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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이해하기

좋은 설명과 나쁜 설명

by 격암(강국진) 2023. 6. 15.

23.6.15

나는 가끔 예전에 보던 논문이나 책을 다시 들여다 볼 때가 있습니다. 학부때 보던 일반물리학책이나 양자역학책을 다시 보는 것이죠. 수학책이나 다름없는 그런 책을 무슨 인문학 고전을 보듯 가끔씩 잠깐 보는 것은 저는 물리학을 전공했었기 때문에 그런 독서가 저에게 상쾌한 느낌을 주기 때문입니다. 때로 저는 말만으로 써진 것보다 수식으로 써진 책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젊은 시절에 보던 책을 다시 보다보니 좋은 설명과 나쁜 설명에 대해 가지는 생각이 뒤바뀌는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과거의 저에게 좋은 설명이란 명쾌한 것이었습니다. 즉 짧고도 분명한데 아주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설명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좋은 설명이라고 생각했으며 반면에 뭔가 두서가 없고, 논리적인 관계도 불분명하며, 미심쩍은 논리의 비약이 있는 것같은 설명은 좋지 못한 설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확실하고 명쾌한 것이란 사실 없습니다. 그런게 있다면 그건 그렇게 보이게 우리가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써본 사람들은 느낌니다만 논문이나 책을 쓰는 것은 종종 우리가 그것을 배운 순서와 거꾸로 입니다. 뭔가를 설명하려면 그 원인을 찾아야지요. 그래서 우리는 결론인 D가 있다면 그에 앞서는 것이 뭐가 있는가를 찾습니다. 그리고 C를 찾으면 또 그에 앞서는 것을 찾아 B와 A를 찾는 식이죠. 그런데 논리적인 전개와 실제로 사고가 일어난 순서는 대개 거꾸로 입니다.

 

예를 들어 디트로이트 라는 도시에 살인범이 아주 많다고 해 봅시다. 그런데 이 말은 디트로이트 시민이면 살인범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살인범중에는 디트로이트에 사는 사람이 많다는 뜻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살인범을 찾고 싶다면 우리는 디트로이트에 가야하겠지만 디트로이트 시민을 만났다고 그 사람을 살인범이라고 가정해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그건 논리적으로는 옳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과학적 발견이란 사실 디트로이트를 거닐다가 발견한 살인범에 대해 보고하는 것이나 비슷합니다. 우리는 미리 어떤 살인범을 찾으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그저 이 부근에는 살인범이 많다던데 하는 생각에 디트로이트를 헤매는 경찰과 비슷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살인범을 만나면 그 사람을 검거하는 것이죠. 이 살인범을 잭이라고 편의상 불러봅시다. 그리고 나서 이 경찰은 보고서를 씁니다. 그런데 그 경찰은 이런 식으로 보고서를 쓰는 겁니다.

 

잭은 아주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으로 그의 악행은 여러 피해자를 낳아서 그를 검거하는 것은 오늘날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잭을 우리는 어떻게 검거할 수 있을까? 먼저 그가 디트로이트에 있다고 가정해 보자. 디트로이트는 그가 범죄를 저지른 곳과 가까우며 그의 부모님이 사는 곳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러한 가정은 자연스럽다. 그러면 우리는 이 가정에 근거하여 디트로이트 거리를 수색할 수 있으며 그를 찾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다. 이러한 수색을 실제로 해본 결과 우리는 잭을 디트로이트에서 찾아냈다.

 

이런 문장은 몇가지 착각을 만들어 냅니다. 첫째로 그 경찰은 애초에 잭을 잡으려는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는 겁니다. 둘째로 그 경찰은 잭이 디트로이트에 있을거라는 직관적 가정을 논리적 이유들에 근거하여 만들어 냈다는 겁니다. 세째로 논리적 추론에 따랐더니 우리가 곧장 범인을 검거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실패가 보이질 않습니다. 그래서 위의 보고서를 보면 잭을 잡는게 중요하니까 그 목적을 위해서 논리적인 이유로 가설을 만들고 그걸 확인하는 실험을 한 결과 잭을 검거했다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고 빠르게 펼쳐집니다. 우리는 그 경찰의 똑똑함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 거짓인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사실도 아닙니다. 사실은 자신이 뭘 찾는지도 모르면서 뭔가 있을 것같은 곳을 방황하다가 뭔가가 떠오른 거죠. 왜 그런 생각이 떠올랐는지에 대해서 본래는 설명이 없습니다. 또 이 사람 저 사람 수상하게 생각했지만 알고보니 다 멀쩡한 정상적인 시민들이었던 실패들은 감춰집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누군가를 잡고 나면 그 이유를 거꾸로 대는 겁니다. 잡고 보니 애초에 그럴만 했고 나는 원래 이 사람을 잡으려고 했다는 거죠.

 

사건이 일어나고 나면 그 사건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 현상은 매일 일어납니다. 그래서 주식그래프를 보고 있으면 이렇게 뻔한 추세로 움직이는 주식가격을 예측하는 것이 너무 쉬워 보입니다. 오른 것은 이러저러한 이유때문이고, 내린 것은 이런 저런 이유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이미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그 원인을 보도하는 기사들이 쏟아집니다.

 

과학 논문도 이런 면이 있습니다. 사건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진실과 가장 거리가 먼 것입니다. 말하자면 수백 수천개의 상자를 열어서 보물이 든 상자를 찾아 놓고는 찾고 나서 애초에 이러저러한 이유로 보물은 그 상자에 들어 있었을 수 밖에 없었고 실제로 그 상자를 열어보니 보물이 들었더라라고 설명하는 것이죠.

 

이런 경향은 어떤 설명이 명쾌하고 간결할 수록 더 심합니다. 그래서 학교에서 쓰는 교과서들은 어떤 면에서 가장 나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책들은 어떤 내용들을 계속 보고 또 본 결과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처럼 압축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죠. 수없이 설명을 반복한 결과 줄이고 줄인 설명입니다. 그래서 역사적 진실과는 가장 거리가 먼 책이 되는 겁니다. 이 말이 간결하고 명쾌한 설명이 나쁘기만 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런 설명들은 기억하기 쉽고 분석하기 쉽습니다. 따라서 단기간에 아주 많은 것들을 배울 수가 있죠. 그래서 교과서는 자연히 그런 식으로 되려고 노력하게 되는 겁니다. 하지만 뭔가를 창조하려고 하는 사람 그리고 학교같은 곳에서 외운 지식을 시험에서 테스트하는 것이 아니라 학교 바깥의 현실 세계에서 뭔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나쁜 책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런 이야기를 믿으면 우리는 거짓된 가설들 속에 갇히게 됩니다. 나는 모든 성공담이 쓸모없고 거짓이라고 말하지는 않지만 세상의 성공담들도 그런 거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나는 이러저러해서 성공했다는 말을 실제로 성공한 사람이 했다고 해도 그 사람은 성공을 이미 한 후 자신의 성공에 대한 이론을 만들어 낸 것이며,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기 좋은 형태로 재구성한 거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의 대부분의 책들은 사실 이런 재구성의 결과입니다. 긴 책이라면 작가 스스로도 재구성을 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습니다. 주제와 구조를 가지지 않고는 책이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고 말테니까요. 게다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많은 사람들은 명쾌한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보이는 글을 쓰라고 추천되고 압력이 들어 옵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 지성인의 능력이라고 까지 여겨집니다. 토론이라도 하려고 하면 지식을 줄줄이 늘어놓고 분명한 논리적 순서로 말을 줄줄이 늘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우수해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습니까? 분명 말을 잘 못한다고 해서 우수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평론을 잘하는 사람이 영화를 잘 만들고 소설을 잘 쓰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좋은 설명과 나쁜 설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목적에 따라 다른 것이죠. 어떤 설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그 명쾌함에 놀랍니다. 어떤 설명은 뭔가 답답하면서도 우리로 하여금 생각에 빠지게 만듭니다. 과학자의 설명은 지식을 주지만 선문답은 때로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 주죠. 천페이지짜리 책이 한페이지짜리 글보다 반드시 더 가치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특히 현대의 한국인들은 교과서나 참고서에 중독되어 있습니다. 워낙 오랜동안 그런 걸 보면서 시험보고 성적나오는 생활을 오래 하다보니 그런 설명에 중독된 겁니다. 그런 설명들은 앞에서 말했듯이 절대 나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런데 언제나 또 모든 용도에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 1년 10년이 지나 뒤를 돌아보면 빠른 길 같았던 길이 사실은 제자리를 맴도는 것이었고 돌아가고 구불구불하여 시간낭비를 하게 하는 것같았던 길이 오히려 빠른 길이었던 때도 있습니다. 짧고 빠르고 명쾌한 설명에 중독되는 현상이 심한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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