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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집에 대한 생각

바깥을 쳐다보는 집, 안쪽을 쳐다보는 집

by 격암(강국진) 2023. 2. 3.

23.2.3

집하면 나오는 말중의 하나는 그 집 참 전망 좋다는 말이다. 이렇게 우리는 좋은 집이라고 하면 뭔가 멋진 것들 사이에 있는 집을 상상하는 경우가 많다. 바다를 바라보는 집, 근사한 정원을 앞에 두고 지은 집, 근사한 산을 옆에 끼고 있는 집이 이런 의미에서는 좋은 집이다. 하지만 정말 이런 집이 좋은 집일까? 

물론이다. 만약 가격이나 편의성같은 다른 모든 조건을 다 무시한다면 전망이 좋아서 나쁠게 없다. 하지만 이게 문제다. 집은 카페도 아니고 전망대도 아니다. 오늘날의 집은 집에 딸린 정원에서 사냥도 했던 서양의 거대한 성도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좋은 집이란 성이나 전망대 같은 거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지 않을까? 게다가 그 집을 둘러싼 좋은 것이란 것도 결국 넘쳐서 그 집을 습격하게 되면 곤란한 일을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바닷가의 멋진 집은 실은 강한 바람과 소금기 때문에 살기가 매우 나쁜 집이 되기 쉽다. 태풍이라도 불면 집은 공포스러운 곳이 된다. 또한 소금기는 모든 것을 녹슬게 한다. 경치좋을 때 잠깐 가보는 것과 거기에 일년 내내 사는 것은 전혀 다르다. 창밖으로 넓은 정원이 보이는 집도 잠깐 가보면 좋지만 거기에 직접 산다면 이야기가 전혀 달라진다. 멋진 정원이 있는 호텔이나 리조트에 가서 몇일 사는 것은 좋은데 왜냐면 정원관리를 다른 사람이 하고 그 정원을 잠시 보기 때문이다. 정작 같은 집에 계속 살아보면 왠만한 정원가지고는 별 느낌이 안온다. 세상에는 쉽게 갈 수 있는 수목원이며 국립공원도 많다. 아니라면 요즘 인기있는 베이커리 카페같은 곳만 가봐도 정원이 엄청 좋다. 그런 곳도 우리는 같은 곳을 연달아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른 곳도 좋은 곳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일이백평의 내가 가꾼 정원을 매일 매일 보는데 뭐가 그리 좋겠는가. 솔직히 가끔 방문한 친지나 친구나 감탄할 뿐 거기서 정원관리일로 노동을 많이 하다보면 보기도 싫어지기 쉽다. 

내가 바깥을 쳐다보겠다는 말은 거꾸로 말하면 바깥에서도 내가 보인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바깥을 쳐다보는 집이 가진 정원이나 정원앞의 나무 데크나 베란다 공간은 대부분 밖으로 열려 있다. 이런 집은 한덩어리의 식빵처럼 혹은 공처럼 바깥으로 부풀어 있다. 모든 공간이 바깥을 지향한다. 그래서 집이 외부와 만나는 모든 부분이 바깥에서도 보이게 된다. 다시 말해 길가는 사람들이 내 집 정원이 얼마나 멋진지가 보이고 우리 집의 나무 데크나 베란다 공간을 얼마나 카페처럼 멋지게 꾸며 놓았는지가 보인다. 집주인은 그들에게 자기 집을 자랑 할 수 있어서 좋을지 모르지만 덕분에 자기 집인데도 사생활이 없다. 자랑은 하지만 실속이 없달까.

생각해 보면 이렇게 바깥을 쳐다보는 집이란 결국 자기를 잃어버린 집이다. 이 집 자체에 대한 것이 없고 그것이 뭘 바라보는지, 그것이 무엇에 둘러 싸여 있는지에만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그 집을 둘러싼 좋은 경치와 그 집을 지나가며 쳐다볼 사람들의 감탄이 그 집의 가치를 결정한다. 내가 보기엔 이것이 바깥을 쳐다보는 집의 최대 약점이다. 바깥에 신경을 쓰다보니 정작 자기를 쳐다보질 않게 된다.   바깥에 시간이며 돈이며 에너지를 다 투자했으니 그만큼 안쪽에 소홀하게 된다. 

집에 대해서는 전혀 다른 접근이 있다. 그것은 안쪽을 쳐다보는 집이고 나를 지키는 집이다. 사람들이 이 집에서 원하는 것은 멋진 모습을 남에게 보이거나 멋진 바깥의 경치를 쳐다보는 것이 아니다. 이런 집에서 우리는 오히려 바깥에서는 안이 잘 들여다 보이지 않고 그 안에 있으면 비교적 완전히 나 홀로가 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기를 원한다.

안쪽을 쳐다보는 집이라고 해서 나무며 정원이 전혀 없다거나 바깥이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런 집에도 나무를 기르고 꽃을 기를 수는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그 규모는 작아진다. 말하자면 중정에 나무 한그루 홀로 서있어서 그 앞에 놓인 의자나 쪽마루에 앉아 나혼자 보고 즐기는 풍경이다. 나무가 아니면 그저 몇개의 화분일 수도 있다.

안쪽을 쳐다보는 집은 담으로 주변을 둘러 치거나 집의 토대 자체가 높아서 길이나 마당에서 서서 안쪽을 들여보면 안쪽이 잘 보이질 않는다. 안쪽을 쳐다보는 집도 개방적일 수 있다. 다만 그 개방의 방향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한 방향일 뿐이다. 예를 들어 바깥을 쳐다보는 집이라고 해도 마치 투명한 유리 상자처럼 공간이 폐쇄적일 수 있지만 안쪽을 쳐다 보는 집이라고 해도 담의 안쪽에서는 하늘로 개방되어 비가 오고 눈이 오면 집안쪽에서 그 기후를 바로 느낄 수 있는 경우가 있다. 한옥이 바로 그렇고 한지로 창을 낸 방의 정서가 그렇다. 안쪽을 쳐다보는 집은 그래서 오히려 자연에 더 개방되어 있고 그 안에서 오직 홀로 된 느낌을 받으려고 하는 아늑한 공간을 제공한다.

안쪽을 쳐다보는 집은 이렇게 주변의 시선보다 그 안에 존재하는 나에게 집중하는 집이기 때문에 자연히 나의 체험과 느낌을 중요시 하게 된다. 언뜻 생각하면 안쪽을 바라보든 바깥쪽을 바라보든 좋은 집이라면 모두 나의 체험과 느낌을 중요시하는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길에서 잘 보이는 정원에 멋진 텐트를 치고 캠프 파이어라도 하는 사람과 이불을 펴둔 따뜻한 온돌을 가진 사랑방에서 방문을 걸어잠그고 홀로 누워있는 사람의 마음가짐은 같을 수가 없다. 바깥을 쳐다보는 집은 파티를 하는 집이라면 안쪽을 쳐다보는 집은 세상의 눈치를 보지 않고 홀로 오직 나에게만 집중해서 내 취향을 살리는 집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라고 자기 자신에게 묻는 집이다. 

그 답이 모두에게 같을리는 없지만 아무래도 안쪽을 쳐다보는 집은 단순하고 소박하고 관리하기 쉬운 경우가 많다. 남의 눈치 안보는데 쓸데 없는 것을 더 가져다 놓을 필요가 없으며 손님받는 호텔직원이나 유원지 직원처럼 집을 관리하느라 고생하고 시간낭비하기 싫은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쪽을 쳐다보는 집이라고 해서 단순히 소박으로만 가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이 책을 좋아했다면 그 집은 온통 도서관 같을 수 있고 그 사람이 커피를 좋아한다면 커피에 관련된 것이 아주 사치스럽게 진열되어져 있을 수 있다. 바깥을 쳐다보는 집은 자꾸 객관적으로 좋은 것,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에 영향을 받기 쉽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 개성이 없다. 두루두루 모든 것이 있기 쉽다. 그러나 안쪽을 쳐다보는 집은 자연히 개성이 들어나기 마련이고 누군가가 그 집에 들어서면 그 개성을 쉽게 느낄 수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개성이란 결국 어떤때는 가난이 되지만 어떤 때는 사치가 된다. 안방은 겨우 침대 하나 놓을 크기면서 부엌식탁은 10인용인 것이 바로 개성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은 이미 느꼈겠지만 나는 안쪽을 쳐다보는 집, 자기를 지키는 집이 좋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의 집들 대부분은 바깥을 쳐다보는 집들이라고 나는 느낀다. 평균적 가족을 위해 지어지는 아파트도 물론 그렇지만 단독주택들도 그렇다. 우리 집 근처에는 주택단지가 하나 있다. 그 주택단지를 걷다보면 대부분의 집이 네모난 땅의 한쪽에 두부처럼 네모나게 집을 지어놓았다. 그리고 길쪽으로 있는 작은 정원에는 여러가지 나무를 심고 잔디를 기르고 있다. 해먹같은 것을 걸어놓거나 그네를 만들어 놓은 집도 있고 따로 정자같은 것을 정원에 만들어 놓은 집도 많다. 이 모든 것이 길가에서도 보이고 심지어 거실에 앉아 티비를 보는 사람의 모습까지 다 보이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나는 그저 지나가는 사람들을 감탄시켜서 뭘하려고 하나 싶을 뿐이다. 자기가 가진 것이 많다는 것, 돈이 많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그런 집을 집구경삼아 몇번 들어가 보았는데 대개의 집은 숨은 공간이란게 없고 실은 겉보기보다 훨씬 더 좁다. 작아보이는데 생각보다 큰 집이 아니라 커보이는데 실은 생각보다 작은 집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것은 공간을 숨길 의도가 없기 때문이다. 많이 가졌는데 그걸 숨기고 그 안에서 나를 쳐다보려고 하는게 아니라 있는 것 없는 것 모두 노출하여 바깥에서 보게 만들었다. 애초에 바깥을 쳐다보는 집은 집의 가치를 바깥쪽에 뭐가 있는가에서 찾는다. 그래서 집 안에 뭔가를 채워넣으려고 하지 않는다. 앞에서 말했듯이 이런 집은 대개 정육면체나 구체처럼 하나의 덩어리를 하게 되는데 그런 공간은 한눈에 모든 것이 보이는 특징을 가진다.

안쪽을 쳐다보는 집은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려고 한다. 집 자체에 신경을 많이 쓰기 때문이고 공간을 자꾸 분할하려고 한다. 그래야 숨은 공간이 생겨나고 그 안에서 최대한 혼자가 될 수 있다. 또한 공간이 구부러지고 길어져야 한다. 그래야 한눈에 전체가 보이지 않고 숨은 공간이 잘 만들어진다. 안쪽을 쳐다보는 집은 그래서 구경하는 진짜 재미가 있다. 그 안에는 거기서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구부러진 한쪽 공간에 갔더니 뜻밖에 매트리스가 깔리 작은 자리가 나오면 그것이 비록 한두평의 작은 공간이라도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일전에 집을 지으면서 아무런 짐도 넣을 수 없는 아주 작은 한두평의 방을 구석에 만들 것을 주문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방은 으슥한 곳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누울 수도 없을 정도로 작은 방이기에 그 방의 가치를 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방의 가치를 보는 사람에게는 그 집 전체가 작은 빈방을 가진 집으로 여겨지게 되고 그 집 전체의 가치의 상당 부분이 바로 그 작은 빈방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안쪽을 보는 집의 공간 공간들이 주는 의미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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