동산의 두번째 특징은 요즘은 좀 변하고 있는 듯도 하지만 집의 상태가 부동산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다는 겁니다. 만약 누군가가 차를 파는데 1500cc면 10년이 되었건 새차이건 침수차이건 아니건 BMW건 중국차건 상관없이 대충 가격이 같고 그런 조건에 따라 아주 조금 가격이 바뀐다면 그건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겠죠. 그런데 한국 부동산은 그렇습니다. 집의 위치와 평수가 있으면 가격은 거의 다 결정되죠. 그집을 리모델링을 잘했냐 못했냐, 구조가 잘 설계되었냐 아니냐같은 문제는 여전히 부수적인 문제로 여깁니다. 최근에는 비싼 리모델링을 하는 분들도 많고 그것이 집값에 조금씩 더 반영되는 경향이 생겨나는 것도 같습니다만 10년전에는 팔고 나갈 집에는 돈들여 리모델링 하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집값에 반영이 안되니까요.
이런 지적을 읽고 독자분들은 또한 다시 한번 수많은 설명을 떠올리실 겁니다. 그리고 그 설명들은 아마 대부분 옳은 것이겠지요. 하지만 여기서도 저는 다시 한번 한 가지를 먼저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것은 외국에서는 꼭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외국의 집은 감가상각이 있습니다. 즉 집이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일본에서 부동산 매물 리스트를 쭉 보다보면 한국 사람에게는 놀라운 매물들이 꽤 많습니다. 위치도 좋고 평수도 큰 데 집값이 터무니 없이 싼 겁니다. 왜 이런가 물어보면 그냥 그 집이 오래되어서 그렇다고 답이 돌아옵니다. 일본에서는 같은 동네의 집도 마치 자동차처럼 오래되면 가격이 떨어집니다.
물론 그렇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런던이나 파리나 뉴욕은 낡은 집 투성이 입니다. 그런 집들이 결코 싸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제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이런 나라들의 과거와 지금은 다르다는 겁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는 지금도 부자나라지만 과거에 황금기를 가졌으며 일본이나 우리나라처럼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그 생활문화가 확바뀐 나라도 아닙니다. 가정집은 아니지만 맨하탄의 102층짜리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1931년에 세워진 것이니까요. 다시 말해 프랑스나 미국은 70년 100년전의 집과 문화에 대해서도 계승의식을 가지고 좋은 것으로 여기죠. 이건 어떤 의미로 문화재적인 면이 있는 겁니다.
우리가 그렇습니까? 40년전에 지은 아파트에 애정이 있습니까? 그때의 문화를 계승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한국의 주거문화는 일제침략과 함께 크게 혼란스러워지고 197-80년대에도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는 겨우 아파트 문화에 정착했지만 그것도 40년전이면 한국이 겨우 최빈국 벗어날 무렵입니다. 무슨 애정이 있어서 파리 사람이나 이탈리아 사람이 낡은 집 아끼듯 그걸 아낀다는 말입니까? 오히려 일본에서처럼 감가상각이 일어나는 쪽이 더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절차가 복잡해서 그렇지 할 수 있다면 싹 다밀어버리고 새 아파트 세우고 싶지 않습니까?
사실 요즘은 법이 바뀌고 건축자재도 바뀌어서 옛집과 지금집이 크게 다릅니다. 아파트는 베란다 확장이 기본이 되어서 4베이가 대세가 되었고 덕분에 같은 30평이라도 30년전 30평 아파트와 요즘 아파트는 굉장히 다릅니다. 베란다 확장한 공간이 크고 단열잘되는 새시때문에 베란다 공간이 꼭 필요없으니까요. 단독주택도 그렇죠. 예전에는 그렇게 지으면 난방비폭탄이라고 했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저는 지난 5년정도를 돌아보면 한국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느낍니다. 즉 집의 자재와 구조의 가치를 점점 더 인정해 주기 시작하는 것같습니다. 집을 평수로만 따지는 것은 마치 음식을 양으로만 따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도 이제 그것보다 더 질을 따지게 된 것같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집은 감가상각의 영향을 더 깊게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위치와 상관없는 자동차가 그렇듯 세월이 지나서 망가지는 집의 가치를 시간에 따라 낮게 보게 되는 면이 있는 것이죠.
한국 부동산이 가지는 이 두개의 특징이 얼마나 계속 될지 확신은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변화가능한 것이라면 그 변화가 있기 전과 후의 한국 부동산은 큰 혼란을 겪을 것입니다. 마치 상가 권리금이 존재하는 돈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없어질 때 받는 충격과 비슷한 것입니다. 돌처럼 단단한 현실이라고 믿었던 것이 변화하고 사라지면 한국 부동산의 가치평가는 크게 달라질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일이 이미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 아니면 머지 않아 일어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닐 수도 있죠. 다만 이런 잠재적 폭탄이 한국 부동산에 존재한다는 것은 기억해 둘만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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