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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이해하기

과학자와 철학자

by 격암(강국진) 2023. 8. 29.

23.8.29

철학은 어떤 다른 학문보다 더 근원적인 것을 탐구하며 이런 의미에서 가장 엄밀한 학문이다. 철학은 과학보다 더 근원적인 것을 탐구한다. 이런 그릇된 주장은 오랜동안 널리 받아들여졌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문제의 큰 원인중 하나는 우리는 과학을 할 때도 우리가 과학 이전의 것 즉 형이상학적 가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출발점이 없는 사고란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형이상학이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의 영역이므로 우리는 철학의 전문가인 철학자가 형이상학을 만들면 그 위에 과학자가 과학을 쌓아올린다는 착각을 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철학자들은 물론 철학을 하지만 역사적으로 과학에 대한 철학은 오히려 거꾸로 만들어 졌다. 과학이 먼저 나오고 그 철학적 전제가 다시 과학자나 철학자들에 의해 세련되게 다듬어 진 것이다.  

 

철학은 과학의 근원을 제공하기 위해 과학 이전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과학과 나란히 있다. 어떤 의미에서 과학도 일종의 철학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은 우리가 보통 철학으로 분류하는 것과는 좀 다른 도구나 가정에 의존할 뿐이다. 즉 그것은 철학을 생산해 내는 철학패러다임과는 다르게 과학을 생산해 내는 접근법에 의해서 즉 과학 패러다임에 의해서 만들어 졌다. 일단 과학은 엄밀하게 측정된 데이터에 의존해서 만들어 진다는 점이 철학과 다르다. 그리고 현대과학에서는 그런 데이터안에 있는 법칙을 수학적으로 다시 엄밀하게 묘사해 낸다. 이런 성질 때문에 과학은 반증이 가능해 진다. 법칙은 어떤 예측을 하고 그 예측이 관찰과 다르면 그런 법칙에 대한 가설은 부정되는 것이다. 이때문에 세상에는 두 개의 과학이 동시에 존재할 수 없다. 그런게 있다면 서로가 서로를 반증하기 때문에 둘 중 하나만 옳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토록 엄밀한 데이터와 수학적 표현에 의해 만들어 지는 것이 과학 이론이기 때문에 과학은 매우 보편적인 성질을 가진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모은 데이터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낸 이론은 마치 수없이 많은 부품을 조립해 정밀기계를 만들어 내듯 과학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이야기를 완성한다. 그리고 과학의 전제가 되는 형이상학은 그 과정에서 거의 저절로 만들어 진다. 다만 그것을 정확히 정돈하는 단계에서 철학전공자들이 등장하거나 철학자겸 과학자겸 수학자인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이다. 데카르트나 칸트가 이런 사람들이었다.  

 

이는 철학을 포함한 예술이나 문학같은 인문학에서는 사실이 아니다. 일상에서 쓰는 보통의 언어를 가지고 만들어 지는 철학이란 제 아무리 엄밀성을 자랑해도 과학과는 확연히 다르다. 정밀도가 떨어지는 부품으로는 소달구지 같은 간단한 도구는 만들어도 제트기는 만들 수 없다. 엄청난 수의 부품을 모아서 복잡한 기계를 만들 때 정밀도가 떨어지는 부품으로 그렇게 하면 그런 기계는 절대 작동하지 않는다. 따라서 제 아무리 대단한 철학도 실은 과학에서 말하는 데이터의 양과 이론들의 결합에 비하면 작은 데이터의 단순한 해석이 된다. 그리고 그것이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은 과학에서 처럼 수없는 데이터에 기반한 반증과정이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인간의 뛰어난 직관이나 영감이 그것을 보장하게 된다. 포퍼는 일찌기 공산주의를 유사과학이라고 부르면서 이것을 혼동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과학과 철학을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반드시 철학은 엉터리라는 뜻은 아니다. 사실 과학적 방법이 통하지 않는 상황은 많기 때문이다. 모든 일을 뉴튼 방정식 풀듯이 풀 수 없기 때문에 아직도 예술이나 인문학이 소중히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우리는 사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과학은 처음부터 실패하는 것이다. 그것을 시도하는 사람들은 대개 초기단계에서 사랑에 대해 모두가 납득할 수 없는 정량적 정의를 도입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과학 패러다임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 과학보다 철학이 더 근원적이며 본질적인 주제를 다룬다는 뜻은 아니다. 과학은 엄밀한 언어인 수학을 통해 그리고 엄밀한 측정이 가능한 경우에 존재하는 데이터를 통해서 과학이론이라고 불리는 철학과 그에 관련된 형이상학을 만들고, 철학은 그것이 불가능한 경우 인간의 경험과 직관에 의해 세상에 대한 설명을 만든다. 이것은 문학작품을 만드는 작가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 때문에 엄밀하고 보편적인 과학과는 달리 철학은 두 개의 서로 반대되는 철학이 있어도 어느 하나가 반드시 틀렸다고는 여길 수 없다. 사람들은 오히려 정반합의 변증법같은 과정을 통해 서로 반대되는 것을 모두 긍정하는 새로운 철학이 존재할 수 있다고도 여기는 것이 현실이다. 

 

철학자와 과학자는 누가 누구의 기초를 만들어 주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서로 다른 문제해결의 패러다임을 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시도를 통해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있어서 좋은 결과를 얻을 때 우리는 그것을 그냥 받아들인다. 철학자와 과학자는 이런 점에서는 서로 같은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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