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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 글모음/한국문화

한류와 장인의 신화

by 격암(강국진) 2023. 10. 6.

23.10.6

아내와 유튜브를 보다 보니 요즘은 한국 호떡, 핫도그, 떡볶이, 김밥같은 것들이 미국에서 인기라는 소식이 들립니다. 음악과 영화를 넘어 이제 음식도 한류열풍이랍니다. 그 소식을 듣고 새삼 한류의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진 결과 나는 이 질문에는 한가지 자명한 답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진취성이죠. 

 

제가 좋아하는 일본 음식 만화 중에 맛의 달인이라는 만화가 있습니다. 굉장히 조사를 많이 해서 쓰기 때문에 다큐같은 느낌도 주는 이 만화를 포함한 여러 일본의 음식 만화에는 50년이나 백년이 넘은 오래된 일본 식당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런 식당에 대한 에피소드는 보통 맛의 달인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하게 흘러 갑니다. 

 

그 이야기는 이런 식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아주 옛날에 먹은 닭요리가 너무 맛있었다고 여겼는데 오래된 가게에 가서 그걸 먹어보니 그 맛이 아니었습니다. 과거에 대한 미화로 맛을 잘못 기억하는거 아니냐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주인공은 결국 맛의 차이는 물의 차이, 닭의 차이, 야채의 차이같은 거라는 것을 알아냅니다. 즉 그때의 맛을 그대로 재현하려면 그때의 닭을 그대로 써야 하는데 요즘의 닭은 다르다는 깨달음을 얻는 겁니다. 그래서 옛 닭과 최대한 비슷한 닭을 구한 결과 옛 맛을 재현하는데 성공합니다. 

 

저는 이런 이야기를 읽을 때 상당히 그럴 듯하다고 생각했습니다. 50년된 우동집이나 자라집이면 그 집의 요리의 완성도가 얼마나 높겠는가. 옛날 맛 그대로를 외치는 가게들이 훌룡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십년을 같은 요리를 해온 장인의 솜씨는 젊은이가 쫒아갈 수 없는거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생각도 물론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건 진실의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기본적으로 결국 옛 맛을 그대로 지키는 것이 훌룡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같은 방식을 숙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몇백년전이면 왕이 먹던 음식도 사실은 요즘에 비하면 별거 아닐 수도 있습니다. 식재료가 다양하지 않았고, 조리기구도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종대왕이 커피를 마셔봤겠습니까, 삼겹살을 마셔봤겠습니까, 치즈는 드셔봤을까요? 고추가 들어오기 전이니 뻘건 김치도 드셔보지 못했을 겁니다. 

 

한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과 다른 선진국의 가장 큰 차이는 다른 선진국들은 대개 과거의 영광에 빠져서 과자나 음식에 대해 이건 원래 이렇게 하는 거라면서 옛전통을 지키는데만 집중했는데 한국은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었던 겁니다. 과거의 영광따위는 없고 언제나 새로운 것이 더 좋았으니까 새 것을 더 추구한 거죠. 삽겹살이나 치킨, 핫도그만 해도 그냥 이건 이렇게 먹는거다라고 하는게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했던 겁니다. 크로아상도 프랑스것이 그냥 좋다고 하지 않고 크러플을 만들고 크룽지를 만드는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양념치킨이라는 것이 없고 튀긴닭은 그냥 프라이드 치킨이었죠. 그런데 양념치킨이 나온후 한국인들은 정말 그걸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나서는 그걸 넘어서 수많은 치킨 요리들을 만들었죠. 삼겹살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패삽겹살, 벌집 삽겹살, 와인삽겹살등 새로운 삽겹살 요리 방식이 계속 나왔죠. 지금은 또 그때와 다릅니다. 

 

이러니까 한국이 다른 겁니다. 30년전과 똑같이 닭을 튀기고 똑같이 핫도그를 만드는 나라와 30년전은 기억도 안나는 나라가 만나면 진취적인 쪽의 맛이 더 대단하기 쉽죠. 제가 어렸을 때의 한국 핫도그는 손톱만한 싸구려 소세지를 엄청난 양의 밀가루로 뒤집어 씌운 싸구려 음식이었습니다. 지금은 그게 전세계 어느 핫도그 (사실 미국식으로는 콘도그지만)보다 우수한 핫도그가 된 겁니다. 반면에 제가 청년때 먹은 영국의 칩스앤 피쉬는 지금도 그대로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런 걸 생각하면 맛의 달인에서 미화하고 우리가 지켜야 한다고 했던 미덕이 반드시 가치없는 것만은 아니지만 결국 끝없이 개선하고 새로운 것을 찾는 노력을 과소 평가하는 것이기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30년 장인의 맛은 30년 수련하지 않으면 재현할 수 없다는 식의 신화는 상당부분 허구라는 겁니다. 한국은 쉽게 다른 나라의 맛과 레시피를 배웠고 거기서 더 앞으로 나가는데 장인의 신화에만 빠져서 40년 전의 맛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것에 자부심을 가져서는 한국의 맛에 지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요. 

 

그러고 보면 영화든 음악이든 다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한국적인 것을 가미하기도 했고, 외국의 것을 모방도 했지만 결국 더 좋은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계속 더 좋은 것을 향해 나아갔는데 미국, 유럽, 일본은 다 보수적으로 느릿하게 옛 향수에 젖어있던 면이 큰 것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무시하던 한국의 문화가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이렇게 보면 한국인의 진취성이 참 고맙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안주하지 말고 더 앞으로 계속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때가 진짜 한류의 시대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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