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언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 중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언론에 대해서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흔히 주장하는 바는 언론사나 기자들이 부패했거나 어리석거나 특정한 사상에 빠진 사상적으로 위험한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을 믿는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부패한 언론을 문닫게 하고, 뛰어난 기자를 발굴하며 사상적으로 치우침이 없는 사람들이 기자를 하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측면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언론에 대해서 불만을 가지는 사람은 결코 특정한 정당 지지자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말하자면 보수에 언론이 기울어서 편파적으로 보도를 한다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비판합니다. 그런데 보수 지지층도 그런 언론이 지금 편파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민주당 지지자가 언론장악이라고 말하는 것을 언론 정상화라고 말합니다. 그러니까 모두가 언론사가 편파적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입니다.
언론에 대한 또 다른 측면은 언론이 부패하고 무능하다는 비판이나 그걸 바로 잡겠다는 수 없는 노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언론의 부패와 무능은 점점 더 심해져만 갈 뿐 결코 좋아지지 않았다는 겁니다. 이 나라에는 지금도 수 없이 많은 배운 사람들이 대학으로부터 배출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신문사를 세운다거나 언론사를 비판하는 등의 개혁을 해왔습니다. 종편방송이 나왔고 한겨례나 오마이뉴스같은 신문사들도 만들어졌지요. 그런데도 언론의 상태는 50년이나 40년전보다 더 나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전 환경부장관이었던 유시민같은 사람은 자신은 이제 언론이 개혁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언론은 다 편파적으로 자기 할말을 할 뿐이니 유튜브같은 새로운 매체를 통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할 방법을 따로 찾아야지 언론이 바로 서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다는 겁니다.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들을 종합해서 볼 때 우리는 여러가지 이유로 언론에 불만을 가지지만 언론이 제역할을 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원인을 개인적 타락이나 어리석음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문제의 원인은 주로 세상이 이제 아주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곳이 되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언론이란 대중 매체입니다. 다시 말해 기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메세지를 전달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정보를 전달하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언론은 이제 점점 더 틀린 예측만하는 일기예보같아진 것입니다.
예를 들어 1997년의 IMF 사태는 한국인들에게 아픈 과거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가 참 좋았다고 말하던 사람을 알고 있습니다. 놀라워서 왜 그렇냐고 했더니 IMF로 망한 회사들이 많아지자 서울에서 살던 사람들 중에 지방으로 내려간 사람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지방에가서 농사일을 거들 사람이 많아지자 농사를 짓던 사람들은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 겁니다. 일꾼이 아주 많아졌으니까요. 그리고 그들은 땅을 가진 사람들이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실직도 하지 않았죠.
사람들은 한국이 이렇니 저렇니하고 말하기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는 수도권으로 인구가 집중되는 지금의 상황을 수도권이 지방을 식민지로 침탈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결과 지방은 청년층이 없어지다 못해 인구소멸이 될 판인 곳이 늘어났습니다. 그 권력을 지키기 위해 정치권은 경국대전 운운하면서 세종시로 수도를 옮기는 것을 반대했습니다. 30년전에는 부산의 부산대학교정도면 꽤 괜찮은 대학이었는데 그 대학이 지잡대라는 멸칭으로 불릴 정도로 몰락하는 상황이 벌어졌는데도 이런 상황은 멈추질 않습니다.
아뭏튼 이런 지방식민지론이라는 관점으로 보면 IMF 사태는 한국의 몰락이지만 동시에 중앙의 몰락인 것입니다. 중앙만 보고 있는 사람은 그걸로 나라가 망한다고 말하지만 중앙이 몰락했더니 지방이 살기 좋아졌다는 면도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IMF가 바람직했다거나 장기적으로도 지방에 도움이 되었다같은 면을 말하기 위해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한국이나 민주주의나 경제같은 여러가지 보편적 단어들이 세상이 복잡해 지면 힘을 잃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잡한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같은 메세지를 뿌리는 대중 매체는 마치 오늘은 한국에 비가 온다느니 아니면 눈이 온다느니 하는 일기예보와 같습니다. 지역마다 일기가 다 다르니까 전국의 80%지역에 비가 왔다고 해도 그런 일기예보는 옳지 않고 의미도 없지요. 우리는 가뭄으로 야단인데 전국 기준으로는 홍수가 날 정도로 비가 많이 왔다고 해서 늘상 홍수에 대비하라는 메세지를 듣는다면 그런 메세지를 전달하는 매체를 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날씨는 이 세상의 복잡성에 비하면 아주 단순한 것인데도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 정책에 대한 기사를 쓴다고 할 때 교육이란 단지 오늘 학교에 무슨 일이 있어냐의 문제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한 복잡한 평가기준을 전제하는 것입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그 기사를 읽을테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기사에 대해 현실을 모른다면서 반대하게 되는 것이 어쩌면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결국 우리는 전에는 두 자리 숫자의 더하기 정도를 주판으로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30자리의 숫자들을 곱하는 문제를 주판으로 하고 있는 셈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더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곳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판알을 옮기는 사람들이 부패하고 어리석다고 욕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문제는 한국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20세기에는 한국 사람들이 선진국의 정치를 부러워 했지만 지금보면 세계적으로 미국이나 일본이나 유럽도 그렇게 아름다운 정치판을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당장 이번 프랑스올림픽만 봐도 일처리가 엉망이라는 말이 나오죠. 미국에서도 치매증상으로 말을 잘 못하는 바이든이나 강성파적인 말만 하는 트럼프가 정치판을 양분해서 싸우는 모습을 보면 누구를 지지하는가를 떠나서 미국이 저정도 밖에 수준이 안될까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사회문제의 근본원인도 결국에는 언론을 그 핵심으로 하는 사회적 의사결정 과정이 오늘날 어디나 할 것없이 망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사람들은 가만히 있는데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 지자 우리는 제트기 조종석에 앉은 침팬지처럼 변했습니다. 이 세상이 우리가 조종하기에 너무 복잡해진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할 때 우리는 첫째로 언론과 기자를 욕하는 것을 그만 둬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일해온 방식으로는 누구도 그 일을 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욕하는 것으로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우리가 보고 들었던 정보들에 대해서 더 많은 의심을 해야 합니다. 오늘날에는 정보가 너무 많이 넘쳐납니다. 그래서 그 정보들이 정말 중요한 것인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전국에서 비가 오고 있는 곳은 극소수 지역인데도 지금 매일같이 비피해 뉴스만 듣고 있는 상황일 가능성도 아주 큽니다.
언론의 현실에 대해서는 이미 유명작가 마이클 클라이튼이 머레이 겔만 효과라는 이름까지 붙였습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머레이 겔만은 신문 기사중에 물리학 관련 기사가 나오면 그것이 얼마나 기초적 이해가 없는 사람에 의해서 쓰여진 엉터리 기사인가에 대해서 놀란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쓰여진 기사를 읽으면 같은 반응을 합니다. 뇌과학자는 뇌과학에 대한 기사에서, 소상공인은 소상공인에 대한 기사에서, 교사는 교실에 대한 기사에서 같은 것을 느낍니다. 중고 자동차 판매업자는 자동차에 대한 기사에서 같은 것을 느낍니다. 마이클 클라이튼이 머레이 겔만 효과라고 말하는 현상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쓴 언론사의 기사들이 여전히 어느 정도는 옳을거라고 믿는다는 현상을 말합니다. 한마디로 기사는 모두 쓰레기이고 사람들은 자신이 아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다는 것을 알아보기 까지 하는데도 그걸 제외한 기사들은 쓰레기가 아닐 거라고 여전히 믿는다는 현상이 머레이 겔만 효과입니다.
기사가 모두 쓰레기인 근원적 이유는 언론사가 부패했거나 기자가 어리석어서가 아닙니다. 쓰레기가 안될 기사를 쓰기에는 세상이 너무 복잡해서 그렇습니다. 전기차가 화재가 났다는 기사가 한번 나면 계속 그런 기사가 나오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전기차가 위험하다는 믿음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기사는 전기차가 화재가 날 확률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을까요? 얼마전에는 검은 피부를 가진 배우가 백설공주의 주인공으로 캐스팅되어서 지나친 PC주의가 지겹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여자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기만 하면 그것만으로도 남자의 성추행이나 강간이 유죄판결 받을 수 있다는 현실에 분노하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의 바탕에도 현실의 복잡함이 존재합니다. 날마다 남편에게 가정 폭력을 당하는 여성 피해자만 보는 사람의 눈에는 모든 남편은 잠재적 가해자로 보이겠지만 날마다 남자를 유혹하는 꽃뱀만 보는 사람의 눈에는 모든 여성이 창녀같아 보일 것입니다. 문제는 복잡한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자기가 보는 세상을 이 세상 전부로 알고 그걸 일반화한다는 것입니다.
과학의 역사를 통해서 이 문제를 보면 이 문제는 마치 계량화가 도입되어 과학혁명이 일어난 17세기 이전의 과학과 같습니다. 그때는 무겁다 가볍다같은 일반어로 과학을 했지만 과학혁명이 일어나자 정확히 측정된 무게와 같은 데이터로 과학이론이 만들어졌지요. 재산에 따라 사람을 구분한다고 해도 부자와 가난뱅이, 부유층, 중산층,빈곤층이 있는게 아니라 재산의 분포가 있는 것입니다. 신화와 미신의 시대는 정확히 측정된 양에 기반한 과학이 발전하면서 과거가 되었습니다.
결국 지금 시대에서 현재의 방식으로는 언론의 문제는 불치병입니다. 정보처리의 혁신이라는 기술적 발전이 없이는 이 불치병의 근원적 해결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이 정보처리의 혁신은 물론 AI의 발전을 포함하지만 단순히 AI라고만 말하기에는 부족함이 있는 것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단계에서는 우리가 접하는 정보들이 편향되어 있고, 구멍이 많으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정보가 너무 많아서 세상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기 힘든 단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불확실성이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으면 위험에 빠지기 쉬울 것입니다. 믿고 의지할 곳이 별로 없는 세상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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