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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좌식문화에 대한 단상

by 격암(강국진) 2022. 6. 8.

22.6.8

동서양을 갈라서 우리는 보통 입식문화와 좌식문화가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나는 한국의 좌식문화는 상당히 독특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온돌문화를 예로부터 가졌던 것이 우리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양은 물론이고 일본이나 중국의 문화와도 한국의 좌식문화는 다르다. 어떻게 말하면 서양의 입식문화란 애초에 집의 바닥은 진정한 주거공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집안에서도 신발을 신고 사는 관습을 보면 알지만 서양의 집이란 본질적으로 그저 어떤 땅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었을 뿐인 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가구가 없다면 서양집은 아직 매우 미완성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즉 서양의 주거는 본래 탁자며, 침대, 의자며 옷장따위가 있어야 진짜 집이 된다. 왜냐면 집의 바닥은 집바깥의 바닥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동굴에 사는 거나 마찬가지다. 

 

반면에 한옥의 바닥은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한옥의 바닥은 그 자체가 이미 가구라고 할 수 있고 아니면 한옥은 가구없이도 완성된 집이라고 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애초에 한옥의 바닥은 마당보다 높이가 더 높게 존재하는 것이 보통이다. 즉 요즘 짓는 서양식건물처럼 바깥에서 집에 들어갈 때 그냥 같은 높이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올라 앉는다는 느낌으로 집에 들어서게 된다. 이것도 한옥의 바닥이 그냥 바닥이 아니게 한다. 좌식문화에서는 식사도 낮은 상을 앞에 놓고 먹는다. 그래서 좌식문화에서는 밥먹는 그릇을 잠깐 방바닥에 놓는다고 해서 이상할 것이 없으며 실제로 쟁반따위에 담긴 그릇은 물론 그냥 그릇도 자연히 방바닥에 놓이는 일이 많다. 하지만 서양에서는 방바닥에 놓이는 그릇이란 개밥그릇같은 것이다. 애초에 바닥은 차갑고 더럽고 불편한 곳이었던 것이 본래의 서양주거이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도 양탄자같은 것을 깔기도 하지만 그 잘 빨기도 어려운 양탄자를 콩기름 먹인 한지를 발라 번쩍 번쩍하게 만들어 놓았던 한옥의 바닥과 비교하는 것은 물론 말도 안된다. 

 

한옥에서 바닥은 기피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선망의 대상이었다. 침구는 바닥에 직접 깔리고 좋은 자리란 더 따뜻한 아랫목이었다. 적어도 나이가 좀 있는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더운 여름에 시원한 나무마루에 누워본 경험이나 추운 겨울에 따뜻하게 깔린 이부자리 안으로 들어가 본 경험이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해도 찜질방같은 곳에 익숙한 한국인은 등을 지지는 그 느낌을 안다. 그런데 이런 느낌은 온돌문화를 가지고 좌식생활을 하는 한국인들만이 경험하는 것이다. 21세기인 요즘 세계에는 바닥난방이 여기저기 보급되었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바닥에 그냥 들어눕는 한국문화는 낯선 것이다. 짚으로 만든 다다미를 까는 일본이라고 해도 따듯한 바닥이 아니므로 겨울에 누워서 등을 지진다는 개념은 일본인들에게는 낯설다. 온돌덕분에 한국인은 그야말로 전세계에서 가장 바닥친화적인 사람들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바닥만 그런게 아니다. 벽도 그렇다. 한국인의 좌식생활이란 집 자체에 살갗을 비비며 사는 것을 말한다. 대청마루의 촉감도 그렇고 따스한 온돌바닥의 온기도 그러하지만 전통적 한옥에서는 벽조차 자연재료인 황토와 나무를 썼고 요즘도 우리는 어느 집이건 벽을 대개 종이도배를 한다. 다시 말해 몸을 접촉하기 좋은 소재들이다. 그런데 사실 서양에서는 이런 일은 드물다. 서양사람들은 차가운 돌벽위에 페인트 칠을 하고 사는 일이 많은데 이런 벽은 사실 한국사람에게는 뭔가 공장처럼 느껴진다. 사람사는 집같지가 않다. 한국인에게는 집이란 바닥도 벽도 몸을 비비는 곳이다. 서양인에게는 그것은 가구다. 집이 아니다. 집은 벽도 바닥도 사실 비바람을 막을 주는 것일 뿐 집바깥의 땅바닥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서양식 입식생활과 한국식 좌식생활을 다르게 만드는 기본적인 원인이다. 

 

서양집은 가구없이는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한국인은 집에 살갗을 비비며 산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이 말들은 우선 우리가 서양집에 살 때 자연히 더 많은 것을 집에 채우려고 하게 된다는 뜻이다. 집을 완성하기 위해서다. 오늘날 우리가 침대도 들여놓고 장도 들여놓고 식탁이며 의자며 책꽃이며 집에 잔뜩 물건을 채워놓게 되는 것은 이때문이 아닐까? 빈공간이 있는 서양식 집은 왠지 완성된 것같지 않고 우리는 거기를 뭔가로 채워야 하는 욕망을 느끼는 것 아닐까? 

 

반대로 한옥방은 비우는 것이 원칙이 된다. 한옥은 가구없이도 완성된 집이며 한국인은 집을 만지고 살갗을 부비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한옥에서는 어쩔 수 없어서 물건을 들여놓는 것일 뿐 물건으로 방을 채우면 채울 수록 뭔가 손해보는 느낌이 든다. 멋진 대청마루위에 소파를 놓고 커다란 티비를 설치하고 카페트를 깔고 책꽃이나 그릇장을 올려 놓으면 보기 좋을까? 한옥의 대청마루는 기본적으로 그 자체가 멋진 것이다. 그걸 왜 다른 것으로 가릴까? 한옥만 그런게 아니다. 현대식 아파트라고 해도 난방이 되는 바닥은 귀한 것이다. 일본의 최신식 집에는 바닥난방이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 경우에도 종종 그것은 부분난방이다. 즉 부분적으로 바닥난방이 여기저기 들어오는 것이다. 그런 사치스러운 바닥위에 가구를 올려놓는 것은 마치 유명화가의 작품앞에 대형티비를 놓는 것처럼 아까운 짓이다. 

 

현대 한국의 주거문화는 지금 혼란속에 있지만 애초에 한옥은 가구 이전에 집 자체가 귀하고 친한 것이었다. 그러니 물건으로 그걸 가리고 채우는 일은 아까운 일이다. 물건은 비워지고 어디 광같은 공간을 따로 둬서 필요할 때만 꺼내야 마땅하다. 그러니까 한옥방이란 대개 빈방이고 거기에 탁자가 있다고 해도 작고 낮은 좌탁이 있을 뿐이며 벽면가득히 책을 꼽아두는 일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 곳은 따로 있어야 하고 거기서 책을 가져다가 읽는 것이 마땅하다. 한옥에서는 각 공간은 각자의 존재의미가 따로 있다. 이 역시 그 시작은 온돌때문이다. 구들이 있는 공간과 없는 공간이 의미가 다른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이에 비하면 서양집은 그저 벽으로 공간을 갈라놓았을 뿐이니 가구만 바꾸면 어떤 공간도 다른 공간이 될 수가 있다. 

 

이래서 한옥은 공동체적인 집이기도 하다. 내 방은 되도록 비우는 것이 마땅하니 그 말은 내 방자체가 자급자족되는 방이 아니라는 뜻이다. 밥상은 바깥에서 들어서 안으로 가져오고 식사후에는 치워진다. 바닥에는 어디나 앉을 수 있지만 때로 방석이 필요하면 그것도 쓰고 치워진다. 그에 비하면 서양식 방이란 독립을 목표로 한달까. 그 방안에 그 사용자가 필요한 것은 뭐든지 있어서 그 바깥으로는 나올 필요가 없게 된 방이 바로 좋은 서양식 방이다. 한옥에서 사람은 집과 연애를 한다면 서양식 집에서 사람은 가구와 연애를 한다. 그러니 한옥방은 자꾸 비워지고 서양식방은 자꾸 가구로 채워지는 것이다. 무소유와 집중이 한옥방의 정신이라면 소유와 독립이 서양방의 정신이다. 

 

진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진짜 동기다. 과연 이러한 주거의 차이가 거기에 사는 사람의 정신에는 영향이 없을까? 내가 머무는 2층공간에는 컴퓨터가 놓여진 탁자가 하나있고 나는 의자에 앉아 그 컴퓨터를 쓴다. 그런데 언젠가 부터 나는 이 탁자앞에 머무는 것이 싫어졌다. 익숙해진 탓에 글을 쓸 때는 큰 화면을 보고 의자에 앉아 타이핑을 하는 것이 좋지만 왠지 자세가 편하지가 않다. 책을 읽으려고 하거나 뭔가를 계산해 보려고 하면 더욱 이게 문제가 된다. 뭔가 내가 쓰는 탁자와 의자가 집중을 방해하는 것만 같다. 

 

그런데 이 2층공간의 반대편끝에는 벽을 바라보고 작은 좌탁이 놓여있다. 나는 평상시에는 그 앞에 잘 앉지 않았다. 최근에 그 좌탁에 앉아보니 굉장히 마음이 달라지는 것을 느낀다. 의자위에 앉은 것과 바닥에 앉은 것은 다르다. 나에게는 정신을 집중하는데에는 바닥의 좌탁에 앉는 쪽이 훨씬 더 좋았다. 그러고 보면 그 옛날 내가 대학입시생이었을 때에도 나는 바닥에 작은 상을 놓고 거기서 공부했었다. 이건 물론 개인의 취향도 있을 테고 우리집의 탁자와 의자가 불편한 탓도 있을 테지만 그 차이가 워낙 커서 나는 왜 입식과 좌식이 이렇게 차이가 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혹시 서양문화에 세뇌되어 좌식문화의 힘을 의식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왜 넓은 바닥을 두고 좁고 높은 의자위에 앉아서 뭔가를 해야 하는가? 입식문화는 당연하고 언제나 우월한가? 

 

수 많은 한국인들이 인정하는 것은 한국인들이 멋진 소파를 거실에 놓고 그 앞의 바닥에 앉는다는 것이다. 이걸 서양인들은 기이해 한다. 그것은 당연하다. 그들에게 있어서 바닥은 나쁜 공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인들은 바닥에 앉는 쪽이 더 편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기이한 일이 있다. 만약 그렇다면 굳이 돈을 많이 들여서 거실공간을 소파로 채울 건 뭔가? 비록 바닥난방이 되는 집이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서양식인 주택에 사는 현대의 한국인들은 그게 더 아름답다고 느끼기 때문일 것이다. 즉 바닥난방이 되긴하지만 서양식으로 지어진 공간자체가 가구를 부른다. 텅빈 거실이란 왠지 이사가 덜 끝난 집같다. 게다가 서양식 주거에 익숙한 우리는 푹신한 소파가 정말 필요하다고 세뇌되어 있다. 그래서 그 비싼 소파를 꼭 산다. 

 

머리는 우리가 꼭 소파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몸은 알고 있다. 바닥이 더 편하다. 바닥에 앉을 때 우리의 마음은 더 안정된다. 우리는 지금 정신과 몸이 서로를 배반하는 주거문화에서 살고 있다. 책상도 그렇지 않을까? 오늘날 우리는 대개 공부를 하고 책을 읽고 일을 하기를 탁자에서 한다. 한국의 교실에도 당연히 탁자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조선시대의 서당이 그랬을 것처럼 바닥에 앉아서 좌탁을 앞에 두고 선생님의 수업을 듣지는 않는다. 한국의 사무실도 책상과 의자로 채워져 있다. 거대한 온돌바닥이나 나무 바닥위에 서탁을 놓고 바닥에 앉아서 일을 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시 한다. 그런데 정말 이것은 당연한 것일까? 한국식 좌식생활이 뭔지 아는 것은 한국인 뿐인데 서양사람들이 그걸 당연시한다고해서 그게 당연한 걸까?

 

무조건 좌식이 좋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당연히 입식이라고 생각하는 것에도 함정이 크다. 예를 들어 좌식교실이란 모두가 같은 바닥에 앉는 것으로 사람들간의 거리감을 상당히 다르게 만든다. 그런 차이가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 않을까? 세미나를 듣는데 좌식으로 듣는 것과 입식으로 듣는게 같을까? 다르다면 언제나 입식으로 듣는게 더 좋을까? 모임을 하는데 테이블 앞에서 하는 것과 좌식 바닥에 둥글게 앉아서 하는 것이 차이를 만들지 않을까?

 

무엇보다 바닥에 앉아 있는 사람과 책상앞의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의 피로도가 다르다. 입식 생활은 우리를 지속되는 긴장으로 빠져들게 한다. 바닥에 앉아 있으면 눕고 싶어지고 그래서는 일을 못한다고 하는 주장도 있을 법하지만 계속 자기를 긴장으로 몰아넣는 생활이 과연 장기적으로 더 도움이 될까? 나는 의학적인 근거는 댈 수 없지만 인간은 본래 네발 생활을 하던 동물이 진화한 것으로 바닥에 앉는 것보다 의자에 오래 앉는 것이 몸에 더 좋은 자세가 될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의자에 앉은 자세는 매우 부자연스러운 자세이기 때문이다. 이때문에 의자중에는 무릎을 꿇은 자세와 비슷하게 앉는 의자도 있으며 이런 의자는 척추 건강에 좋다고 말해진다. 

 

우리의 주거생활의 현재는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고 나는 반드시 우리가 조선시대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한옥이 에어컨 달린 현대주택보다 반드시 더 쾌적하다고 말하지도 않으며 경제적인 이유도 있다. 하지만 좌식생활을 간단히 포기하고 입식으로 가는 것은 때로는 문명화되는게 아니라 탈문명화되는 것같은 즉 보다 원시적인 생활로 가는 것같은 느낌도 받는다. 서구화가 곧 문명화라고 여겼던 시대에는 입식생활이 문명화를 의미하는 것같아 보였겠지만 어떤 의미로 좌식에서 입식으로 가는 것은 진짜 집을 놔두고 동굴로 다시 들어가는 것같과 같을 수도 있다. 현대인이 겪는 주의력결핍이나 우울증따위의 원인이 이것일 수도 있다.

 

영국의 총리 윈스턴 처칠은 매일 장시간 일을 했지만 또한 그 많은 일을 주로 침대위에서 했다고 한다. 이런 걸 생각해 보면 입식생활을 한다고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주로 의자에 앉아서 하루 종일을 보내는 한국인은 뭔가 오해가 있다고 할 법하다. 우리는 쓸데없이 에너지를 쓰고 있고, 쓸데없이 서양식 사고에 과도하게 중독된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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